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괜찮으시다면 기도할 동안 잠시 그대로 서 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직 영원으로 건너가기 전 이 땅에서 주님의 아들의 말씀을 다시 전할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밤 주님의 말씀을 통해 특별한 방법으로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불명확한 말] 저희의 삶과 오늘 밤 전하는 메시지 가운데 성령의 귀한 교제가 있게 하옵소서.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밤 병든 사람들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오늘 아침 순복음 실업인회 조찬 모임에서 참으로 놀라운 교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좋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일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밤 보니 많은 분이 서 계십니다... 저희가 올라올 때는 들어올 자리가 없어서 밖의 거리에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문에서 저를 기다리던 아들에게 들으니 내일 오후에도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되어 있답니다. 아마 이곳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잠깐 “나는 왜 다시 태어나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십 분, 삼십 분을 넘기지 않는 짧은 복음 메시지입니다... 세 시 반까지는 마쳐서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 내일 저녁을 위해 다시 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저녁에는 치유 집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수요일 밤까지 계속됩니다.
오늘 밤은 집회의 분위기를 잡고 우리가 전하려는 말씀의 배경, 짧은 문맥을 살펴보기 위해 성경을 조금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심판 때에 남쪽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밤은 이 본문으로 “불신의 죄”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사실 죄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불신입니다. 우리는 흔히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고 간음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에서 나타나는 특성일 뿐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우리가 죄라고 부르는 것은 불신에서 나타나는 특성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지배하는 영은 둘뿐입니다. 믿음 아니면 불신입니다. 오늘 밤 우리 각 사람은 이 두 영 가운데 어느 하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불신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시다가 그들의 불신 때문에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앞 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까지 높여진 너희 시돈과 가버나움아, 너희가 지옥으로 떨어지리라. 만일 그 강력한 일들이 너희 안에서 행해졌더라면, 또 소돔과 고모라와 다른 도시들에... 가버나움에서 행한 강력한 일들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행하였더라면 그곳이 이날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왜 남아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는 천사가 있었고, 구출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예언도 있었고 하나님의 경고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밑바닥에 잠겨 있습니다. 폐허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신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메시지보다 더 큰 것이 지금 여기 있는데도 그들이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은... 그분께서는 방금 “바알세붑”이라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바알세붑은 마귀들의 우두머리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의 생각을 분별하여 그들이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했는지 말씀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 안에 있는 악한 영이 그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성경을 읽어 주는 것을 들으며 앉아 있었고 영적인 훌륭한 교육도 받아 온 남녀들이, 그런 것을 보고도 마귀가 역사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만큼 되어 버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바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교리와 신학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나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을 믿지 않은 이유는... 그분께서 사람이시면서도 하나님의 이 큰 일들을 행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주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든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돌에 맞거나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돌로 치는 것은 사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사람이시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그리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영이시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사람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엘리야를 통해, 노아를 통해, 에녹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쓰시는 도구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이방인 시대에도 자신의 백성인 교회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문제는 저마다 이렇게 말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 교회는 우리 교단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단을 통해 일하시지 않고, 개개인을 통해 일하십니다.
앞 절을 보면 그분께서는 이 사람들의 불신의 죄를 지적하고 꾸짖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십팔만 명이 사는 도시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주셔서 그를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가 다소로 가는 배를 탔고, 그 길을 가다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요나가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맡겨 주신 사명에 비추어 보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불순종한 선지자의 여정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가장 큰 복 가운데 하나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자 사람들은 요나의 손발을 묶어 배 밖으로 던졌고, 큰 물고기 한 마리가 물속으로 다가와 그를 삼켰습니다. 물고기가 먹이를 먹고 나면 물 밑바닥으로 내려가 지느러미를 바닥에 대고 쉰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여러분의 작은 금붕어들에게 먹이를 주어 보십시오. 물속을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나서 어떻게 바닥으로 내려가는지 보십시오. 그러고는 내려가 작은 지느러미를 바닥에 대고 쉽니다. 물고기는 다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 큰 물고기는, 우리가 고래였다고 믿는 그 물고기는 요나를 삼키자 쉬려고 밑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큰 폭풍이 물을 이리저리 내동댕이치는 위쪽에서 헤엄치기는 몹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불렀으니 그저 내려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저는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저의 치유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아, 모르겠습니다. 제 손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을 알 수는 있습니다.” “궤양이 있는 제 위는 조금도 나아진 느낌이 없습니다.” “머리가 계속 아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저 머릿속 생각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들면, 그때부터는 어떤 증상도 여러분을 흔들지 못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합니다.
오, 모세가 광야 저편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작고 거룩한 곳 말입니다. 그는 사십 년 동안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학위들을 받았습니다. 구출자로서, 또 히브리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알았고,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불타는 그 떨기나무 앞에서 보낸 오 분 동안, 사십 년 동안 배운 신학이 가르쳐 준 것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현장으로 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그 광야 저편의 체험을 하기 전에는 결코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도 설명을 늘어놓아 그 체험을 여러분의 생각에서 없애 버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성경을 뒤틀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더라도, 여러분이 참된 성령 침례 가운데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난 적이 있다면, 세상의 신학자들이 다 모여도 그 체험을 여러분의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그 자리에 이르면 누구도 말로 설명하여 그것을 없앨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리를 찾고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믿음을 얻으면, 세상의 의사들이 다 모여 여러분이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증상이 어떻든 여러분은 여전히 믿습니다.
없는 것들을 있는 것처럼 부른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우리가 믿음 대신 바람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확고합니다. 믿음에는 북돋아 줄 것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압니다. 믿음은 강합니다. 믿음은 가슴에 털이 난 대장부 같습니다. 믿음이 말하면 나머지는 입을 다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말할 때는 증상들도 한마디조차 할 수 없습니다. 믿음에게 발언권이 있습니다. 믿음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압니다. 믿음에는 체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증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저는 요나를 생각합니다. 증상을 놓고 불평할 만한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요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으니, 우리는 그가 믿음에서 물러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두 손이 등 뒤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물고기 배 속에 있었고, 바다 위에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불었습니다. 고래 배 속에서 목에는 해초가 감겨 있었고, 토사물도 있었습니다. 이쪽을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고, 어디를 보아도 고래 배 속이었습니다. 증상 이야기를 하십니까? 그에게야말로 증상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분 가운데 그런 처지에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그가 믿음에서 물러나 하나님의 뜻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고,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들은 거짓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쳐다보지도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시 주의 거룩한 전을 바라보겠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백성이 어디서든 어려움에 빠져 이 거룩한 전을 바라보거든, 주님,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출해 주옵소서.” 그는 솔로몬의 기도와 사람이 지은 성전을 믿었습니다. 그런 증상과 그런 형편에서도 그가 솔로몬의 기도와 사람이 만든 성전을 믿을 수 있었다면, 오늘 밤 이런 형편에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손으로 만든 성전이나 기도했던 이 땅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시며 자신의 피로 우리의 고백에 따라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증상에서 눈을 돌려, 있는 것들을 없는 것처럼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형편에 있던 그 선지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흘 동안 그를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니느웨 사람들이 우상들을 숭배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의 바다 신은 고래였습니다. 어부들이 모두 물가를 따라 있는데, 고래가 곧장 해안까지 헤엄쳐 와서 그 선지자를 물가에 뱉어 냅니다. 신이 선지자를 내놓은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가 도시를 다니며 전하자,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자기 짐승들에게까지 재를 뿌리고 굵은베 옷을 입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일을 들어,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께서는 남쪽 여왕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스바 여왕이라는 것을 압니다. 지도를 보고 팔레스타인에서 저 아래 스바까지 얼마나 먼지 재어 보십시오. 솔로몬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증인이 없는 상태로 내버려 두신 적이 없습니다. 모든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가운데 자신의 은사들을 두셨습니다. 이 점을 다시 한번 이해하십시오. 모든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자신의 대표자를 두셨습니다. 증인이 없었던 적은 결코 없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보내실 때 백성이 그것을 거절하면 그 백성에게 혼란이 닥칩니다. 그러나 백성이 그런 은사를 받아들이면 그 백성에게 황금시대가 열립니다. 그분께서는 바로 그때가 그들의 황금시대라는 것을 알려 주려 하셨지만,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와서 너희 앞에 하나님의 일들을 행하였는데도 너희는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라. 솔로몬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잠깐 그 말씀을 붙들고 솔로몬 시대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분별의 큰 은사를 주셨을 때 온 이스라엘이 그 은사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오, 오늘날 모든 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인 성령을 중심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위대한 날이 되겠습니까? 서로의 차이나 교단은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가장 위대한 선물인 성령을 중심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성령께서 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아들께서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그리스도보다 더 큰 선물이라고요?”라고 하십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바알세붑이라고 불렀을 때,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사람의 아들을 대적하여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용서하리라.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똑같은 일을 행하실 때 성령을 대적하는 말은 한마디라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지금은 그때보다 더 위대한 시대입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교회 안에서 온 세상에 걸쳐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놀랍지 않겠습니까? 솔로몬 시대와 같아질 것입니다. 솔로몬 시대가 이스라엘의 황금빛 천년왕국 시대였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들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두려움이 너무나 많고, 하늘에는 스푸트니크들이 떠 있습니다... 러시아가 무게가 일 톤이 넘는 것을 이번에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머지않아 우리가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곳곳에 대피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 대피소가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수소폭탄에 관해 최근에 한 과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그 폭탄은 가로세로 백 마일에 걸쳐 땅을 백칠십오 피트 깊이로 파 버릴 것입니다. 땅속 오백 피트에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폭발의 충격이 온몸의 혈구를 모조리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수백 마일 떨어져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셨습니다. 이 아래에는 숨을 곳이 오직 한 곳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폭탄을 피할 대피소가 있습니다. 강철로 만든 것도 아니고, 땅 밑에 만든 것도 아닙니다. 깃털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날개 아래 거하며,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휴거될 것입니다. 안전하고 평안하게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동안 안전했습니다. 이것은 어디서나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연합과 하나 됨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소문이 나라에서 나라로 퍼져 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위대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함께 모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모은다면, “내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겠노라.” 미국의 온 그리스도교계가 하나로 연합했다는 것을 러시아가 알게 된다면, 그것은 러시아에 지금까지 그 어느 것보다 큰 두려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럴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과 싸울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렇게 연합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모두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지나가면서 이 소식은 저 멀리 스바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곳의 작은 여왕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에 가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은사를 보내셨습니다. 그 은사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으면서 그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겠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계셔서 한 사람에게 큰 은사로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계속 듣자, 그 작은 여왕의 마음에 갈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땅의 소금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목말라하게 하고 싶다면 그저 소금 맛을 내십시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소금은 갈증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소금이 그 힘을 잃었다면, 곧 교회가 그 힘을 잃고 하나의 교단이 되어 버렸다면, 그 뒤에는 아무 데도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발밑에 밟힐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책망입니까. 그러나 번영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래서 그 작은 여왕은 그곳에 올라가 확인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여왕은 이교도였습니다.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을 알아보러 가기 위해...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그것이 참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 여왕도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감독들과 그 밖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모든 것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었고, 그저 한 무더기의 신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아 계시며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동일하시지 않다면 역사 속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순절의 불이 오늘날에도 그때와 똑같이 유효하지 않다면 그것을 이야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얼어 죽어 가는 사람에게 불 그림을 그려 주면서 “한때는 불이 타올랐습니다”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그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 사람은 그림으로 그린, 옛날의 불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어 죽어 가고 있다면 타오르는 불을 원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나간 시대에 사셨던 하나님 말입니다. 그때와 똑같으신 오늘의 하나님을 모십시다. 우리는 현재 계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 못 하는 분이어서 자신의 약속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면 성경을 전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카나리아의 날개를 튼튼하게 하려고 비타민 B와 비타민 A를 먹이면서 늘 새장 속에 가두어 놓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밖으로 내보내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비타민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신학교와 신학 교육 기관들, 신학박사와 철학박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가진 위대한 설교자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이 가르치는 옛날의 일들처럼 오늘날에도 똑같이 살아서 행하시지 않는 역사 속의 하나님에 관한 것뿐이라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죽어 계시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고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언제나 계시며, 영원히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리가 듣고 싶은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참된 택함 받은 아들마다 듣고 싶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인도에 도착했을 때 감리교 감독과 많은 사람이 저희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선교사로 이곳에 오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 미국 사람들이 앞으로 아무리 알아도 알 수 없을 만큼 성경을 더 많이 압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성경은 동양의 책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서양의 교육으로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기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미국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실제로 드러내고 그분의 성경이 다시 살아 있게 하는 은사를 주셨다더군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수만에 수천을 곱할 만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그리스도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실재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시대에는 그토록 위대하셨다면, 오늘 밤에는 왜 동일하시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역사 속에만 계시고 현재에는 계시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 작은 여왕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신전에는 언젠가부터 있었다고 하는 신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제사장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해도 그들의 신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하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옵니다.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 백성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서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오, 남자든 여자든 마음속에서 의를 향해 목말라하는 그 복되고 거룩한 갈망이여. 성경은 여러분이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그 여왕이 무엇을 해야 했는지 보십시오. 만일 제사장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겠습니까? “몇 달 동안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에 올라가서 사람들이 말하는 그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솔로몬이라는 종에게 은사를 보내신 그 하나님 말입니다. 그곳에 올라가 그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 제사장들은 여왕을 보내 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곳의 부흥회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크고 거룩한 갈망이 그 여인의 마음속에 있다면, 여인은 그래도 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의 마음에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여왕은 자신이 파문당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파문당할 수 있겠습니까? 잃을 것이 무엇이 있었습니까? 한 무더기의 신조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자기 백성 가운데서 살아 일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가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맞서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첫째로 여자라는 점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은... 또 다른 점은 자기 나라와 그 은사가 있는 나라 사이의 여정이 멀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리를 따져 보면, 그곳에 도착하는 데 석 달은 걸렸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에어컨이 달린 캐딜락이 아니라 낙타 등에 타고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가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라고 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우리는 캐딜락과 온갖 교통수단이 있어도 그것을 들으러 길 하나 건너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각 사람은 그 여인과 함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여인은 석 달 동안 낙타 등에 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 확인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사장이 협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그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직접 확인하려 했습니다. 어젯밤 메시지에서 말했듯이, 나다나엘이... 아니,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는지 와서 보라”라고 한 것처럼 하려 했습니다. 집에 앉아 비난하지 마십시오. 와서 알아보십시오. 비판적인 태도로 가지 마십시오. 자리에 앉아 성경을 펴고 그것이 옳은지 살펴보십시오. 진리를 아는 길은 그것뿐입니다. “성경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그곳에 올라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사실이라면 지원하겠습니다.” 여왕은 금과 보석과 유향과 몰약과 온갖 값비싼 선물을 실은 낙타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지원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지원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여왕은 “내 마음속에 몇 가지가 있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낙타들에 짐을 싣고 모든 종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낙타들에는 그 많은 금과 값비싼 보석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여왕은 낙타 등에 타고 구십 일, 석 달 동안 사막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 사막에는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몇 안 되는 군인과 내시와 신전 경비병들로 이루어진 작은 일행을 데리고 가는 그 여인을 습격하여 모두 죽이는 것은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에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믿음이 여러분을 부른다면 두려움이나 의심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계속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왕은 두려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여왕은 낙타들을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성문에 도착했을 때... 여왕은 그저 가서...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막들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하나님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을 지켜볼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 때가 왔습니다. 먼 곳에서 왔으니, 이제 그 은사가 정말 역사하는지 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왕은 두어 시간만 머물려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회 한 번만 참석하려고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왕이 온 것은... “자, 들어가 앉아 있다가 그 설교자가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벌떡 일어나 박차고 나가겠어”라고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태도는 무식하거나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했거나, 생각을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여왕은 왔습니다. 아무리 다르게 보이더라도 그 은사가 역사하는지 보려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역사합니까? 그다음은 그것입니다. 그래서 여왕은 성문에 진을 쳤습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끝날 때까지 머무르십시오. 알아보십시오. 여왕이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며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들을 살펴보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이 일들이 그 말씀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여왕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첫날 아침 회중의 맨 뒤에 있던 그 작은 여왕에게 어떤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 여왕은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가 한 사람에 불과한 솔로몬 앞에 나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 위대한 분별의 은사가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들은 그대로군요”라고 했을 것입니다. 여왕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하루하루 머물렀습니다. 솔로몬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은사가 여왕에게 역사했습니다. 솔로몬이 자기 마음속의 모든 질문을 밝혀 주었다고 여왕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왕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백성 가운데 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에 관해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며, 내가 들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심판 때에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라. 그와 같은 은사를 보기 위해 세상 맨 끝에서 왔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여왕의 체험을 알고 있는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온갖 체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때와 똑같이 오늘날에도 실제로 계십니다!
그분께서 빌립에게 자신을 알리셨을 때... 베드로가 집회에 왔을 때 그분께서는 “네 이름은 시몬... 아니, 게바이며,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한 사람을 찾아가 데리고 예수님께 왔을 때, 그분께서는 “너는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곁에 서 있던 유대인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저자는 바알세붑이야. 점쟁이야.” 그분께서 사마리아에 들어가셨을 때, 그 여인이 우물에 물을 마시러... 아니,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자여, 마실 물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시자, 여인은 “당신들 유대인이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저는 사마리아 여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분께서는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네게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라. 네가 잘 말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그분을 마귀나 바알세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 여인은 오늘 밤 미국의 설교자들 가운데 구십 퍼센트보다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이 알았습니다. 여인은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것에 익숙했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 사람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는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자기 도시인 사마리아로 달려 들어가 “와서 내가 행한 일들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이방인들에게 이런 일이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자, 스바 여왕이 그 세대와 함께 서서 그들을 정죄한다면... 오, 여러분, 제 말을 들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남쪽 여왕이 일어나 그 세대를 정죄한다면, 우리는 이 일에 관해 이천 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고 그분께서는 오늘 밤 여기서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신데, 그 여왕이 증언할 때 이 세대에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선하게 살고 교회에도 다닌다고 말합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불신입니다. 아무리 종교심이 깊어도, 너무나 선해서 이것저것 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슬람교도도 그렇고 불교도도 그렇습니다. 종교와 구원은 별개의 것입니다. 종교는 덮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사가 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여왕은 일어섰습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다음에는 오순절 이후에 그 내시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러 내려갔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 성령의 오심에 관한 메시지였습니다. 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시고 여러분도 자기 입장을 분명히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몇 해 전 미국 중부에 대니얼 그린필드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위대하고 능력 있는 사역자였습니다. 여기 계신 성직자들 가운데 많은 분이 그의 책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꾼 그날 밤, 자기가 죽어서 천국에 올라간 것 같았다고 합니다. 문에 이르자 문지기가 나와 말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자가 누구인가?”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온 전도자 대니얼 그린필드입니다.” 문지기는 “그린필드 씨, 잠깐 기다리십시오. 들어오시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이 책에 이름이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책을 살펴보고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이 책에 선생님의 이름이 없습니다. 떠나셔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 분명 잘못 보셨을 겁니다. 저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하게 살았습니다. 분명 이 책에 제 이름이 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에 없습니다.” 그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문지기는 “크고 흰 왕좌의 심판에 이 일을 호소해 보실 수는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다면 다른 도리가 없군요. 그렇게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공중을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빛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빛이 점점 밝아질수록 그는 느려지고, 점점 더 느려졌습니다. 얼마 후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빛은 어느 특정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방에 있었습니다. 그는 “오, 그 앞에 섰을 때의 그 느낌이란” 하고 말했습니다. 그 빛에서 큰 천둥 같은 음성이 나왔습니다. “내 보좌로 다가오는 자가 누구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오, 여호와 하나님, 저는 전도자 댄 그린필드입니다. 천국 문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주님의 공의 앞에 제 일을 호소해 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좋다. 내 법으로 너를 심리하겠다. 대니얼 그린필드야,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느냐?” 그가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적어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 그 앞에 서니 제가 조금 비뚤어진 말, 이중 뜻을 가진 말들을 수없이 했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예, 주님.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분께서 “대니얼 그린필드야, 도둑질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정직한 사람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빛 앞에서는 제가 했던 수많은 사소한 거래가 떳떳하지 못했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형제님, 자매님, 여러분의 교회에서, 이웃들 사이에서, 목사님 앞에서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빛, 그 완전한 빛 앞에 설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그러자 다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대니얼 그린필드야, 내 공의는 완전함을 요구한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 완전했느냐?” 그는 “아닙니다, 주님. 저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 거대한 호통을 듣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온몸의 뼈가 서로 떨어져 나간 것 같았고,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제가 들어 본 가장 다정한 음성이었습니다. 어떤 어머니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본 가장 다정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분께서 다가와 저를 두 팔로 감싸 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사실입니다. 대니얼 그린필드는 살아 있는 동안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살면서 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제 편에 섰습니다. 그러니 여기 천국에서는 제가 그의 편에 서겠습니다.’”
친구 여러분, 오늘 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가 어쩌면 죽을 몸을 입고 마지막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 밤 죽는다면 누가 여러분의 편에 서겠습니까? 교회입니까? 목사님입니까? 어머니입니까? 아버지입니까?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이 그분의 편에 서면, 그때 그분께서 여러분의 편에 서실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기 바로 전에, 나이가 많든 적든 여러분이 참으로 정직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의 거룩함을 생각하십시오. 그분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만나 여러분의 죄에 관해 말씀드리고, 그분께서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아는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 가입했을지 모릅니다. 좋습니다. 자신의 신조나 그 밖의 방식에 따라 침례를 받았을지 모릅니다. 교리 문답을 다 알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아주 잘 아는 학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아십니까? 모르신다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정직해지시겠습니까? 아직 그분을 만나지 못한 여러분에게 지금 여기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면 말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면 말입니다. “얘야, 네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오늘 밤 심장마비로 죽는다면 내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느냐. 지금 내 아들을 받아들여라.” 손을 들며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지금 주님의 긍휼을 원합니다. 이 손을 든 것은, 지금 저를 도와주시면 제가 주님의 편에 서겠다는 뜻입니다.” 손을 드시겠습니까? 건물 안 어디서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분도, 이분도, 이분도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왼쪽의 위층석, 이쪽 위에 계신 분들, 손을 드십시오.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뒤쪽 위층석에서도 누군가 손을 들고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오른쪽 위층석에서도요.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매님.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거나,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스무 명이나 서른 명쯤 손을 드셨습니다. 잠깐만 더 기다리겠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르간 연주자에게 조용히 화음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둘러보지 마시고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계십시오. 친구 여러분, 저는 지금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분 바로 곁에 서서 오늘 밤 전한 메시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합니다. 오늘 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께 내어놓습니다. 그날 그분께서 여러분의 편에 서시도록 오늘 밤 그분의 편에 서시겠습니까? 저쪽의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또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실 분이 계십니까? 이제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옳은 편에 서셨습니다. 이쪽의 자매님, 젊은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뒤쪽의 선생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십니다. “오 하나님, 제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게는 정말 주님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모두 기도하십시오. 나이가 많든 적든 자기가 언제 떠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서 자신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여기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손을 보실 것입니다. 잠깐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십시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세상의... 소위 교회라는 곳이 시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라디오와 검열도 거치지 않은 프로그램들에 마음을 내맡기고, 저런 《트루 스토리》 잡지들을 읽다 보니 마음이 굳어지고 새까매졌습니다. 더 이상 부드러움이 없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없습니다. 여자들은 이제 얼굴을 붉힐 줄도 모릅니다. 사람들 앞에서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딱한 시대가 아닙니까? 그러나 어떤, 어떤 스푸트니크가 그 일을 하기 바로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 죄인인 친구 여러분, 오늘 밤 그런 상태에 있다면 그것을 뚫고 나아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십시오.
얼마 전 한 젊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여자에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인도를 느꼈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 저는 “자매님, 그리스도께 나오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녀요. 누군가 제게 말을 해 주길 바란다면 생각이 좀 있는 목사님을 찾아가겠어요. 저를 창피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일은 자매님과 저밖에 모릅니다. 창피하게 하려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라는 인도를 느껴서 여쭤본 것뿐입니다.”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침례교회 옆에 있던 자그마한 장미 덤불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날 밤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달빛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삐죽거리며 콧대를 치켜세우고는, 비웃으며 가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일 년쯤 뒤에 저는 같은 도시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전도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한 젊은 여자가 치마를 흉하게 차려입고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여자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설마 그 여자는 아니겠지.” 저는 돌아서서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곁을 지나가자 여자가 저를 보았습니다. 제가 따라잡자 그 여자가 “안녕하세요, 설교자님”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녕하세요. 혹시...?”라고 물었습니다. 여자가 “맞아요”라고 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핸드백에 손을 넣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더니 “하나 피우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요”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그러면 제 병에 든 술을 조금 드시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도 이 사실을 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설교자님, 말씀드릴 게 있어요. 그날 밤 덤불 곁에서 제게 말씀하셨던 것 기억하세요?” 저는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그것이 저를 부르신 마지막 부르심이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요즘 십 대들이 빠져 있는 로큰롤 같은 것에 빠져들었습니다.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자님, 제 마음은 너무나 굳어져서 제 어머니의 혼이 지옥에서 팬케이크처럼 지져지는 것을 보아도 웃을 수 있을 정도예요.” 이미 긍휼과 심판 사이의 선을 넘어 버린 것입니다.
오, 친구 여러분,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젊은이 여러분, 잠깐만 더 기다리는 동안 오늘 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긍휼을 베...”라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더 많은 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기도합시다. 영원하시고 복되신 하나님, 이것이 오늘 밤 단순히 이 집회에 서 있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고 성령께서 여기 계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손이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결단했음을 보여 줍니다. 과학은 이들의 손이 아래로 늘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 안에는 과학의 법칙을 거슬러 창조주를 향한 결단으로 손을 들게 한 영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이들을 빼앗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마지막 날에 이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주님, 이들의 혼이 성령의 임재로 부드럽고 꿀처럼 달콤해지게 하옵소서. 죽음이 이들을 놓아주어, 주님의 피로 덮이고 씻겨 다시 새롭게 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갈 때까지 그렇게 해 주옵소서. 주 하나님, 성령께서 바로 지금 그 일을 하시게 하옵소서. 그리고 거룩하게 되어 침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간 사람들로 이들을 주 예수님께 드리옵소서.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구주여,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를 한 절만 부릅시다. 참으로 마음이 좋으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느끼시는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성령의 임재가 참으로 좋지 않습니까? 이제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영 안에서 손을 들고 패니 크로스비의 이 귀한 옛 찬송을 부릅시다. 구주여,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저의 모든 위로의 샘이신 주님, 제게 생명보다 귀하십니다. 이 땅에서 주님 외에 제게 누가 있습니까? 하늘에서도 주님 외에 누가 있습니까? 자, 부릅시다. 구주여,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오, 여러분은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지 않습니까? 이제 메시지가 끝났습니다. 지금은 경배할 시간입니다. 교회에서 불러 온 이 영광스러운 옛 찬송을 부릅시다. 저의 믿음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신 주님, 하나님이신 구주여. 이제 제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저의 모든 죄책을 없애 주시며, 오늘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이 찬송을 아시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지금 주님을 경배하면서, 경배의 영 안에서 이 찬송을 부릅시다. 좋습니다. 구주여, 구주여, 저의 겸손한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다른 이들을 부르실 때 저를 지나치지 마소서.
찬송이 이렇게 흘러나왔으니, 혹시 이 건물 안에 아직 망설이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 손을 들었어야 했는데 들지 못했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언가 해 주시기를 참으로 바라는 분이 있다면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 자매님이 바라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영의 인도를 따르기만 한다면, 그분은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완전하십니다. 자, “저의 믿음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입니다. 형제님, 부탁합니다. 이제 모두 함께 부릅시다. 저의 믿음이 주님을 우러러봅니다. 갈보리의 어린양이신 주님, 하나님이신 구주여. 이제... 이제 손을 듭시다. ...제가 기도할 때 들으시고, 저의 모든 죄를 없애 주소서. 오, 오늘부터 제가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게 하소서. 오, 영 안에서 경배하는 데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습니다. 비둘기이신 성령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이 평안을 가져옵니다. 오, 저는 그저... 한 절 더 부릅시다. 인생의 어두운 미로를 걸으며 지금 오직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슬픔이 저를 둘러쌀 때, 주님, 저의 길잡이가 되소서. 어둠이 낮으로 바뀌게 하시고, 슬픔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제가 주님 곁을 떠나 결코 헤매지 않게 하소서.
주 하나님,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사람들이 이 은혜로운 옛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오래전 우리의 선조들이 부르던 찬송이며, 그들은 이미 영광 가운데 주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밤 이 줄지어 있는 사람들 곁에 천사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게 하옵소서. 이제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의 임재, 성령의 임재를 저희가 알아보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 저희 마음의 소원을 허락하옵소서. 오늘 밤 이 건물을 떠날 준비를 할 때, 첫 부활 이후 엠마오에서 온 사람들처럼 저희도 말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들이 길을 걸으며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온종일 성경으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밤이 되자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그분께도 들어오시라고 청했습니다. 주님, 저희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문을 닫으시고 그들과 함께 앉으셨을 때,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것처럼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행하신 그 기적으로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급히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들은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바로 그 예수님을 보았다고 알렸습니다. 다시 일어나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하고 계신 그 예수님 말입니다. 주님, 오늘 밤 저희를 위해서도 똑같이 행해 주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이제 저희에게 성경 말씀을 주옵소서. 성령님, 이 말씀을 따라 일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제 몇 분 동안 아주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계신 분들 가운데 제 집회에 처음 오신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세상에! 회중의 구십 퍼센트군요. 아마 오늘 밤 베일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설교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분의 교회 가운데 일할 다른 방법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통한 방법입니다. 이제 성경 구절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사님께서 이미 여러 구절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먼저 환상으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는 단 하나의 기적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립이 그분께 왔을 때, 빌립은 가서 나다나엘을 데리고 돌아왔고 자기들이 누구를 만났는지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앞에 나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아랍인일 수도 있었고 그리스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민족일 수도 있었습니다. 모두 똑같이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유대인이며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그 사람이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오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하루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이렇게 하시자, 그 사람은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지난날 그렇게 자신을 알리셨다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그분의 교회도 행하리라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이는 내가,” 이것은 인칭 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께서는 그분과 함께 가셨고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교회를 보내시는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 가시며 교회 안에 계십니다. 이 땅에 계셨던 그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한 불기둥 속에 계셨던 주님의 천사라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압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너는 아직 오십 세도 안 된 사람이면서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이제 네가 마귀라는 것을 우리가 알겠다.” 그분께서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불기둥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셨을 때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로 연합하셨습니다. 예수라고 불리는 한 몸 안에서였습니다. 이 땅에서 일하시며 그 일들을 행하실 때 그분께서는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육신이 되시기 전에 어떤 분이셨든, 그 모습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과 승천 이후에 바울은... 아니, 사울은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다마스쿠스에 이르기 바로 전에 큰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어 눈이 멀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 음성이 크게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가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입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다시 불기둥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것을 본다면... 그리고 이 사진은, 저 자신은 감추고 말씀드리자면, 제가 아닙니다. 그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진에 찍힌 유일한 초자연적 존재로서, 이 사진은 여기 워싱턴 D.C.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줄기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는 반드시 그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접붙인 것이든 무엇이든, 그 나무의 생명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 나무에서 생명을 받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복숭아나무는 복숭아를 맺지 않겠습니까?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습니다. 수박은 수박을 맺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까? 그분께서 방금 우리가 말한 그런 방식으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알리시고, 이방인들에게는 그것을 행하지 못하게 하셨다면... 이방인 교회가 이천 년 동안 신학을 해 온 결과가 어떠한지 보십시오.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이방인들에게도 자신을 알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젯밤에도 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점점 더 지혜로워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첫 결정은 완전하며 영원합니다. 어떤 상황이 생겨 하나님께서 행하셨는데 똑같은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에 잘못 행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그분은 달라지실 수 없습니다. 동일하셔야 합니다.
이제 성경 구절을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을 이곳으로 불렀습니다. 번호가 적힌 카드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단 위로 나왔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여기 계셔서 처음에 하셨던 것처럼 사람들의 일을 알리시고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때 여기서 그 일을 보았고 그것이 사실임을 아시는 분들은 모두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늘 밤에는 다른 성경 구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다르게 하겠습니다. 성경에 몸이 약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분을 보기도 전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시겠죠?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한 로마인이 그분의 머리를 헝겊으로 감싸고 막대기로 머리를 때리며 말했습니다. “예언해 보아라. 누가 너를 때렸는지 말해 보아라. 그러면 믿겠다.” 그분께서는 아무 효능도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한 여인은 군중을 헤치고 나아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분의 옷에 손만 댈 수 있다면 내가 나으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그 여인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그분께 손을 댄 뒤 회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앉았을 수도 있고 서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회중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멈추시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베드로는 그분을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아니,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그분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랍비여. 부흥회를 하러 오셨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두가 주님께 손을 대고 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내 힘이 빠졌느니라.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여인을 찾으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그 여인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 여인의 믿음이 그를 낫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밤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아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우리가 그분께 닿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면, 어제 행하셨던 것과 똑같이 행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믿으실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어제도 동일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 여인처럼 믿음으로 그분께 닿는 것입니다.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느끼신 것은 여인의 손이 아니라 믿음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뒤돌아보셨습니다. 그분께서 오늘 밤 이곳에서도 동일하신 분, 동일한 불기둥이시라면, 이것이 그분이고 그분의 사진이라면, 그것은 그분을 증언할 것입니다. 그분이 아니라면 증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사들에 관해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대제사장이시라면... 우리는 아무도 이곳 단 위로 부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회중 가운데서, 위층석에서, 어디에 계시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마음속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그분께 닿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는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오늘 밤에도 행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아닙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그저 신학만 논하고 교회를 짓고 교단을 만들고,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세 번이든 다른 방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는 일만 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학이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오늘 밤 그분께서 그런 일을 행하신다면 그분을 사랑하고 믿고 받아들이실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그분께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십니다. 물론 저는 여러분의 손을 다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분들은 모두 제가 모르는 분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모르지요? 제가 아는 분은 여기 서 있는 이 형제님뿐입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화이트클라우드인지, 매클라우드인지, 그런 이름입니다. 제퍼슨빌에 화이트클라우드라는 분이 있어서 아마 제가 잘못 말한 것 같습니다. 매클라우드, 베일 박사님, 스위트 형제님, 제가 아는 분은 그분들뿐입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아십니다. 그러면 오늘 밤 제가 여러분에게 솔로몬이라는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두신 은사를 보러 온 여인에 관해 전한 메시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그 여인이 그 세대를 정죄할 것인데, 그분께서는 성경에서 자신이 동일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밤 오셔서 똑같은 일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말입니다. 어떻게 그 여인이 정죄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께서 그것을 행하시는데도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정죄받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세대를 정죄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지금 그분에 관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온 마음과 온 혼과 온 힘을 다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다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이제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부디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이 일은 여러분을 단 위로 모셔 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일 것입니다. 여기 병든 분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한번 보겠습니다. 저는 그저 보고 싶습니다... 알아볼 도리가 없군요.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도 카드가 있든 없든 그저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경건하게 계십시오. 제가 방금 만졌... “주 하나님...”이라고 말씀드리십시오.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 하나님, 오 주님, 제가... 제게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사람이 한 말은 성경에서 나왔기에 진리라고 믿습니다.” 구약에서는 우림과 둠밈에 빛이 나면 그것이 참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우림과 둠밈, 아론의 흉패는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또 다른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여러분에게 그 빛이 비친다면 그것은 참됩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그저 경건한 마음으로 믿음의 손을 뻗으며 말씀드리십시오. “주 하나님, 대제사장이시여, 저는 병들고 궁핍합니다. 주님, 저를 만져 주시기만 하면 다시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제게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제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기름부음입니다. 저도 기다리고 여러분도 기다립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틀렸거나 제가 틀린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으니 말씀도 틀린 것이 되고 맙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지켜보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다려 바라보는 것은 주님의 천사, 그 빛입니다. 그 빛이 어떤 사람에게로 오면 제가 지켜보고, 그러면 환상이 나타납니다. 지난날 살아 계셨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경배하는 마음으로 계십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제가 여기 서 있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부디 이제 아주 경건하게,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아주 조용히 해 주십시오.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방해가 됩니다... 바로 그것이 해가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스려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경배를 아십니다. 주님, 하나님, 저는 그저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 자체는 제가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전할 책임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일을 행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 사람들이, 오늘 밤 여기 있는 주님을 믿는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저희를 위해 단 한 번만 행해 주신다면 말입니다. 참된 증거로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사람들이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 어떤 사람의 마음에 말씀하옵소서. 이곳 어딘가에서 믿음을 찾아 주옵소서.
경건하게 계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바로 여기 제 왼쪽의 한 여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여인은 발과 다리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틸턴 부인, 성함이 맞지요?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저는 자매님을 모르지요?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자매님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자매님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께 닿은 것입니다. 오, 우리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주 경건하게 계십시오. 어쩐지 그 빛이 여전히 그 여인에게 머물러 있습니다. 자매님은 그곳에 앉아 “주님, 제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맞다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이 성경을 두고 말씀드리지만, 저는 평생 이 여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떻게 그 여인을 아시고, 무엇이 문제인지, 누구인지 아셨겠습니까? 이것이 그분께서 성경에서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이 아니라면, 저는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믿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좋습니다. 경건하게 계십시오. 주님께서 뜻하시면 더 보실 것입니다. 위층석에서도, 사방 어디에 계시든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저 계속 기도하십시오.
어쩐지 그 빛이 아직 그 여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여인이 아닙니다. 그 옆의 여인입니다. 그 여인의 가슴에 종양이 있습니다. 자매님, 맞습니다. 제가 자매님의 영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잠시 일어서십시오. 그 종양은 왼쪽 가슴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자매님은 우드워드 부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나으십시오. 그 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믿을 수만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치십니다. 저기 그 빛이 한 여인에게로 갑니다. 나이가 조금 드신 분으로, 모자에 가느다란 띠가 있고 그곳에서 두 줄쯤 뒤에 앉아 계십니다. 지금 그분께 내려가고 있습니다. 담낭 질환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자매님, 주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습니까? 줄 끝에 계신 분입니다. 심장병도 있습니다. 거기 앉아 계신... 예, 자매님. 그분께서 낫게 해 주신다고 믿습니까? 자매님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셨던 것은 기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담낭 질환과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맞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곳에 앉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두 가지가 겹쳐 있었습니다. 자매님 옆에 앉아 있는 여인도 담낭 질환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 계신 분입니다. 자매님, 일어서십시오. 두 분 모두 그 병이 떠났습니다. 아멘. 밝아졌습니다. 그분들이 무엇을 만졌습니까? 대제사장을 만졌습니다. 저에게서 이십 야드나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오늘 밤에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선생님, 그곳에 앉아 주님을 찬양하고 계시군요. 당뇨병이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르지요? 잠깐 일어서십시오.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십시오. 선생님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 당뇨병입니다. 혈액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선지자, 혹은 그분의 종이라고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그렇다고 믿습니다. 선생님, 저는 고쳐 드릴 수 없습니다. 제게는 선생님을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언가에 닿으셨고, 그것이...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계십니다. 정확합니다. 선생님은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메인주의 피츠필드라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성함은 사일러스 퍼킨스 씨입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맞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집으로 가서 나으십시오. 치유를 받아들이시고 집으로 가서 고침을 받으십시오. 저기 어두운 색 드레스에 자그마한 것을 달고 계신 여인, 궤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선지자, 그분의 종이라고 믿습니까? 정맥류도 있습니다. 맞다면 손을 드십시오. 이제 믿습니까? 나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께 닿을 만큼 믿음이 있다면, 이제 그분을 받아들일 믿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선생님, 그곳에 앉아 등의 문제로 기도하고 계신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일어나서 받아들이십시오. 믿습니까? 앞쪽에 이렇게 손을 들고 앉아 계신 여인이 있습니다. 가슴의 문제로 고통받고 계십니다. 맞습니다. 옆에 앉은 남편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술을 마시고, 자매님은 원하십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숨겨야 한다 해도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지금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선생님을 떠날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시지요. 선생님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은 얼마나 계십니까?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서서, 스바 여왕이 마지막 날들에 일어나 그분께서 이런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본 그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시대의 끝에 이곳에 오셔서 그분께서 똑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고칠 수 없습니다. 치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여러분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들이 병든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그 사람들이 나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여기 믿는 분들은 얼마나 계십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다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믿는 분들이라면 여러분이 믿는 사람임을 하나님께 보여 드립시다. 위층석에서 저 기둥 곁에 앉아 전립선 질환을 앓고 계신 선생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 집에 가셔도 됩니다. 나았습니다. 저기 결핵을 앓고 계신 젊은 자매님도, 끝났습니다. 오,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 앞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계신 하나님 앞입니다. 이천 년 전에만 살아 계셨던 분이 아니라 오늘 밤, 바로 여기 이 자리에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오, 주 하나님, 서로에게 얹은 이들의 손을 보고 계십니다. 이들에게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무엇을 더 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여기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바로 지금 성령의 큰 권능이 저절로 솟구쳐 이 사람들 가운데 밀려들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고쳐 주시기를 구합니다. 사탄아, 네가 이들을 너무 오랫동안 사로잡고 있었지만 오늘 밤 네 정체가 드러났다. 예수님께서는 곧 교회를 데리러 오시며, 그들에게 휴거의 믿음을 주려 하고 계신다. 이들을 묶어 놓은 마귀의 영아, 이 회중에게서 나와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두고 네게 엄히 명하노니 나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한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은 아무리 몸이 불편하든, 어떤 상태였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곳에 임재해 계심을 믿는다면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일어서십시오. 불구가 된 손을 공중으로 흔드십시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