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기도할 동안 잠시 그대로 서 계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밤 저희가 이곳에 모인 것은 오직 주님을 배우고, 사람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선하심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밤 저희를 찾아오셔서 주님의 임재를 풍성하게 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갈급한 저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참으로... 저희가 갈망하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오, 오늘 밤 생명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밤 저희에게 생명을 풍성히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그렇게 해 주실 때, 이곳에 주님을 알지 못하고 아직 영존하는 생명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영원히 변치 않을 그 한마디, “예”라고 대답하게 하옵소서. 또한 주님, 병들고 고통받으며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잊지 말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 눈먼 이들, 듣지 못하는 이들, 암에 시달리는 이들과 온갖 질병을 앓는 이들을 기억하옵소서. 주님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시며 영원히 동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밤 하나님의 아들이 임재하신 가운데 이 충만한 교제를 누리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밤 다시 이 큰 도시 뉴욕에 와서 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깁니다. 이런 큰 특권을 누리는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보통 이곳에 올 때는 해외로 가는 길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일 이웃 도시로 떠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저희를 만나 주시리라 믿습니다. 얼마 전 제가 브루클린에 있을 때, 사랑하는 친구 스위트 형제님이 이 도시나 뉴잉글랜드의 주들을 방문해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에는... 신유 집회나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회 같은 이런 집회에서 뉴잉글랜드의 주들이 크게 소외되어 왔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언제나 특권입니다. 이제 저희는 앞으로 삼십 일 동안 뉴잉글랜드의 여러 주를 두루 다닐 것입니다. 꼬박 삼십 일간 사역합니다. 제가 설교하지 않는 날은 이틀, 어쩌면 사흘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 다음 텍사스주 댈러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열리는 독립 목회자 협회의 국제 교제 모임에 갑니다. 그러고 나서 순복음 실업인 국제 대집회에 참석하러 다시 뉴잉글랜드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갑니다. 아마 다시 독일과, 집회 일정을 잡을 수 있는 몇몇 지역에도 갈 것입니다.
오늘 밤은 첫날이라 여러 일을 진행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첫날에는 늘 자잘한 일들이 있어서 곧바로 마무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보통 시작할 때면 시간이 늦어집니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분명히 우리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저... 오랫동안 고대해 온 그 큰 복을 받을 때가 어쩌면 바로 오늘 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시다. 이곳의 갈급한 마음마다 우리 주님께 무언가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선하셔서 오늘 밤 오셔서 우리를 위해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도 오늘 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해 주시리라는 큰 기대를 품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러분께 오래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주님의 말씀을 조금 읽고 싶습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여러분도 그러실 것입니다.
이 큰 도시에서 이 장소는 여러 용도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 춤을 추는 곳이나 그 밖의 용도로도 쓰이겠지만, 오늘 밤 우리는 이곳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바쳤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건물 안에 교회가 있습니다. 애초에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 곧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불러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 이곳에 함께 모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2장 12절에서 성경의 짧은 부분을 읽겠습니다. 두 절입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베데스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하매. 그리고 히브리서 13장 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복음 집회에서 읽기에는 다소 특이한 성경 구절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영원하고 거룩한 말씀의 일부입니다. 나머지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도 꼭 들어맞습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다른 성경 구절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특이하다는 것은, 이 말씀이 1세기에 기록되었는데 지금은 20세기이니 분명 특이하게 보이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본래부터 보통과 다른 분이십니다. 세상에는 보통과 다른 분이지만, 그분께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행하심과 하시는 일들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이 성경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참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이 아니라면 다른 성경 구절도 하나도 참일 수 없습니다. 성경기록은 깨뜨릴 수 없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빌립에게 와서 부탁했던 이 그리스 사람들의 소원도 오늘 밤 우리의 소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에 관해 듣고 마음속에 그분을 경배하고 사랑할 자리를 내어 드릴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나 그분을 뵙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와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듯이, 오늘 밤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신다 해도 특이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어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시다고 참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죽어 계신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됩니다.
오늘날 이슬람교와 불교를 비롯한 세상의 여러 종교와 사상이 기독교보다 우세한 데에는, 그 몸의 지체들이 약하다는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책임이 평신도들보다는 목회자들에게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한 젊은 이슬람교인이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그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죽은 자기네 선지자 대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젊은 이슬람교인은 “선생님, 당신의 그리스도가 나의 무함마드보다 나를 위해 무엇을 더 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그리스도인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에 당신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인이 말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지 않았어도 나에게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그리고 그 이슬람교인은 그리스도인에게 “나는 당신의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음을 압니다.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슬람교인이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마음속에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대답입니다. 그런데 이슬람교인은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무함마드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고는 “선생님, 이슬람교도 기독교 못지않게 심리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다시 땅에 오리라고 믿으며 행복해하는 만큼, 우리도 무함마드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세상을 정복하리라고 믿으며 행복해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일에는 깊이 들어가 볼 부분이 있습니다. 그 이슬람교인의 말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만난 사람이, 남부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그저 “하룻밤 만에 생겨난 풋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심리학의 차원에서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 교회와 교단의 어떤 신학을 따라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독교는 그것을 백만 마일이나 뛰어넘습니다. 기독교는 그때와 꼭 같이 오늘도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틀린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
그 이슬람교인은 그리스도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교사들이 그분께서 당신들이 행할 것이라고 하신 일을 실제로 보여 줄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마가복음 16장 같은 데 나오는 약속 말입니까?” “그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교사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6장 9절 이후는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그러자 이슬람교인이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을 읽고 계십니까? 일부는 영감으로 기록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면, 어느 부분이 정말 영감으로 기록된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코란은 전부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코란은 이슬람교의 경전입니다. 또 그는 말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죽은 뒤의 생명만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그리스도는 자기가 한 일을 당신들도 하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으로 가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교회를 만들거나 건물을 짓거나 학교를 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건물을 짓거나 사람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과 그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분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학이 빈약하다 보니 그것을 비켜 가서 다른 시대의 일이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동일하시므로, 원리에서도 권능에서도 동일하셔야 합니다. 그때와 동일하셔야 합니다. 차이는 오직 하나, 육신의 몸뿐입니다. 그분은 땅을 떠나시기 전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의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가지가 맺습니다. 줄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이 맺으셨던 바로 그 열매를 맺으라는 이 위대한 사명을 교회에 맡기고 가셨습니다.
포도나무에 가면 포도를 얻으리라 기대할 것입니다. 수박 덩굴에 가면, 열매를 잘 맺는 좋은 덩굴이라면 수박을 얻을 것입니다. 호박 덩굴에 가면 호박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유산인 포도나무에 오면 무엇이 보입니까? 다툼과 문제와 장벽과 온갖 자질구레한 사상들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 안에서 마땅히 움직이셔야 할 만큼 움직이시는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하나님의 포도나무입니다. 털벌레가 남긴 것을 쐐기벌레가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회복시키리라. 주가 말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다리는 영광스러운 약속입니다.
이 그리스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는 그저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모든 분의 마음도 예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분을 뵐 수 있습니까? 그분의 교회 안에서, 그분의 백성 안에서 뵐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서신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분의 백성 안에 사시면서 그분의 생명을 나타내십니다. 그분의 사역은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기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향해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저는 강가에 삽니다. 인디애나의 집에 있을 때 말입니다. 오하이오강 가에 삽니다. 얼마 전 우리 도시에 있는 일요일 학교에 다니던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한 늙은 어부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아이는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엄마, 하나님은 그렇게 크신 분인데,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글쎄, 모르겠구나. 목사님께 여쭤보렴. 일요일에 우리와 함께 식사하시러 집에 오실 거야”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목사님께 “목사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럼, 물론 없지, 얘야.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단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일요일 학교 선생님께도 물었습니다. 선생님도 “물론 없지.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단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크신 분이라면 왜 볼 수 없을까?”
어느 날 그 늙은 어부와 함께 강 위에 있을 때 폭풍이 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늙은 어부는 노를 젓고 있었고, 아이는 배의 고물에 앉아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난 뒤 무지개가 떴습니다. 희끗희끗한 수염을 기른 늙은 어부는 무지개를 바라보다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반짝이는 눈물방울이 하얀 수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여 배 가운데로 달려가 늙은 어부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엄마도 일요일 학교 선생님도 목사님도 대답해 주지 못한 것을 여쭤보고 싶어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노인은 가슴이 벅차올라 노를 무릎 위로 거두어 놓고 아이를 두 팔로 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고운 마음에 복 주시기를. 나는 지난 사십 년 동안 하나님만 보아 왔단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면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전에는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몇 주 전 켄터키주 루이빌이라는 우리 큰 도시에서 한 여자의 눈길을 끄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여섯 살이나 일곱 살쯤 되는 어린 아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큰 십 센트 잡화점 가운데 한 곳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진열대에서 다른 진열대로 다니면서 작은 물건들을 집어 아이 앞에 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른 진열대로 가서 또 다른 작은 물건을 집어 아이에게 들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여러 진열대를 따라 다녔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자를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여자는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는 작은 물건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을 집어 아이 앞에서 흔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내려놓더니 진열대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가까이 있던 몇 사람이 위로하려고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왜 그렇게 우세요?” 여자가 말했습니다. “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무엇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씀이세요?” “우리 아이요. 의사는 아이가 나아졌다고 했어요.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나아졌다면 아이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이런 물건 가운데 무엇엔가는 반응했을 거예요.” 아이는 정신 기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시며 여러 가지 은사 등을 눈앞에 나타내 보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머리가 마비된 것처럼 앉아 있습니다. 죄와 범법 가운데 너무나 죽어 있어서, 주님께서 그들 앞에 보여 주려 하시는 영광과 은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이곳에 모인 이 큰 교회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 혼들의 구원과 육신의 치유와, 그분께서 죽으심으로 마련하신 구속의 모든 복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교회에 알리려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진지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것은 그분의 교회와 모든 믿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저 간증만으로 집회를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성경을 살펴보며 우리가 말하는 것과 연결되는 성경의 문맥을 찾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니시던 날들에 어떤 분이셨으며,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다니시던 때에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분께서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그분의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면 잠시 그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5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하신 일에 관해, 왜 많은 사람을 그대로 두고 한 사람만 고치셨느냐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그 일만 하느니라. 그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느니라.” 그것이 어제 그분의 대답이었다면 오늘도 그분의 대답일 것입니다. 그분은 그것을 바꾸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계시려면 동일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한 몸 안에 한정하셨는데, 그 몸은 그분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 교회, 전 세계의 교회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권능으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시고, 그들 자체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은혜를 통해 그들을 성령께서 쓰시는 사람들로 삼으십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자신의 교회, 자신의 포도나무... 아니, 그분께 연결된 가지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걸으시고 설교하시고 행동하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들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나는 그분께서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아니, 하도록 보여 주시는 것, 하도록 보여 주시는 것 외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틀림없이, 이 성경 말씀이 옳으려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기를 뜻하시는지 환상으로 보시고, 가서 그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 앞의 문맥을 읽어 보시면 그것이 사실임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리를 절고 눈멀고 걷지 못하고 몸이 오그라든 수많은 사람을 지나쳐, 깔개 위에 누워 있는 한 사람에게 가서 그를 고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여러 해 동안 그런 상태에 있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분은 아버지께서 이끄시고 지시하시는 대로만 걸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오늘 밤 이 온 교회가 “나는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행하노라”라고 간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그런 간증을 하게 된다면 그분의 교회의 마음이 얼마나 벅차겠습니까? 에녹 때처럼 옮겨지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으로 가서 그분께서 어제 어떤 분이셨는지 간략히 살펴봅시다. 그러면 오늘 어떤 분이실지도 대략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아버지께서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분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어린양이셨는데, 두 본성이 꼭 같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새로 나타내셨고, 아들을 어린양으로 나타내셨습니다. 비둘기는 하늘에서 가장 온순한 생물입니다. 어린양은 땅에서 가장 온순한 짐승입니다. 둘은 같아야 했습니다. 만일 비둘기가 늑대 위에 날아가 앉았다면, 늑대는 콧김을 내뿜었을 것이고 비둘기는 날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온갖 성질을 부리고 다투고 있습니다. 성령은 온유하십니다. 그분은 온유한 곳에만 거하실 것입니다. 비둘기의 인도를 받는 어린양...
그분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일어난 일 가운데 하나는 안드레라는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가서 자기 형제를 데려옵니다. 그 형제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이 주 예수님 앞에 오자마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성경, 요한복음 1장이 전합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지만, 내가 그것을 바꾸어 너를 베드로라 부르겠노라.” 또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글을 모르는 그 어부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성경은 그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신학교 교육을 받아야 한다”거나 “종교의 모든 기도문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 사도의 마음에 불을 붙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지만, 너는 베드로, 작은 돌이라 불리리라.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그것은 그의 마음을 벅차게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우리가 방금 읽은 빌립이라는 다른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이 위대한 샘을 발견하자마자 혼자만 알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가 참으로 그 샘을 발견했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는 이런 점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소식이 퍼져 나갑니다. 그에게는 산을 돌아 십오 마일쯤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친구를 찾으러 급히 길을 나섰습니다. 그에게 도착했을 때, 친구는 아마 나무 아래서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나무 아래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빌립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의를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친구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다나엘이 일어나 옷의 먼지를 털고 친구를 맞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빌립은 “나다나엘, 좋은 아침이네” 또는 “좋은 오후네”라고 인사하기도 전에 “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라고 말했습니다. 오, 그분께는 이런 점이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혼이 감격으로 벅차오르고,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 와서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네.”
물론 이 정통 신앙을 지킨 사람은 말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빌립,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군. 이런 때에 여기 와서 메시아가 오셨다고 말하는 건가? 그분이 나사렛, 그 악한 작은 도시에서 나오신다는 말인가? 그분이 오셨다면 예루살렘이나 어떤 큰 성당에서 오셔야 할 것이고, 모든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걸세.”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 독특하게 일을 하십니다. 그분만의 복된 방식으로 하십니다. 저는 그것이 참 기쁩니다. “그분이 오신다면 당연히 바티칸이나 웨스트민스터 사원, 그런 곳에 계실 것이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곳으로 오십니다. 그분만의 복된 방식으로 일을 하십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빌립, 잠깐만 기다리게. 서로 거래하면서 나는 자네가 정직한 사람인 줄 알았네. 그런데 지금 와서 무슨 열광적인 말을 하며, 메시아를 만났는데 그분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나오셨다고 내게 말하는 건가?” 저는 빌립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을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와서 보게”라고 했습니다. 집에 앉아서 비난하지 마십시오. 제사장이 하는 말이나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목사가 한 말만 받아들이지 말고, 직접 와서 보십시오.
그에게는 나다나엘과 이야기를 나누며 갈 십오 마일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면서 빌립이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야기해 주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날 자네가 생선을 샀는데, 생선값 영수증에 서명을 못 하던 저 아래 그 늙은 어부를 기억하는가?” “기억하지.” “그 사람이 이 나사렛 사람 앞에 왔을 때, 그분께서 그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셨다네.” 오, 빌립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이 자네가 누구인지 아신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걸세.” “잠깐만 기다리게.” 나다나엘이 말합니다. “거기 가서 내가 직접 판단하겠네.” 그들은 길을 따라가다가 그날 저녁 예수님이 계신 집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그분 앞으로 다가가자 주님께서는 눈길을 돌려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작은 일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옷을 입었고 모습도 비슷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는 아랍 사람일 수도, 그리스 사람일 수도, 그 당시 동방의 다른 여러 민족 가운데 한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피부가 짙은 사람들이었으며, 모습도 대체로 비슷하고 옷차림도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며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나다나엘은 너무나 놀라서 “랍비여,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제 그는 어제의 예수님이 하실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내가 너를 나무 아래서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그분께서는 “내가 네게 이렇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그분께서 메시아이심을 뜻하는 표적이었다면, 그분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신 방식이 그것이었다면, 그리고 그분께서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동일하시므로 오늘도 같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는 신학을 통해, 장로들의 전통을 명시한 어떤 조항을 지키는 것만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렇게 자신을 알리시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주장하신다면 공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 동일한 것을 지키셔야 합니다.
곁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사람들,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남부에서 우리가 쓰는 말로 “알짜 중의 알짜”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대제사장과 복음주의자들과 정통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악한 영이 있다. 이 사람은 점쟁이임이 틀림없다. 모든 점쟁이의 왕이며 우두머리인 바알세붑일 것이다.” 그러자 우리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나,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 말을 한다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략 이런 뜻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이 와서 같은 일을 행할 날이 오리라. 그것을 대적하는 말 한마디는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어느 날,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분이 갈릴리에서 오시다가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지치고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동방에서는 보통 우물이 도시 바로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여행에 지쳐 그곳에 앉아 계실 때, 한 젊은 여자가 도시에서 나왔습니다. 매력적인 여자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여자는 머리에 이고 온 항아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항아리에는 커다란 손잡이가 두 개 있습니다. 그곳 여자들이 물을 나르는 모습은 참 놀랍습니다. 머리 위에 항아리 하나를 이고 양쪽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물을 길으려고 이 항아리를 내려놓다가, 저 뒤 구석에 앉아 계신 중년의 유대인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 땅에는 인종을 분리하는 엄격한 법이 있었습니다. 그때 여자는 이 유대인이 자신에게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분이 사마리아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세 민족밖에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 함과 셈과 야벳에게서 나온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입니다.
그분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시는지 봅시다. 유대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는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에게 하시는 것을 봅시다.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 여자가 말했습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매우 특이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고, 우리는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 그분은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고 계셨습니다. 얼마간 대화가 길게 이어진 뒤, 그분께서는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잘 말하였도다.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잘 말하였도다.” 이제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봅시다. 그 여자가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에 살았거나, 우리의 큰 교회 가운데 어느 곳의 교인이었다면 어땠겠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이것이 심리학이나 텔레파시라고 하십니다.” 그 여자는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말씀으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우리가 창녀였다고 생각하려는 여자였지만, 말씀에 대해서는 오늘날 어떤 설교자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 우리는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알려 주실 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분의 선지자이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불리는 그분이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자는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계시로 가득 찬 마음으로 도시로 들어갔습니다.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내 삶의 일들을 말해 준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사가 그 창녀의 눈앞에 눈부시게 나타났을 때, 그 여자는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신학에 너무나 죽고 무감각해져서, 진리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물이신 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 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닙니까?” 분명 그렇습니다.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가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이방인들에게 알려지셨습니다. 그분이 어제 그 표적으로 유대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그 표적으로 사마리아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이방인 시대에는 아직 그렇게 나타내신 적이 없으시다면, 그리고 이 이방인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위해 같은 일을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때, 만일 그분이 그런 일을 행하신다면, 저는 오늘 밤 이 작은 무리에 믿어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거룩함 때문이 아닙니다. 거룩한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한때 변화산을 가리켜 “거룩한 산”이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산 자체가 거룩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산에서 만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말한 것입니다. 교회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계신 성령께서 교회를 그렇게 되게 하십니다. 사람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지상 왕국에 속한 사람들을 통해 성령께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늘 밤 눈먼 세상 앞에 눈부시게 자신을 드러내신다면, 세상 사람들도 그분이 계시던 날의 눈먼 바리새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 우리의 눈을 열어 달라고,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합시다. 그분의 영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눈으로 보시고 우리의 귀로 들으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부활하신 아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얻도록 정하신 마지막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 안에 인침을 받을 때까지, 뉴욕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분을 찬양하는 소리가 늘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오, 찬송받으실 하나님, 이 주변 대도시권에 약 천오백만이나 천육백만 명이 사는 이 도시에서, 단 하룻밤 동안 보잘것없는 작은 사람 하나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 주 하나님, 오늘 밤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우물가의 여자와 같은 계시를 품고 이 큰 맨해튼 센터를 떠나게 하옵소서. “와서 한 사람을 보십시오. 죽어 계시지 않고 영원토록 살아 계신 그 사람,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시고, 그분의 육신의 몸을 하나님 자신의 왕좌에 앉히셨으며, 성령을 다시 보내셔서 그분의 교회 안에 사시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온 세상에서 제자들을 삼게 하셨습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종들의 입술과 눈과 귀에 할례를 베푸셔서, 저희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부활의 권능 가운데 계신 주님을 뵙게 하옵소서.
이 큰 도시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이제 잠시 뒤에 집회가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엠마오에서 돌아온 사람들처럼 이야기하게 하옵소서. 그들은 하루 종일 주님과 함께 걸었고, 주님께서 설교하시며 성경을 설명해 주시는 것을 들었지만, 여전히 눈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님, 여기 계신 많은 사람에게 주님께서 먹을 것을 주셨고, 입을 것을 주셨고, 선을 베푸셨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참으로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저희가 여관 안에 있고 문이 닫혀 있을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하셨던 그대로 그 작은 일을 행하시자, 글로바와 그의 친구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바로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았고, 아무도 바로 그런 방식으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았고, 그렇게 눈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한쪽으로, 휘장 뒤로 사라지셔서 그들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셨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길을 가면서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주님, 제가 제 방으로 가고 다른 이들도 각자의 방으로 갈 때, 오늘 밤 그것이 저희의 간증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밤 맨해튼 센터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주님, 허락하옵소서. 언젠가 삶이 끝나고 시간이 더는 없으며 영원 속으로 합쳐질 때, 하나님, 저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며 주님의 발 앞에 앉을 것입니다. 오, 주님, 허락하옵소서.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여러분을 오래 붙잡아 두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려던 것은 아닙니다. 단 하룻밤뿐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날은 아마 30일일 것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위한 이 집회들이 이렇게 잡힐 수밖에 없어서 참 안타깝지만, 저희는 서둘러야 합니다. 메시지는 긴급합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긴급합니다. 소돔이 멸망하기 직전에 장막에 있던 아브라함에게 왔던 천사들을 아시지요. 사라가 웃었을 때, 그 천사가 사라가 있던 장막을 등지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것을 읽어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 천사는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은 소돔이 멸망하기 전에 마지막 메시지를 가지고 온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분을 엘로힘, 곧 전능자 여호와이신 하나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이곳에 사람들이... 이 건물 안에 병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어디 계시든, 발코니에 계신 분들까지 모두 손을 들어 보십시오. 아마 천 명이나 그 이상,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병들어 기도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가르침임을 압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인용하는 동안 잠시만 들어 주십시오. 그것은 유대인의 표적입니다. 야이로는 “오셔서 제 딸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주께서 제 지붕 아래로 오심을 제가 감당할 자격이 없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을 도울 것은 제 손도 아니고, 이곳에 계신 하나님의 종들, 여러분이 사랑하는 목사님들과 교사들의 손도 아닙니다. 그분들의 손이나 제 손이 아니라 주님의 손입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계시던 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까?
언젠가 여러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군중 사이로 살며시 들어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는 가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앉았든 서 있었든, 무엇을 했든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온 무리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약해졌느니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 그분은 그 믿음의 흐름이 어디서 쏟아져 나오는지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오, 사람들은 그분께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예, 저는 주님의 교회 교인입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손길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 가냘프고 약해 보이는 여자를 찾아내셨고, 그 여자가 치유되었으며 그 여자의 믿음이 그녀를 온전하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었다면, 오늘의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지금, 바로 지금 그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분이 동일하시다면 어떻게 그분께 손을 대겠습니까? 그 여자가 그분께 손을 댔던 것과 같은 방식일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 육신의 몸으로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그분께 손을 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분께 손을 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셨듯이 여러분에게 응답하여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되시겠습니까?
이 시간에는 기도받으러 이 단상에 올라올 사람을 너무 많이 부르지 않겠습니다. 몇 분만 부르겠습니다.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이 복음에 이만큼만 주의를 기울여 주신다면... 여러분의 교회에서 배우신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가르치는 방식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아주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남부에서 수박을 먹던 사람과 같습니다. 그는 “참 맛있었는데, 아직 더 있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좋습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우리에게는 더 받을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냄새만 맡게 하거나 입술에 문질러 주는 데서 그치지 맙시다. 불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어느 날 이렇게 타올랐단다”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맙시다. 그림 속의 불로는 몸을 덥힐 수 없습니다. 몸을 덥히려면 진짜 불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임재로 따뜻해지려면, 사도들의 시대에 행했던 일이 오늘도 행해져야 합니다. 사실입니다.
몇 분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네가 와서 카드를 나누어 주었니? 몇 번까지니? 백 번까지? 좋습니다. 제 아들이 기도 카드 백 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카드를 교회와 사람들에게 가져와서 여러분 앞에서 함께 섞은 다음, 돌아다니면서 한 사람씩 나누어 줍니다. 좋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어느 번호에서든 시작합니다. 상관없습니다. 그저 몇 분을 이곳에 모시면 됩니다. 서너 분이나 다섯 분을 모시고 기도를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보고 믿기 시작할 때 악한 영이 쫓겨나기 때문입니다. 1번을 부르겠습니다. 기도 카드 1번을 가진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디 계십니까? 자매님, 바로 이곳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2번... 일어나실 수 있으면... 지금 일어나실 수 없다면, 번호가 불렸을 때 일어날 수 없는 분은 안내위원들이 여러분을 들어서 단상까지 옮겨 드릴 것입니다. 2번, 어디 계시든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2번? 어쩌면 그분들이... [테이프의 공백.]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이제 끝날 때, 이방인의 경륜이 그냥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주목해 보셨습니까? 제가 얼마 전 이곳에서 “전환점”이라는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그때 모든 전환점마다 교회가 오랫동안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시대의 전환점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천사, 선지자, 나타나심, 영, 은사들, 기적들, 이적들을 보내신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으시는 여러분, 이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홍수 이전 세상의 멸망을 보십시오. 끝이 오기 전에 선지자들, 에녹이 있었습니다. 표적과 이적이 있었고, 천사들이 나타났고, 큰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자녀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는 것을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차갑고 무관심한 상태, 차가운 신학뿐이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고 선지자가 왔습니다. 표적과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식어 버렸습니다. 그다음에는 주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왔습니다. 그 선지자에게서 그리스도께서 나오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표적과 이적과 기적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끝에 와 있습니다. 오랫동안 냉랭함과 교회의 신학과 무관심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전환점에 이른 때에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으며, 다른 소망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모든 군마다 그런 사람을 한 명씩 세워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면 주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합니다. 저는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인 목회자로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대를 심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게 하신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서 소돔과 고모라를 부활시키시고 그들을 가라앉히신 일에 대해 사과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어느 세대에는 이러하시다가 다른 세대에는 다르게 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범하는 바로 그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죄가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밤 호텔 방에서 이 큰 도시의 높이 솟은 거대한 첨탑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 하나님, 언젠가 이곳에는 먼지더미만 남을 것이고, 지금 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혼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오 하나님, 제가 여기 있는 동안 그들을 구주께로 인도할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 아래 모두 줄에 들어섰습니까? 다 오셨습니까? 몇 분이 안 오셨습니까? 네 분이 빠졌습니까? 4번이군요. 오지 않은 분이 4번입니다. 이 안에서 누구든 4번을 찾아낼 수 있다면, 여자든 남자든 소년이든 소녀든 누구든, 그분을 줄에 세워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이분들이 이곳에 서 있는 동안 한번 이렇게 해 봅시다. 여기서 저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이제 저쪽에 계신 분들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들은... 기도 카드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거의... 카드를 많이 나누어 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같은 분들이 손을 드신 것 같습니다. 기도 카드가 없다면, 저희가 아는 한 지금은 기도 줄에 서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만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 이 목사님이 오늘 밤 제게, 주님께서는 저의 연약함을 느끼시며 제가 손을 댈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오 주 하나님, 긍휼을 얻으려고 주님께 손을 대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무엇을 하시는지 보십시오. 이 땅에 계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행하시는지 보십시오. 이곳에 올라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분들은 그저 집회를 시작하기 위해 올라온 분들입니다. 올라왔다고 해서 치유를 보장받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을 치유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제 앞에 계신 이 자매님은 저와 모르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자매님,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저를 전에 보셨다고요? 제 말은,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제가 전에 이곳에 왔을 때 집회를 했든가, 그런 때였나 봅니다. 치유 기도 줄에 서신 적은 없으십니까? 저렇게 회중 가운데 앉아만 계셨군요. 좋습니다. 물론 저는 알 수 없었겠지요. 누군가 다시 집회에 와서 “처음 집회 때도 왔습니다. 발코니에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에 앉아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 리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을 모릅니다.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자매님은 회중 가운데서 저를 보셨습니다. 자매님이 병드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분이 병드셨고 제가 고쳐 드릴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성경을 들어 함께 사역하는 형제님 중 한 분에게 드리고 뉴욕을 떠나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저는 참 나쁜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여러분은 말합니다. “그런데 브래넘 형제님, 그분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면...” 그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의사 진료실에 가서 “선생님,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아스피린 한 알을 주고 집에 보내 버린다면, 그 의사는 그저 여러분을 돌려보내려는 것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의사라면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그 환자를 진찰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치료하려면 먼저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치료하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평판이 매우 나쁜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지 알기 전에는 어떻게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분에게 묻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 여쭈어 그분께서 알려 주시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은 참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이분을 모르는데, 주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셨듯이 드러내셔서, 이분이 한 일이나 하지 않은 일, 혹은 우물가의 여자에게 있었던 것처럼 이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일어나 여러분이 직접 보고 알 수 있다면, 여기 계신 몇 분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오늘날 그분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심을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큰 도시일지 모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참 많이 모여 있군요. 하나님께서 뉴욕 전체를 구원하시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우리도 그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심으로 아셨고 영생을 얻도록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의 눈은 닫힐 것입니다. 노아를 구원한 바로 그 홍수가 믿지 않는 세상을 물에 잠겨 죽게 했습니다. 치유와 구원을 받도록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져다주는 바로 그 복음이, 온 세상의 지도자들과 교사들과 교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변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동일하게 계십니다.
제가 이 여자를 고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잘못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계시해 주실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이것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저를 다스립니다. 그분께서 하실지 안 하실지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하신다면 우리 모두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버지, 이 설교가... 주님,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저는 말을 잘할 만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영어도 문법도 서투르다 보니, 사람들이 제 말을 이해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 주님, 이 조각조각 끊어진 메시지라도 진리임을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무언가 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아들 주 예수님을 부활의 권능 가운데 나타내셔서, 이 메시지가 진리임을 밝혀 주옵소서. 오늘 밤 포도나무의 생명이 여기 가지들 속으로 들어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그분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심을 그들이 보고 알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제 앞으로 몇 분 동안 저희 자신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의 말씀 한마디는 온 세상의 설교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말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주님의 말씀 한마디를 기다립니다. 주님, 저희에게 허락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기도 줄에 들어오시는 분들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줄에 계신 여러분 모두 저와 모르는 사이입니까? 저는 여러분이 어떤 분인지, 누구인지, 또... 모르는 사이이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줄에 서 계신 분들, 손을 들어서 이렇게 올렸다 내렸다 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도록 말입니다... 여기 한 장면이 펼쳐집니다. 결코 구경거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하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반드시 치유하셔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속이 성취되도록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여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처음으로 만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그랬던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고, 이분도 저를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이곳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주 하나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일을 제게 알려 주신다면, 주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믿겠다고 자매님도 약속하셨고, 회중도 약속하셨습니다.
회중 여러분이 아직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시다면, 저는 주님께 매우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주의 천사의 사진, 그 빛이 지금 바로 여기 저와 이 여자 사이에 서 있습니다. 이분은 어디선가 의사의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그 검사에서 의사가 수술을 권했습니다. 종양이며, 그 종양은 복부에 있습니다. 아주 큰 종양입니다. 이분은 다음 달에 수술을 받으실 예정입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믿으십니까? 자매님, 지금 말씀드린 것이 사실입니까? [네.] 그렇다면 회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짐작해서 한 말일 수도 있지”라고 하십니다. 조금 더 이야기해 봅시다. 어쩌면 지금 성령께서...
주님의 천사를 찍은 사진, 저 워싱턴 D.C.에 걸려 있는 그 사진을 보신 분이 얼마나 됩니까? 여기 책에도 그 사진이 있고, 또... 바로 그것이 지금 일어난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이스라엘 자녀들을 인도한 불기둥입니다. 모세가 아니었던 것처럼 저도 아닙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일한 불기둥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분이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때는 그분이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였습니다. 그분은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분이 육신이 되시기 전에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셨다면, 불기둥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그분은 무엇이셨습니까? 다시 불기둥이셨습니다. 그분의 임재 가운데서 바울의 눈을 멀게 한 빛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걸으셨습니다.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그분과 함께 가셨고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제자를 보내시는 그리스도께서는 그 제자와 함께 가시며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제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봅시다. 무엇이었든, 저는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녹음하는 형제들이 제가 한 말을 녹음해 두었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사실인지 보십시오. 무엇이었든 그것이 사실이었지요? 자매님, 그렇습니까? 잠시만 경건한 마음으로 계셔 주십시오. 사람들이 두려움, 아시겠죠?... 아니,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도록 그분께서 무언가 알려 주실지 봅시다. 예, 의사가 이 여자를 살펴보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가 나타나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여자가 마음에 두고 기도하려는 남자입니다. 이분은 그 남자를 위해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 남자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관절염입니다. 그 남자는 관절염을 앓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 그분의 임재 가운데 환상으로 그 남자가 서 있다면, 그 남자는 마음에 짐을 안고 있습니다. 자기 딸의 구원에 대한 짐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믿으십니까? 믿으신 대로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십시오. 하나님의 평안이 자매님 위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회중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이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잠시만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아마 처음 만나는 것 같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다 아십니다.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아십니다. 친구 여러분,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회중 가운데 무언가 일어났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방금... [불분명한 말.]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저... 여러분 각자는 하나의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것은 심리학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실 때 모두를 집 밖으로 내보내셨을 때에도 그것을 쓰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무리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셨을 때에도 말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육신을 지닌 사람이면서 영적인 존재입니다. 지금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수술을 보았습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치유된 자매님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이었을까요... 회중 가운데 계십니까? 어디로 가셨습니까? 그분에게 무언가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까? 아, 저기 계시던 자매님이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주 하나님께서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러분은 결코 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 앉아 계신 자매님입니다.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저기 줄 끝에 앉아 계신 분, 수술을 받으셨는데, 병이 계속 그분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이셨지요? 좋습니다. 가십시오. 이제 그것이 멈출 것입니다. 나으실 것입니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이제 그저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그분은 다정하고 겸손하시며, 성령은 매우 수줍어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믿으십시오.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받을 수 있습니다. 제 앞에 서 계신 자매님... 물론 저는 자매님을 모릅니다. 나이도 다르고, 아마 여러 마일 떨어진 곳에서 여러 해의 차이를 두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것이겠지요. 저는 자매님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이미 회중에게 임했고 사람들의... 지금 그들의 믿음이 움직이고 있으므로 말입니다. 이 줄에서 몇 분까지 보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교해 온 그대로 하나님께서 임하시거나 움직이셔서 자매님이 이곳에 오신 이유나, 하신 일이나,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분께서 자매님이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고 믿으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이 자매님의 문제는 등과 척추에 있습니다. 등과 척추의 상태가 매우 나쁩니다. 넘어져서 다치셨습니다. 그렇게 되신 지 두세 달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께 자매님을 고쳐 달라고 구해 드리기를 바라며 오셨습니다.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은 아닙니다. 브루클린이라는 다른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이제 돌아가십시오. 나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그 병은 저주를 받아 떠났습니다. 나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주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셨는지, 어디가 아프신지, 또는 그런 일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주 예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자매님이 이곳에 오신 주된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입니다. 진물이 나는 부위의 치유는 얼마 전에 이미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뇌졸중을 앓는 친구를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그것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좋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주 예수님을 믿으셨습니까? 지금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자매님, 아마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여기, 바로 여기, 맨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계신 자매님, 암을 앓고 계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매님을 치유하시고 이 암을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분이 그렇게 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는데,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저 뒤에 흰 재킷 같은 것을 입고 앉아 계신 자그마한 자매님, 밤에 잠을 주무시지 못하는군요. 이제부터 주 예수님께서 잠을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제가 그분의 선지자, 아니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아시도록 말씀드립니다. 곁에 앉은 분은 남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치유하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형제님, 관절염이 떠나갈 것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시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에 손을 댔습니까? 저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저에게서 이십 야드나 떨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모릅니다. 형제님, 제가 형제님을 모르는 사이이면 이렇게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제가 형제님을 모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형제님을 모릅니다.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무언가에 손을 댔습니다.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돌아서서 어제 하셨던 그대로 행동하십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시며,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저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소원을 여러분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베드로와 요한이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문을 지나갈 때 “우리를 보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주의를 끌려고 그 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혼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는 자매님 자신도 제가 모른다고 아시는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시거나, 옛날에 하셨던 대로 행하신다면, 그분을 자매님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그러시겠습니까?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차분히 기다리십시오. 계속 믿으십시오. 보십시오. 지금 그분께 손을 대고 계십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계단 같은 것 옆에 서 계신 모습이 보입니다. 아, 얼마 전 계단에서 다치셨습니다. 그 일로 위와 장이 파열되었습니다. 병원에 두 번 가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수술을 두 번 받으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나으리라고 믿으십니까? 저 같은 사람 앞에 서 있다고 해서 그런 느낌이 들 리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자매님, 주님의 천사가 자매님을 둘러 계십니다. 제가 그분의 종임을 아시도록 말씀드립니다. 에커드 부인, 저지시티에서 오셨군요.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나으실 것입니다. 아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자매님,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저쪽에 계신 몇 분이나 그것을 믿고 계십니까?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아주 조용히 앉아 계십시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지금 우리는 여러분의 형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기초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 책을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책의 저자를 압니다. 제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에서 읽어 드린 것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시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저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바로 저 브라운 어머님 뒤에 앉아 두통에 시달리고 계신 자그마한 자매님,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십니까? 그 일로 기도하고 계셨지요? 자매님이 아시도록, 자매님 쪽에서 맨 끝에 앉아 계신 분은 팔에 문제가 있습니다. 팔의 문제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그렇지요? 이제 다 사라졌습니다. 두통도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분들,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다 끝났습니다. 무엇에 손을 대셨습니까? 연약함을 느끼시며 우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대제사장께 손을 대셨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온 힘을 다해 믿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고개를 숙이고 앉아 계신 자그마한 자매님은 부비동 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고치셨다고 믿으십니까? 저기 분홍색으로 보이는 원피스을 입고 앉아 계신 자그마한 자매님, 기도하고 계셨지요? “주님, 그분이 제게 말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맞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은 자매님의 기도를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옆에 흰 모자를 쓰고 앉아 계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자매님도 마음이 벅차셨지요? 그러셨습니까? 자매님의 관절염도 그분께서 치유하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면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멘. 그 옆에 계신 자매님은 방광에 문제가 있습니다. 자매님, 주 예수님께서 낫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받아들이십니까? 그러시면 손을 드십시오. 좋습니다. 구하신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 그분은 놀라운 분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저 자매님 뒤에 기관지 질환을 앓는 남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관지 질환을 고치시고 낫게 해 주시리라고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됩니다. 흰 머리의 자그마한 자매님, 조금 아래쪽에... 그분께서 그 기관지 질환을 고치신다고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구하는 것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곳 어디에 계시든 그분을 믿어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그저 그분을 믿으십시오. 바로 그 뒤에 계신 자매님은 눈을 들어 “주님, 이 관절염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자매님,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믿으실 수 있다면 그것은 자매님에게서 떠났습니다. 그 옆에 이렇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앉아 계신 자매님은 당뇨병이 있어서 그 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십니다. 자매님, 그렇습니까? 맞으면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떠났습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믿으십니까?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 모두 지금 바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지금 그저 믿음을 가지십시오.
여기 한 자매님이 앉아 계십니다. 잠깐 이 자매님과 이야기합시다. 친구 여러분,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여러분을 치유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의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종,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치유에 관한 한 여러분 모두 이미 치유되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러분의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여기 제 앞에 서 계신 자매님이 있습니다... 흑인 자매님, 믿으십니까...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늘 밤 제가 말씀드린 주제, 우물가의 여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 둘을 다 아시지요? 그분은 아십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매님 마음의 비밀이나 이곳에 오신 이유, 제가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자매님이 아시는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분은 여전히 동일하시다는 것을 자매님의 동족과 그 밖의 모든 곳에 기꺼이 전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고 싶으십니까?
여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 이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혹시 본 적이 있더라도 이분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인종입니다. 저는 앵글로색슨이고 이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우리는 꼭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사람의 피부색이나 인종에 따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나무에서, 같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갈색 피부이든,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한 사람 아담에게서 나온 하나의 인류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들이 우리의 피부색을 바꾸는 것이지, 우리의 혼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모습이기를 원하셨기에 우리를 지금 모습대로 만드셨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이분은 웨이크 부인입니다. 그것이 자매님의 이름입니다. 이 도시에서 오셨습니다. 댁 주소는 에지컴스 애비뉴 555번지입니다. 우선 신경이 매우 예민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큰 소원이 있습니다. 성령 침례를 구해 오셨고, 원하시는 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맞습니까? 이제 가서 받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주실 것입니다. 이제 이곳에서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제가 그분의 종임을 믿으십니까? 목발을 짚고 계신 분은 어떻습니까? 믿기만 하시면 그것을 짚고 나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 계시든 휠체어에 앉아 계신 분들은 어떻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곳에 임재하시며, 그 임재가 이런 일들을 일으키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치유는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셨을 때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저기 앉아 계신 자매님은 결핵을 앓고 계셨습니다. 자매님, 끝났습니다.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 뒤 기둥 근처, 의자 끝에 앉아 계신 분은 전립선에 문제가 있습니다. 형제님, 끝났습니다. 더는 그 병이 없습니다. 집으로 가서 건강해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믿어 보시라고 도전합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대로 하신다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마지막 사명을 주시며 하신 또 다른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 이곳에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무엇을 원하시든, 모든 곳에서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이 부분을 지키신다면, 그분의 말씀 가운데 저 부분을 지키시는 것은 얼마나 더 쉬우시겠습니까?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교회에서 하시듯 기도하십시오. 제가 여기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동안 서로를 위해 기도하시고,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보십시오. 여러분 모두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생명의 창시자시며 모든 좋은 선물을 주시고 사람들의 혼을 축복하시는 분이시여, 지금 이 회중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을 치유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탄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이제 그들의 치유가 이루어지도록 허락하옵소서. 사탄의 어둠의 왕국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빛 가운데로 끌려 나와 드러났습니다. 오, 우리 하나님, 이제 저희는 마귀의 허세에 맞서서 그 실체를 드러내라고 요구합니다. 사탄아, 네가 이 사람들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데까지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믿는 자로서 서로에게 손을 얹고 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천사에게 받은 사명으로, 성경에 따라 성령을 통해 네게 명한다, 사탄아. 이곳의 모든 사람에게서 나와라. 그들이 죄와 병과 사슬과 질병과 고통에서 놓여 자유롭게 가게 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나와라. 아멘. 이곳에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이 예배당 안에서 움직이고 계십니다. 죄인이시면 일어서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십시오. 놀랍습니다. 병드셨다면 일어서서 그분을 치유자로 받아들이십시오. 백 명쯤, 아니 그 이상이 구원을 받으려고 일어섰습니다. 수백 명이 치유를 받으려고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아멘. “그분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