READING ROOM
이 멋진 테네시에 다시 내려오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부터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집회를 오래도록 기억해 왔습니다. 이렇게 단에 서 있는데, 지금도 사람들이 기도를 받으러 제게 와서 이렇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이 채터누가에 오셨을 때 저는 이러이러한 병을 고침받았습니다.” 그러니 그 열매가 계속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집회에서 여러 설교자도 나왔습니다. 그들이 저를 찾아온 적이 있는데, 이제 막 비전을 붙든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오늘 밤 그들은 사역 현장에 나가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힘써 싸우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젊은이가, 아니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군요. 한 집회에서 설교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집회는 하나님의 왕국에 혼들을 낳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난번 집회가 참 기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 몫을 두 배로 주시고 큰 집회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일 형제님과 제가 이곳에 내려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주님의 재림에 아주 가까운 때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번 주에 조금 자리가 잡히고, 사람들이 온다면 이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뒤에, 밤마다 그런 주제들, 곧 주님의 재림과 시대의 표적들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오늘 밤 주 예수님의 오심을 가로막을 만한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좀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한, 그분의 재림에 관한 모든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고 이제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분이 어느 순간에 나타나시든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집회 동안 그렇게 살아갑시다. 이번이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열리는 마지막 집회, 마지막 부흥회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임합시다.
오늘 밤이 테네시가 지도 위에 존재하는 마지막 밤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침이 되기 전에 가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지금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아니, 온 세상이 아침까지 가루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 무기가 죄 많은 사람들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는 것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오늘 밤 하나님께 이 집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시기 바랍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해야 한다면 그렇게 합시다.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서 영광을 받으시고, 부르심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구원받을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됩니다. 그것은 기형적인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해진 수보다 단 한 사람도 더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사람이 왕국에 들어오면 문은 닫힙니다. 그 뒤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으며,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아신 사람들을 부르시며, 마지막 사람이 부르심을 받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아, 그것이 오늘 밤일지도 모릅니다. 죄인인 친구에게는 끔찍한 때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영광스러운 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믿고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조금 읽고 싶습니다. 저는 매일 밤 말씀을 읽기를 좋아합니다. 베일 형제님께서 말씀을 전하신 뒤에도 말입니다. 특히 이 첫날 밤에는 말씀을 읽고 잠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낯선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집회를 열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그분들께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회중석 어디에 계시든, 우리 집회에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분이 몇 분이나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손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우리 집회에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참 환영받는 느낌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가 복음을 전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경에서 “내가 하늘에서 온 그 환상 계시에 불순종하지 아니하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감리교든, 침례교든, 장로교든, 오순절교든,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 모든 사역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이 믿는 것과 반대되더라도 그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쨌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 성경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존중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따른다면 저는 그를 존중합니다. 자기 부르심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 집회를 흔히 그저 “치유 집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치유가 이 집회의 목적은 아닙니다. 치유는 죄인을 낚는 데 쓰는 미끼일 뿐입니다. 낚시하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강가에 사시지요. 물고기에게는 낚싯바늘을 보여 주지 않고 미끼를 보여 줍니다. 아시겠죠? 물고기는 미끼를 물었다가 바늘에 걸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님?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신유는 그저… 그것은 속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가르치며, 사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온 세상에서 주님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왔던 뒤로 주님께서는 저를 세계 곳곳으로 이끄셨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행하시는 집회들 가운데, 제가 이제껏 보거나 읽어 본, 주님께서 행하신 가장 큰 집회들 가운데 몇몇을 보았습니다.
최근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주님께서 단에서 기적, 곧 분별의 기적을 행하신 뒤에 단 한 번의 제단 초청으로 순전한 이교도 삼만 명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삼만 명입니다. 이 도시 인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담요를 두르고 살며 오른손과 왼손도 분간하지 못하던 원주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땅에 내리쳐 부수었고, 한 번의 제단 초청 때 그들 삼만 명에게 표를 달아 주었습니다.
최근 인도의 봄베이에서는 가늠할 길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협력한 곳이 다른 한 교회였기 때문에 교회들의 협력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교회가 그 교회를 반대하자 나머지 교회들도 그 단체를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왔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목회자들이 협력해 주면 회심한 사람이 갈 수 있는, 자기의 교회가 생길 텐데 말입니다… 그를 다시 마귀의 돼지우리로 돌려보내면 그는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안내할 만한 좋은 곳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에 관해 말씀하신 것처럼, 그가 그 사람을 여관으로 데려갔지요. 선한 사마리아인이 쓰러진 사람을 여관으로 데려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후원하던 그 작은 교회는, 우리가 머문 사흘 동안 약 오십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되는 그곳의 사람들을 돌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슬림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왔는지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을 돌볼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밤 이곳 단에 훌륭한 목회자들이 모여 계신 모습을 보니 참 기쁩니다. 혼들이 구원받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이분들이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이분들은 여러분을 자기 교회로 데려가 주님의 길을 더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려고 제 뒤에 모인 이 훌륭한 남녀 성도들과 함께 이곳에 있으니 기쁩니다.
설교자로서 저는 그다지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은사, 곧 하나님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은사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교회에 주신 은사를 말합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고린도전서 12장 같은 데 나오는 지역 교회 안의 은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심으로 정하신 다섯 가지 사역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사도이고,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목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신 은사들입니다. 사도, 또는 선교사…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선교사”라고 부릅니다. 초기에는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라는 말이 “보냄받은 사람”이라는 뜻인 것은 누구나 압니다. “선교사”라는 말도 “보냄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둘 다 같은 것입니다. 선교사, 선지자, 교사, 복음 전도자, 목사입니다. 그다음, 기도를 잘하는 회중이라면 모든 지역 교회 안에서 아홉 가지 영적 은사가 역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이끌어야 할 목회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그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광신주의나 그 어떤 잘못된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이 오직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일임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변 온 지역에 본이 되는 참된 교회, 모범적인 교회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벌들이 모여드는 벌통과 같은, 사랑스러운 교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곳의 목회자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시고, 아직 그런 교회를 갖지 못하셨다면 이번 집회가 끝날 때 그런 교회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이 치유자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모두 그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평생 누구 한 사람도 고친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누가 그랬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만일 의사든 병원이든 사역자든 누군가가 고친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말씀에 틀린 것을 기록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시편 103편 3절에서 그분은 “나는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는 주라. 네 모든 질병을 고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의사가 병을 고친다고 믿지 않으십니까?” 하시겠지요. 저는 평생 자기가 고친다고 말하는 의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메이요 병원과 여러 훌륭하고 큰 기관에서 면담을 받았지만, 자기가 고친다고 말하는 의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의사는 고치는 분이 아닙니다. 팔이 부러져서 의사를 찾아가 “의사 선생님, 제 팔을 빨리 고쳐 주세요. 계속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의사는 그런 질문을 하다니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사는 팔의 뼈를 맞출 수 있지만 그것을 낫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장염에 걸렸다면 의사는 맹장을 떼어 낼 수 있지만 낫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유한다는 것은 조직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창조주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마귀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마귀는 창조된 것을 왜곡합니다. 하지만 창조자는 아닙니다. 만일 창조자라면 하나님과 동등할 것입니다.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창조주는 오직 하나님뿐이며, 마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왜곡합니다.
질병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병원들과 의사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위대한 일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 몸을 연구하고 여러 종류의 약으로 여러 병균을 죽이는 법을 압니다. 우리는 그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사가 치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브래넘 형제님, 페니실린은 어떻습니까? 폐렴에 걸렸을 때 의사가 페니실린을 주면 그것이 병을 고치지 않습니까?”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의사는 그것이 여러분을 고쳤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는 병균을 죽이려고 페니실린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를테면 집에 쥐가 잔뜩 있어서 집을 갉아 구멍을 뚫는 것과 같습니다. 쥐약을 놓아 쥐를 죽였다고 해서 구멍이 메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쥐만 죽이는 것입니다. 페니실린도 그와 같습니다. 병균을 죽일 뿐입니다. 파괴된 세포를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세우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이라니, 자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연 안에 계시며, 자연이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십니다.
베일 형제님께서 이런 것들을 설교하시는 줄 압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훌륭한 교사이시지요. 매일 오후 그분의 말씀을 들으러 오십시오. 그 말씀이 집회를 위한 토대를 쌓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것은 토템 기둥을 만지거나 무슨 조그마한 요술 같은 것을 행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갈보리에서 완수하신 일을 믿는 것입니다. 치유의 권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의 손에도 치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의 몸에도 치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몸을 고치시려고 그 안에 계시는 성령 외에는 말입니다. 아시겠죠? 치유는 구원과 같습니다. 치유는 완수된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십 년 전이나 이 년 전, 혹은 이십 년 전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천구백 년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이 년 전이나 십 년 전, 또는 여러분이 받아들였던 그때 그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갈보리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고,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사역자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 신유의 은사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도록 말씀을 풀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믿을 수 있을 때, 머리로만이 아니라, 지적인 이해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알 때…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아무도 네게서 먹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그 나무가 스물네 시간 안에 말라 버렸고 제자들은 그것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너희가 이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빠지라’ 하고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너희가 말하는 것을 받을 수 있느니라.” 바로 “여러분”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산을 옮기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니 밖으로 나가서 “산아, 옮겨져라”라고 말하라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내가 옮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소”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이 올바르고 동기가 올바르다면, 말하는 이는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여러분 자신의 방식을 완전히 내려놓아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해 말씀하시게 될 때… 이 목회자들이 말씀을 전하도록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와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을 주십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영께서 말씀하시며, 그것은 언제나 옳습니다. 산에게 말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목적과 동기가 올바르다면, 더 이상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산을 움직이는 분은 바로 그분입니다. 여러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오늘 밤 요한복음 12장 20절에 있는 잘 아시는 짧은 성경 본문을 읽겠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베데스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오늘 밤 저는 히브리서 13장 8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것이 우리 대전도 집회의 주제입니다. 이번 대전도 집회의 주제이며,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이런… 이런 확신을 가지고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그리스 사람들이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계신 모든 분의 마음을 참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예수님에 관해 들어 본 모든 사람의 소원은 그분을 뵙는 것입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 귀한 이름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뵐 때, 신체적으로, 외모로 말씀드리자면, 그분에게는 우리가 그분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날 그 그리스 사람들이 베데스다 출신의 빌립에게 나타냈던 그 소원… 그날 그런 소원을 표현하는 것이 좋았다면, 우리도 같은 소원을 가질 때 오늘 그분을 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밤 청중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뵙고 싶은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어디 봅시다, 혹은… 죄인이시라도 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그분을 뵐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이 말씀이 하나님의 틀림없는 진리이며,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한다면, 만일… 그것은 진리이거나 진리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진리가 아니라면 저는 이 책을 덮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려고 제가 이 자리에 서서 설교하고 삶을 바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제 삶의 이십칠 년을 사역에 바쳤는데 말입니다. 옳지 않다면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옳다면 전부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동일하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원칙에서도, 권능에서도, 태도에서도, 모든 면에서 전과 동일하셔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 어디에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분의 육신의 몸은 그분께서 일으키신, 아니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몸으로서, 오늘 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자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나무는 가지에 힘을 공급할 뿐입니다. 여러분이 이곳 강변 저지대의 밭에 나가 호박 덩굴을 발견한다면, 그 호박 덩굴에서 호박이 열리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수박 덩굴을 발견했다면 수박이 열려야 합니다. 포도나무라면 포도가 열립니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가지 속으로 포도즙, 곧 포도의 생명이나 수박의 생명을 밀어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가지는 그 덩굴이 힘을 공급하여 맺게 하는 것을 맺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그 포도나무이신 그분께서 이곳에 계실 때 맺으셨던 것과 같은 종류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가지라면… 가지가 건강하지 못해서 무언가에 감겨 힘을 공급받지 못하면, 얼마 후 가지치기하는 사람이 와서 그 가지를 잘라 버리고 그 가지는 없어집니다. 천구백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어 계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시다고 배웁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들이나 우리가 가르치고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한 신학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딘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것을 압니다. 우리가 그저 죽은 어떤 신조나 어떤 책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까? 코란이나 부처에 관한 책, 시크교나 자이나교, 또는 세계의 다른 큰 종교들처럼 말입니다. 저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코란을 들고 수만 명의 무슬림과 그들의 성직자들 앞에 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은 신자 수로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두 배, 세 배나 됩니다. 가톨릭과 모든 것을 다 포함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만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두 책 가운데 하나가 옳아야 합니다. 서로 모순되므로 둘 다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결정적인 시험대에 세우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라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두려워한다면 그 종에게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일 때 이쪽저쪽을 살핀 것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 밖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살피며 “제가 잘하고 있습니까? 괜찮습니까?” 또는 “아, 저에 대해 뭐라고 하실까 봐 두렵습니다”라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사람은 위를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이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세상의 말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신성한 사명을 받았고, 그 임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 그저 그분을 뵐 수만 있다면요.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곳 남부에 살던 한 늙은 흑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예 제도가 있던 시절, 어느 날 그는 오래된 농장에서 찬송을 부르는 모임 가운데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날 아침, 그는 돌아다니며 모든 노예에게 자신이 구원받아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농장 주인이 말했습니다. “모즈, 네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말한다더구나.” 그가 대답했습니다. “예, 주인님. 주 예수님께서 저를 죽음과 죄의 형벌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모즈, 내 사무실로 오너라.” 그가 사무실로 가자 주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해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어젯밤 우리는 저쪽에서 밴조를 연주하며 노래 몇 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주 예수님께서 제 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죽음의 법에서 자유롭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모즈, 네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면 내가 오늘 내려가서 해방 선언서에 서명하겠다. 너를 자유롭게 해 주어 네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마.”
오랜 세월 사역한 뒤, 그 늙은 흑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백인 형제들이 많이 찾아와 그를 보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사람들이 생각할 무렵… 그는 여러 시간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깨어나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말했습니다. “아, 제가 이 잔인한 옛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모즈. 건너갔다 왔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 막 문 안에 들어갔었어요.” “모즈, 왕관과 예복을 받았나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한 분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즈, 이제 네 왕관과 예복을 받아도 된다.’” 그는 말했습니다. “제게 왕관과 예복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그럼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 “그저 백만 년 동안 그분을 바라보게만 해 주십시오. 제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마음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분을 뵙고 바라보게만 해 주십시오. 제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은 왜 그렇게 위대하십니까? 저는 오하이오강 가에 삽니다. 얼마 전 제가 자란 도시에 사는 한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엄마, 하나님은 그렇게 위대하신데 누구든 그분을 볼 수 있어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께 여쭤보렴.” 주일학교 선생님은 “선생님도 대답해 줄 수 없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는 게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얘야, 물론 볼 수 없지.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강가에서 지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늙은 어부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 늙은 어부는 노를 저어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폭풍 뒤의 고요함과 노래하는 종달새들, 온갖 새들 가운데서 그 늙은 어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수염 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배 뒤편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는 마음이 크게 움직여 배 한가운데로 달려가 어부 곁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주일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엄마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을 하나 할게요. 누구든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어부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꼭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얘야, 하나님께서 네 작은 마음을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지난 사십 년 동안 내가 본 것은 온통 하나님뿐이란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여기 안에 계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마음 안에 계시면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비판하는 눈이 아니라 그분을 보고자 하는 눈으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우리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가 오늘 밤 장로교나 감리교, 침례교, 하나님의 교회나 오순절교, 혹은 나사렛교나 순례성결교 같은 훌륭한 교단을 찾아간다고 합시다. 제가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물론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몸을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동일하십니까?” 자, 거기서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그들은 “예, 물론이지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시다면, 그때 하셨던 그대로 자신을 나타내고 계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세상, 곧 코스모스는 세상의 질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영광스러운 약속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여기서 ‘내가’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는 나를 보리라.” 그것이 그분의 신성한 약속입니다.
이제 그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돌아가서, 어제의 그분은 어떠하셨는지, 그때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알리셨는지 살펴봅시다. 그분께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면, 오늘도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신 방식을 살펴보았을 때, 그것이 큰 학교들을 짓는 일이었다면, 큰 신학교들을 짓는 일이었다면, 큰 교회들을 짓는 일이었다면, 그분의 백성에게 수학과 문법을 가르치는 일이었다면… 그러나 어제 자신을 알리셨던 그 방식, 오늘도 동일하시다면 그분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셔야 합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잠시 그분의 삶을 미리 살펴보아 알아보도록 합시다. 기억하십시오. 개혁이나 사역이 시작될 때마다 그것이 곧바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역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선지자들도, 루터도, 웨슬리도, 칼뱅도 그랬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사람들이 그것이 성경에 맞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 기초,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외에는 다른 기초가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나 선견자나 꿈꾸는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제 뒤에 계신 성직자들은 이것을 아실 것입니다. 평신도 가운데는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론의 제사장 체제 아래 있던 그들에게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론이 지녔던 가슴받이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그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열두 보석, 탄생석이 달려 있었고, 성전에 걸어 두었습니다. 선지자가 의심스러우면 그를 이 우림과 둠밈 앞으로 데려가 예언하게 하거나, 꿈꾸는 사람에게 자기 꿈을 말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참된 것처럼 보여도 그 우림과 둠밈 위에 거룩한 빛이 번쩍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우림과 둠밈 위에 거룩한 빛이 번쩍이면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일을 통해 응답하셔서 그것을 받아들이셨으며 그것이 진리임을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 오늘 밤 이 작은 회중이 이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초자연적인 일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지만, 늘 자신의 말씀에 따라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초자연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대에 그것은 그분의 말씀이 초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일이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체제가 끝나자 그 우림과 둠밈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는 또 다른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말씀입니다. 꿈꾸는 사람이 꿈을 꾸거나 선지자가 예언하더라도 말씀과 맞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여야 합니다. 그것이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학에 따른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위대한 교사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그 자리에서 그분을 정죄하며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신학에는 어긋나셨지만 성경에는 정확히 일치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같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어떠하셨는지 알아봅시다. 오늘 밤 제가 읽은 책, 요한복음에서 시작합시다. 1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에 집으로 돌아가시면 제가 지금 인용하려는 부분을 공부해 보십시오. 앞으로 십 분 정도 되는 시간에 그것을 다 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며 아버지를 자기 안에 모셔 들이신 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으며 그분께서 신성을 지니셨음을 참으로 믿습니다. 이곳 남부에 사시는 여러분도 믿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얼마 전 한 부인이 제게 “그분은 그저 선지자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저 선지자라면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몸 안에, 곧 자신의 아들 안에 거하신 여호와,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위대한 뜻으로 처녀에게서 태어난 성막, 곧 몸을 창조하셨고, 그 안에 사시며 그 몸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위에 임하시자마자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광야에 들어가셨다가 사십 일 뒤에 나오셨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가장 약한 그리스도인이라도 하나님의 어느 약속이든 붙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셨다면, 왜 사탄이 이렇게 말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기적을 행하여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라.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어 먹어라.” 그분은 “기록된 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늘 말씀을 덧씌우려 하듯이 다시 돌아가 그분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기록된 바”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떤 곳이든,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이길 것입니다. 고래의 배 속에 있든, 사자 굴에 있든, 암으로 병상에 누워 있든, 저기 자동차 사고로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든,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서나 사탄을 이길 것입니다. 가장 약한 그리스도인도 그 말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라는 늙은 어부가 그분께 왔습니다. 당시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가 왔을 때 놀라운 것은, 어제의 예수님께서 그가 누구인지 아셨고 그의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네 이름은 시몬이고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도 그를 본 적 없는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말씀하셨을 때, 기름 묻은 앞치마를 두른 그 늙은 어부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네게 다른 이름을 주리라. 너를 베드로라 부르겠노라. 번역하면 ‘작은 돌’이라는 뜻이니라.”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자신을 나타내신 모습이었습니다.
곧이어 오늘 밤 우리가 읽었던 빌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살던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선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산을 돌아 삼십 마일 떨어진 곳에 살았습니다. 빌립은 그를 데리러 산을 돌아갔습니다.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빌립은 예의를 갖추어 그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자, 빌립이 말했습니다. “와서 우리가 만난 분을 보십시오.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십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나다나엘이었습니다. 신념이 매우 확고하고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모세의 율법과 자신이 속한 정통 교회의 가르침밖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습니까? 저 아래 사는 저 무리 가운데서 무엇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가난하고 글도 모르는 사람들, 오늘날 우리가 빈민가라든가 그런 곳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습니까?” 빌립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대답을 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집에 머물러 비판하지 말고 와서 직접 알아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말만 믿지 마십시오. 가서 확신이 설 때까지 머무십시오.
산을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틀림없이 간증을 나누었겠지요. 나다나엘이 들려주면서, 아니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들려주면서, 아마 베드로가 왔을 때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말씀해 주신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또는 이렇게 말했겠지요. “강가의 그 늙은 어부 기억하지요?” “예.” “그 사람이 그곳에 갔을 때, 그분께서 그가 누구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잠깐만요, 빌립. 아마 자네가 너무 지나친 데로 빠져든 것 같군요. 무슨 홀리 롤러들 같은 무리에 가담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빌립,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자네와 나는 같은 회당에 앉아 함께 경배하곤 했잖아요. 다윗의 찬송을 부르며 여호와를 경배해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요.” “자, 그냥 와서 직접 알아보세요.” 그들은 산을 돌아 하루쯤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렀을 때… 기억하십시오. 이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 아마 회중 가운데 있었을 수도 있고 기도 줄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예수님의 임재 안에 들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몸을 돌려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당시 남자들은 모두 비슷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었고 도둑일 수도 있었습니다. 불의한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처음 보시고 “너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참으로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다시 말하면, “선생님께서는 평생 저를 본 적이 없으시고 저도 선생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삼십 마일을 돌아가야 하는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지역에 가신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산을 돌아 삼십 마일 너머까지 보시는 그 눈이 어떠하십니까!
이 유대인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앞에서 그런 일을 보이셨을 때 그는 무엇을 알아보았습니까?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보았을 때 그 유대인이 한 말입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곁에 서서 “이 사람은 점쟁이요, 마귀요, 바알세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무신론자들이었습니까? 교인들이었습니다. 세상에 있었던 최고의 학교들, 최고의 신학교들에서 나온 학자들이었습니다. 그 기적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람은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유대인은 “그는 바알세붑이요, 마귀다. 점쟁이 노릇을 하며 저런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돌아서서, 먼저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용서하리라.” 여기서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용서받으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다시 말해 같은 일을 행하시러 오시면, “그분을 대적하는 한 마디의 말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분께서 성령을 통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때라면 상당히 엄중한 일이겠지요? “내가 너희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때, 말로든 생각으로든 마음속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분을 대적하는 단 한 마디라도 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을 행하시는,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그들이 점쟁이나 바알세붑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 곧 부정한 영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구원받도록 하나님의 미리 아심 가운데 태어난 참된 유대인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즉시 그것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음 그분께서 자신을 알리신 대상은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는 그 일을 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떤 이방인에게도 가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날이 올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가라.” 그러나 그분께서 사마리아에 오셔서 우물가에 앉으셨을 때 한 젊은 여인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녀는 평판이 나쁜 여자, 거리의 부도덕한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물을 길으러 와서 물동이를 우물 속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정오쯤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먹을 것을 구하러 보내셨습니다. 그녀가 물을 길으려고 물동이를 내리다가 한 중년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분은 서른 살밖에 되지 않으셨지만 성경은 쉰 살처럼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분의 사역 때문에 그렇게 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벽에 기대앉아 계셨습니다. 그곳에 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우물이 있는 곳은 덩굴이 덮인, 이런 작은 풍경 같은 곳입니다.
이 여인이 물을 길으려고 물동이를 내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가져와 내게로 오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분리하는 법이 있습니다. 유대인이신 당신께서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골짜기로 곧장 내려가는 길에 있는 여리고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뒤쪽으로 산을 돌아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분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잠시 후에 알아보겠습니다.
그분이… 그녀가 “우물은 깊습니다”라고 하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 조상들이 이 우물에서 마셨고, 야곱도 마셨으며, 자기 가축들에게도 마시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영에 접촉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실 때까지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 앞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네게 다섯이 있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그분은 그녀의 문제를 아셨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자, 정통 신앙을 가졌다는 우리 가운데 계신 분들, 이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유대인에게 어떻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보십시오. 이제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보여 주실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메시아의 표적이 무엇이어야 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녀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도시로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행한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니십니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이방인 앞에서는 한 번도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이 여러분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나타내셨다면… 사람들의 갈래는 셋뿐입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사람들, 곧 유대인, 이방인,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반씩 섞인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 시대에 그분께서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을 모두 붙잡으셨지만, 지금은 마지막 날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아들이 마지막 날들에 하늘로부터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는 긍휼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며, 그 두 번째 나타나심에서는 그분을 거부한 자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유대인 시대의 끝에 그분께서 자신을 알리셨고, 또 그 사이에 있는 이들, 유대인과 이방인의 중간에 있는 혼혈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분은 자신의 시대에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방인 시대의 끝에,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셔서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뵙기 원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 이 경기장, 아니 이 강당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눈먼 사람, 걷지 못하는 사람, 몸이 오그라든 사람들이 누워 있었고, 천사가 물을 휘저으면 물속에 들어가려고 울부짖으며 서로를 상처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속에 들어가 자기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어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들 가운데로 걸어가셨습니다. 여전히 요한복음 5장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모두 요한복음 1장에서 5장 사이에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시며 살피시다가 바닥에 깐 요 위에 누워 있는 한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남부에 사시는 여러분은 바닥에 까는 요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저도 그것 위에서 자랐습니다. 이불 같은 것이나 문 옆에 깔아 놓은 작은 깔개 같은 것입니다. 그는 그 요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몸이 불구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먼 것도 아니었습니다.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연못으로 내려가는 동안 누군가 저보다 먼저 달려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삼십팔 년 동안 그런 상태였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네 자리를 들고 네 집으로 가라”라고 하시고는 곧 걸어가셔서 나머지 사람들을 그곳에 두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5장 19절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그분께 따져 물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일만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래도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시는 분들이군요. “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먼저 환상으로 무엇을 할지 보여 주시기 전에는 그분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 자신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틀렸다면 나머지도 틀린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분께 보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분 자신의 육체도 부활하신 뒤에야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직 하나님만이 치유자이십니다. 고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먼저 내게 보여 주시기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며 나도 지금까지 일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보다 조금 앞서, 한 여인이 무리를 헤치고 나아가며 속으로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낫게 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분께 손을 대고 물러나 군중 속에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시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는, 아,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그분 안에는 충분한 성령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분별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권능입니다. “너희가 나를 바알세붑이라 하는구나.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따져 생각하느냐? 네가 집회에 오기 전에 내가 너를 보았노라. 네 이름은 이러이러하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이었다면… 그 여인이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꼭 알아내려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온 무리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약해졌느니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그분께서 주위를 둘러보셨습니다. 그분은 권능을 입고 계셨기에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내셨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말씀해 주셨으며, 그녀의 믿음이 그녀를 낫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것이 오늘의 예수님이십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것이 성경에 맞습니까?”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 성경은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라고 말합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에 대제사장이십니다. 이 말씀을 읽어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분께 손을 댔을 때, 그분께 손을 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판에 앞서 베푸시는 긍휼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시대를 통틀어… 마치기 전에 잠깐 말씀드리자면, 다음번에 말씀드릴 때 여기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부터 5장까지 읽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까? 그 표적들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분께서 이방인 앞에서 그런 일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지금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오래 그 아래서 경배해 온 성령, 바로 그 동일한 성령이십니다. 옥수수가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 작은 줄기입니다. 다음에는 수꽃이 피고, 그다음에는 알곡이 맺힙니다. 땅에 들어갔던 그 본래의 알곡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줄기와 다른 것입니까? 줄기 안에 있던 생명이 수꽃과 알곡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더 성숙한 옥수수 줄기인 것입니다. 감리교인 여러분, 루터교인 여러분, 이것이 무엇입니까? 루터를 그의 시대에 이끌어 내셨고 웨슬리를 그의 시대에 이끌어 내셨던 그 동일한 성령이십니다. 그때보다 더 성숙한 교회입니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들으십시오. 우리 옥수수 이삭에는 곰팡이가 많이 끼어 있습니다. 곰팡이가 무엇인지는 아시지요? 우리 이삭에는 곰팡이가 많이 끼어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짓과 소란, 교단 간의 말다툼과 싸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은 옥수수 이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머지않아 그것을 다듬어 곡간에 거두어들이실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권능도 동일하시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일도 동일하시며, 모든 면에서 그때와 동일하십니다. 지금도 동일하시든지, 아니면 성경이 틀렸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지금은 긍휼이며, 다음에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런 메시지가 전해지는데 오늘 밤 교회에 앉아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은 여기 천 명쯤, 어쩌면 그보다 적다는 말씀입니까?”라고 하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시대를 모릅니다. 언제나 알지 못했습니다. 개신교인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그들이 엘리사를 알아보았습니까? 그는 우리 같은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가 떠날 때까지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알아보았습니까? 제자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왜 엘리사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미 왔으나 너희가 그를 알지 못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습니까? 그분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시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 신자 여러분, 여러분이 성인이라고 부르는 성 패트릭은 어떻습니까? 그는 가톨릭교회에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가 죽은 지 백 년이 지나서야 그가 성인인 줄 알았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어떻습니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겨드랑이에 성경을 끼고 걸어 다니는 설교자였습니다. 어느 날 작은 찌르레기들에게 “작은 자매들아, 내가 설교하는 동안 조용히 있어라”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 항의했고 여러분은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뒤에는 그를 성인으로 삼았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여러분, 잔 다르크는 어떻습니까? 그녀는 영적인 여인이었습니다. 환상을 보고 천사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 신자 여러분은 그녀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그녀를 마녀라고 하여 말뚝에 묶어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악한 영, 바알세붑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 스데반의… 그것이 천사처럼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자기 시대를 알았더라면… 이곳이 자기 시대를 알았더라면 이 장소와 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시대를 모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했습니까? 백여 년쯤 뒤에 잔 다르크가 성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큰 참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그래도 그 일은 여러분 교회의 허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메시지가 더 낫거나 더 못한 대우를 받으리라고 기대합니까? 그것은 여러 나라를 가로질러 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안에서, 자신의 백성과 함께, 사람들 안에 자신을 나타내시는데도 여러분은 옆에 앉아서 그것이 지나가게 내버려 두고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성령께서 이곳에 권능으로 임하시고 그것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셨던 그 동일한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돌아오셔서 그리스도, 곧 빛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저 뒤에 사진이 있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천사입니다. 조셉 스미스가 천사를 보았다는 그 일은 그리스도를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천사는 그리스도를 증언할 것입니다. 참된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을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우림과 둠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귀와 그 모든 일을 향해 맞섭니다. 지금은 교회가 해방될 때인데, 사람들은 신조와 교단 아래 앉아 다투고 소란을 피우느라 자기 시대를 모릅니다. 잠자는 여러분, 일어나 몸을 흔들어 깨우고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이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미지근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구주께서 그들을 자신의 입에서 토해 내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으키시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영원하신 하나님… 그분께서 부활하신 직후, 그 아름다운 첫 부활의 아침에 두 사람, 글로바와 그 친구가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을 걸으며 그분과 이야기하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으시고 나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이 어떤 일을 하시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은 급히 돌아가 “참으로 주께서 일어나셨고 우리가 그분을 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밤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나님, 이 마지막 날들에 이 남부 지방에서, 이 정다운 남부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 아래서 자라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들의 위대한 설립자들 가운데 많은 분이 오늘 일어설 수 있다면 교회의 나태함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밤 간구하오니 예수님을 보내 주십시오. 그분의 부활의 권능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분께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시도록 보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안에 들어오셔서 사람들이 나타나신 그분을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이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은 주님의 말씀 한 마디가 지니는 그 큰 무게에 비하면 한 점, 한 온스만큼의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제 말은 실패하겠지만 주님의 말씀은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원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테이프의 공백 부분]…?…
여러분이 경배하시는 그분께서 오늘 밤 오셔서, 이렇게 다소 두서없이 전한 몇 마디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심어 주시거나, 씨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그 안에 마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푸른 돌에서는 고구마를 기를 수 없습니다. 고구마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것을 뚫을 힘이 없습니다. 너무 단단하게 뭉쳐 있어서 뻗어 나갈 수 없습니다. 모래가 섞인 땅에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려면 먼저 마음이 알맞은 바탕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들에 그를 일으키리라.” 얼마나 담대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위해서 기도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 미국에서는 사역이 너무 더디게 진행됩니다. 미신적인 생각도 너무 많고 여러 가지가 너무 많습니다. 실상 사람들은 그저 여기 앉아서… 집회에 와서는 머릿속에 온갖 이상한 생각을 품습니다. 알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젠가 우리와 함께 대전도 집회에 나가 보아야 합니다. 집에 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아야 합니다. 한번 집에 와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환상들이 임하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을 어떤 도시로 보내고, 어떤 일이 일어날 테니 지켜보라고 하며, 그 일들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곳을 떠나게 하는 것을 말입니다.
바로 그저께 일입니다. 소스먼 씨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캐나다 쪽 책임자입니다. 그분이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빌리, 채터누가로 내려갈게요.” 제가 말했습니다. “프레드, 비행기를 타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아, 빌리…” 제가 말했습니다. “들었지요, 프레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비행기를 타세요.” 그런데도 그는 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지금은 여기 올라오는 길에서 사고가 나서 얼굴이 온통 부서진 채 누워 있고, 아내도 찢기는 상처를 입었으며, 아이도 다쳤습니다. 들으십시오. 아, 그런 일이 정말 많고 많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이곳에 와서 집회에 앉아 “글쎄, 텔레파시 같은 것인지도 몰라. 그와 비슷한 것이나 다른 어떤 것인지도 모르지”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래도 그 일을 행하십니다.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말씀들을 나타내신다면… 그분께서 하신 말씀을 책임지지 않으신다면 그리스도가 아니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나타내신다면… 그리스도께서 이 약속을 참되게 이루신다면 모든 약속을 참되게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오늘 밤 여기 자신의 교회 가운데서 행하신다면,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으며 제 모든 힘과 정신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흥회가 성공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실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매일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줍니다. 베일 박사님께서 이미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밤에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줍니다. 우리는 내려와서 그 가운데 몇 분을 부릅니다. 어느 분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때그때 한 번호에서 다른 번호까지 부릅니다. 매일… 오늘 카드를 전부 나누어 주면 내일 오는 사람은 카드를 받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모두 목회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에게 보냈지요. 그러면 다툼이 생깁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목회자 열다섯이나 스무 분에게 각각 카드 백 장씩 드리면, 자기 교인들을 먼저 들여보내는 목회자의 교인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나머지 사람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내려가서 첫날에 카드를 모두 나누어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튿날 오는 사람들은 첫날 오지 않았다면 올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예전에는 카드를 가져와 모두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나누어 주는 일을 맡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기도 카드를 파는 것을 적발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일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 형제를 데리고 다녔고, 그가 결혼한 뒤에는 제 아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아무도 기도 카드를 팔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맨 앞에 앉은 어린아이를 불러 “얘야, 이리 올라와서 수를 세어 보렴. 네가 세다가 멈추는 번호부터 시작하겠다”라고 했습니다.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엄마가 아이에게 자기 카드 번호에서 딱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니 바로 거기서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것도 집회 현장에서 들통이 났습니다. 저는 “주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청년들을 내려보냅니다. 제 아들이나 머서 형제님이 갈 것입니다. 오늘 밤 그분이 보이지 않는군요. 고드 형제님이나 머서 형제님… 여기 있군요. 바로 제 아래, 여기 있습니다. 한 사람… 이 청년들 가운데 누군가가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이들은 정직한 청년들입니다. 바로 여기 여러분 앞에서 이 기도 카드들을 모두 섞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1번을 받고, 다음 사람은 50번, 또 다른 사람은 25번을 받는 식으로 여기저기 나누어 받습니다. 그러면 그들도 제가 어디서부터 부를지 모릅니다. 저는 내려와서 시작하라는 인도하심을 느끼는 번호에서 시작합니다. 몇 분을 이 단으로 모십니다. 여기서 한 분이 고침받는 동안 저기 회중 가운데서는 오십 명이 고침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그분을 믿으십시오. 여기에 올라올 필요는 없습니다. 계신 자리에서 믿으십시오. 제 말이 사실인지 지켜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몇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몇 시에 마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은 조금 늦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늦지 않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매일 밤 정확히 아홉 시 반에 마치려고 합니다. 이제 시작합시다. 아, 첫날 밤이니 1번부터 시작합시다. (카드에 있는 글자가 무엇이지요? 누가 나누어 주었습니까? 진, 자네가 나누어 주었나요?) 좋습니다. U, U-1번입니다. 작고 납작한 카드입니다. U가 있고 뒷면에 번호가 있습니다. U-1번이신 분은 할 수 있으시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여기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옆 사람의 카드를 보아 주십시오.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테이프의 공백 부분]…?… 그러니 달려오느라 크게 몰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 위쪽에 계신 분들, 건물 안 어디에 계시든 지금 아파서 예수 그리스도께 고침받기를 원하시지만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예, 지금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입니다. 제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말입니다.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좋습니다. 자, 보십시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이쪽을 바라보시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저분이 말씀에서 근거를 가져왔으므로 진실을 말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픕니다. 그분께서… 제 몸에 손을 대어 주시려거든 저 사람이 몸을 돌려 제게 말하게 해 주십시오. 저기서 하는 것처럼, 성경에서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긴장하지 마십시오. 신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억지로 무엇을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께는 어떤 것도 억지로 밀어붙일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분의 방식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쪽에 저절로 솟는 우물이 있고, 저쪽 언덕에는 작물이 말라 죽어 가고 있다고 합시다. 그곳에 서서 “오, 물아, 이리 와라. 오, 물아, 이리 와서 내 작물에 물을 대어라”라고 외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물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력, 곧 중력의 법칙에 따라 일하면 물이 건너와 작물에 물을 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여러분의 몸을 고치시는지 보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방식이 아니라 그분의 방식대로 와야 합니다. “오, 주님, 제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물론 아십니다. 그러나 그저 그분의 법칙에 따라 행하십시오. 그분의 법칙은 사랑입니다. “예수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저의 불신을 용서해 주시고 제 마음에서 모든 그림자를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 오늘 밤 주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 위 발코니에 있습니다. 저는 이 아래에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아시겠죠? “주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제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몇 번까지 왔습니까? 15번입니까? 그분이 마지막이었습니까? 이제 기도 줄을 시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됐습니다. 자매님, 괜찮으시면… 괜찮습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은 참 훌륭한 분들입니다. 바로 거기 앉아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아시겠죠? 제가 대개 단 위에 사람들을 두지 않는 까닭은, 제 일행만 있으면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저는…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이 여러분 양쪽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마치…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시는 목회자 여러분이, 주위에 온통 무신론자들이 있는 가운데 서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힘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변에 있기를 원하겠지요. 여기서도 그와 같습니다. 무신론자에게서 나오는 불신의 영을 느끼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병을 그분께서는 아십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사방 어디에나 그것이 있으니 때로는 좀 혼란스러워져서, 여러분은… 하고 싶어집니다… 그분께서는 아직 제가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적이 없지만, 저는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믿고 있습니다. 형제님들, 그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회중 모두 기도하시며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먼저 이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여기 앉아 계신 머서 형제님과 여기 리틀필드 형제님, 그리고 다넬 형제님 외에는 이곳에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없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건물 안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알지 못하고 여러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시겠죠? 기도 줄에 서 계신 분들 가운데 제가 낯선 사람이라고 하실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도 줄에 계신 여러분, 그것이 사실이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기도합시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몇 분 동안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이분들은 제가 몇 분 이상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박사님, 이분이 그 부인입니까? 좋습니다. 부인, 지금 서 계신 곳에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부인을 모르는 것 같군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전에 이곳에서 집회할 때 그 집회에 오셨습니까? 아, 제가 전에 왔을 때 목에 있던 병을 고침받으셨군요. 저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아마 칠팔 년쯤 전의 일일 것입니다. 저는 부인을 모르고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면 회중이 볼 수 있게 손을 좀 들어 주십시오. 이 부인은 제가 전에 이곳에 왔을 때 목에 병이 있었는데 고침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번 제가 이곳에서 집회를 하는 동안 주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 여인을 모릅니다. 여기 우리가 이야기해 온 장면, 곧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보십시오. 요한복음 4장에서처럼 한 남자와 한 여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하셨고 사마리아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방인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시겠습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플 수도 있습니다. 다시 목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시지만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그녀가 아프다면… 비판하려고 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저는… 제가 아는 한… 이분은 기도 줄을 지나며 기도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백, 수백, 수백 명이 그 줄을 지나갔습니다. 제가 알 수는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여인을 안다고 할 수는 없으며 평생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여기 제 성경이 있고 하나님께서 저를 판단하십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이 여인이 무엇 때문에 여기 서 계시는지 제가 아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가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재정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신다면 이분이 판단하게 하십시오. 만일 이분이 “예, 브래넘 선생님, 목에 병이 다시 생겼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제가 이분께 손을 얹고 “주님께서 부인이 나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분은 그것을 의심할 만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사람이니 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이분께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어떤 분이 이분에게 전에 있었던 일을 아신다면, 그것은 이분이 판단하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이분의 지난 일을 아신다면 앞으로의 일도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같은 분이… 바로 거기에 기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나 이분이 판단하게 하시고, 그다음 여러분도 판단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형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 그분에게서 나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는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기름부음이 단 주변에 임할 때 그들의 얼굴 표정을 보십시오. 내일 밤 그 사진을 보여 드릴 것입니다. 지금 워싱턴 D.C.에 있는 사진입니다. 독일에서도 찍혔고, 이곳 미국에서도 찍혔으며, 그 밖의 곳에서도 찍혔습니다. 세계 역사상 과학적으로 촬영된 유일한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FBI의 책임자 조지 J. 레이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불기둥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 그 동일한 분,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던 그 동일한 분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천사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 불기둥이었다는 것을 아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분이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아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이 땅에 계실 때 그분께서는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믿으십니까?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분을 만났을 때 그분은 다시 무엇이셨습니까? 불기둥, 한동안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빛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동일한 분이시며 동일하게 나타나셨습니다. 동일한 천사,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직분 가운데 계신 하나님입니다. 아버지 안에 계신 하나님, 아들 안에 계신 하나님, 성령 안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세 직분입니다. 아시겠죠?
부인, 저는 부인에게 낯선 사람이며, 부인도 아시듯이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서 있습니다. 오늘 밤 제가 전한 것은 진리이거나 진리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성경이 진리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께서 힘을 공급하셨고 우리가 여전히 그분의 가지라면, 그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흐릅니다. 그분께서는 교회 안에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들은 교사와 복음 전도자와 목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 기기, 이것이 무엇이든, 이 마이크를 맡고 계신 음향 담당자께서는 잘 살펴 주십시오. 성령의 기름부음이 시작되면 제가 큰 소리로 말하는지 어떤지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인이 하신 일이나 원하시는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또는 그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 아니,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밤에도 같은 일을 하신다면 그것이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초자연적인 능력에서 나와야만 하는 일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되, 그것이 악한 힘이라고 믿으시면 악한 자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믿으시면 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아시겠죠? 무엇이라고… 그것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인에게는 효능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머리에 헝겊을 씌우고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며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겠다”라고 한 로마 군인은 아무 효능도 얻지 못했습니다. 올바르게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 여인이 제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습니다. 무슨 일로 몹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불안해하는 까닭은, 제가 이분을 보니 이분이… 오셨다가,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인은 방금 병원에서 나오셨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유방 수술이었습니다. 그 유방에 있던 것은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그 짐승을 떼어 내고 종양을 꺼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셨다가 다시 병원에 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방에 무언가를 넣었습니다. 관인지 무엇인지를 넣어… 유방에서 무언가가 배출되게 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사실입니다. 그렇습니까?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 고침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인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이제 믿으십니까? 기뻐하며 가시고 즐거워하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부인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경을 벗으시는군요. 물론 독서용 안경이 아니라면, 안경을 쓰고 계신 것만 보아도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선생님 연세라면 어쨌든 책을 읽을 때 안경이 있어야 합니다. 마흔이 지나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눈이 평평해집니다. 멀리는 잘 보여도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저는 평생 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생님을 아십니다. 저도 아십니다. 여기 또 다른 장면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여자였습니다. 여기에는 빌립이 가서 데려온 나다나엘과 같은 남자가 있습니다. 두 남자가 만나는 것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분께서 이 이방인 세대에게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자신을 나타내셔야 합니다. 선생님, 그것을 믿으십니까? 제가 오늘 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실을 전해 드렸다고 믿으십니까? 그분께서 같은 일을 나타내 보이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잠시만요.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기도하고 계시는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가… 방금 누군가 무엇을 했습니다. 그분께 손을 대셨습니다. 누구신지 저는 모르지만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에게, 어디선가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기 단에서 역사하시는 영을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자, 계속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선생님, 다시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도울 수 있는데도 돕지 않는다면 악한 사람일 것입니다. 치유가 필요하시다면, 하나님께서 하셔야 하므로 제가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셔서 선생님이 그분의 임재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암이 아닐까 두려워하시는 어떤 문제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감염입니다. 감염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암일까 봐 두려워하며 그것을 생각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실 만합니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 육안으로 선생님 얼굴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있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저기 회중 가운데 한 분이 계시는데 선생님의 아내입니다. 그분도 하나님께 닿으려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믿고 계시므로 방금 무언가가 선생님에게 임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선지자, 혹은 그분의 종이라면 아내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것을 믿으시겠습니까? 아내는 쇠약함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자꾸 힘이 빠지는 증상입니다. 그것이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은 이 도시에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다른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이곳 북쪽에 있는 클리블랜드라는 곳입니다. 사실입니다. 성함은 글로버, 레드 글로버입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레드퍼드, 그것이 선생님 이름입니다. 그 옛날 그들이 누구인지 아셨던 어제의 그리스도와 동일한 분이시라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두 분 다 나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분을 고쳐 주십니다. 의심하지 마시고 믿으며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자, 계속 믿으십시오.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계속 기도하십시오. 주 예수님께서 부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드러내 주신다면… 먼저,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평생 처음 만나는 것이지요?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나타내셨고 약속하셨다면, 그분은 부인을 아실 것입니다. 부인이… 그분께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부인을 아셨습니다. 부인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분이십니다. 부인은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여성의 질환, 부인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분비물이 나옵니다. 농양입니다. 저기 계신 남편도 고침받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저기 앉아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남편에게도 위장병이 있지요? 그분도 고침받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부인은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자매입니다.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있습니다. 이제 그저 주님을 믿으십시오. 부인이 믿는 그대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가십시오. 자매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구하시는 대로 이루어 주시고, 그것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만요, 부인. 리드 씨,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계시고, 이제 독심술이라는 생각은 그만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그런 생각 때문에 여러분에게 해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부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저기 줄 끝에 갈색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쓰고 앉아 계신 남자분, 하나님께서 그 고혈압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러십니까? 그 옆에 앉아 계신 분이 아내이시군요. 그분은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그분에게도 손을 얹으시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자, 저 영을 보십시오. 저 어두운 줄기가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를 보십시오. 바로 여기 앞쪽 저기에 앉아 있는 이 아가씨, 빨간 외투를 입은 분도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아가씨,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까? 믿습니까? 그 옆에 앉은 부인도 부비동 질환이 있습니다. 안경을 쓴 자그마한 부인 말입니다. 두 분, 사실이면 일어서서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예. 두 분도 저 부인이 고침받은 바로 그때 함께 고침받았습니다. 두 분의 믿음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좌석 끝에 앉아 울고 계신 분,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목에 있던 병이 떠났다고 믿으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손을 들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시고 고침받으십시오. 예. 그 여인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누구께 손을 댔습니까? 저에게 댄 것이 아닙니다. 제게서 사십 피트나 그보다 더 멀리 있습니다. 대제사장께 손을 댄 것입니다. 친구 여러분, 깨달으실 수 있습니까? 대제사장 말입니다. 그녀는 무엇엔가 손을 댔고, 그것은 그분이셨습니다. 그저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분이 다음 부인입니까?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을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부인이 무엇 때문에 여기 서 계신지 제게 드러내 주시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회중 가운데 믿으실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기 이 여인을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좋습니다. 우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증상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종양입니다. 맞습니다. 부인에게는 종양이 있습니다. 그 종양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께서 제게 알려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엉덩이에 있습니다. 부인은 이 도시에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산 너머 다른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테네시주 녹스빌, 거기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 형제님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입에서 나는 그 출혈을 멈추게 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이제 기뻐하며 가시고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예. 저는 어디에 계시든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전합니다. 바라보고 사십시오. 바라보고 그분이 이곳에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저 그렇게 하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부인,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인의 마음에 있는 것을 제게 드러내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친구 여러분, 이것은 얼마든지 오래 계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믿지 않으시면 결코 믿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렇습니다. 부인은 신경이 예민하고 목에 문제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시력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눈이 멀어 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누군가는 “안경을 쓰고 있잖아요”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자, 그것은… 다시 잠깐 이분과 이야기하겠습니다. 부인의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러내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따님에 관한 일입니다. 따님이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따님은 나올 것입니다. 부인이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말입니다. 그저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시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 읽는다는… 그런 생각을 마음에서 지우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이리 오십시오. 부인, 제 손 위에 손을 얹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심장병을 고쳐 주셔서 부인이 낫게 될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아시겠죠? 믿으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부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것도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저기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고침받으셨다고 제가 말씀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가십시오. 단을 가로질러 가셔서…?…
저기 입에 손수건을 대고 앉아 계신 부인, 하나님께서 그 정맥류를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것 때문에 기도하고 계셨지요? 맞습니다. 믿으시면 구하시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저 믿으십시오. 부인, 주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바로 저기에 손을 턱에 대고 앉아 계신 분, 그 고혈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분 바로 옆에 앉아 방광 질환이 있는 분은 어떻습니까? 부인, 하나님께서 그 방광 질환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분은 놓쳤지만 부인은 받으셨습니다. 좋습니다. 저기 앉아 계신 단발머리의 젊은 부인, 일어서십시오. 바로 여기, 지금 저를 똑바로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 손을 들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십시오. 나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부인도 기뻐하며 가시면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십시오. 부인병이 떠났습니다. 예.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합시다. 부인, 예전처럼 다시 음식을 드시고 싶습니까? 그 오래된 위장병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까? 기쁜 마음으로 가서 음식을 드십시오. 건강해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오십시오. 부인의 문제는 신경성 질환입니다. 그것도 위장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집으로 돌아가 기뻐하며 건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합시다.
좋습니다.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시겠죠? 좋습니다. 다음 부인을 모셔 오십시오…?… 믿기만 하시면 그 심장은 오래도록 뛸 것입니다. 특히 누웠을 때 숨이 막히는 것은 신경성 증상 때문입니다. 사실 심장병이 아닙니다. 위장에 찬 가스가 심장을 밀어 올리는 것입니다. 이제 가셔서 그것을 잊고 건강해지십시오. 하늘의 하나님께서 부인을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십시오. 그 부인을 모셔 오십시오. 부인,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십시오. 허리의 병이 떠났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받아 단을 가로질러 가시면 됩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부인에게도 같은 병이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부인을 고쳐 주셨다고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며 그대로 단을 가로질러 가십시오. 좋습니다. 그 부인을 모셔 오십시오. 그 혈액의 문제, 하나님께서 그 당뇨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단을 가로질러 가십시오. 기뻐하시고 고침받으십시오. 부인도 그렇게 하십시오. 같은 병이 있었습니다. 그대로 건너가십시오. 하지 마십시오… 믿으십시오.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말고 그 병이 떠났다고 믿으며 가십시오.
이 회중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오늘 밤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확신하십니까? 그분이 지금 살아 계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을 낫게 하시려고 이곳에 계심을 믿으십니까?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는 그분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믿는 분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손을 뻗어 서로에게 얹으십시오.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옆에 앉은 분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제가 기도하는 동안 각자 옆에 앉아 계신 분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 하나님,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영입니다. 주님, 이들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무리는 오늘 밤 주님이 살아 계심을 압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맞섭니다. 그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여기서 나와라. 더 이상 이들을 붙잡고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와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사람들이 고침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