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늘 저녁 이곳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보니까 지금 저의 두 번째 목소리에... 조금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설교가 됩니다. 이 물건은 그 뒤에서 이것을 통해 말해 주는 누군가가 없으면 아무 말도 못 합니다. 사역자도 그와 같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시기 전에는 아무 말도 못 합니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는 조찬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그리스도인, 아마 그리스도인들이 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할 때는 목회자들에게 어떤 구분도 두지 않고 실업인들도 함께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그분들의 대집회입니다. 제가 방금 베일 형제님께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형제님은 저 뒤에서 음향이 제대로 들리는지 확인하고 계십니다.
내일 저녁에는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보내 드리려고... 조금 전 베일 형제님께 “시작이 조금 늦었으니 메시지를 절반 정도로 줄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내일 저녁은 병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내일 전화를 돌려서 병든 분들이 이곳에 오도록 해 주십시오. 기도 카드는 내일 오후 교회에서 드리는 오후 예배 때 나눠 드립니다. 다른 지역에 계시거나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 일 때문에 참석할 수 없는 분들은... 오후 예배에 오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내일 저녁 여섯 시 반에 이곳에서도 젊은 형제들이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리게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오후 예배에 참석하여 거기 있는 젊은 형제들에게 기도 카드를 받으십시오. 아니면 내일 저녁 여섯 시 반에 강당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그럼 곧바로 메시지로 들어가겠습니다. 내일 아침 조찬에서 여러분을 많이 뵙기를 기대합니다. 벌써 안내를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일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테이프 공백.]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국제 대집회에서 계속 예배를 드립니다. 신명기 32장 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둥지를 휘저으며 자기 새끼들 위에 너풀거리고 자기 날개들을 넓게 펴서 새끼들을 받으며 자기 날개들 위에서 그것들을 맞이하는 것같이. 어젯밤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저녁에는 “둥지를 휘젓는 독수리”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몇 달 전 버지니아에서 이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상당히 길었으므로, 오늘은 중요한 대목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자연에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자연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우주 안에, 자신의 백성 안에, 자신의 말씀 안에, 자신의 아들 안에 거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꽃들 안에도 거하시고, 모든 것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에 충만하시며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 독수리를 생각할 때... 저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의 상속 백성을 독수리에 비유하셨는지 자주 궁금했습니다. 저 자신도 목장 일을 했고 독수리의 습성을 관찰하곤 했기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대자연이 어떻게... 자연은 제게 첫 번째 성경이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한마디도 알기 전에... 그렇게 하곤 했습니다. 스물한 살 때 어떤 분이 성경에서 야고보서 5장 14절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저는 창세기에서 그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스물한 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는 선교침례교회에서 안수받은 침례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선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배웠고, 거기서 그분을 찾았습니다.
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기 꽃을 갖고 계신 여성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꽃들이 여름에 피어났다가, 무언가가 터져 나옵니다. 꽃들은 그 안에 있는 생명 앞에 작은 머리를 숙입니다. 꽃잎이 떨어지고 작은 검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나오면, 장례 행렬이 시작됩니다. 그것을 아셨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꽃들을 위해 장례 행렬을 마련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가을비가 내려 작은 눈물을 흘려 주고, 그 작은 검은 씨앗들을 자라게 합니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어와 얼어붙게 하고, [불명확한 말]이 그 계절을 뚫고 터져 나와 흘러나갑니다. 그것들을 여기로 가져와 보십시오. 벌레도, 과육도, 씨앗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안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해 두셨음을 압니다. 동쪽의 해가 비치기 시작하여 땅을 따뜻하게 하면, 어떤 과학으로도 찾아낼 수 없던 그 작은 생명의 알갱이가 여전히 그 안에 있으며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꽃이 다시 살 길을 마련하셨다면, 사람이 다시 살 길은 얼마나 더 확실하게 마련하셨겠습니까.
얼마 전 제 오랜 친구인 감리교 목사님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하면서 말씀드린 그 짧은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분은 참된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그분은 늘 [불명확한 말]... 오늘날 많은 감리교인들처럼 그저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감리교인으로서 체험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오순절교인들에게 자주 말했듯이, “여러분 오순절교인들이 받은 성령은 우리 침례교인들이 받은 성령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악수하고 교회에 등록하는 것으로 끝내는 그런 침례교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제단에 엎드려서 응답을 얻을 때까지 서로 등을 두드려 줍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침례교인이, 옛날 방식의 침례교인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은혜를 믿는다면서 복음에 숱한 수치를 안겨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성령으로 그 은혜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제가 그 오랜 친구인 감리교 목사님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농업 시간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4-H 클럽에서 밭에서 자란 옥수수 낟알과 똑같이 완벽한 옥수수 낟알을 만들 수 있는 기계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루에 손을 넣으면 [불명확한 말]을 꺼낼 수 있고, 또 밭에서 거둔 옥수수가 담긴 자루에 손을 넣어 그것들을 꺼낸 다음 함께 섞어 놓으면, 도저히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험실로 가져가 쪼개 보면 둘 다 칼슘과 수분의 양이 같고, 이... 낟알 안의 배아도 똑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저... 어느 쪽으로 만들든 콘플레이크가 똑같이 좋았고, 옥수수 가루도, 호미니도, 무엇이든 똑같이 좋았습니다.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땅에 묻어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감리교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당황하게 만들지 않게 하시려면, 제 손을 꼭 붙잡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인처럼 옷을 입고,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을 흉내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알갱이가 안에 없으면 부활 때 결코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 기계는 온갖 수분과 칼슘을 넣을 수 있지만, 생명은 넣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고 교회에서 더없이 충실하고 흠잡을 데 없이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부활 때에도 그대로 누워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오직 영생, 하나님의 생명만을 땅의 티끌에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독수리와 다른 새들을 지켜보면서 큰 기쁨을 얻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독수리가 어떤 새인지,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읽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의 종류가 마흔 가지나 된다는 것을 알면 놀라실 것입니다. 독수리라는 말 자체가 “나르는 자, 또는 부리로 먹이는 자”, 곧 입으로 먹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을 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속 백성, 자신의 선지자를 독수리에 비유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은 설교함으로써 입으로 말씀을 먹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모이주머니를 채워 주기에 그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그것이 그분께서 그들을 독수리에 비유하신 한 가지 이유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독수리가 특별한 새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다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의 여러분이 왜 매를... 매는 독수리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합니다. 매가 독수리만큼 높이 날려고 하면 공중에서 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매는 앞서갈 수... 독수리는 언제든 매를 앞지를 수 있습니다. 매가 숨조차 쉴 수 없는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더 멀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특별하게 만들어진 새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날개 깃털은 어찌나 단단히 박혀 있는지 펜치로도 뽑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희박한 공기 속에서 커다란 몸무게를 지탱하려면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특별한 새, 특별하게 지어진 새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다시 손보거나, 어떤 식으로... 새를 고쳐 놓은 것이 아닙니다.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설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로, 아주 높이 올라가 세상의 것들 위로 날아올라서, 멀리 다가오는 것들을 바라본다면... 독수리가 그곳에 머물 수도 없고 거기서 유익한 일을 할 수도 없다면, 높이 올라가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선지자, 곧 설교자도 그렇습니다. 그는 영 안에서 모든 것을 훨씬 넘어, 영감의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별하게 지어진 새이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가 싫어하는 것들과는 늘 조금 다르고 싶었습니다. 저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르게 지어졌고, 겉모습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작은 [불명확한 말]은 땅 위를 달릴 수 있고, 대머리수리는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를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는 죽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것들 위로,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독수리들을 가지고 계시니 저는 정말 기쁩니다. 그렇게 하려면 특별한 새여야 합니다. 또 제가 보니, 독수리는 거기 올라가면...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한 새가 되고 싶어서 특별한 새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새로 만드셨기 때문에 특별한 새입니다. 특별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특별한 새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지근한 교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영적인 일에서 따라오지도 못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지도 못합니다. 다시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지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독수리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젊음을 되찾습니다. 힘과 젊음을 새롭게 합니다. 이것도 교회를 나타냅니다. 사람이 믿음에서 물러나 하나님을 떠나 있다가도 좋은 부흥회에 가면 언약을 새롭게 하고 젊음을 되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서 모든 것이 깨끗이 씻겼고 다시 출발할 준비가 된 것처럼 느낍니다. 독수리도 그렇습니다. 늙어 가면서 평소 하던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나서 다시 어린 새처럼 됩니다.
제가 처음 참석했던 오순절 집회가 기억납니다. 인디애나주 미샤와카에서 열린 집회였습니다. 강단에 목사님들이 오백 명쯤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한 분씩 일어나서 어느 교회에 속해 있는지, 성함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일어나서 “전도자 윌리엄 브래넘, 침례교입니다”라고 하고 앉았습니다. 모두 소개를 마쳤습니다. 그날 저는 많은 젊은 설교자들이 설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좀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었다는 표입니다. 죽었다는 표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감정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무엇이든 죽었다는 것을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석류 하나와 방울 하나를 달았습니다. 그가 안에서 소리를 냈기 때문에, 그것이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교회가 살아 있다는 것도 거의 그것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이따금 힘찬 “아멘” 소리가 들리거나, 어딘가에 아직 생명이 있다고 응답하여 증언하는 무언가가 들릴 때 말입니다.
그날 밤이 기억납니다. 연세 많은 설교자 한 분을 모셔 왔습니다. 여든 살쯤 되셨는데 부축해서 강단으로 모셔야 했습니다. 여기 둘레에 솜털 같은 흰머리만 조금 남은 흑인 목사님이었습니다. 이렇게 둘레에 솜털 같은 흰머리가 조금 나 있었고, 아주 커다란... 옛날 설교자들이 입던 펠트 깃이 달린 “비둘기 꼬리 코트”라고 우리가 부르던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강단으로 걸어 나오셔서 그것을 뒤로 젖히시고... 그분은 말씀도 거의 제대로 못 하셨습니다. “자녀들이여!” 하시더니 욥기에 있는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 기초가 어디에 고정되었는지 내게 밝히 고하라.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그날 다른 목사님들은 모두 주 예수님께서 땅에서 사신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세상이 시작되기 약 백만 년 전,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외치던 때부터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재림 때 수평으로 펼쳐진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시는 데까지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강단에 선 지 오 분쯤 되었을 때 갑자기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발뒤꿈치를 뒤로 차더니 “영광!”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더니 “여기는 내가 설교하기에 자리가 너무 좁군요” 하시고는 어린아이처럼 그곳에서 뛰어내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세 살쯤이었습니다. 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저것이다. 노인을 저렇게 만드신다면 젊은이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는가. 나도 저것이 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렇게 독수리는 젊음을 되찾습니다.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기 힘을 회복하리니, 독수리같이 날아오를 것이요, 번개같이 달릴 것이요, 걸어가도 기진하지 아니하리라.” 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짧은 말씀들을 주십니다.
독수리에게는 또 이런 점이 있습니다. 새끼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려는 열망이 있는 새입니다. 바위산의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거기에 새끼들을 위한 둥지를 만듭니다. 다른 새와 얼마나 다릅니까. 다른 새들은 낮은 곳에 둥지를 짓지만, 독수리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둥지를 짓습니다. 얼마 전 저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동물원에 갔습니다. 제게는 어린 딸 둘과 어린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가 집에 돌아와 들어서면, 늘 누군가가 업어 달라고 합니다. 어떤 모습인지 아시겠지요. 저는 그 어린것들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이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예로 들겠습니다. 얼마 전...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든 먼저 일어나는 아이가 제 무릎을 먼저 차지했습니다. 리브가는 사라보다 조금 나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먼저 일어나 달려와 제 다리 위에 폴짝 앉았습니다. 다리가 길어서 발이 바닥에 닿았습니다. 아이는 제게 두 팔을 두르고 저를 껴안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어린 딸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아이가 바라보자 리브가가 사라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사라야, 아빠는 내가 다 차지했어. 네 몫은 하나도 없어.” 그 어린것, 작은 딸이 울려고 입술을 삐죽 내밀기에, 제가 손짓하며 다른 다리를 내밀었습니다. 아이가 와서 제 무릎에 폴짝 앉자 저는 아이를 두 팔로 감쌌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그 커다란 갈색 눈을 돌려 리브가를 보며 말했습니다. “언니가 아빠를 다 차지했을지는 몰라도, 아빠는 나를 온전히 안고 계셔.” 형제님,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온갖 신학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께서 저의 전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라는 존재 전부, 제 몸의 모든 부분, 하나도 남김없이 말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안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리고...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지요!
어느 날 저는 제가 자주 엘크 사냥을 하는 콜로라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아직 가을도 눈도 오지 않아 엘크 떼가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목장주 제프리스 씨와 저는 여러 해 동안 함께 목장 일을 해 왔습니다. 우리는 사냥을 하고 있었고, 여러분이 이 도시를 잘 아시듯이 그 지역을 잘 알았습니다. 그날 우리는 트러블섬 [불명확한 말], 트러블섬강을 거슬러 이틀 거리쯤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서로 갈라지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빌리, 나는 저쪽에 가서 양을 좀 찾아보겠네.” 야생 양, 산양 말입니다. “경계 야영지에서 만나세.” 그곳은 약 칠십오 마일 떨어져 있었습니다. “모레쯤 거기서 만나세. 엘크가 [불명확한 말]에 있으니까.” 저는 “좋아요, 제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목 한계선까지 쭉 올라갔습니다. 말들은 아래쪽에 매어 놓고, 그다음 날인가 언제쯤 돌아와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맘때에는... 비가 내리다가 해가 비치고, 눈이 오다가 다시 해가 비쳤습니다. 폭풍이 몰려오기에 나무 뒤로 가서 이렇게 서서, 비바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거기 서서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 높은 산에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있는 곳 근처에는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서 나무들을 쓰러뜨려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저는 성경 말씀과 큰 집회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있었고, 커다란 눈 하나가 골짜기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폭풍에 저 높은 곳의 상록수가 바람을 맞던 그곳에 무지개가 생겼습니다.
아, 다윗은 “깊음이 깊음을 부를 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하나님께 속한 것을 보게 되면, 무언가가 여러분을 붙들어 사로잡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기 그분이 계시는구나. 여호와, 저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 무지개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읽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더라. 베냐민과 르우벤, 처음과 마지막.” 그분의 머리 위에는 언약과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산 위에서 울자, 골짜기 아래에서 그 짝이 응답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절반이 인디언 혈통이십니다. 제가 회심했다고 해서 제게서 그 피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아, 무언가가 깊음으로 깊음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생의 부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무리에서 떨어진 수컷 엘크가 우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무언가가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이 여기에 계십니다. 저 늑대의 울음소리 속에 주님이 계십니다. 여기 엘크의 울음소리 속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여기 무지개 속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저 지는 해 속에도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주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소나무다람쥐 한 마리가 폴짝 뛰어올라서 저는 놀랐습니다. 길이가 이만한 작은 녀석이었습니다. 그 녀석은 꼭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불명확한 말] 했습니다. 저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려는 것처럼 펄쩍펄쩍 뛰며 야단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작은 녀석아!”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그 참으로 깊은 부름을 느꼈을 때 무엇을 했느냐 하면, 총을 나무에 기대어 놓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힘껏 나무 둘레를 돌고 또 돌고 또 돌았습니다. 거기 누가 있었다면 “이 숲에 미친 사람이 있구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만 중요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거기 계심을 알았습니다. 교회에서만 기뻐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외침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어디서든 하나님을 뵈면 그분께 마음을 표현하고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저는 “작은 녀석아, 내가 너를 흥분시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니 녀석은 저에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둘러보더니 쓰러진 나무들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비바람 때문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그곳으로 내려와 있었던 것입니다. 콜로라도에는 갈색독수리가 있는데, 아주 큰 새입니다. 바람이 그 독수리를 그곳으로 몰아넣었고, 다람쥐는 그것 때문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 왜 저런 것 때문에 제가 기뻐 외치던 것을 멈추게 하셨습니까?” 그 커다란 독수리가 나뭇가지 하나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아주 커다란 회색빛 눈을 가진 아름다운 새였습니다. 똑바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 독수리에게서 무엇을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저 독수리에게서 주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이 나무 둘레를 돌고 또 돌며 경배하고 있었는데 왜 멈추게 하셨습니까?” 그러다가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 새에게서 한 가지는 볼 수 있구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냥 그 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거기에는 달리 말할 사람이 없고 독수리와 저와 주님뿐이었으니까요. 저는 다시 “내가 너를 쏠 수 있다는 것을 아니?”라고 하며 총을 집으려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 커다란 눈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깃털을 움직여 보며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두 날개를 주셨고, 그 두 날개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총을 어깨에 대기도 전에 자기는 나무 꼭대기로 날아올라 제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에게 두 날개를 주셨고, 독수리가 그 날개로 자신이 얼마나 든든히 설 수 있는지 안다면, 성령 침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더 그래야 하겠는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얼마나 잘 알아야 하겠습니까. 독수리는 제가 자기를 감탄하며 보고 있고 해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나무다람쥐가 “재잘재잘,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에는 싫증이 났습니다. 마침내 그 새가 크게 두어 번 푸드덕거리며 뛰어올랐습니다. 날개를 두 번쯤 퍼덕이자 숲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 주시려는지 알았습니다. 독수리는 더 이상 날갯짓하지 않았습니다. 크고 튼튼한 날개를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세찬 바람이 그곳으로 불어오자 그저 날개를 펼쳐 놓았습니다. 계속, 계속, 계속 올라갔습니다. 깃털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날개를 펼쳐 놓는 법을 알았고, 그 조그만 소나무다람쥐에게서 멀리멀리 날아가 작은 점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리교에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례교에 가입했다가 오순절교로 옮겨 가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의 능력 안에서 날개를 펼치는 법을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솟구치는 샘물처럼 들어오시면 날아가십시오. 계속, 계속, 계속 날아가십시오. 여기서 “아,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하고 재잘대는 소리에서 멀리 떠나십시오. “신유 같은 것은 없어.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어” 하고 재잘대는 소리에서 말입니다. 그분의 영의 권능을 믿고 그것을 타고 날아가십시오. 침례교나 감리교나 오순절교나 그 어떤 곳에 가입하지 않고도 말입니다. 그저 성령의 권능을 타고 날아가십시오. 믿음의 날개를 펴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동일하신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복을 타고 날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어느 날 어린 사라와 저는 동물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마도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슬픈 광경을 보았습니다. 우리에 갇힌 독수리였습니다. 거기 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였습니다. 그 커다란 새의 머리에는 깃털이 하나도 없었고, 양옆의 날개 깃털도 모두 부딪쳐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새를 지켜보았습니다. 바닥에 누워 있다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쇠창살을 바라보았습니다. 돌아서서 이쪽으로 걸어와 기세를 붙이더니, 저쪽으로 날아가 날갯짓하며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바닥으로 튕겨 나왔습니다. 일어나 다른 쪽 쇠창살을 바라보고는, 뒤로 걸어가 기세를 붙여 또 달려들었습니다. 자꾸 머리를 부딪쳐서 머리에도 날개에도 깃털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습니다. 지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늘을 나는 새였기 때문입니다.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도록 태어난 새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갇혀서 다시는 자유로워질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슬픈 광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문을 열어 독수리를 풀어 주도록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가 독수리를 산 값보다 백 달러를 더 주고 싶었습니다. 아, 저 푸른 하늘을 날도록 태어난 새가 아닙니까.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그 새는 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참으로 슬픈 광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제님,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도록 태어난 남녀가 낡은 교단 신학의 우리에 갇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는 말을 듣는 것을 볼 때는 어떻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것에서 여러분을 떼어 놓으려고 할 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갈망하도록 여러분 안에 넣어 주신 그 복된 굶주림을 채우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반바지를 입고, 술을 마시고, 교회에 가입하고, 이 온갖 신조와 그런 것들로 채우려 합니다. 그것이 제가 본 것 중 가장 슬픈 광경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남녀가 되어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으로 날아가고, 알지 못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교단은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갇혀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의 교단이 어떻게 하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구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우리에 가두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자유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위를 바라보는 이유는 독수리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닭장에 갇혀 지낼 수 없습니다. 독수리가 되어 하늘, 저 높은 하늘을 날며, 아직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 안으로 날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새들과 같아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갈망하는 것은 풀려나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처음부터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아, 저 광신자들의 말을 듣지 마. 신유란 없어. 성령 침례란 없어. 저 사람들은 성령에 취해 뒹구는 무리일 뿐이야”라는 말로 된 우리 안에 서 있는 동안에는... 그런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런 말을 믿지 마십시오! 값을 치르신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문을 열어 [불명확한 말]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명확한 말] 권능을 통해 본향으로 날아가십시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마귀의 전당포에서 꺼내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유롭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저 높은 하늘을 살펴볼 수 있도록 [불명확한 말].
그런데 독수리는, 그가 듣는 모든 것은... 닭과 얼마나 다릅니까. 하지만 둘 다 새입니다. 닭은 무엇입니까? 닭은 독수리와 같은 새이면서 교단에 속한 형제입니다. 하지만 닭은 닭입니다. 독수리는 닭과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독수리는 올라갈 수 있는 한 높이 올라가 바위 절벽에 둥지를 짓습니다. 어떤 포식자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 높은 곳에 올라갑니다. 참된 설교자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독수리로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 위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래서 불... 입을 헤벌린 자들, 반바지를 입는 자들, 시가를 피우는 자들, 히히덕거리는 [불명확한 말]은 모두 견딜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독수리들을 그렇게 높이 올려 보내시고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나게 하실 수 있기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아서 고드프리의 온갖 낡은 [불명확한 말], 그 무리는 [불명확한 말]... 그것에서 돌아서십시오. 여러분은 독수리이기 때문입니다. [불명확한 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 그들은 높은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산 위에 세워져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는 도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이런 특정 조직들에 머무르지 않는 열망을 품고 세워집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이 낡은 닭 둥지들을 훨씬 넘어 날아오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암탉이 둥지를 짓는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돌보는지 보십시오. 암탉에게 무언가를 뿌리고, 수분을 빼고, 아니 [불명확한 말] 합니다. 벼룩약 가루를 뿌립니다. 그런 온갖 것들을 합니다. 교리를 주입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입니까? 그저 [불명확한 말]일 뿐입니다. [불명확한 말]을 위한 자리, 세상을 위한 자리, 병든 이들을 위한 자리, 무엇이든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형제님,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온갖 교리를 주입받고, 이 특정 교회나 저 특정 모임에 가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그것을 의지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든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봐 주시리라고 믿고 의지합니다. 여러분의 가장 높은 열망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암탉은 나가서 둥지를 지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큰 닭장에 둥지를 만들어 주고, 그 위에 넓게 철망을 씌우고, 안에 짚을 깔고, 그런 것들을 다 해 줍니다. 그저 길들여진 새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새끼들이 태어나도 그 새끼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둥지를 짓습니다. 저는 쌍안경으로 산꼭대기의 독수리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릅니다. 독수리가 둥지를 지을 때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지 보셔야 합니다. 밖에 나가서 아주 커다란 나뭇가지들을 가져옵니다. 바로 이런 작은 [불명확한 말]까지 갑니다. 그렇게 높은 곳이라 [불명확한 말]도 없고, 아무것도 독수리에게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도 그와 같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 저는 참 기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은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높이 있어서 더 이상 세상과 닮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미 독수리는 이 큰 나뭇가지들을 가져다가 작은 틈새에 끼워 넣으며, 그것들로 둘레를 쌓아 [불명확한 말] 합니다. 그런 다음 가서 [불명확한 말] 합니다. 계속 둘러 감아 둥지를 아주 단단히 묶어,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얼마나 잘 돌보시는지요!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갑니다. 곧 태어날 새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주 포근하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나 토끼를 잡으면 그것들을 가져옵니다. 큰 부리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마다 토끼 가죽과 양 가죽을 빼곡히 채워 넣어 아주 부드럽고 포근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를 품에 받아 돌보실 때에도 그렇게 하십니다. 언제나 둥지를 포근하게 만드십니다. [불명확한 말] 모든 것이, 모든 짐이 다 벗겨져 버렸습니다. 다시 태어났을 때 여러분은 그저 한 마리 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그런 다음 어미가 그 어린것들을 어떻게 돌보는지 보십시오. 지켜보고, 먹이고, 보살핍니다. 밖에 나가 양을 잡아 옵니다. 물고기도 잡아 옵니다. 새끼들이 먹는 것을 잘 살핍니다. 독수리들이 먹는 것은... 영적인 독수리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사람은 교단으로 살 것이 아닙니다. 신조로 살 것도 아니고, 기도로 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대머리수리가 아닙니다. 독수리입니다.
보십시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어린 독수리들에게 깃털이 나기 시작합니다. 어미는 새끼 독수리에게 깃털이 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깃털이 제법 커집니다. 기억하십시오. 새끼들은 한 번도 둥지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자기 새끼들이 닭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닭의 습성을 갖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신의 자녀들이 형식에 매이고 교단에 얽매인, 이른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성령으로 굳게 뜻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깃털이 조금 자라고 나면 “둥지를 휘젓는 때”라고 부르는 때가 옵니다.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어느 날 어미 독수리가 내려와 어린것들을 살피며 “자, 됐다” 하는 것입니다. 새끼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둥지 위에 올라서서 그 커다란 두 날개로 둥지를 향해 힘껏 부채질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조금 있으면 어린 독수리들을 데리고 가서 혼자 날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끼들은 땅에 매인 닭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어. 이런 것도 없고 저런 것도 없어. 그리고...”
하지만 어미는 새끼들이 혼자 날게 하려는 것입니다. 깃털이 헐거우면 목이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날게 하기 전에 자신의 날개로 부채질하여 헐거운 깃털을 모두 떨어 내야 합니다. 형제님, 제가 말씀드립니다. 오순절교회에 날개로 부채질하는 일이 필요한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헐거운 깃털을 모두 떨어 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헐겁습니다. 세상의 것들에 너무 느슨합니다. 이 교회나 저 교회나 모든 교회가 똑같이 잘못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어미는 새끼들에게서 그 깃털들을 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끼들은 목이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헐거운 깃털이 너무 많습니다. 어미에게는 그것을 할 장비가 있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그것을 할 장비가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이 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바위틈에서 태어나 줄곧 어미의 품에 덮여 있던 어린 독수리들이 처음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을 맞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둥지를 휘젓는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순절 날에도, 그 집회든 다른 집회든, 성령의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오순절교회의 헐거운 깃털을 떨어 내십니다. 여러분도 그것이 사실임을 아십니다. 침례교인, 장로교인, 그리고 나머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헐거운 깃털을 모두 떨어 내야 합니다. 무슨 말 한마디만 하면 목을 베려 듭니다. 자매 여러분, 그 일을 생각하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해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암탉 한 마리를 데려다가 저기 내놓아 보십시오.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견뎌 내지 못합니다. 독수리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하고 보려면 먼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거기 서서 부채질하여 그 깃털들을 모두 떨어 냅니다. 아, 형제님, 얼마나 대단한 때입니까! 그다음에는 둥지 안으로 들어가 자기가 채워 넣었던 양 가죽과 그런 것들을 모두 부리로 집어 산 아래로 던져 버립니다. 새끼들이 닭이 되지 못하게 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것입니다. 새끼들이 둥지에서 너무나 괴로워서 나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끼들은 가시 위에 서 있게 됩니다. 앉을 때마다 가시가 찌릅니다. 어디에나 가시가 있습니다. 어디에 멈춰도 가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이 있으셔서 그렇게 하십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그런 상태에 두려는 것입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여러분에게 불어닥치고, 여러분이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닿는 곳마다 가시였습니다. 여러분이 [불명확한 말] 간증을 [불명확한 말] 하려고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말하자마자 그 친구가 “흥! 성령에 취해 뒹구는 사람이 됐구먼?” 합니다. 가시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날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목사님께 가서 말합니다. “목사님, 어젯밤에 기도하는데 갑자기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삶이 바뀌었고 느낌도 달라졌습니다.” “자, 그런 이야기를 우리 교회에 퍼뜨리고 다니지 마세요.” 또 가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둥지를 너무나 괴롭게 만들어서 여러분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독수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모두... 새끼들 모두가 둥지를 못마땅해하게 되면, 어미 독수리가 둥지로 올라옵니다. 사실 어린 독수리는 자기 엄마가 얼마나 큰 새인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미가 둥지 위에 올라서면... 한번 보셔야 합니다. 정말 한 편의 극과 같습니다. 둥지에 올라서서 새끼들에게 다정한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독수리의 목소리로 다정하게 부릅니다. 아, 듣기 좋습니다! 그러고는 커다란 두 날개를 펼칩니다. “내가 얼마나 큰지 보이니?” 그러면 어린것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아, 엄마! 엄마는 정말 큰 새군요.” 독수리 중에는 양쪽 날개를 펼친 길이가 십사 피트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송아지를 집어 들고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어미를 올려다보기 전까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어미를 가졌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미가 자기 힘을 보여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병든 몸으로 앉아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 여러분, 의사가 여러분을 이곳으로 보내고, 오순절교인 여러분도...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려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저 높은 곳으로 데려가시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능을 펼쳐 보이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얼마나 큰지 보아라.” 언젠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데리고 날아가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라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밤에 고개를 돌려 태양계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저 작은 별들과 달들은 그분의 깃털 위에 있는 벌레나 작은 먼지 알갱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병든 사람을 고치실 수 없어”라고 말합니까? 그렇다면 그런 목사는 어떤 목사입니까?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을 바라보기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을 데리고 날아가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닭으로 사는 데 지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닭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독수리가 됩시다. 어미는 커다란 두 날개를 펼치며 말합니다. “봐라, 내가 얼마나 큰지!” 그 커다란 날개들을 보여 줍니다. “내가 얼마나 큰지 보이니?” 새끼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시기 시작할 때도 그와 같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나를 믿어라! 나를 믿을 수 있겠니?”
어린 독수리들은 날개를 펴며 말합니다. “엄마, 저도 엄마를 닮았어요. 준비됐어요.” 어미는 둥지 위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새끼들 위에서 날갯짓합니다. 어린 독수리들은 하나씩... 어미가 그 큰 날개를 아래로 내리면, 어린 독수리들이 하나씩 기어 올라가 크고 튼튼한 날개 위에 작은 발을 딛습니다. 작은 부리로 깃털을 꼭 붙잡습니다. 펜치로도 그 깃털을 뽑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것을 받쳐 주려면 그래야 합니다. 아, 주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손을 붙잡으십시오. 제 두 팔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 붙듭니다. 세상이 “성령에 취해 뒹구는 자, 광신자, 신유를 행하는 자”라고 부르든, 무엇이라 하든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손을 붙잡겠습니다. 흔들림 없이 제 소망을 두겠습니다. 어떤 교회나 사제나 설교자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제 믿음을 두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날아갈 때 그분의 변하지 않는 손을 붙잡게 해 주십시오.
얼마 후 어린 독수리들이 모두 어미의 날개 위에 모이면... 저는 그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 전 저는 여기 계신 고드 형제님의 고향인 인디애나주 게리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제철소를 구경시켜 주려고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아, 정말 굉장하구나. 여기가 어떤 곳일지 늘 궁금했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업대에서 선반으로 작업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쇳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작은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철을 깎으면서 생긴 쇳밥을 모두 바닥 한가운데로 쓸어 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여기 서 계세요, 브래넘 선생님. 무언가를 보시게 될 겁니다.” 저는 “좋습니다” 하고 거기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더니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이 다 나가자 그분은 작은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무언가가 우르릉, 우르릉, 우르릉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이 들렸습니다.
저는 “저게 뭐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가 저쪽에서 쭉 내려왔습니다. 아주 커다란 자석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닥 위로, 바로 그 통로를 따라 지나가자 쇳밥이 모두 자석에 달라붙었고, 그것은 용선로 쪽으로 나갔습니다. 자력을 없애자 쇳밥이 다시 주조될 곳으로 떨어져 들어갔습니다. 저는 “할렐루야!” 하고 외쳤습니다. 그분이 “뭐라고요?” 하셨습니다. 저는 “‘할렐루야’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몰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저것들은 어디로 갑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주조해서 새로 만드는 데 들어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오게 될 또 하나의 큰 자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자석이 저의 이 낡은 [불명확한 말] 몸을 가져다가 새로 빚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 쇳밥들이 왜 모두 붙어 가지는 않았습니까?”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중에는 알루미늄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석에 붙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저 쇳조각은 왜 붙어 가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볼트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자력을 잃거나 어떤 신조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지 마십시오. 그분이 오실 때, 그분의 영이 여러분을 들어 올려 새 피조물로 만들고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빚으시려 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있으십시오.
이제 다시 어미 독수리를 따라가며 살펴보겠습니다. 어미는 서너 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두 날개를 펼쳐 어린 새들을 태우고 위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공기는 점점 희박해졌습니다. 새끼들이 독수리가 아니었다면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미는 새끼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서 난 새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을 주시고, 여러분이 그 약속을 딛고 나선다면, 그분께서는 숨을... 숨 쉴 호흡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약속의 날개 위로 나아가 봅시다.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시는지 보십시오.
그렇게 높이, 저 높은 공중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어미가 거기 올라가서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새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자기 날개에서 털어 떨어뜨렸습니다. 새끼들은 닭이 될 수 없었습니다. 날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독수리들은 거꾸로 뒤집히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위아래가 뒤죽박죽되고 온갖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미가 새끼들을 떠나 버렸을까요? 아닙니다. 그저 새끼들을 한쪽으로 떨어뜨려 놓고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중 하나가 균형을 잃으면 어미가 들어 올려 주었습니다. 놀라운 은혜가 그를 들어 올려 다시 바로 위로 올려놓아 줄 것입니다. 그 안으로...
아, 그분은 실제로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눈이 참새를 살피시니, 저도 돌보시는 줄 압니다. 저는 격식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균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날아 보려고 합니다. 옛 오순절의 즐거운 잔치를 누리면서 제 오순절 날개를 퍼덕이고, 공중에서 있는 힘껏 퍼덕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줄 아는 대로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동일하신... 왜 그렇습니까? 새끼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저분이 자기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독수리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리 뒤집히고 거꾸로 뒤집혀도, 너무 심하게 균형을 잃으면 어미가 곧장 내려와 그를 붙들고 다시 힘 있는 곳으로 올려 줍니다. 그 새끼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날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아, 닭과는 얼마나 다릅니까. [불명확한 말] 암탉은 새끼와 함께 땅에 매인 채 헛간 뜰을 돌아다닐 뿐입니다. 그것밖에는 모릅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이 열네 개밖에 없었습니다. 한 번 품을 때 몇 개를 넣습니까? 열다섯 개지요? 나머지 한 알을 찾지 못하다가 독수리 알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독수리 알을 가져다가 암탉 밑에 넣었습니다. 알들이 모두 부화했을 때, 병아리들에게 그 독수리 새끼는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이상하게 생긴 작은 생물이었습니다. 거의... 교회에도 그런 식으로 들어옵니다. 한 번 부화한 무리 가운데 하나쯤입니다. 그렇습니다. 생김새가 이상한 새일 수는 있어도, 독수리입니다. “아, 우리 여선교회에 가려고 해요.” “고맙지만, 저는 별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저녁에 당구 치러 갈래요?” “아마 안 갈 것 같습니다!” 한 번 부화한 무리 가운데 하나쯤입니다. 대개 그런 비율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 독수리를 지켜보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녀석은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닭들의 습성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닭들은 거름 더미를 긁어 헤쳤지만, 독수리는 그런 것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가볍게 어울려 술을 마시고, 경마장에 가고, 아서 고드프리와 엘비스 프레슬리와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를 보면서 기도 모임에는 가지 않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꼬꼬꼬꼬, 오늘 저녁 이리 와요. 꼬꼬꼬, 우리는 다 그리스도인이잖아요. 꼬꼬꼬꼬, 그러면 ‘누가 수지를 사랑하나’를 볼 수 있잖아요.” 어린 독수리는 말합니다. “난 저게 이해가 안 돼요. 내 안에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습니까?
“왜 저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처음부터 독수리인 것입니다. 독수리로 태어났습니다. 암탉의 둥지에서 태어났을지는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독수리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독수리였기 때문에 독수리입니다. 그 생명은 독수리의 생명이었습니다. 암탉들은 거기서 이런 썩은 것들을 긁어 헤치며 먹을 만하지도 않은 묵은 사체를 먹었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그런 먹이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닭들이 왜 그것을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헛간 뜰에서 녀석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왜 자기는 무리에서 못생긴 새가 되어 나머지와 그토록 달라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미 독수리가 마침 헛간 뜰 위를 날아갔습니다. 어미는 자기 새끼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소리쳤습니다. “얘야, 너는 닭이 아니야. 내 새끼야!” 아, 저는 그 부름을 들었을 때를 기억합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그런 것에서 나와라! 저들 가운데서 나와라! 너희 자신을 분리하라. 하나님이 말하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너희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과 섞지 말라. 거기서 나와라.” 나와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입니다. 나와서 여러분 자신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분리하십시오. 그 어린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야, 저 소리는 진짜 같아.” 어쩌면 교회에 갔다가 [불명확한 말] 누군가가 “아멘!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하고 외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딱 맞게 들립니다. 그 본성에 맞았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독수리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녀석은 작은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보고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기야. 하지만 다른 새들은 저 위로 올라가지 않았네.” 그는 어미 닭에게 말했습니다. “누구든 저 위에 올라갈 수 있나요?” “안 돼. 내 병아리들 사이에 그런 광신주의를 퍼뜨리지 마라. 여기서 그런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지 마라. 당장 출교시키겠다.”
그러다가 또 다른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독수리가 날아와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닭이 아니야. 내 새끼야. 일어나라.” 녀석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어떻게 거기로 가요? 저 사람들은 제가 여기 있어야 한대요.” 어미가 말했습니다. “그냥 달려가서 날개를 퍼덕여라, 얘야. 내가 받아 줄게.” 그래서 어린 녀석이 뛰어오르며 날개를 퍼덕이다가 헛간 뜰의 기둥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오순절 조직 한가운데였습니다. 침례교회에서 나와 곧바로 오순절 조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어미가 다시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얘야, 그보다 더 높이 뛰지 못하면 내가 너를 붙잡을 수가 없어.” 여러분은 자기 조직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초자연적인 영역, 하나님의 성령 안으로 나오십시오. 여러분이 독수리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붙잡고 계십니다. [이름 불명] 형제님,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날아가도록 [불명확한 말]. 아멘!
독수리는 독수리의 먹이를 먹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닭이 될 수 없습니다. 닭은 독수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독수리가 되도록 미리 예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독수리로 태어났습니다. 독수리 가족의 일원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행하신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분께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로 땅을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자녀라면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에 “아멘” 합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말씀 위에 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이 그분의 자녀임을 하나님께 증언합니다. 어떤 신조나 교단도 여러분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건물 위에서 외치시고, 사람들 위에서 외치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지난번 이곳에서 그분께서는 말씀하시고, 부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똑같이 이곳에 계십니다.
잠시 고개를 숙입시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독수리가 아니라면 독수리가 되고 싶으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 제가 손을 들 때 제 손을 붙잡아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를 독수리로 만들어 주십시오. 지금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독수리가 되고 싶습니다. 교단이 저를 붙잡아 둘 수 없는 영역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침례교인, 감리교인, 오순절교인 여러분, 지금 교단을 떠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독수리가 되십시오. 거기에도 다른 독수리들이 있습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제 손을 잡아 주십시오. 오늘 저녁 바로 여기서 저를 붙잡아 하늘의 영역으로 올려 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신유를 [불명확한 말]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도록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그것이 참되다고 말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주 하나님, 들려 있는 이 손들을 붙잡아 주십시오. 이들을 옛 둥지에서 이끌어 내시고, 지금 여기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더 깊이 동행하고 더 큰 체험을 하도록 이들을 부르고 계심을 알게 해 주십시오.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나가는 체험, 오순절교회 명부든 어떤 명부든 이름을 올리고 나가는 그런 체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 성령의 외침이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지게 해 주십시오. 이들이 일어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십시오. 언젠가 주님께서 오실 때 이들은 주님의 영과 은혜로 하늘로 날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허락해 주십시오. 아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반주 없이... 아니, “주를 사랑해”의 화음을 잡아 주십시오. 이 찬송을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제 부릅시다. 좋습니다. “주를 사랑해.” 모두 함께 부르십시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제 다시 부릅시다. 주를 사랑해, 주를 사랑해 날 먼저 사랑하셨으니 내 구원을 사셨으니 갈보리 십자가에서. [테이프 공백.] 하나님이신 구주여 지금 제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테이프 공백.]
어미 독수리가 새끼 위를 날며 “얘야, 올라오너라! 올라오너라!” 하고 부르고 또 부르듯이 말입니다.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성령, 불기둥께서 오늘 저녁 이 건물 위로 오십니다. [불명확한 말] “내 아들아, 너는 내 영으로 태어났다.” 주 예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손을 드십시오. 손을, 여러분의 손을 아주 높이 드십시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기도 카드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성령께서 지금 제게 말씀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여기 [불명확한 말] 이 건물 안에 계심을 여러분에게 입증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기도 카드가 없습니다. [불명확한 말]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무슨 일을 하시려 한다고 믿습니다. 아멘.
마음에 무언가를 품고 계신 여러분... 지난번 이곳 집회에 참석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그들이... 그 여인이 어떻게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고 그분께서 오셔서 그 여자에게 [불명확한 말] 하셨는지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이제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아, 저는 그저... 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광경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몸을 지배하는 감각은 다섯 가지입니다. 보고,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감각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거나 냄새 맡거나 들을 수 없지만, 거기에 있습니다. 이 마이크가 제 앞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이 여기 서 있다면 제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임한 이 기름부음 안에서는, 어쨌든 제가 압니다. 그분께서 움직이시면 제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이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여기, 우리가 서 있는 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모두 제가 여러분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안에서 행하셨고 또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이곳에서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를 행하신다면, 얼마나 많은 분들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독수리이심을 알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불명확한 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이들도 그렇습니다. 주님,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셔서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며 제가 이들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제가 목회자답게 설교를 매끄럽게 다듬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주님, 저는 주님을 압니다.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압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오늘 저녁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불명확한 말]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 자신의 언어로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아멘. 그저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군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분의 성령은 오늘도 동일하시며 그분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동일하게 행하셔야 합니다. 그분은 성령이십니다. 지금 병든 분들은 기도하십시오. 내일 저녁이 정규 치유집회 날입니다. 오늘 저녁도 그렇습니다. 여기요. 그렇습니다. 서 계신 분, 잠깐 그대로 서 계십시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기도 카드를 갖고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 카드가 무엇인지도 모르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종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치유받을 것과, 무엇이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런데 거기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계시니, 바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드십시오. 저는 평생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이것이 우리가 처음 만나는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믿으신다면 심장병은 당신에게서 떠났습니다. 심장병이 있었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돌아가 앉으십시오.
그런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저 남자분도 심장병이 있었습니다. 당신 바로 옆에 있는 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꼭 숨겨야 한다 해도 제게서 당신의 삶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저분에게 말씀드리자 당신은 놀랐습니다. 믿으실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가서 치유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선생님.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믿어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할렐루야. 어미 독수리가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누군가 믿으십시오. 누군가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믿으십시오. 경건한 태도로 앉아 계십시오. 이리저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회중 가운데 어떤 분이 계십니다. 손을 들고 있는 저 작은 남자분, 당신도 심장병이 있습니다. 오늘 심하게 앓았고 [불명확한 말], 그러고 나서 또 한 번 그랬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그것은 심장병입니다. 몸이 쇠약하고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잊어버리십시오.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당신은 먼 길을 오셨는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셨습니다. 무언가가 고장 났습니다. 괜찮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불명확한 말]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여기 앉아서 저를 이렇게 진지하게 바라보는 젊은 여자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십니까? 제가 그분의 종인 것을 믿으십니까? 여기 계신 이 영, 제 안에 계신 이 영을 믿으십니까... 기도가 필요하시지요? 제가 하나님의 영으로 말씀드린다면, 그 여인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것처럼 당신도 그분께 손을 댄 것입니다. 저는 평생 당신을 본 적이 없지요? 당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척추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믿으십니까?
이쪽에 계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쪽에서 누군가 믿어 보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거기 앉아 계신 여자분, 당신은 어떻습니까? 손을 드셨는데 치유가 필요하십니까? 거기 맨 끝에 앉아 계신 분 말입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제가 알기로는 평생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저를 보셨을지 몰라도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설명해 주신다면, 당신이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는 것을 제게 알려 주신다면... 무언가가 일어났습니다. 그 천사가 바로 당신 위에 서 계시지 않다면 저는 당신에게 말씀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빛 말입니다. 그 빛의 사진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이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바로 당신 위에 계십니다. 저는 평생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손을 드십시오. [테이프 공백.] 당신에게는 낯선 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 안에 있는 갑상선종입니다. 당신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닙니다. 이곳보다 아래쪽에 있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오셨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으십니까? 아, 그분의 눈이 참새를 살피시니, 저도 돌보시는 줄 압니다. 그분을 믿는 모든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지금은 여러분이 경배할 시간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