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회중이 ‘오직 믿으라’를 부르는 동안 브래넘 형제님이 누군가에게 말씀하고 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녹음 공백] 감사합니다. 아, 여기 서 있는 이 어린아이들을 보니, 사랑스러운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보니... 며칠 전 저녁에 제가 설교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마리아가 어린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줄에 서 있던 때 말입니다. 마리아는 그 아기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자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의 창조물의 일부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느 아이에게나 그러하시듯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에 있는 규칙과 규례를 최대한 그대로 따르려고 늘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아이에게 물을 뿌리거나 침례를 줍니다. 유아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그런 것을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믿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찾은 대목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고 축복하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하고 말씀하신 곳뿐입니다.
이제 아이들을 한 명씩 따로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결국 우리의 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 위에 얹히기를 바라는 것은 그분의 손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품에 안겨 있는 이 귀한 작은 보석들을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살아서 이 아기들을 기를 수 있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면, 앞으로 찬양하는 사람과 전도자와 목회자와 설교자와 선지자가 될 아이들이 여러분의 품에 안겨 있기를 바랍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의 의무는 이 아이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 어린 아기들을 품에 안고 계신 여러분, 이 아기들을 여러분에게 주신 창조주께 다시 드린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셨고, 이들은 귀합니다. 이제 이들을 그분께 다시 드리십시오. 온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여기 계신 설리번 형제님의... 이분이 회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아이가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병이었지요? 디프테리아였습니다. 켄터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순절 운동 초기였는데, 설리번 형제님은 그 도시의 판사였고, 한 아버지가 아기의 치유를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는 갓 회심한 사람이었고, 아마 밀주를 팔던 사람, 밀주를 만들던 사람인가 그랬을 것입니다. 막 회심한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디프테리아에 걸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죽는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내로 내려와 여기 계신 판사님에게, 그 아버지를 체포해 감옥에 넣고 아기를 강제로 데려다가 치료를 받게 하라는 문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판사님은 “그 사람은 감옥에 집어넣어야 해.” 하며 나섰습니다. 그래서 그 선언문에... 아니, 영장에 서명하려고 펜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성령께서 그에게 역사하시며 “거기에 서명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서명하려고 하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무언가가 “서명하지 말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가 “판사님,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오늘은 서명하고 싶지 않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치안판사에게 가져갔고, 그 치안판사가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시내에 있던 그 아버지의 친구 몇 사람이 산을 넘어 달려가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오고 있어. 그들이 와서 자네를 체포해 감옥에 넣고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갈 거야.” 어린아이는 생기 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들어가 죽어 가는 아기를 안고 높이 들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는 주께서 제게 주셨습니다. 데려가십시오. 저는 이제 막 다시 태어난 아기입니다. 그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면 총격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에도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주께서 제게 주셨고, 저는 주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데려가십시오. 이제 이 아이의 생명을 거두십시오. 주께서 제게 주셨으니 주께서 다시 데려가십시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품에서 몸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내려 줘요. 배고파요.” 당국 사람들이 아기를 데리러... 아니, 아버지를 잡으러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을 데려가고,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겠소.” 그는 말했습니다. “저기 마당에 나가 보십시오. 아이들이 모두 공놀이를 하고 있으니, 어느 아이가 디프테리아에 걸렸는지 말해 보십시오. 디프테리아에 걸렸다고 생각되는 아이를 데려가십시오.” 그 판사님은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생명을 살려 주실 수 있었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품에 있는 아이의 삶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를 하나님께 들어 올리고,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축복하시고 그 아이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시도록 구합시다. 잠시 머리를 숙이겠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소박한 말로, 저는 저의 소박한 말로 이 아이들을 주 우리 하나님께 드립시다.
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이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이 주께서 주신 이 작은 사랑의 선물들을 안고 여기 서 있습니다. 이 어린 아기들, 어떤 아이는 작은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고, 어떤 아이는 머리카락이 긴 예쁜 여자아이입니다. 모두 가정의 유대를 더욱 굳게 하려고 온 귀한 작은 보석들입니다. 주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이 작은 백성들을 이 부모들에게 맡겨 기르게 하셨습니다. 이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제단 앞에 서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주님의 자비의 손을 이 아이들 하나하나 위에 얹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들을 주께 들어 올릴 때, 오래전 주님께 나아왔던 어린아이들의 머리 위에 얹으셨던 그 위대한 손이, 못 자국이 난 그 손이, 이 아이들 하나하나의 삶을 축복하게 하옵소서.
주께서는 말씀에서 “이 산에게 옮겨지라고 말하고, 너희가 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주님, 주님의 종인 저와 주님의 종들인 이 사람들이 위대하신 성령께 아룁니다. “이 어린아이들의 삶을 주님의 손에 맡아 주십시오. 이들 가운데 병이 있다면 없애 주십시오.” 주님, 내일이 있다면, 이들이 장차 세상에 복음을 전할 남녀가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들을 주께 드리오니 우리의 겸손한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어린아이 하나하나를 축복하시고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은 마지막 예배입니다. 오늘 밤 치유 예배가 큰 절정에 이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밤들 가운데 하나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는 여러분에게 설교하는 대신,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해외 선교를 위한 헌금을 한 것으로 압니다. 저는 해외 선교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확신합니다. 온 마음으로 해외 선교를 믿고 지지합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자매라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오늘 오후에 이곳으로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시냇가에서 목말라함”이라는 주제로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에 대해, 제가 아는 것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 선교에 관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을 축복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합시다. 주 하나님,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며, 이들은 주님의 백성입니다. 이제 그 뜻하신 목적을 이루도록 말씀을 축복해 주옵소서. 주께서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을 이루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과 함께 우리 자신을 주께 맡깁니다. 아멘.
말씀과 선교가 언제나 옳은 한 가지 이유는... 여기 성경에서, 우리 주께서 그분의 교회에 주신 마지막 명령을 읽고 싶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부터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고 새 언어들로 말하며 만일 뱀들을 집어 올리더라도, 또 어떤 치명적인 것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들려서 하늘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시니라. 그들이 나가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 아멘. 이것은 선교 본문으로 택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말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니,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에 주신 첫 명령은 이것이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쳐 주고, 나병 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며, 마귀들을 내쫓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태복음 10장입니다. 그분께서 교회에 주신 마지막 명령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백인에게, 흑인에게, 갈색 인종에게, 황인종에게, 홍인종에게, 모든 창조물에게.”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창조물에게.” 이것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했습니까? “세상의 끝까지.”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이라는 말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글자입니다. “글자는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느니라.”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나타나심으로 왔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인용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이런 표적들이 따를 수도 있다거나,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따르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신이 믿는 자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도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기 전에는 스스로 믿는 교회라고 부를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청년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참된 어머니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어머니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 아들아, 네가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일이 잘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주고 싶구나.” 그래서 종교 잡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신학교를 찾으려고, 종교 잡지에 나온 학교들 가운데 가장 이름난 곳을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런 다음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빨래판에 빨래를 하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독감으로 심하게 앓게 되었습니다. 독감이 폐렴으로 번져 양쪽 폐가 모두 울혈로 막혔습니다. 그래서 약 2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설교자가 된 아들에게 전보를 보냈습니다. “준비하고 기다리거라. 내일 아침까지 나아지지 않으면, 살아 있는 어머니를 보려거든 즉시 집으로 와야 한다고 의사가 그러는구나.” 시내 저쪽에서는 작은 상점 건물에 있는 선교소에서 작은 기도 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선교소에서 말씀을 전하던 중, 몇 사람이 주님께로부터 어떤 여인이 병들어 있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한 여인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부인, 기도 모임을 하는 중에 성령께서 이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희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물론이지요. 의사는 더는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가서 목사님을 모셔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인에게 기름을 바르고 야고보서 5장 14절을 읽었습니다. 여인에게 기름을 발랐습니다. 그리고 기름 바르는 일에 관한 성경 말씀을 다 읽은 다음, 제가 방금 읽은 마가복음 16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라는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 작은 선교소의 신실한 설교자는 여인에게 손을 얹고, 질병에게 여인의 몸에서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명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여인은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약 일 년 뒤,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인사를 나눈 뒤 아들은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 마음에 계속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좀 여쭤보고 싶어요. 전보를 보내셔서... ‘준비하고 기다리거라.’ 하셨잖아요. 다음 날 아침까지 나아지지 않으면 폐렴으로 돌아가실 것이라고요. 그런데 일주일가량 아무 소식이 없더니, 건강해지셨다는 반가운 편지를 받았어요. 의사가 무슨 약을 드렸는지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무 약도 주지 않았단다. 나를 산소 텐트 안에 넣으려고 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왔을 때는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신 뒤였어.” 아들은 “아,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래, 얘야. 저 아래 골목 모퉁이의 작은 선교소, 작은 오순절 선교소 알지?” “알아요.”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이야기를 해 주고 성경을 읽어 주었단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손을 얹으면 낫게 되어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 목사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완전히 나았단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들어 보세요. 그건 참 좋은 이야기예요. 하지만 그것으로 어머니가 나으실 수는 없어요. 하나님은 이제 그런 식으로 병을 고치시지 않아요.” 어머니는 “아들아,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구나. 그분께서 이미 고쳐 주셨는걸.” 하고 말했습니다. “아, 어머니, 그건 옛날의 일이에요.” “아들아, 목사님이 성경에서 말씀을 읽어 주셨단다.” “어머니, 마가복음 16장을 읽으셨나요?” “그래, 거기를 읽으셨어.” “어머니, 말씀드릴게요. 우리는 신학교에서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영감을 받은 말씀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 할렐루야!” “어머니, 저 선교소 사람들처럼 행동하시기 시작하네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방금 어떤 생각이 들었단다.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의 성경 말씀이 영감을 받은 말씀이 아니라는 거니?” “맞아요.” “아, 하나님께 영광을!”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감받지 않은 성경 말씀으로도 나를 고쳐 주실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영감받은 말씀이라면 얼마나 큰일을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 참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두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내밀어 하나님의 도전에 응하기를 두려워할 뿐입니다. 그뿐입니다. 여기서 이러한 표적들은 세상의 끝까지 믿는 자들에게 따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의 끝까지입니다. 세상이 있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러한 표적들은 믿는 자들에게 따를 것입니다. 얼마 전... 여기 앉아 있는 한 친구가 이분의 친구인데, 이분의 이름은 페리스 리드헤드입니다. 오늘 오후에 이 건물 안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제 집에 와서 이 일에 대해 묻고 싶어 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 텐데, 아마 여러분 중 많은 분이 페리스 리드헤드를 아실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선교 단체들 가운데 하나인 큰 수단 선교회의 회장입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저는 아주 어렸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신실하신 저희 노모께서는 제가 하나님께 가장 훌륭한 설교자가 되게 하려고 학교 공부를 시켜 주셨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리스도를 찾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학사 학위를 받으면 그리스도를 찾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저는 선생님 댁 벽을 도배할 만큼 학위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제가... 그분이 물었습니다. “선생들이 틀린 것이었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학위들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그리스도는 아닙니다. 그저 학위일 뿐입니다.”
그분은 공부하러 이곳에 와 있던 인도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청년이 돌아가는 길에, 출국하면서 리드헤드 씨를 만났습니다.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이제 공부를 마쳤군, 젊은이. 일꾼이 되려고 자네 고국인 인도로 돌아가는 길이구먼. 자네는 이슬람교도라고 들었네.” 청년은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그 옛 선지자를 버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신 분, 살아 계신 예수님을 모시고 돌아가지 않겠나?” 그런데 이 인도 청년은 리드헤드 형제님이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똑똑했습니다. 잠시 발로 땅을 툭툭 차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의 예수님이 저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일 중에 제 선지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두 분 다 책을 쓰셨습니다. 선생님들은 선생님들의 책을 성경이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 책을 코란이라고 합니다. 두 분 다 약속을 하셨고, 우리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다만 무함마드는 죽음 이후의 생명만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죽음 이후의 생명을 약속하셨고, 선생님은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두 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감리교인이나 침례교인과, 또는 오순절교인이나 나사렛교인과 그들의 신앙을 놓고 논쟁할 수 있다고 해서, 절대로... 여러분은 저 해외 선교 현장에 가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주술사가 여러분에게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번 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갖가지 묘기와 기이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보게. 자네의 선지자는 죽어서 무덤에 있지만, 우리의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네.” 청년이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선생님, 그것은 선생님이 믿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예수님도 우리 선지자와 똑같이 죽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자 리드헤드 씨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네.”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그분은 살아 계시네!” “어디 계십니까?” “내 마음속에 계시네.” 그 이슬람교도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선생님의 마음속에 계신 것만큼, 무함마드도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리드헤드 씨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보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기에 행복과 기쁨을 누리네.” 청년은 “잠깐만요, 리드헤드 선생님. 이슬람교도 기독교만큼이나 심리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리드헤드 형제님은 자신이 어제오늘 생겨난 풋내기를 만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말했습니다. “게다가 리드헤드 선생님, 우리의 무함마드는 죽음 이후의 생명 외에는 단 한 가지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예수님은 선생님들의 교사들이 자신이 행한 것과 같은 표적들을 행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자신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면 선생님들과 함께 계시며, 선생님들과 함께 살아서 자신이 하던 것과 같은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믿겠습니다.”
그들은 미국 그리스도인의 90퍼센트보다 그 점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면... 제가 오늘 오후 시간을 이 이야기에 쓰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실을 이야기하려 할 때는, 뛰어오르고 뛰어다니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저는 선지자들의 축제에서 이슬람교도들이 창을 집어 턱을 뚫고 위로 찔러 코까지 관통시키면서 “알라, 알라, 알라!” 하고 외치다가, 다시 창을 뽑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피가 흘러... 피 한 방울조차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닥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알라, 알라, 알라!”라고 외치다가 일어나, 가시 조각들을 손가락 밑에 찔러 넣고 다시 뽑으면서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위스에서,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 사람이 그렇게 광적인 흥분 상태에 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칼을 집어 여기에 대고 찔러 넣으니 등 뒤로 나왔습니다. 한 의사가 그것을 의심하자, 그는 의사에게 단 위로 올라와 보라고 했습니다. 칼 속이 비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쪽 끝에 물을 붓자 그의 등 뒤로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칼을 뽑더니 웃으며 걸어갔습니다. 흥분해 있었던 것입니다. 피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심리 작용으로...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리드헤드 씨가 “아마 마가복음 16장을 읽었나 보군?”이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말했습니다. “거기도 그중 한 곳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장은 전부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닐세.” 청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대체 어떤 책을 읽고 계시는 겁니까? 코란은 전부 영감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 말은 이런 뜻이고, 저 말은 저런 뜻이고...’라고 하는 것을 듣자니 역겹습니다. 선생님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물론 맞았습니다. “선생님들은... 그중 일부만 취해서 자기 교리에 맞추기만 합니다.” 이교도가 그리스도인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선생님들 그리스도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면, 그때 우리는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믿겠습니다.” 리드헤드 씨는 “저는 발로 흙먼지를 차며 화제를 바꾸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패배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오늘 저는 이것을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오순절교인들이 의자를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리고 가구를 부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언가가 있습니까?” 리드헤드는 저와 같은 침례교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리드헤드 형제님. 그들에게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침례교인들에게도 있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님은 믿었을 때가 아니라, 믿은 뒤에 받으신 것입니다.” 그들은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9장에서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영적인 온도계가 영하 40도까지 내려갈 만큼 차가운 낡은 교회에 앉아 있느니, 저는 조금 엉뚱하게 타오르는 불과 가구를 발로 차 넘어뜨리는 일을 견디겠습니다. 불이 전혀 없는 것보다는 좀 엉뚱하게라도 타오르는 불이 있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침례교인들은 불을 그림으로 그리고만 있습니다. 얼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 “저 크고 아름다운 그림이 보입니까? 이천 년 전에 타올랐던 큰불입니다. 가서 그 곁에서 몸을 녹이십시오.”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림 속의 불은 몸을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말씀을 이루며 그 일들을 행하는, 바로 그 성령과 불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영께서 예전에 지니셨던 모든 권능과 기름부음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부분은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곧 모든 민족과 모든 백성에게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라.”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는 가서 학교를 짓고 사람들을 조직으로 묶어 놓고, 그들에게 이렇게 하게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우리와 똑같이 믿지 않으니, 그들과 어울리지 마십시오. 그들의 교회 근처에도 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훌륭한 학교들을 세웠고, 사람들을 교육해서 그것에 이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는 결코 그리스도께 더 가까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에게서 더 멀어질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저는 지금 학교 건물에 있습니다. 이곳에 있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며, 제 무지를 떠받칠 핑계를 대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 땅에서 가장 큰 짐이 되었던 것은 밀주 판매소가 아니라 학교들이었습니다.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역사를 살펴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십시오.
FBI의 책임자인 앨 페라 대장이 저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 불렀습니다. 그분은 침례교인이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도 침례교인입니다. 하지만 형제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제게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격장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형제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비슷한... 같은 말을 합니다.” 그분은 저를 사무실로 데려가, 미국의 청소년 범죄자들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가장 심한 곳은 어디입니까? 범죄자들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똑똑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경에 이르면 여러분은 길을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육에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원칙을 받아들일 때 오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영은 사람을 교육함으로써 그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서 사람들을 교육해 그것에 이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성결교인들과 오순절교인들은 제단에서 사람들을 흔들어서 그것을 넣어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했습니다. 물을 뿌리고, 붓고, 거꾸로 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밖의 온갖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각 개인이 자기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직접 경험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패한 지점이 바로 거기입니다.
이 인도 청년은 모리스 리드헤드에게... 아니, 페리스 리드헤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들에게는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을 입증할 시간이 이천 년이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3분의 2는 그분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장로교입니다. 우리는 침례교입니다. 우리는 오순절교입니다. 우리는 나사렛교입니다.” 하며 논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서서 논쟁하는 동안, 아프리카의 어린 흑인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이야기를 듣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습니다. 아, 마음이 타들어 갑니다. 선교지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결코 이전과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곳에 갔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쪽에 가서 동물들을 좀 구경해야겠다.” 하지만 사람들의 혼을 보았을 때... 어린 흑인 아이들은 너무나 더러웠고, 평생 목욕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구더기가 가득한 오래된 고깃덩이를 집어 들고도 그냥 먹었습니다. 그리고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여성들과 남성들께 예의를 갖추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교도들이 수만에 수천을 곱할 만큼 집회에 몰려왔는데, 태어날 때처럼 벌거벗은 채였습니다. 앞에 가로세로 여섯이나 여덟 인치 정도 되는 작은 천 조각 하나를 걸쳤을 뿐입니다. 그곳의 무지한 여인들은 오른쪽과 왼쪽도 구별할 줄 몰랐고, 머리에는 진흙을 바르고 귀에는 뼈를 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보고 그곳을 떠날 때, 젊은 처녀들이든 나이 든 여인들이든, 아무도 옷을 입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팔을 모아 몸을 가리고 남자들 앞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뻣뻣하고 목이 곧은 미국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해마다 옷을 더 벗어 버립니까? 이교도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옷을 갖추어 입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꽃다운 젊은 여성들이 벌거벗은 채 거기 서 있었지만, 자신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여러분의 손을 보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열여섯, 열여덟, 스무 살의 소녀들,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 제가 앉은 곳에서 20피트도 안 되는 곳에서, 제가 말하는 동안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다른 여인이 잠깐 도와주었고, 그 어머니는 아기를 안아 젖을 먹이기 시작하면서 계속 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자란 성숙한 여성인 그 젊은 여인들이 거기 서 있었는데, 성령께서 오시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마자 팔로 자기 몸을 가렸습니다. 성령께서는 벌거벗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순절교인이라고까지 자처하는 여러분, 그리고 여성 여러분, 여러분은 그런 수영복을 입고, 뒷마당에서 짧은 반바지를 입고 몸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문명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거칠게... 아니, 무례하게 말하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복음의 진리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 미국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날 오후 더반의 단 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환상에 따라 며칠 뒤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방도가 없었습니다. 빌리는 두어 사람과 함께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려다가 겉옷도 신발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냥 선교사들을 데리고 가서 부족마다 네다섯 명쯤 데려오십시오.” 언어가 열다섯 가지나 되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설교하려면 어떻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이 사람은 “딱” 하고 목이 막히는 듯한 소리를 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다른 언어의 소리를 흉내 내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새처럼 어떤 휘파람 소리를 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다음 통역자는 아마 목이나 혀로 어떤 떨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여러분, 저는 오순절 집회에서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방언을 믿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은사를 잘못 사용해 왔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 은사를 알맞은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가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붙잡고 무분별하게 날뛸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은사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방언 하나가 다른 방언과 너무 다르게 들리는데, 어떻게 모두 같은 것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의미도 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서 그 소리들을 듣고 저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갖가지 재잘거리는 소리였지만, 그 하나하나에 뜻이 있었습니다. 모든 소리에는 뜻이 있습니다.
그날 단 위에는 의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경마장에 15만, 20만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올라온 사람은 이슬람교도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그 여인에게 “이슬람교도라면 왜 제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순혈통임을 나타내는 붉은 점을 찍고 있었고... 제가 물었습니다. “왜 제게 오셨습니까?” 여인은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 당신의 사제에게 가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의 아들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주 하나님께서...” 여인은 “저는 주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믿습니다. 그들은 이스마엘 자손들이니까요. 여인은 “저는 주 하나님 여호와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함마드가 그분의 선지자라고 배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아들이십니다. 무함마드는 무덤에 있지만, 예수님은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신 바로 그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인은 통역자를 통해 말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다면, 저는 예수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온 세상으로 가서 부활을, 성령의 권능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부인, 당신의 남편은 체구가 작은 분입니다. 검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지난주에 이슬람교도 의사의 진료실에 있었습니다. 그 의사가 당신의 자궁에 낭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인이 빠르게 말을 쏟아 냈고, 통역자는 “모두 사실이라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수천 명의 이슬람교도들이 보려고 일어섰습니다. 잠시 뒤 그 여인은 “그러면 저는 예수님을 제 구주와 치유자로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족들 사이에서 30년 동안 일했던 선교사들과 이야기해 보면, 이슬람교도 한 사람, 한 귀한 혼을 기독교로 개종시킨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형제여,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바로 여기 아프리카너 청년이 앉아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교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심스럽습니다. 이미 길이 닦인 곳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며 그곳에 가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가장 좋은 호텔에 묵고, 냉방 장치가 있는 캐딜락을 타고, 거주 구역에 나가 전도지 몇 장을 나누어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교회나 교단이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보내심을 받은 성령 충만한 선교사들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단에 올라온 사람은 젊은 백인 여성이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아프리카너였습니다. 그 여인에게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부인...” 무슨 병인지 알려 주었지만, 이어서 말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십시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제 가슴에 있는 이 작은 종양 때문에 제가 죽는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말할 수 없습니다. 방금 당신의 장례식을 보았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여인은 단에서 내려가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바로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습니다. 제가 치유자였다면 그 여인을 고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유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다음에 온 사람은 가엾은 모습의 어린 흑인 소년이었습니다. 줄루족 아이였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여기 어린 여자아이들, 그곳 아이들이 어떻게 물을 마시는지 아십니까? 악어 몇 마리가 자기들을 보고 있는지 사방을 살피고 나서 손을 내밉니다. 제가 그곳에 있는 동안 악어가 한 어린 소녀를 잡아갔습니다. 핏물이 조금 보이더니 아이가 물속으로 사라졌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물을 마시는데 악어가 발을 물었습니다. 아이가 밖으로 뛰어나와... 다시 들어가 막대기로 악어를 때려 떼어 놓고 물가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악어가 다시 와서 그 어린아이를 잡아 물속으로 끌고 갔습니다. 아이의 다리 하나만 뜯긴 채였습니다. 악어는 아이를 다시 끌고 가 물가 어딘가에 묻어 두고 몸이 물러진 뒤에 먹었습니다. 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조금 주자, 얼른 떨어뜨리며 “데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 흑인 아이에게도 제 아이나 여러분의 아이와 똑같이 먹고 옷을 입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음식 쓰레기통에 쓸어 버리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그 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런 식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도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됩니다.
그 어린 소년은 눈이 몹시 심하게 몰려 있었습니다. 네 번째 환자였습니다. 눈이 몹시 심하게 몰려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이 어린아이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 아이를 고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아이 자신의 믿음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린아이의 삶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께서 임하셨고, 저는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왔습니다. 풀로 지붕을 이은 작은 오두막 안의 벽에 우리 주님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마른 분입니다.” 줄루족은 몸집이 크고 힘센 사람들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분이고 역시 힘이 셉니다. 그런데 두 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줄루어 통역자가 그들에게 전해 주자마자, 도시의 한 블록쯤 떨어진 저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일어섰습니다.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하지만 제가 이 아이를 고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바라보는 바로 그때, 아이의 두 눈은 저나 여러분의 눈처럼 완전해져 있었습니다. 다시 보고 저는 말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치유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단에서 내려보냈습니다.
뒤쪽에서 큰 소란이 들렸습니다. 그곳에 영국인 의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보스워스 형제님 일행이 그를 단에서 내려보내려고 하며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곳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형제님은 기름부음 아래 계십니다.” 의사는 “하지만 저분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돌아서며 “의사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보스워스 형제님이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백스터 형제님이 말입니다. 의사는 단 위로 올라와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백합들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자매 여러분, 백합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러분도 그 꽃들을 보셔야 합니다. 어떤 것은 폭이 18인치나 되는 커다란 노란색과 흰색 칼라꽃입니다. 단 위를 그 커다란 백합들로 아름답게 장식해 놓았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저 백합들 안에 생명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브래넘 선생님, 저 아이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저보다 아이에게 더 가까이 계셨습니다. 아이는 아직 제게서 10피트 안으로도 온 적이 없습니다.” 의사가 “저 아이에게 최면을 거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최면에 대해 그 정도밖에 모르는데 영국 의학협회가 선생님께 진료 면허를 주었습니까? 최면으로 저 아이의 눈을 똑바르게 할 수 있다면, 선생님들 모두 최면술을 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의사는 “무엇이 그렇게 한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백스터 형제님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저는 “잠깐만요.”라고 말했습니다. 의사는 말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저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의 눈을 뜨게 하실 만큼 그분은 실재하는 분이십니까? 그런 분이라면 단 위에 모시겠습니다.” 저는 “그분은 지금 선생님의 손 안에 계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이는 저기서 눈이 몹시 심하게 몰려 있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습니다. 저기와 여기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저와 아이 사이에 성령께서 서 계셨고, 성령께서 아이의 눈을 똑바르게 해 주셨습니다.” 의사는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 말을 믿으시려면 믿으십시오. 믿지 않으시겠다면 그것은 선생님께 달렸습니다.” 저는 계속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잠깐만요, 브래넘 선생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는 경마장 저 아래까지 연결되는 큰 마이크가 달려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곳으로 걸어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예수님을 제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겠습니다.”
약 6주 뒤 요하네스버그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3만 명이 나온 경기장이었습니다. 그 젊은 의사는 두 팔로 저를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하나님께서 저를 선교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안은 채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인 의사가 말입니다. 정말입니다.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그 자신도 그렇게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저 저를 끌어안았을 뿐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저는 “이제 하나님께서 가실 자격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 한 청년이 왔습니다. 제 아들 빌리 폴과 일행이 그를 단으로 이끌어 올라왔는데, 목에는 사슬이 걸려 있었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 가엾은 사람을 보십시오. 물론 제가 도울 수 있다면 돕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천사가 여기 계시기에, 그의 삶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그의 상태에 관해 말씀이 전해지기 시작했을 때, 저는 말했습니다. “자,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는 형제 한 사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누런 염소 아니면 개 때문에 다친 형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타고 있다가 두 다리를 다쳤습니다. 팔 아래에 막대기 두 개를 끼고 있습니다. 목발로 걷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의 형제가 치유된 것이 보입니다.” 그러자 도시의 한 블록도 더 떨어진 저 아래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의 형제가 막대기들을 머리 위로 들고 목청껏 외치며 달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그를 고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한 뒤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위에 푸른 그림자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계속 지켜보니, 잠시 뒤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척추에 생기는 병입니다. 토미, 그 병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손과 발을 짚고 걷게 되는 병입니다. 그 병 때문에 몸이 그렇게 불구가 되었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아, 거의 벌거벗은 채 서 있는 모습이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바로 위로, 그가 치유된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주 하나님, 바로 이 시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온전하게 해 주신다면,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주 하나님을 섬기시겠습니까?” 눈이 닿는 곳마다 손들이 올라갔습니다. 흑인, 백인, 황인종, 갈색 인종의 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청년을 위해 기도했을 때, 그는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선교사들이 찾아오면 익살을 부리고 춤추듯이 제가 춤을 추라는 줄 알았습니다. 다들 짧은 전쟁 춤을 추어 보이려 합니다. 그 사슬을 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자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가 서 있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검은 배 위로 떨어졌습니다. 몸만 치유된 것이 아니라 정신도 온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담요를 두른 이교도 3만 명이 우상을 땅에 내리쳐 부수고, 한꺼번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한 혼을 얻는 데 20년, 30년이라니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을 선교지로 보내시는 때가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때가 왔습니다.
제가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짧은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 밤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린 소년 하나를 보았습니다. 아니,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나무들과 바위들이 한데 뒤얽힌 곳에 어린 소년이 죽어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 모양이 특이했고, 커다란 갈색 눈이 뒤집혀 있었습니다. 양말 밖으로 발이 뚫고 나와 있었습니다. 길가에는 자동차 한 대가 부서진 채 놓여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작은 몸은 온통 뼈가 부서진 덩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저 아이가 누구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환상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계속 내려갔습니다.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그때 계셨던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 일을 설명하며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의 책에 적어 놓으십시오. 성경의 면지에 적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지는지 보십시오. 어딘가에 여덟 살쯤 된 아이가 있습니다. 짙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졌고, 머리 모양이 특이하며, 짧은 허리 단추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죽게 될 것입니다.” 아마 3만, 4만 권의 성경에 그 내용이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치유의 음성」에서 그 기사를 읽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 일에 대해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계셨던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일이 일어난 뒤가 아니라,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했던 것입니다. 그 일과 관련해서, 한 어린 소년이 물에 빠져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데려갔는데, 아버지가 장의사에게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가서 말했습니다. “이 아이가 아닙니다. 이 아이는 옷을 잘 차려입었고 머리가 아주 새까맣습니다. 이 아이가 아닙니다.” 2년 뒤, 멀리 스웨덴과 노르웨이, 핀란드에 갔을 때 저는 쿠오피오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백야의 땅입니다. 우리는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직후였는데, 그곳의 어린 청년들은 아직 아이들이나 다름없었고 면도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소년들은 열다섯 살도 채 안 되었는데, 아주 커다란 긴 외투와 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은 모두 시내에 나와 있었고, 젊은 여성들과 나이 든 남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이 전쟁에서 남자들을 모두 죽였던 것입니다.
들판에서 건초를 쇠스랑으로 던져 쌓는 여자들은 반바지가 아니라 아주 크고 두꺼운 치마에 커다란 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 핀란드인들은 여러분이 만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 속합니다. 참으로 충직합니다. 제가 그 위에 서 있었는데, 린지 형제님을 비롯해 목회자가 모두 30명쯤 있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여기 계십니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말을 기억해 두십시오.”
우리가 언덕을 내려오다가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휘발유가 갤런당 약 2달러입니다. 집회에 4만, 5만 명이 모여도 자동차는 아마 서너 대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거나 걸어서, 어떻게든 올 수 있는 방법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1925년이나 1930년형쯤 되는 포드 자동차가, 어쩌면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온 모델일 수도 있습니다만, 미국산 포드가 부서진 채 있었습니다. 500명쯤 되는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 두 명이 서로 손을 잡고 학교에서 오고 있었는데, 이 차가 시속 약 60마일로 굽이를 휙 돌아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 아이는 이쪽으로, 다른 아이는 저쪽으로 움직였고, 운전자는 아이들을 피하려다가 범퍼로... 아니, 흙받이로 한 아이의 턱 밑을 쳤습니다. 아이는 30야드쯤 날아가 나무에 세게 부딪혔습니다. 다른 어린 소년은, 자동차가 이렇게 그 아이 위를 그대로 지나갔고, 바퀴가 아이의 작은 몸을 쳐서 길 건너 20피트쯤 떨어진 풀밭으로 날려 버렸습니다. 차는 언덕 아래로 벗어나 부서졌습니다. 린지 형제님 일행이 내려서 보았습니다. 그들은 울며 돌아왔습니다. 제 통역자인 아이작슨 자매님도 내렸습니다. 자매님은 울며 돌아와 “브래넘 형제님, 가서 보셔야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저는 못 보겠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스물네 살쯤 된 젊은 설교자였을 때 아내가 죽었습니다. 아내와 제 아기를 묻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만 남았는데, 그 아이가 빌리였습니다. 저는 밤마다 아이의 작은 우유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우유병을 따뜻하게 해 둘 불을 피울 돈도 없어서, 제 머리 밑에 두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그 아이가 저와 함께 다니는 이유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아빠이자 엄마였습니다. 아내가 죽어 갈 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제 체온으로 아이의 작은 몸과 우유병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 빌리는 열 살쯤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 어린 아들도 미국에 있습니다. 저는 도저히 저 아이를 보러 갈 수 없습니다. 이제 빌리를 못 본 지 석 달쯤 됐는데, 저 아이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가서 보아라.”라고 했습니다.
제가 걸어갔습니다. 아이의 작은 외투로 얼굴을 덮어 놓았는데, 사람들이 외투를 내려 주었습니다. 아, 저는 몸을 돌려 걸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말을 믿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무언가가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저는 무어 형제님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무슨 일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손은 여전히 제 어깨에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무엇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손이 제 어깨 위에 놓여 있는 채로, 저는 아이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문득 아이의 작은 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리는 온통 부러져 있었고, 굵은 골이 있는 커다란 검은 양말 밖으로 작은 발이 뚫고 나와 있었습니다. 낯익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 책임자인 시장에게 “제가 좀...” 하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 부모가 와서 이 아이가 으스러진 채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어린 소년은 살아 있었으므로 차에 태워 급히 병원으로 데려간 뒤였습니다. 이 어린 소년은 죽은 지 30분쯤 되었습니다. 장의사가 아이를 옮기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작은 외투를 들어 올렸고, 저는 보았습니다. 뒤집힌 작은 갈색 눈, 짙은 갈색 머리, 작은 허리 단추바지, 양말 밖으로 나온 발이었습니다. 주위를 보니 쿠오피오산에서 내려오는 비탈이 있고, 상록수와 한데 얽힌 바위들이 있었습니다. 다시 아이를 보며 ‘저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 형제여, 제가 영광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여러분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에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여러분에게 설명할 힘이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옥에서 나온 모든 마귀가 달려들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느냐,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보며 ‘저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무어 형제님, 린지 형제님, 빨리 오십시오. 빨리 성경의 면지를 펼쳐 보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제가 “면지를 읽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여덟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어린 소년이... 그 아이의 생김새는... 삼나무와 상록수와 바위들이 한데 얽혀 있는 곳에 누워 있는 일이 일어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아이를 보십시오. 저기 바위들을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저 아이입니까?” “저 아이입니다.”
아, 하나님, 교회가 그 상태에 이르게 하옵소서. 제가 그 자리에 머물게 하옵소서. 저는 말했습니다. “아이작 자매님, 빨리 말씀해 주십시오. 제 말을 통역해 주십시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2년 전 저 미국 땅에서... 여기 형제님들의 성경 면지에 적혀 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5분 안에 살아서 제 발로 서지 않으면, 저는 등에 ‘거짓 선지자’라는 표지를 달고 핀란드를 떠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아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모이게 한 다음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시장에게 이 일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제가 시장의 주소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고국에서 주께서 이 환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위대한, 미리 예정된 뜻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일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죽음아, 이 아이의 생명을 돌려주어라.” 오늘 오후 이 성경 앞에서, 하나님께서 저의 엄숙한 재판관이십니다. 그 어린아이는 벌떡 일어나 제 발로 섰습니다. 차에 치이기 한 시간 전처럼 아주 정상이었습니다.
그날 밤 집회에서는 도저히... 민병대까지 나와 있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곳은 철의 장막에서 겨우 2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이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날 밤 제가 갔을 때, 공산군 병사들이 여러 블록에 걸쳐 서서 러시아식 경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볼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권능을 가지신 그런 하나님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개신교와 가톨릭 여러분은 그곳으로 달려가 그들의 돈을 모두 가져다가 거대한 건물들에 쏟아부었으면서,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차갑고 형식적인 교회가 이것을 반대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비방을 받게 될 표적입니다.”
그날 밤 집회를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10분쯤만 더 말씀드려도 되겠지요. 사람들을 줄지어 들어오게 했는데, 커다란 더미가 있었습니다... 제 책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간 목발과 지팡이 더미가 있습니다. 이 단 위에는 다 쌓을 수도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몇천 명씩 밖으로 내보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고, 어린 병사 둘은 앞에서, 둘은 뒤에서 칼을 이렇게 뻗어 들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여학생 기숙사였습니다... 작은 무언가가... 문이 닫혔고, 제가 보니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지금 제 어린 리브가 정도의 나이, 열 살이나 열두 살쯤이었습니다. 제 책에서 사진을 보셨을 텐데,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이만큼 짧았고, 몸에는 아주 커다란 보조기를 차고 있었습니다. 신발 앞코에는 끈이 달려 있었는데, 위로 올라가 가로질러 뒤쪽의 이 커다란 보조기에 이어져 있었습니다. 신발은 굽을 높여 만들었고 양옆에 보조기가 있었습니다. 그 작은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 주저앉지 않도록 다리 전체를 받치는 보조기가 필요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작은 어깨를 들어 그 발을 끌어 올린 다음 앞으로 밀어 내야 한 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속치마와 옷은 해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들쭉날쭉하게 잘려 있었으며, 어린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아이가 저를 보았을 때... 사람들에게는 길에서 저를 멈춰 세우지 말라고 일러 둔 상태였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백스터 형제님 일행이 모두 오후 예배를 인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돈을 좀 가지고 나가 사탕을 조금 사곤 했습니다. 제가 사탕을 던져 주면, 아이들이 두 블록 길이로 줄지어 저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거기 서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목발 두 개를 짚고 있었는데, 목발을 앞으로 내놓고, 작은 어깨로 그 다리를 들어 앞으로 내밀면서 걸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보았을 때, 아이는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제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본 척하려는 듯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제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아이를 보았습니다. 제 뒤에 있던 병사는... 저는 핀란드어를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사는 계속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했습니다. “잠깐만요.” 아이가 고개를 들었고,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손짓했습니다. 아이가 제게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몸이 불편한 아이였고, 도움을 받으려고 집회에 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손짓하자 아이가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작은 목발들을 앞으로 내놓고, 작은 다리를 들어 한 걸음을 내디딘 다음, 아이답게 다시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가 바로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작고 창백한 연푸른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이는 핀란드의 전쟁고아였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함께 천막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러시아인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에게 만들어 준 보조기는 낡고 조잡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저 서서 ‘저 아이가 어떻게 하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손을 내려 제 겉옷을 잡았습니다. 제 주머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작은 치마를 이렇게 펼쳐 들고 “키토스”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오 하나님, 바로 그때 제 앞에서, 그 작은 아이가 보조기를 벗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아, 아이에게 이것을 알게 해 줄 수만 있다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얘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창백한 볼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키토스, 키토스, 키토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얘야. 오 하나님! 주 하나님께서... 오 하나님, 무슨 말이라도 하게 해 주십시오. 너는 나았단다.” 바로 그때 병사들이 몰려와 “가시지요. 벌써 ‘오직 믿으라’를 다 불렀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야 했고, 그들은 저를 밀어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날 밤 예배를 마칠 무렵, 제 형제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하셔야 합니다. 그만하셔야 합니다. 내일 밤에도 예배가 있습니다.” 저는 “기도 카드를 몇 장이나 나누어 주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카드를 많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내일 밤에 사용하시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몇 사람만 더 부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카드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불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섭리로 그 아이가 줄에서 바로 다음 차례였습니다. 아이가 왔습니다. 저는 통역자에게 “아이작슨 자매님, 제가 하는 말만 그대로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저기 복도에서 나를 만난 작은 소녀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고쳐 주셨단다. 저쪽으로 가서 앉거라. 안내위원 몇 분에게 보조기를 벗겨 달라고 하렴.” 제가 다른 사람을 부르는 동안, 아이가 단을 가로질러 왔습니다. 두 다리 길이가 같아졌고, 보조기들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외쳤습니다. 수천 명의 핀란드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주 예수님께 삶을 드렸습니다. 차갑고 형식적인 교인들이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 하나님께서 핀란드의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면, 미국인에게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어린 흑인 아이, 황인종 아이, 갈색 인종 아이에게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왜 우리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풀지 못합니까? 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배운 신학을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따르지 못합니까? 그분은 “모든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 되게 하고, 내 말은 진리가 되게 하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말이 불명확함]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리라. 다른 모든 땅은 꺼져 가는 모래라.” 선교지에서 죽더라도, 저는 손에 방패를 든 채 떠나고 싶습니다. 저는 다음 주면 마흔아홉 살이 됩니다. 더는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늙어 가고 있습니다. 한때 빗속에서도 버티던 이 어깨와 단단하던 근육이 늙어 가며 물러지고 있습니다. 제 앞에는 죽음이라는 커다란 곳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저는 그곳에 한 박자씩 더 가까워집니다. 언젠가는 심장이 마지막으로 뛰고, 저는 죽음이라 불리는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겁쟁이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시간이 왔음을 알게 될 때, 저는 그분의 의의 옷으로 제 몸을 감싸고, 마음속에 이 한 가지 확신을 품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제가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께서 죽은 자들을 불러내실 때, 그 위대한 날에 저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오리라는 확신입니다.
친구여, 오늘 오후 여러분 안에는 그 소망이 있습니까? 어느 교회에 속해 있든,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든, 촛불을 얼마나 많이 켰든, 성모송을 얼마나 많이 외쳤든, 그분의 부활의 권능 안에서 그분을 알지 못하면 모두 헛됩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머리를 숙입시다.
크고 능하신 여호와여, 주께서는 제가 증언한 이 일들을 증언해 주십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이기에, 그것들이 진실임을 아십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님을 일으키신 주 하나님, 주께서는 지금 이곳의 모든 믿지 않는 사람을 살아나게 하셔서 그분을 향한 참되고 살아 있는 믿음에 이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 여기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이름뿐인 교인들입니다. 오순절교회, 나사렛교회, 감리교회를 비롯해 온갖 교단의 여러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오 하나님, 그들은 아직 그 선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제 개인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려는 뜻이 아님을 성령께서 증언해 주옵소서. 주님, 주께서 증언하십니다. 저는 죄인이고, 여기 앉아 계신 백발의 많은 남녀에 비하면 때를 벗어나 태어난 자입니다. 그분들은 제가 죄인인 어린아이였을 때 이미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 주 하나님, 주께서는 제 눈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돕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오늘 오후 성령께서 이곳의 모든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자신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 오늘 오후 그리스도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주옵소서. 주님의 종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들어올 때 지쳐 있던 마음들, 믿지 않고 의심하던 마음들이 나갈 때에는 행복하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 그분을 원하시는 모든 분은 그분께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주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저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이 가운데 통로를 따라 모두 손을 들고 계십니다. 저쪽 통로에는요? 아, 그렇습니다. 많은 손이 보입니다. 발코니에는 저기 어린아이들, 열 명, 열다섯 명의 십 대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있습니다. 왼쪽에도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쪽 오른편에서는 몇 분이나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참되고 진실한 그리스도의 종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주님, 오늘부터 주님의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지금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선교지에 갈 수 없다면, 제게... 선교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부담을 제 마음에 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의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방의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인 친구여, 손을 들고 긍휼을 구하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도 그 샘에 있습니다. 보혈로 가득한 샘이 있으니, 임마누엘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라. 죄인들이 그 흐름 아래 잠기면, 모든 죄의 얼룩을 씻으리. 죽어 가던 그 강도는 기뻐했네, 그날 그 샘을 보고. 나도 그처럼 더러운 자이나 그곳에서, 내 모든 죄를 씻으리. 믿음으로 그 흐름을 본 이후로, 주님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그 흐름을, 구속의 사랑이 내 노래의 주제였고,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러하리. 그때 더욱 고귀하고 감미로운 노래로,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노래하리. 이 서툴고 더듬거리는 혀가, 무덤 속에 잠잠히 누울 때.
얘야, 하나님께서 너의 어린 마음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 저기 두 살을 넘지 않은 어린 소녀가 작은 손들을 흔들며, 작고 검은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저렇게 어린 아기에게도 말씀하실 수 있다면, 잔인하고 마음이 차가운 죄인들은 어떻습니까?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트루 스토리」 같은 잡지들과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아서 고드프리 프로그램 따위에 마음을 너무 많이 끌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검어지고 굳어져서 성령께서 더는 말씀하실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저 어린 아기... 여러분은 “저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모를 수도 있지만 성령께서는 아십니다. 그분께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기도드리기 전에,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분들 가운데 이제 이렇게 말할 분이 계십니까? “브래넘 형제님, 저는 복음 전체를 믿습니다. 제 모든 것, 모든 것을 그분께 맡깁니다. 주님, 제 손을 듭니다. 주님의 종 브래넘 형제님을 향해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듭니다. 오늘 오후 제 이름을 주님의 책에 기록하시고, 오늘부터 주님을 위해 살게 해 주십시오.” 아직 손을 들지 않은 분들,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가씨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 뒤의 선생님도, 여러분도, 여러분도, 저기 부인도 그렇습니다. 저 뒤쪽 발코니에서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방에 계십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무례하게 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꾸짖는 것이... 그럴 생각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께서 무엇인가 말씀하시기를 기다립니다. 이 안에 꾸지람을 들어야 할 사람이 한 명 있을 수도 있고, 성령께서 바로 그 사람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을 정죄하는지는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이제 손을 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스무 명, 서른 명,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참으로 그렇게 뜻했다면, 이들은 바로 지금 영으로 태어나 성령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은 주님의 백성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원한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주 하나님,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들은 메시지를 통해 얻은 열매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멸망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이들이, 만일 이들이... 저는 이들이 좋은 교회를 찾아가서 침례를 받고, 교인이 되어, 죽음이 이들을 놓아줄 때까지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일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주님, 언젠가 우리가 강가에 이를 때... 바로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남녀 가운데 이 땅의 자기 집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심장마비나 도로에서의 사고, 어떤 음주 운전자가 들이받는 일로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가 미래를 붙들고 계시는지는 압니다.
이제 주님, 이들의 이름을 주님의 책에 기록해 주옵소서. 제가 주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다면, 주님, 이들의 이름을 주님의 책에 기록해 주옵소서. 지금 저는 이들과 악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 한 번도 못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 언젠가는 악수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오, 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 선교를 심어 주옵소서. 우리는 그저 사람들을 개종시켜 한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귀한 이름조차 한 번 들어 보지 못한 채 죽어 가는 수백만 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 아프리카에서, 그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문을 열어 주옵소서. 시간이 다해 가고 있으니, 설교자들의 마음에 후원하고 직접 갈 부담을 주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옵소서. 이제 이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제가 이들을 주께 드립니다.
주님, 언젠가는 저도 가야 합니다. 오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저는 제게 마지막이 될 순간에 이 성경을 덮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그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길 끝에 이르러 요르단강의 거센 물결이 제 얼굴을 때리는 것을 느낄 때, 제가 지나온 모든 가시덤불과 올라온 모든 언덕을 뒤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 오래 쓰던 칼을 집어 영원의 칼집에 꽂고, 투구를 벗어 강가에 내려놓고 외치고 싶습니다. “주님, 구명정을 띄워 보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제가 본향으로 갑니다.” 주님, 제 사역이 끝나면 평안히 떠나게 하옵소서. 시간이 멎고 영원이 끝없이 이어지는 저곳에서 수백만의 친구들을 만나게 하옵소서. 날들은 뜨겁고, 해는 지고 있으며, 문명은 죽어 가고 있고, 예수님은 오고 계십니다. 오 하나님, 속히 우리를 깨워 주옵소서. 일어나 우리 자신을 흔들게 하옵소서. 몸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혼을 꼬집어 깨어나게 하옵소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늦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오 하나님, 오늘 밤에는 우리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이제 잠시 뒤의 다음 집회를 위해 흩어질 준비를 하오니 우리를 축복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잠깐만 더 시간을 내주십시오. 빌리,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준다고 광고해 달라고 했지? 오늘부터, 카드 일부를 나누어 준다고 했나, 아니면... 6시 30분? 6시 30분이랍니다. 레오는 어디 있습니까? 진은요? 그들에게도 카드를 좀 주어서, 가져다가 빨리 나누어 줄 수 있게 하십시오. 좋습니다. 6시 30분입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은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고 “오...” 해 보십시오. 한번 찬송합시다.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모두 함께.)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시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값을 치러 나의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잠깐 양해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미처 못 보았습니다. 제 육신의 형제 중 하나인 닥이 보입니다. 저는 에드거를 닥이라고 부릅니다. 그와 아내가 바로 저기 앉아 있습니다... 닥, 손을 들어 보렴. 제 형제, 저와 피를 나눈 친형제가 저기 아내와 함께 와 있습니다. 우드 형제님과 자매님, 데이비드도 있습니다. 며칠 전 저녁에 제가 다리가 어떤 식으로 뒤틀렸던 소년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가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아이 말입니다. 기억하십니까? 그 소년이 지금 바로 여기 서 있습니다. 데이비드, 손을 들어 보렴. 잠깐 저쪽으로 걸어 나와 주겠니? 데이비드, 너를 구경거리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뒤틀린 다리에 이렇게 하십니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집회에 앉아 있는 동안에 말입니다. 데이비드, 이쪽으로 걸어오렴. 다리가 몸 아래로 뒤틀려 있던 소년이 여기 있습니다. 이리 올라오렴. 잘생긴 청년이니 우리 모두 보고 싶구나. 안다, 이것이... 저기 있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데이비드, 어느 쪽 다리였지? 이제는 어느 쪽인지도 모르는군요. 데이비드, 다시 만나서 반갑구나. 이 소년의 다리는 몸 아래로 뒤틀려 있었습니다. 이 건물 끝보다도 더 먼 저 뒤에 앉아 있었는데, 주 하나님께서 다리를 고쳐 주셨습니다.
닥? 너는 브래넘 집안에서 더 잘생긴 편이지. 잠깐 이리 올라오렴. 좋습니다. 번스 형제님도 저 뒤에 서 계십니다. 기억이 납니다... 주님의 천사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이분의 아내가... 닥이 오는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분의 아내는... 이분은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닥, 만나서 반갑구나.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분의 아내가 병원에 있었습니다... 네빌 형제님은 이미 소개받으신 것 같습니다. 태버내클의 목사이신 네빌 형제님이 바로 저기 서 계십니다. 네빌 형제님, 소개받으셨지요? 그러면 이 단 위로 올라오십시오. 네빌 형제님입니다. 여기 감리교 목사님이 제 침례교회를 맡아 목회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침례를 받은 감리교인과 침례교인입니다. 이분은 애즈베리 대학 출신입니다. 아, 좋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많은...
여기 제퍼슨빌에서 오신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이 근처에 더 계십니까? 우리 교회 근방에서 오신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 그렇습니다... 저 뒤에 빌러 형제님이 보입니다. 제퍼슨빌에서 온 또 한 분의 설교자입니다. 모두... 우리 식구가 참 많이 왔습니다. 오늘 밤 이분들을 모두 여기 모셔서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번스 자매님에 관해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매님은 지금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뱅크스 우드 형제님과 저는 둘 다 켄터키 출신인데, 다람쥐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저를 숲에서 불러냈습니다. 뱅크스 형제님이 이 소년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무슨 일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뱅크스 형제님, 제가 왜 집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쉬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저는 “서트클리프 상점에 가서 탄약을 좀 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과녁을 아주 잘 맞힙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갔습니다. 제가 “뱅크스 형제님...” 하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켄터키 출신입니다. “모퉁이를 돌아 다니고 계십시오. 저는 서트클리프에 들어가 탄약을 사겠습니다. 제가 나오는 것이 보이면... 그 길에는 차를 세울 수 없으니까요.” 그분은 엉뚱한 곳을 돌고 돌고 또 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밖에 서서 ‘무슨 일이지? 저분이 어디 계시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30분쯤 지나 문득 보니, 한 블록 떨어진 저 아래 다른 곳에서 길을 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분은 루이빌에서 자랐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르나? 계속 그 앞을 지나가면서 서트클리프가 없는 것을 볼 텐데, 열 바퀴나 열다섯 바퀴를 돌았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를 세우려고 길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분이 돌아오는 바로 그때, 번스 자매님이... 번스 형제님,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저기서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분의 아내가... 이분은 비장에 생긴 암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켄터키 출신의 침례교인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곳 집에서 치유를 받고, 그 뒤로 이 오랜 세월을 살아 계십니다. 당시 이분은 아주 심한 암으로 병원에 있었고, 의사들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분의 사랑스럽고 다정한 아내가 말했습니다. “주 하나님, 저는 브래넘 형제님이 어디 계신지 모릅니다.” 자매님은 그 사진을 가져다가 바닥에 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 이 종이에 사진으로 찍히신 하나님의 천사여, 브래넘 형제님을 제게 속히 보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일어나 “아, 공공요금을 내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몇 마일 떨어진 시내로 내려갔습니다. 공공요금을 내고 나자, 무언가가 그분을 모퉁이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분이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저도 바로 그 모퉁이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매님은 번스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주 하나님께서 그를 병원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그가 여기 증인으로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지점에서 만나게 하실 수 있을 때까지 붙잡아 두시려고, 뱅크스 형제님이 엉뚱한 구획을 계속 돌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하십시오.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십니다.
저는 이런 옛 찬송들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릅시다. 함께 부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젊은이, 반주를 좀 해 주겠습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입니다. 좋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그분의 권고로 그대를 인도하고 붙드시기를, 그분의 양들과 함께 안전하게 품으시기를, 하나님께서 그대와 함께하시기를...
이것이 온갖 소란을 피우는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답게 들리지 않습니까? 이제 들으십시오. 곁에 있는 분과 악수하십시오. 앞에, 뒤에, 옆에 있는 분과 악수하되 자리를 떠나지는 마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악수만 하십시오.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감리교인과 침례교인, 오순절교인과 장로교인 여러분, 발코니에 계신 분들도 모두 악수하십시오.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천천히.) 다시... 이제 그분께 손을 드십시오. 다시 우리가, (아, 제게는 천국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에서 만날 때까지, (오늘 밤이 되기 전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이제 머리를 숙이고 흥얼거립시다. [브래넘 형제님과 회중이 찬송을 흥얼거린다.]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이제 머리를 숙이신 채로, 제퍼슨빌의 브래넘 태버내클에서 오신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 오먼 네빌 형제님께 마치는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빌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