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모든 거룩한 것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 모이는 부활의 날입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사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이 소망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제 아침 메시지를 전하기에 앞서, 잠시 더 고개를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아침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임을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다가올 위대한 부활을 그저 상상만 하지 않아도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저희가 주님의 말씀에서 그것을 읽고, 주님께서 이 일을 약속하셨음을 보며,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저희 혼 안에서 느끼니, 그 부활이 저희에게 실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 오늘 아침 저희는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마음의 아픔과 수많은 슬픔을 생각합니다. 저희 속을 찢어 놓고 세상의 바람에 내던져 버린 일들 말입니다. 저희는 사랑하는 이들을 땅에 묻고 무덤가에서 얼마나 슬퍼했는지요. 저희 안에서 혼이 거의 소멸되는 듯하다가도, 오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요! 그분께서는 승리 가운데 일어나시며 원수의 모든 힘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모든 그늘을 걷어 내셨습니다. 이제 저희는 그분의 부활의 귀한 빛 가운데 걷습니다.
오, 약 천구백 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 오늘 아침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두 여인이 무덤으로 가면서 누가 돌을 옮겨 줄까 염려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옮겨 놓으셨습니다. 거기 갇혀 계셨던 분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그들에게 “가서 내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내가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리라고 고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저희가 지금도 그 부활을 증언할 수 있는 이 위대한 체험을 얼마나 감사드리는지요.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에, 그날 아침 그들에게 실제였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실제가 됩니다.
저희의 죄들과 부족함을 용서해 주옵소서. 저희가 잘못 행하거나 말하거나 심지어 잘못 생각한 모든 것을, 주님,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희를 깊이 인쳐 주옵소서. 오늘 아침 가까이 와 주옵소서. 오, 저희의 괴로움이 몹시 깊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그늘 속에 서 계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날 아침 마리아가 무덤에서 돌아서서 울고 있을 때, 뒤에서 “어찌하여 슬피 우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마리아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을 때,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에 그 마음이 얼마나 기뻐 뛰었겠습니까.
오, 주님, 오늘 아침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영을 저희에게 주옵소서. 이 위대한 때를 기다렸던 선지자들과 여러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오늘 아침 저희에게 새롭게 확신을 주옵소서. 저희도 마지막 날들에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있을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주님, 그때까지 저희를 건강하고 행복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저희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버지, 저희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셔서 저희 부활의 확신을 주신 그분의 이름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조금 전 이곳으로 오는 길에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참으로 봄답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부활절은 얼마나 때에 잘 맞습니까. 그 어둡고 추운 겨울이 온갖 눈보라와 함께 지나가고 나면 햇빛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해가 떠오르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소망, 새로운 계절, 새로운 곡식, 새로운 꽃들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읽을 성경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연이 어떻게 가고 오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해의 가을은 십자가의 죽음이고, 봄은 부활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마당에서 작은 새들, 제 작은 울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새들을 참 좋아합니다. 제 작은 라디오들이라고 부릅니다. 아침이면 밖에 나가 제 라디오를 켭니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울새에 관한 짧은 전설을 아실 것입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울새는 성금요일까지 작은 갈색 새였습니다. 한 분이 홀로 죽어 가고 계셨는데,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홀로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습니다. 작은 갈색 새 한 마리가 그분을 십자가에서 풀어 드리려고 했습니다. 못과 그분 머리의 가시들을 향해 이리저리 날아들다가, 그 작은 가슴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가슴이 붉어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 하나님, 제가 원하는 방패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울새가 부리로 깃털을 다듬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그 조그만 붉은 깃털층 바로 아래는 검습니다. 나머지 깃털은 검은색입니다. 하지만 붉은 방패가 울새를 지켜 줍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애써도 여전히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붉은 방패 하나만 있으면 울새는 다른 새들과 달라집니다. 우리를 세상과 다르게 하는 데에도 그분의 은혜의 작은 붉은 방패 하나면 됩니다.
오늘 부활절 아침에도 여느 부활절 아침과 같이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른 해돋이 시간에 함께 모이기를 고대합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제가 이곳 태버내클에 와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주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습니다. 어젯밤 폭풍이 치는 동안 말씀을 공부하며, 아침 부활 예배에서 무슨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적절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방금 우리 형제님이 읽어 주신 욥기 19장 23절부터 27절의 이 주제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욥은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제로 택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새로운 소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어둠 속에 살고 있음을 압니다. 이런 일을 그저 상상하거나,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의 그늘 속에 살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마다, 묘지를 지나갈 때마다, 병원을 볼 때마다, 그리고 흰머리 한 올 한 올이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에 새겨 줍니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그렇습니다. 이런 아침에 우리는 소망을 얻으려고, 우리가 왜 이곳에 있으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얻으려고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생각하기에 참으로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그 무엇도 우리를 멸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지음받았습니다. 이 교회도 목적이 있어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그저 한번 할 수 있는지 보려고 터를 파고 모퉁잇돌을 놓고 블록을 쌓아 건물을 올리고 지붕과 내부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목적을 위해 이곳에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집도 우연히 그곳에 생긴 것이 아니며, 누군가 그저 시간을 허비하며 지은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집은 목적을 위해, 그 목적에 쓰이도록 지어졌습니다.
오늘 아침 자동차를 타고 오셨다면, 그 자동차는 그저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재료를 낭비한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위해, 그 목적에 쓰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은 옷도 누군가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먹는 음식도 그저 자라는 모습을 보려고 땅에서 자란 것이 아닙니다. 목적에 쓰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저 나무 하나가 있게 하려고 나무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위해 나무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도 그저 만드실 수 있는지 보려고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있는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사람 하나를 더 보태려고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위해 여러분을 만드셨기에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음식을 먹으려고만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지은 집에 살거나 누군가 만든 옷을 입으려고만 이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든, 어떤 목적에 쓰이기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제 손가락이 목적을 위해 여기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손가락의 손톱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눈과 우리 몸의 모든 부분도 목적에 쓰이기 위해 있습니다. 그저 여기 두면 어떻게 보일까 알아보려고 둔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에 쓰이도록 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위해 이곳에 놓였다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아무것도 우리를 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 두신 목적이 드러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든, 얼마나 큰 마음의 아픔이나 슬픔을 겪든, 이 모든 일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홍수가 닥쳤습니다. 온 땅이, 그 초목이 멸망했습니다. 노아와 그가 방주에 들여놓은 씨 외에는 모든 것이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좌절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그 아름다운 계시를 의지하며 얼마나 행복해야 하겠습니까. 현재의 일도, 다가올 일도, 질병도, 슬픔도, 죽음도, 위험도, 그 무엇도 우리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목적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 속에 그리신 것, 하나님께서 이루시려고 마음에 작정하신 것, 하나님의 그 위대하고 불멸하며 영원한 계획을 가로막을 마귀도, 힘도,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됩니다.
온 세상이 홍수로 멸망하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대비해 두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대비하셨습니까? 그분의 목적을 보존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그렇게 하셨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분 자신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 대비해 두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교회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한 백성을 보존하실 것입니다. 죽음도 멸할 수 없는, 그분의 위대한 나라의 백성을 보존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이 의지할 굳건한 기초가 됩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한 시인이 이렇게 썼습니다. 오,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이 기쁨! 구원의 상속자, 하나님께서 사신 자, 그분의 영으로 태어나 그분의 피로 씻겼네. 우리를 사랑하시는 복되신 주 예수님의 부활, 이 굳건한 반석 위에 있는 확신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무것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심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씨입니다. 우리에게 복되신 성령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에게 표적과 이적과 기적을 보여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며, 아무것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지옥의 모든 힘이 그것에 맞서 도전할지라도, 그것은 이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나타날 수도 있고, 여러 사조가 일어날 수도 있고, 거대한 계획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것이 무너질 듯 보이는 일들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이기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너지느냐 마느냐는 저나 여러분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산이 결코 멸망하지 못하게 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멸하려고 덤비는 파괴의 힘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으로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셨던 히브리 청년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바빌론에 있을 때, 하나님의 목적을 멸하려고 용광로를 그때까지 달구었던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온 바빌론이 격노했습니다! 그들은, 곧 사탄은 하나님의 목적을 멸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청년들이 용광로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광로를 달굴 때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구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무너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권능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온 바빌론과 온 지옥도 그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었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설령 그 용광로를 백만 배 더 뜨겁게 달굴 수 있었다 해도, 하나님의 목적을 멸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출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구출하고자 하시는 누구든 구출하실 것이며, 그 무엇도 그분의 계획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용광로를 달굴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자신들이 그 용광로에서 나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 스스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형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자신을 섬길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계획에 담긴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오, 오늘 아침 이 말씀을 드릴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요. 세상의 모든 수소폭탄도 그분의 교회의 부활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이 똑똑한 세상이 어떤 일을 하려고,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을 멸하려는 목적을 감추고 내세운 온갖 부정하는 설명과 온갖 수학과 그 밖의 것들도... 결코 그 믿음을 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짐승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었습니다. 한때 사람들이 동굴 안에 사자들을 가두었습니다. 사자들을 굶겨 놓았기에 너무나 배가 고파, 한 번 크게 덮치기만 해도 사람을 갈기갈기 찢을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마귀는 “이제는 틀림없이 이 선지자 다니엘을 멸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하나님의 목적을 행하기로 마음에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그것을 넣어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런 소원을 갖기 전에, 그 소원을 만들어 내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갖기 전에, 구출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오, 그것은 오늘 아침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 안에 주신 믿음, 그 살아 있는 믿음과 얼마나 잘 들어맞습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강 저편에 한 나라가 있다고 말해 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저도, 어떤 사람도 그 나라가 여기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이렇게 알려 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무덤이 혼의 목적지는 아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말은 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 안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이 있고, 하나님께서 켜 주신 빛이 있습니다. 어떤 바람도 그것을 끌 수 없습니다. 교회의 어떤 냉랭함도, 사람들 사이의 어떤 무관심도, 세상의 어떤 박해도 하나님께서 붙이신 불꽃을 끌 수 없습니다. 그분의 자유의 횃불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타오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힘도 그것을 불어 끌 수 없습니다. 불어 댈수록 그 불꽃을 더 밝게 타오르게 할 뿐입니다.
박해가 교회를 강하게 한다는 것은 여러 시대에 걸쳐 입증되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몰랐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속 깊은 곳의 무엇인가가 그렇게 말해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이 그 목적을 이루도록 역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우리가 아무리 무관심해 보이고, 일이 아무리 이상하게 되어 가고, 교회가 이런 상태나 저런 상태에 빠진다 해도, 그것은 모두 그분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를 빚고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 안에 있습니다. 창조주보다 그 재료를 어떻게 빚어야 하는지 더 잘 아는 이가 누구겠습니까?
사자들은 그 선지자를 잡아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목적이 있었으므로, 이 선지자를 지키도록 천사 하나를 곁에 세워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라고 자처하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능하신 손과 목적을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하신 손을 보여 주시고 위대한 목적을 이루실 수 있도록 한 백성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 오늘 아침 그분께서 제 마음속에 살아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분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제 속 깊은 곳에... 어제 아침 저는 머리를 깎으려고 이발소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건 형제님의 이발소에서 한 청년이 제 머리를 깎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오, 집회가 오랫동안 이어져서 저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다음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조금 쉬려고 내일 아침 떠날 생각입니다.
저는 너무 지쳐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는 다 들리지만 제가 허공에 떠 있는 듯했습니다. 저는 ‘심장마비가 와서 이 이발소 의자에서 그대로 세상을 떠나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싶었습니다. 손을 만져 보니 감각이 없었습니다. 심장은 멎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오, 하지만 아직 전해야 할 복음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어떤 힘도 나를 데려갈 수 없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그 무엇도, 단 하나도 저를 해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면, 저는 그분의 목적에 따라 떠나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마치시면 저도 마칩니다. 그분께서 저를 쓰시는 일을 마치시면, 제 삶도 끝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쓰시는 일을 마치시면, 여러분도 끝납니다. 그러니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계십니다.
우리가 젊든 늙든, 하나님의 목적이 언제 이루어지고 끝날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어린 아기들을 데려가시며, 그 어린 혼을 인도하실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하늘에서 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이 그분의 목적을 위해, 바로 그 시각과 그때에, 모두 그분의 거룩한 계획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무것도 그것을 멸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뒤, 하나님께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에 따라 자신과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은 얼마나 큰 확신이 되었겠습니까. 이 아들 이삭을 통해 주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었습니다. 이 목적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라와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시며, 그들에게서 큰 민족을 이루려고 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주시기 위해, 그 일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방식으로 움직이시는 것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 아이를 세상에 보내고자 하셨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를 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생식 능력이 없는 남자 대신 다른 남자를 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주 오랫동안 부부로 살았지만, 사라는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고 임신 가능한 여자를 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취하여 무엇인가로 만드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비참하고 불쌍하며 길을 잃고 눈멀고 사랑스럽지 못했던 우리를, 그분 자신의 자녀, 사랑스러운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를, 막 결혼한 젊은 부부를 택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너희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으니,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맏아들이 태어나게... 내가... 그가 나의 이삭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흔다섯 살 된 남자와 예순다섯 살 된 여자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젊든 늙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며, 이루실 것임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일흔다섯 살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라에게 그 약속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내가 어떻게 할지 아느냐? 그 일을 잠시 늦추겠다. 이 사람들이 아주 늙어 버리게 하면 믿음을 잃고 그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 같다. 일흔다섯 살에 벌써 몸이 떨린다면, 그 일이 얼마 동안만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면...” 하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을 막아 두어 아브라함과 사라는 노령으로 허리가 굽고, 머리가 희어지고, 어깨가 굽었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죽음조차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사라의 태는 사십 년이나 오십 년 동안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사라의 몸은 늙고 주름져 있었습니다. 젖줄도 말랐습니다. 심장이 너무 약해서 해산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그분의 목적은 좌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사라를 변화시키셔서 다시 젊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백 살 된 남자를 데려다가 젊은 시절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아무리 이치에 맞지 않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불신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약속에 따라 그분과 함께 상속받을 자들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질병이 닥치고, 우리가 어떤 죽음을 맞으며, 얼마나 큰 가난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늘이 제 생일이고, 저도 이제 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거울을 보니, 이 태버내클을 지었던 그 어린 청년이 더 이상 어린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어깨는 굽고, 수염은 희어지고, 머리카락은 빠지며 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살리라.”는 약속을 확신하며 의지합니다. 저도 옛날의 욥과 함께 고백합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하나님께서 가지신 목적입니다. 저는 이 목적에 쓰여야 합니다. 제 삶은 그분의 목적과 계획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목적이 있으셔서, 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같이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아무리 반대로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셨고, 그분의 모든 자녀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운 모세도,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목적을 두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어머니 요게벳은 사랑하는 아기(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 어린 아기)를 궤에 넣어 나일강에 밀어 띄웠습니다. 그곳의 악어들은 어린 히브리 아이들을 먹고 살이 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악어에게 먹이로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기를 데려다가 바로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제 아이를 돌보시고, 이 아이를 보내신 목적에 이르게 해 주옵소서.” 나일강의 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 아이를 익사시킬 수 없었습니다. 온 세상의 악어를 다 모아도 그 아이를 삼킬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듯이, 오늘 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폭탄도, 지옥도, 그 무엇도 하나님의 목적을 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부활에 참여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모세가 마흔 살이 되어 중년이 되었을 때... 그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을 이루시려고 마련하시는 방식은 때로 참으로 기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막 깊숙한 곳으로 데려가셔서, 그가 광야에서 비틀거리며 비명과 으스스한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거기 사막에서 홀로, 울부짖는 바람과 전갈과 코브라 가운데서, 홀로 광야에 있다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록 두셨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태어나게 하셨기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반드시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좌절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살펴보는 인물인 욥은 가장 깊은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들은 죽었으며, 몸에는 종기가 나서, 일찍이 겪어 본 적이 없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잿더미에 앉아 질그릇 조각으로 종기를 긁고 있었고, 아내는 문간에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지 그래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 사람들은 이레 동안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위로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비난했습니다. 몰래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믿음에서 돌아선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바로 그 중대한 때,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를 데려가시는 거룩한 모래밭으로 욥을 데려가셨습니다.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사막 깊숙한 곳의 한 체험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여러분을 데려가셨던 그 작고 은밀한 골방으로, 제가 그 체험을 얻었던 석탄 창고로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정하신 장소와 목적과 때가 있습니다. 욥을 이런 상태에 두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한 모래밭에 두신 것이었습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을 그에게 계시하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 그 거룩한 모래밭이여! 그분께서는 참된 자녀라면 누구나 그곳으로 데려가셔야 합니다. 어떤 마귀도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그곳에 여러분을 두십니다. 어떤 교사도 그것을 말로 설명하여 없애 버릴 수 없습니다. 그곳 체험의 모래밭에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을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나 아버지, 남편이나 아내, 가까운 사람들이 아무리 무신론적으로 변한다 해도, 참된 믿는 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나 주신 그 자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누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데려가신 그 자리와 그 순간과 그 시각을 압니다. 그 거룩한 모래밭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믿는 자에게 세상의 모든 지성으로도 없앨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무너뜨리지 못하리라.” 이 반석 위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이 영적 계시 위에 말입니다. 이 반석 위에 세우십니다.
고통 가운데 있던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비난했습니다. 믿는 그의 친구들도 신학만 가지고 있었기에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아, 이리 오너라. 내가 네게 무엇인가를 주겠다. 얘야, 온 지옥의 마귀들이 흔들어도 떨쳐 낼 수 없는 것을 네 안에 넣어 주겠다. 세상의 모든 교사가 이러쿵저러쿵 너를 비난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장막을 조금 들어 올리시고 “욥아, 저기를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무엇을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처음으로 부활절을 보았습니다! 첫 부활절을 보고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하고 외쳤습니다.
오, 그곳은 얼마나 복된 자리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와 아이는, 그 거룩한 모래밭의 그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장막을 들어 올리시면, 여러분은 부활의 권능 가운데 계신 그분을 봅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압니다. 우리도 욥처럼 외칠 수 있습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처음 본 그 부활절의 광경에 선지자가 외쳤습니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부활절을 보았습니다. 언제 보았습니까? 단정한 옷을 입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머리카락 한 올까지 말끔히 빗어 놓았을 때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없이 좋은 건강을 누릴 때도 아니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였습니다. 고난 속에 누워 거의 죽어 가던 그때, 그는 부활절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첫 부활을 보았습니다. 오, 여러분과 저도 비슷했습니다. 어딘가 제단에 엎드려 죽을 지경이 되도록 매달리며 “주 하나님, 저를 위해 무엇인가 해 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었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장막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부활절은 주로 신학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을 부활절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토끼와 색칠한 달걀을 부활절로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 가운데서 부활절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참된 부활절이었습니다. 욥이 외치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다윗도 배척받고 쫓겨나 있었습니다. 다윗도 죄를 짓고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뒤였습니다. 다윗도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마음의 기쁨이던 아들을 빼앗겼습니다. 선지자이자 왕인 다윗도 자신이 늙어 가고 있으며 땅의 흙으로 돌아가야 함을 보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다윗이 말했습니다.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라.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시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다윗이 가장 힘겨운 때를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다윗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거의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장막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다윗아, 저기를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내 육체가 소망 중에 안식하리라.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자를 썩음을 보도록 버려두지 아니하시며, 그의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내 육체가 소망 중에 안식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오, 친구여, 바로 그 시각입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그 절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듯한 고통의 시간에 우리가 부활을 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를 나타내기를 좋아하십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위로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이 세상이 일찍이 본 가장 어두운 때는 성금요일이었습니다. 모든 소망이... 모두 글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소망은 모두 종이에 적힌 것뿐이었습니다. 어떤 철학자가 한 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통치자께서 갈보리에서 죽어 가고 계셨습니다. 세상이 일찍이 본 가장 어두운 때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세상이 일찍이 본 가장 밝은 때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을 때, 모든 미신과 모든 의심과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왜 어두웠습니까? 무엇이 어둡게 만듭니까? 아까 새들과 꽃들에 관해 말씀드렸던 것을 따라가 봅시다. 왜 작은 부활절 백합은 부활절에 꽃을 피웁니까? 왜 새들은 봄에 노래하고, 왜 꽃들이 피어납니까? 여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왜 이월이 일 년 중 거의 가장 혹독한 달입니까? 겨울이 계속, 계속, 계속, 계속 밀려오다가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물러나 생명에게 자리를 내줍니다. 죽음은 마지막 일격을 가했습니다! 이제 물러나 생명이 자리를 차지하게 해야 합니다. 왜 날이 밝기 전에 어둡습니까? 날이 밝기 전이 가장 어둡습니다. 과학자들은 빛이 밀고 들어오며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해가 지구를 돌아 떠오릅니다. 그 빛이 어둠을 밀어붙입니다. 어둠은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어둠은 빛 앞에 결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빛은 어둠보다 천만 배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은 함께 거할 수 없습니다.
빛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어둠은 가라앉아 짙어집니다. 빛이 어둠을 한데 밀어 모으는 것입니다. 표백제가 가득 든 대야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잉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표백제에 떨어뜨리면 잉크의 검은색은 더 이상 없습니다. 잉크 자체가 표백제가 됩니다. 오, 죄도 그렇습니다. 구주의 피 속에 떨어뜨리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라집니다! 그분께서 그것이 망각의 바다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표백제가 담긴 통입니다. 다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분해되어 더 이상 없습니다. 참된 부활과 그 부활을 위해 치르신 값을 한 번 보고 나면, 죄도 그렇게 됩니다.
어둠은 곧 사라질 것이기에 한데 짙게 모입니다. 그러다가 빛이 오자마자 어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어디로 갑니까? 몇 시간 전 이 태버내클을 둘러싸고 있던 그 캄캄한 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해가 비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어느 쪽으로 올라갔습니까, 아니면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그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두웠던 이유는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소망하며 기다려야 했던 이유는 아직 부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이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어둠은 더 이상 없습니다. 빛입니다! 우리는 이 빛, 이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걸으리, 긍휼의 이슬방울이 반짝이는 곳에 비치는 빛, 밤낮으로 우리 주위를 환히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밤이 밀려옵니다. 이제 이것을 나라들의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지금은 가장 어두운 때, 이 세상이 일찍이 본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자연조차 떨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온 땅이 가루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반응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수소나 산소, 또는 이런 거대한 폭탄들의 반응으로 말입니다. 원자 반응입니다. 모든 나무, 모든 풀, 모든 것, 모든 가지, 모든 목적, 모든 사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다시 산성 물질로 돌아갈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보이십니까? 온 세상이 떨고 있습니다. 폭탄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때에 딱 맞춰 준비된 듯합니다. 어둠에도 정해진 때가 있다면, 빛에는 얼마나 더 분명하게 정해진 때가 있겠습니까? 무엇이 지금 이렇게 어둡게 만듭니까? 무엇이 이런 일들을 일으킵니까? 교회들은 모두 서로 교제를 끊습니다. 우리는 다투고 있습니다. “오, 있습니까...?” “나는 감리교인입니다.” “나는 장로교인입니다.” “나는 오순절교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 교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회 교인입니다.” 오, 자녀들이여,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 그것뿐이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는 저 작은 거룩한 장소가 있어 참으로 기쁩니다. 어느 날 밤, 저기 오하이오 애비뉴의 추운 헛간에 있던 그 작은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장막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때 감리교도, 침례교도, 장로교도, 오순절교도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부활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구주이심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보았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저는 그분께서 유일한 왕이시요 권능자이심을, 저를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심을 보았습니다. 저의 병을 고치시고 저의 질병을 없애시며 마지막 날들에 저를 일으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제가 장막 너머를 보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부활이신 그분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도 욥과 함께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하고 고백했습니다. 감리교도, 침례교도, 장로교도, 오순절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뒤에도, 제 구속자께서는 여전히 변함없이 살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의 모든 믿는 이들과 함께 그 거룩한 모래밭에 서 보았습니다. 어떤 마귀도 그 모래밭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어떤 신학 박사도 그것을 말로 설명하여 없애 버릴 수 없습니다! 제가 병들었을 때 그분께서 고치셨고, 제가 길을 잃었을 때 그분께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심을 어떻게 아느냐고요? 그분은 제 마음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죽어 계신 것이 아니라,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지금 땅 위에 드리우는 이 짙은 어둠은 빛이 아래로 밀고 내려오고 있음을 알릴 뿐입니다.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 드리워져,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한 시간 뒤에 세상이 죽음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드리워져 있다면,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빛이, 생명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부활,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위한 부활절이 다가옵니다. 그것이 낮게 드리워져 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령께서 다가오고 계십니다. 어둠이 마지막으로 희생을 거두어 가고 있습니다. 곧 빛이 오기 때문입니다! 온 시대의 기쁨이요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를 위한 참된 부활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고난에 함께 참여했듯이, 그분의 부활에도 함께 참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자는 나와 함께 통치하리라.” 오, 그러면 다른 이들은 상을 얻으려 싸우고 피의 바다를 항해했는데, 나는 안락한 꽃 침상에 실려 본향 천국으로 가겠는가? 아니라, 내가 통치하려면 싸워야 하리니, 주여, 내 용기를 더해 주소서.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오, 저는 겁쟁이처럼 가서는 안 됩니다. 온통 어둠에 싸여 온갖 짓을 하는 세상을 보면서,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날마다 고개를 떨구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저는 고개를 들고, 독수리들 사이에 머리를 둔 듯 높이 들고 걸어야 합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의 부활의 권능 가운데서 그분을 압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삽니다.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으므로 저도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일어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부활절은 그런 의미입니다.
얼마 전, 저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겨자가스와 염소가스 같은 강력한 가스를 살포했습니다. 위험했습니다. 모든 것을 중독시켰습니다. 잎도 죽고, 나무도 죽고, 풀도 죽고, 모든 것이 죽었습니다. 그 가스, 겨자가스를 살포한 곳은 모든 것이 타 버렸습니다.
어느 부활절 아침, 한 군목이 부상자와 죽어 가는 사람들이 누워 있는 천막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적십자 간호사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 젊은 병사들은 전선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손에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젊은 병사들이 누워 울고 있는 작은 침상들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부활절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고 폭탄이 떨어지는, 그들에게는 그런 부활절이었습니다.) 간호사는 장미 한 송이를 꺼내 병사마다 건네며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병사들은 그 장미를 움켜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 장미가 자기들의 고향 땅에서 자란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형제여, 오늘 아침 우리는 위험한 독가스가 가득한 세상에 있습니다. 온갖 교리와 그 밖의 것들이... 부활은 없고, 신유도 없고, 이것도 저것도 다른 무엇도 없다고 말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적십자 간호사가 아니라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한 모래밭으로 데려가시고, 강 저편 나라에서 가져오신 작은 증표를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십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거기 서서 울었습니다. 하도 울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사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선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알자스 로렌을 지나 저쪽으로요.” 그가 말했습니다. “무슨 정찰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제가 ‘하사님, 저도 함께 타고 가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물론이지요, 군목님. 어서 타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감수하셔야...’ 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저 함께 타고 가고 싶어서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럼요, 어서 타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풀 한 포기,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같은 곳까지 갔습니다. 그 병사가 보내야 할 자료를 정리하는지, 보고를 보내는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저는 그 주위를 조금 걸어 다녔습니다. ‘오, 참 기막힌 부활절이구나! 이 땅에서는 폭탄이 모든 건물을 무너뜨렸고, 나무들은 기관총탄에 쓰러졌구나.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언젠가 죄가 그 대가를 거두고 나면, 이것이 이 세상의 모습이겠군요. 이런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생각과 눈길이 어떤 바위로 끌렸습니다. 그리로 가면서 ‘주님, 왜 제가 이 바위 곁에 서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 바위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작은 부활절 백합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폭풍 속에서도 보호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독가스도 백합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바위 속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압니다. 오 하나님, 세상이 뭐라고 하든 저를 영원한 반석 안에 숨겨 주옵소서, 주님. 폭풍이 지나가면 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살아 계시므로 우리도 삽니다. 그 모래밭에 서서 이 일들을 목격한 믿는 자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교회가, 세상이 오늘 아침 교회에 갑니다. 많은 사람은 새 외투를 자랑하려고 가고, 어떤 사람은 새 모자를 자랑하려고 갑니다. 다음 부활절까지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과 허영을 과시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자기 죄 뒤에 숨고, 어떤 큰 조직에 소속되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저런 곳에 속해 있습니다.” 하고 말하려고 교회에 갑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오,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가 섰던 자리에 섰습니다. 욥이 섰던 자리에 섰습니다. 다윗이 섰던 자리에 섰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껏 외칩니다.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심을 내가 아노라. 마지막 날들에 그분께서 이 땅 위에 서시리라.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몸소 그분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라.”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허영과 교만입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이 확실합니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가져가셨으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시기 원하노라.” 욥이 알았던 한 가지는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아 계실 것이다.”가 아니라 “살아 계신다.”입니다. 영원히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아 있으므로 너희도 사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치는 기도를 위해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오, 오늘 이곳에 계신 불쌍하고 쇠약한 친구여, 한 번도 이 자리에 이르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은 “오, 브래넘 형제님, 저는 이 태버내클에 여러 번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교회에도 가 보았습니다. 훌륭한 목사님들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장막을 들어 올려 주시는 그 자리에 이르러 보셨습니까? 한 체험이 마음에 와닿아 부활절이 무슨 동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 거룩한 장소 말입니다. 부활절이 산타클로스나 조그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리입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고, 그분께서 살아 계시기에 여러분도 산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아는 자리입니다. 그 체험을 한 번도 하지 못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장막을 들어 올려 주시도록 맡기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때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오늘 아침 그분께서는 이 땅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구주이시지만, 내일은 여러분의 심판자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그 체험을 만나지 못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제 제가 믿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저 뒤에 손을 드신 분. 저쪽의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또 다른 분도 손을 드십시오. 지금 여기 계신 분 가운데 그 체험을 하지 못하신 분은 모두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오늘 아침 주님 자신의 거룩한 방식으로 해 주옵소서. 주님께 어떻게 제게 주셔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님 자신의 거룩한 방식으로, 제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그 자리로 저를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들어왔다 나갔다 했으며,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부활절이 제게 참된 부활절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저를 사막 깊숙한 그 자리로 데려가 주옵소서. 바로 지금 그곳에서 제 마음을 빚으시고, 제가 설 거룩한 모래밭을 주옵소서. 어떤 마귀나 그 무엇이나 누구든 제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임을 아는 곳 말입니다. 시간의 장막 너머 내일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그것을 얻으려고 오늘 아침 이곳에 왔습니다. 설교자가 그것을 설명하려 애쓰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제게 계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 뒤에 계신 청년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이쪽 제 왼편, 저 왼쪽 통로 쪽, 제 왼편에 계신 분 가운데 “하나님, 지금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고 말씀하실 분이 있습니까? 이쪽 다른 통로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그렇습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고 말씀하십시오.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본향이 그립고 지쳐, 예수님을 뵙고 싶어라, 그 항구의 고운 종소리 듣고 싶어라. 그러면 내 길이 밝아지고 모든 두려움 사라지리니, 주님,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하소서. 조금만이라도 보게 하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이제 기도로 마치기 전에 또 다른 분이 계십니까? 신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손을 들고 “브래넘 형제님, 저는 성령 침례를 체험한 적이 없습니다.” 하고 말씀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약속을 상속받을 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성령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출생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거룩한 모래밭입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저 뒤의 청년에게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뒤에 계신 분,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젊은 형제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하소서. 슬픔과 두려움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하소서. 그 항구의 고운 종소리 듣게 하소서. 그러면 내 길이 밝아지고 모든 두려움 사라지리니, 주님,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하소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자리에 있다면 (열 명이나 열다섯 명쯤 손을 드셨는데, 더 계신 것 같습니다.), 이 부활절 아침에 손을 들고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열한 시에 침례탕을 열면, 저도 바로 그 물속에 들어가겠습니다. 침례를 받으러 내려가겠습니다. 새 생명으로 일어나 주님과 함께 걷기 원합니다. 주님,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고 싶습니다. 바로 지금 이 부활절 아침에 한 체험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살면서 언제든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아름다운 부활절 아침, 저는 블록으로 지은 작고 오래된 태버내클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막을 들어 올리셨고, 저는 그 너머를 보았습니다. 제가 속한 교회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 제게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값진 진주를 샀습니다. 예수님을 제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 하나님, 지금 손을 듭니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시간의 장막 너머를 보고 싶습니다.” 이제 마치기 전에 또 다른 분이 계십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엄숙한 순간입니다. 저희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누렸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누렸습니다. 저희가 옮겨졌다는, 저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이 위대한 확신을 주신 성령의 임재를 누렸습니다. 주님,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가운데 많은 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엄숙한 순간입니다. 그들은 어떤 종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촛불을 켜고, 구슬을 짚으며 기도문을 반복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교단에 가입하거나,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물에 잠겼거나,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의식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고 정해진 의례 절차를 거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모래밭에는 한 번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욥처럼, 모세처럼,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모든 자녀들처럼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아침 무덤에 가서 그분께서 더 이상 그곳에 계시지 않음을 알게 된 제자들처럼 그 자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주님, 지금 손을 든 이들의 마음에 위대한 성령께서 오셔서, 저희가 지금 구하는 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이 메시지의 열매입니다. 그들에게 놀랍게 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그들에게 성령 침례를 주옵소서.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다시 부활절을 맞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곳의 몇 사람은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부활절, 기념하는 부활절은 맞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그들이 참된 부활절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그들의 몸이 다시 젊은 남자나 여자의 모습이 되어, 무덤에서 나와 영원히 사는 그 부활절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 그들에게 복 주옵소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을 이끄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하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이끄셨다면, 그들의 손을 허공으로 들게 하실 만큼 가까이 계시다면, 나머지 일을 하시기에도 충분히 가까이 계십니다. 아버지, 그들은 주님의 것입니다. 지금이 그들에게 평안의 때가 되게 하옵소서.
오래전에 결단하여 새 생명을 체험하고 거룩한 모래밭에 섰던 이 모든 이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저희는 그들과 함께, 주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망 가운데 기뻐하려고 이곳에 있습니다. 저희가 그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듯이, 그때에는 그분의 부활에도 함께 참여할 것입니다.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저희가 이 길을 계속 가는 동안 그분의 영께서 저희를 이끄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주님, 아홉 시 반에 드릴 예배를 놀랍게 인도해 주옵소서. 곧바로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고쳐 주옵소서. 아직 물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지 않은 이들이 오늘 아침 무덤으로 나아와,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곳 물 무덤에 내려갔다가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나타나셔서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오늘 밤도 놀라운 밤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그렇게 해 주옵소서. 오늘 하루가 놀라운 날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가 하나님의 임재를 오래도록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그 오래된 찬송에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입니다. 어둠이 사라지면 무엇이 옵니까? 빛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찬송을 부릅시다. 모두 함께 부르겠습니다. 오, 우리는 빛 가운데,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걸으리, 긍휼의 이슬방울이 반짝이는 곳으로 오라. 밤낮으로 우리 주위를 환히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그분께서 부활절 아침에 나오셨을 때, 모든 어둠을 깨뜨리셨습니다. 어둠은 그저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제 그분께서 빛으로 서 계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과 생명, 부활과 내세가 그분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십니까? 그분을 사랑하는 분은 손을 아주 높이 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다시 찬송하는 동안 곁에 앉은 분과 악수하십시오. 우리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뒤로, 앞으로. 아름다운 빛...
다음 예배는 아홉 시 반입니다. 설교와 환자를 위한 기도가 있겠고, 침례 예식은 열한 시에 시작합니다. 물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기 원하시는 모든 분, 침례탕에 물이 채워져 있습니다. 저는 옷을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 또 예배가 있습니다. 치유 기도 줄도 있습니다. 메시지와 치유 기도 줄이 있겠고, 어디 봅시다... 오늘 밤은 이 태버내클에서 다시 성만찬을 하는 밤입니다. 보시다시피 일정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 이제 서둘러야겠습니다. 마련된 곳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시고, 기뻐하며 돌아오십시오.
이제 일어서서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그리스도 예수 오늘도 살아 계시네.”를 부릅시다. 좋습니다. 네빌 형제님, 이리 와 주시겠습니까?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그리스도 예수 오늘도 살아 계시네! 인생의 좁은 길을 따라 나와 함께 걸으시며 말씀하시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구원을 베풀려 살아 계시네! 어떻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아느냐고요?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네. 자, 여러분 모두 큰 소리로 “할렐루야!” 합시다. 할렐루야!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그리스도 예수 오늘도 살아 계시네! 인생의 좁은 길을 따라 나와 함께 걸으시며 말씀하시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구원을 베풀려 살아 계시네! 어떻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아느냐고요?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네. 한 번 더 부릅시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라는 부분에 이르면, 이렇게 그분을 향해 손을 듭시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어떻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아느냐고요?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네.” 자, 모두 함께 부릅시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그리스도 예수 오늘도 살아 계시네! 인생의 좁은 길을 따라 나와 함께 걸으시며 말씀하시네. 살아 계시네, 살아 계시네, 구원을 베풀려 살아 계시네! 어떻게 그분이 살아 계심을 아느냐고요? (좋습니다, 이제) 그분은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시네. 그분은 놀랍지 않으십니까? 아침 식사를 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흩어지기 전, 지금 이 거룩하고 엄숙한 순간입니다. 기뻐하며 다시 돌아오십시오. 고개를 숙이는 동안, 이곳에 오신 캐나다의 사랑하는 파우스트 형제님께 마치는 기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파우스트 형제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