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어젯밤처럼 그렇게 놀라운 밤을 보내고 나서 오늘 밤 다시 주님의 집에 오니 참 좋습니다. 지난 이삼 일 밤 동안 이곳에서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그로 인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혼들이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났습니다. 치유 예배에서도 참 좋은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조금 전에도 소식을 받았는데, 여기서 북쪽으로 어느 도시에서 온 백혈병을 앓던 그 소녀가 오늘 의사에게서 나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나았다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되려던 아이였지요. 그 일을 기억하시겠지요. 사탄이 그 기회를 빼앗으려 했지만, 의사는 그 아이가 온전히 건강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시력을 되찾으려고 여기 왔던 눈먼 목사님도 있고, 다른 분들도... 주님께서 참으로 큰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어젯밤에는 천막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약속된 새 사역이 여기 태버내클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할지 보려고 몇 분을 이 안쪽 기도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들어가자마자 주님의 영께서 임하셔서, 영들을 분별하시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를 말씀해 주시는 일 등이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어떻게든 머무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들에게 변화가 있었는지, 치유되었다고 느끼는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오늘 밤 제가 그분들을 찾을 때 이 안에 들어와 계시면 손을 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서 이곳에 계시고 건물 안에 들어오셨다면, 그리고 큰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신다면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젯밤 여기 오셔서 이 뒤편에서 기도받으신 분들 가운데 계시면 말입니다. 손이 보이지 않으니 그분들이 머무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분, 여기 뒤에 한 분이 계십니다. 좋습니다. 저기 한 분이 계시는군요. 참 좋습니다.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신다는 거지요. 그렇습니까, 선생님? 손을 드신 분 말입니다. [그 남자가 간증하기 시작한다.] 참 좋습니다. [그 남자가 계속 간증한다.] 아주 좋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에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여자분이 계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시며 그분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 형제님도 그 일을 아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령께서는 수염과 머리가 긴 어떤 사람이 그분을 위해 기도했던 일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일은 이미 그분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는 자신의 정확함과 완전함을 보여 주시려고 다시 돌아가 그 사람을 짚어 내시며, 누구였는지, 그 일이 어디서 있었는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분은 “이제 기억나요. 아주 오래전 일이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그 완전하심이란... 오, 그분은 참으로 실재하십니다.
지금 사람이 가득 모였습니다. 제가 다시 떠나기 전에 이렇게 작은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오늘 밤 들어오면서 인디애나주 밀타운에서 온 오랜 친구 로저스 형제님을 만나 참 기뻤습니다.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났고요... 크리치 형제님도 다시 오셨습니다. 어젯밤에도 여기 계셨지요. 그리고 오늘 면담 시간에도 성령께서는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어쩌면 천막이 들어설 때까지는 지금까지 제게 있었던 같은 사역 아래서 한동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오늘 면담 중에도 크고 두드러진 환상이 네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천막 집회가 시작될 때까지, 아니면 그분께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기 시작할 곳으로 정하신 어디에서든 그 일이 시작될 때까지, 아마 이렇게 계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시작되면 다른 사역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할 것입니다. 참으로... 저는 그것이 다른 사역들보다 더 크기를 하나님께 바라며 의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역 때문이 아니라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도움이 참으로 많이 필요합니다.
서 계신 분들이 너무 오래 서 계시지 않도록 곧바로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그분의 말씀을 읽기 전에, 머리를 숙이고 그분께 직접 말씀드립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이제 겸손한 마음과 숙인 머리로 주님의 거룩한 임재 안에 나아갑니다. 오늘 하루 저희가 행하거나 생각하거나 말한 것 가운데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은혜로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밤 저희는 주님을 경배하고, 저희의 마음과 주님을 향한 경모의 정을 표현하려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주님, 오늘 밤 이 비좁은 벽 안을 가득 채운 이 작은 회중은 남에게 보이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님을 저희는 확신합니다. 오직 주님께 사랑을 표현하려고 왔습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것뿐이라면, 팔다리가 아픈데도 밖이나 창가, 벽 둘레에 서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계시다는 것과 부지런히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에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 위에 치유의 권능이 임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에 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저희는 이 말씀을 해석하기에 부족하오니, 성령께서 오셔서 바로 이 말씀 속으로 들어가시고 사람들의 마음 깊이 말씀을 심어 주옵소서. 이를 통해 많은 혼을 거두는 큰 수확과 놀라운 치유 예배가 있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겸손히 구합니다. 아멘.
오늘 밤 성경 봉독은 열왕기하 8절부터 읽으려고 합니다. 오늘 밤 제 설교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입니다. 첫날 밤에는 ‘역사 속의 그분을 일으켜 세우다’라는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둘째 날 밤, 곧 어젯밤에는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라는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오늘 밤 제목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입니다. 자, 열왕기하 6장 8절부터입니다. 그때에 시리아 왕이 이스라엘과 싸우며 자기 신하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내 진영이 이러이러한 곳에 있으리라,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왕께서는 조심하여 이러한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시리아 사람들이 거기로 내려왔나이다, 하매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고하여 경고를 준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거기서 자신을 구원하였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더라. 그러므로 이 일로 인해 시리아 왕의 마음이 매우 괴롭게 되매 그가 자기 신하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편인지 너희가 내게 알려 주지 아니하려느냐? 하니 그의 신하들 중 한 사람이 이르되, 오 내 주 왕이여, 그런 자가 없나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엘리야가 왕께서 왕의 침실에서 하시는 말씀들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가서 그가 어디 있나 탐지하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아오리라, 하니 어떤 이가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그가 도단에 있나이다, 하므로 왕이 말들과 병거들과 큰 군대를 거기로 보내니 그들이 밤에 가서 그 도시를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종이 일찍 일어나, ... 그 도시를 지나, 말들과 병거들이 모두... 그의 종이 그에게 이르되, 아아, 내 주인이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매 그가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하는 자들이 ... 그들과 함께하는 ... 저들보다 더 많으니라, 하고 엘리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여사 그가 보게 하옵소서, 하니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므로 그가 보니, 보라, 불 말들과 불 병거들이 ... 엘리야를 둘러싼 채 산에 가득하더라.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읽은 것에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지음받고,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으며 믿음으로 걸으라고 그분께 부름받은 사람이, 믿음 대신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걷기를 선택합니다. 그의 구조와 존재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지어졌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부르시는 위대한 여호와이십니다.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지음받았는데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걷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누구도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람은 자기 길을 택하고 누구의 다스림도 받지 않으려 하다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양처럼 지어졌습니다. 제가 듣기로 양은 길을 잃으면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길을 잃으면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길을 잃으면 전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인도해 줄 목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선택할 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계속 더 악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만,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 걷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걷기를 택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은 속사람, 곧 혼이 누려야 할 것을 빼앗습니다. 혼은 사람의 영원한 부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땅에 두신 이유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 육체로 무엇을 하느냐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혼입니다. 속사람은 땅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왔으며, 그것이 사람의 영원한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스스로 길을 찾아내려고 하니 이상한 일입니다. 성경에서도 사람이 자기 길로 걷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를 선택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을 봅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이 자기 안에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 눈에 무엇이 보인다고 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는 것으로 삽니다.
며칠 전 일요일 학교에 오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습니다. 루이빌의 십 대 청소년들이 둘러앉아 토론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였지요. 여자아이가 곱슬머리 남자아이를 찾는 것일까요? 아니면 남자아이가 예쁜 푸른 눈이나 갈색 눈을 가진 여자아이를 찾는 것일까요? 그것이 중요한 차이를 만들까요? 십 대에게는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러분의 창조주를 찾는 것입니다. 믿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정확히 같은 것을 믿는 남자와 결혼하십시오.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 곧 그분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어긋나는 결혼이나 다른 어떤 일을 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계속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남녀들은 온통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자신이 다니고 자녀들을 키울 교회를 고르려고 거리를 다닙니다. 도시를 두루 찾아다니면서 가장 영적인 교회를 찾으려 하지 않고,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회,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고 가장 잘 차려입는 교회, 그 도시의 유명 인사들이 다니는 교회를 찾습니다. 사람들의 기준으로 이른바 상류층이 다니는 교회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 교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편협하지 않은’ 목사를 찾으려고 합니다. 자기들이 거의 마음대로 살면서도 그 교회에 속해 있게 해 줄 목사 말입니다.
그러나 안에 있는 영적인 사람에게 길을 내어 주면, 어딘가 작은 선교 예배처로 여러분을 인도할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곳 말입니다. 겉사람은 심리적인 것과 지적인 것을 먹고 살지만, 속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을 펴서 성경의 여러 인물을 살펴보려면 몇 시간이나 걸릴 것입니다. 그러니 잠깐 히브리서 11장을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읽어 보면 아브라함은 그저 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대아 땅의 우르라는 도시에 살던,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났고, 아브라함은 그날부터 달라졌습니다. 자기 교회, 곧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다녔더라도, 하나님을 한 번 만나고 나자 그는 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충실한 교인일 수 있습니다. 이웃과 가족 앞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달라진 사람이 됩니다.
얼마 전 지적인 어떤 사람과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종교에서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과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에 관해 읽었습니다. 그분의 선하심을 읽었습니다. 그분의 인내와 권능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누구 못지않게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읽었던 바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고, 저는 그 뒤로 다시는 이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이전과 같아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루어 내지 못하는 곳에서,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이루어 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는 젊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일흔다섯 살의 노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이복누이였고, 두 사람은 결혼한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사라가 열일곱 살쯤 되는 소녀였을 때 결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사라를 택하였다. 너희가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평생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 곧 아이를 낳을 나이를 여러 해나 넘긴 주름진 늙은 여인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고, 이삭을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을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 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불렀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얼핏 본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 길 내내 자기와 함께 계심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렇게 바라보고, 그분께서 언제나 함께 계심을 알게 되면, 그의 생각을 든든히 붙들어 주는 무엇이 생깁니다. 그것이 그의 행동을 든든히 붙들어 줍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도 여전히 위를 바라보게 합니다.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너머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약속에 근거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을 믿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면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 영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약속을 받아들여 현재의 사실로 여기고, 그 위에 안식하십니다.
눈으로 바라보면 지금 우리나라가 흔들리고 떨고 있으며, 곳곳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을 봅니다. 모든 나라가 이 시대에 괴로워하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하신 모든 표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표적들이 있고, 비행접시나 신비한 일들처럼 큰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교회에게 그날에 머리를 들고 위를 보라고 명하셨습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그리스도께서 머지않아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걷는다면, 지금 우리는 틀림없이 어둠의 자녀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실 영원한 그날까지 모든 신자의 마음에 빛이 비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저는 너무나 기쁩니다.
아브라함이 한 일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그는 믿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맞을 준비도 했습니다. 믿음으로 본 그 아이가 실제로 태어나기 이십오 년 전부터 그 아이를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께서 그 약속을 지키실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백 살이나 된 자기의 육체적인 상태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해설을 기록한 이는 아브라함이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오늘날 지적인 믿음으로 거기에 다가가려 애쓰는 것은 아무 소용이... 그렇게 해 보려는 것조차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로 다니고, 이 기도 줄 저 기도 줄에 서 보아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단번에 영원히 확정하는 자리까지 와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거나 하나님이 아니시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 첫 가지를 냈고, 그 첫 가지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의 복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가지가 오순절이었다면 둘째 가지도 오순절이어야 하며, 첫 가지가 맺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교회와 행실을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 나가 말라 버릴 것이라고 하시며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날 우리 교단들이 바로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잘리고 있는... 잘려 나갈 것입니다. 열매 맺는 가지, 곧 성령의 열매와 역사를 맺는 가지만 포도나무에 계속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 안에 있는 생명이 가지로 뻗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던 생명이 첫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걷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라고 믿으며 믿음으로 걸었습니다. 오, 사람들이 믿음으로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길 때 얼마나 달라지는지요. 교회에는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마흔 살의 젊은이가 되었을 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자면 모세는 세상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다음 파라오가 될 사람이었고, 세상의 모든 땅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당시 알려져 있던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파라오가 내다보던 바로 그 창으로 내다보며 히브리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파라오가 보기에 그들은 저 아래 진흙탕에서 벽돌을 만드는 흙일꾼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지나가는 유명 인사들,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노예 무리, 진흙탕에서 뒹구는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창으로 내다본 모세의 눈에는 그들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곳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월을 보았습니다. 이집트는 한창 번영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집트가 멸망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이집트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온 백성이 영광 가운데 아브라함 주위에 평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신앙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을 택하여 세상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과 견주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치욕을 당하기를 택했고, 그것을 이집트가 줄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려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교회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모세는 한 손에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높은 지위였습니다. 세상이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그에게 내놓은 것은 줄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이었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있는 노예 무리였습니다. 자,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본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아무 악의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알아들으시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큰 교회를 보지 마십시오. 큰 교단을 보지 마십시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지 마십시오. 부요하셨으나 자신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교회를 찾을 때 유명 인사들이나 대단한 철학박사, 신학박사들이 다 가는 곳으로 가지 말고, 멸시받는 사람들에게로 눈을 돌리십시오.
모세는 그 둘을 양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쪽에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을 때, 교회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나쁜 것이 있었는데도 그는 믿음으로 걷기를 택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분, 하나님을 따라 걷기를 택한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큰 보화로 여겼습니다. 여기 왕국이 있었습니다. 왕의 지위가 있었습니다. 왕좌가 있었습니다. 왕관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으로 저 진흙 구덩이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얼핏 보자, 그는 자기 백성에게로 갔습니다.
여기 모세에게서 배울 작은 교훈이 또 하나 있습니다. 모세는 그저 뒤에 앉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좋은 사람들이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저 사람들을 헐뜯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이 그렇게 합니다. 참 하나님에 관한 엄한 메시지를 들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 저는 신유를 믿는 저 사람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기적을 믿는 사람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왕좌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들을 동정만 한 것이 아닙니다. 밖으로 나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침례교 사람들에게서 아주 좋은 제안을 받았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장로교 사람들도... 이 도시의 한 여자분이 제가 장로교 교단의 단기 학교 과정을 밟도록 학비를 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목회자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밖을 바라보니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 무리가 비웃음을 당하며 ‘광신자들’이라고 불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침례교 설교자였으니 그대로 지내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 저는 저들에게 반감이 없습니다. 저도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택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저는 이른바 ‘광신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들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표적이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바로 그 무리가 휴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회라는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보다 저는 그것을 택하겠습니다. 그들을 동정만 하지 말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때 비로소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 걷게 됩니다. 저는 휴거에 들어가는 교회를 봅니다. 자신의 신부를 데리러 오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외면당하고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작은 무리가 어느 날 휴거에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온 세상에서 제가 아는 그 어떤 무리와 함께 있기보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기를 택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백 년 뒤에 그들을 구출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이십 년을 더 지체하셨지만, 모세는 여전히 그분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 운동에 참여하여 현장에서 일하는 이유는, 약 십 년 전 인디애나주 그린스밀에서 있었던 어느 날 밤의 일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게 말씀해 오셨던 주님의 천사가 그날 밤 이 일들에 관해 말씀하셨고, 저는 믿음으로 밖으로 나가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하는 일들에 동의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분을 부인하는 수백만 명과 함께 있기보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수의 사람과 홀로라도 걷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습니다. 그리고 인생 여정의 끝에서... 아, 저는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브래넘 선생님,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십 년 동안 그 백성과 함께하게 하시고도 약속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공정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모세 이야기의 영광스러운 대목은, 팔백 년 뒤 그가 약속의 땅에서 예수님과 엘리야와 함께 있었고 갈멜산에서 그 모습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정이 끝날 때, 산 위에 서서 자기 백성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하며 요르단강 건너편을 바라보았을 때, 모세의 나이는 백스무 살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 그는 광야에서 맞았던 그 반석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 반석이 거기 있었습니다. 천사들이 그의 운구자가 되어, 세상이 전혀 모르는 어딘가로 데려가 그를 묻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면서 견디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보이지 않는 그분이 거기 계셨습니다.
그가 파라오가 되었더라면 그렇게 되었을까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선택을 했을 때 그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올바른 선택을 하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십 년 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고, 위대한 군대의 장군이 되어 첫 전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적들은 그가 접근할 길이 없는 곳에 성벽을 쌓고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아직 이집트에 있을 때 모세에게 “내가 온 팔레스타인을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여리고 성벽이 땅에 완전히 무너진 것을 보았습니다. 완전히 무장한 채 거듭 돌고 또 돌면서, 마음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백성이 외치자 성벽이 무너졌고, 그들은 그 도시를 차지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 일을 하기 전 어느 날 오후, 그가 걷다가 칼을 빼 들고 성벽 곁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도 칼을 빼 들고 그를 만나러 가서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적의 편이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주의 군대 대장이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 전투에서 자기가 이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마음에 죄가 있는 여러분... 간음하며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술에 취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죄는 불신입니다. 마음에 불신이 있는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눈을 감아, 오늘 밤 어디에나 계시는 그 총대장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세상은 여러분의 발아래 납작 엎드러지고 죄의 모든 사슬이 여러분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의심하던 날들은 끝날 것입니다. 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뱀은 새와 눈을 맞춘 뒤 그 유혹과 빤히 쳐다보는 눈길로 새를 홀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가 몇 분만 뱀에게 주의를 기울이면, 파닥거리다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뱀이 그 새를 잡아먹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뱀, 마귀를 알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성 여러분, 젊은 남성 여러분, 마귀가 요즘의 로큰롤과 세상의 온갖 요란한 것들로 여러분의 눈길을 사로잡아, 자기 유혹이 여러분 속에 파고들 만큼만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여러분은 파닥거려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죄 속으로 삼켜 버릴 때까지 붙들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그 작은 새에게 기회가 생기는 유일한 길은 뱀에게서 눈을 떼는 것입니다. 새는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데는 눈을 돌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뱀에게서 눈을 떼고 위를 바라보며 날개를 파닥거리기만 하면, 뱀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훌쩍 날아갈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것들과 불신의 유혹이 여러분의 마음을 휘감고 “아, 시대에 맞게 살아!”라고 말하고 있다면, 오늘 밤 고개를 흔들어 떨쳐 버리고 보이지 않는 분, 주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기도의 날개를 파닥여 마귀가 닿지 못하는 곳으로, 그 손아귀 밖으로 훌쩍 날아가십시오. 그가 여러분에게 신유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얼른 고개를 돌려 그를 떨쳐 버리십시오. 영적인 분별이 텔레파시라고 말한다면, 즉시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올려다보십시오.
엘리야가 도단에서 자기 종 게하시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둘러보니 시리아 군대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짓밟아 버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이 시리아 왕이 침실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시며, 오늘 밤에도 그때와 똑같으십니다. 여전히 여러분의 생각을 아실 수 있고, 바로 지금 여러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아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영의 열매를 살펴서, 역사 속의 하나님께서 다시 일어나신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는 언제나 닥치기 마련인데, 그때 게하시는 그저 미지근한 교인이었으므로 엘리야가 본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믿음으로 걷는 데 익숙했고,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시편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엘리야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게하시는 반쯤만 믿었습니다. 그저 교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주 하나님, 여기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이 사람의 눈을 열어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여시자, 그는 불 병거들이 끄는 불 말들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이 그 늙은 선지자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줄곧 거기에 있었지만, 그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오늘 밤 저도 같은 말을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기록된 그곳에 서 계셨던 하나님께서 들려 올라가시고 하늘이 그분의 발아래 놓였을 때,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항상...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으리라.”
이 아주 빠른 제트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에게 들은 말입니다. 비행기가 어느 속도에 이르면 진동하고 흔들린다고 합니다. 음속 장벽을 넘을 때까지는 볼트가 튀어나가고 날개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그 음속 장벽을 넘고 나면 비행기가 아주 편안하게 날아간다고 합니다. 음속 장벽을 넘었을 때 말입니다. 비행기가 자기 소리를 추월할 때, 그것이 앞길을 막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수월하게 날아갑니다. 오, 오늘날 교회가 기도하여 죄의 장벽과 불신의 장벽을 넘기만 한다면, 일단 그 장벽을 넘었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세상은 진동하든 무엇을 하든 그대로 두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못 믿는 마음과 불신을 버리고 그 지점을 넘어가면... 세상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흔들립니다. “아, 성령 침례 같은 것은 없어.”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그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하는 그 복된 말씀을 바라보십시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그 진동을 지나 불신의 장벽과 죄의 장벽과 여러분을 가로막는 듯한 모든 장벽을 넘어설 때까지 계속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자유롭게 날아갈 것입니다. 그 뒤에는 비행기가 낼 수 있는 속도에 거의 한계가 없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날아갈 속도에 한계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신자에게 쏟아부어 주실 복에도 한계가 없습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내 아버지께서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이 그분께 왔을 때, 그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그분께 온 한 남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그분께서 그 사람에게 “네 이름은 시몬이고, 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비천한 나사렛 목수가 어떻게 그 사람의 이름이 시몬이고 아버지의 이름이 요나인 것을 알았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권능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무슨 편지에 쓰인 것을 보신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분,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들은 서둘러 산 너머로 가서, 먼 길을 온 다른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길을 오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나다나엘은 틀림없이 몹시 의심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앞에 이르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이분은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곁에서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라고 알려 준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느 책에서 읽으신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분, 처음부터 마지막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셨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아셨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아,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나왔을 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 여인이 말했습니다. “우물은 깊고, 선생님께는 물 길을 것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물을 구했을 것이다.” 여인은 자기가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분이 유대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유대인이 우리 사마리아 여자들에게 그런 것을 청하는 것은 관례가 아닙니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다가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영을 파악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너라.” 여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맞다. 네게는 남편이 다섯이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네 남편이 아니다.” 여인이 말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그러자 여인은 도시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와서 내가 한 일들을 내게 말해 준 사람을 보십시오. 이분이 메시아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당시 알려진 세상을 다니며 그런 사역을 하신 뒤 세상을 떠나실 때,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보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곧 눈에 보이는 것에 속하고, 지적이며, 교양 있고, 과학적인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예언입니다.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적으로 믿는 자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내가 시대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한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일도 할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위대한 하나님 아버지는 과거에 계셨던 분으로 그치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이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교회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과학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는 그 장벽을 넘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바라본다면, 바로 그 순간 불신의 진동을 통과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밤 이곳을 나가면서 더없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자유를 느끼고, 죄는 모두 사라지고 병도 나을 것입니다. 아, 참으로 놀라울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믿음에는 보상하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상을 주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저 소녀가 누워 있을 때,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병원 가운데 하나인 존스홉킨스 병원에 있었는데도 팔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서 백혈병을 없애 주셨다면, 그리고 여기서 기도한 지 한 시간 뒤에 같은 의사가 그 아이에게 온전히 건강해졌다는 진단을 내렸다면... 하나님께서 공정하실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등이 부러져 육십육 년 동안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루스벨트 씨처럼 걸었던 업쇼 하원의원, 그 사람을 환상을 통해 고쳐 주시고 휠체어에서 나오게 하셨으면서, 같은 처지에 앉아 같은 믿음을 가진 다른 사람은 그냥 두신다면 말입니다. 한 사람은 고쳐 주시고 다른 사람은 그대로 두신다면 하나님은 불공정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공정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친구 여러분. 우리가 그 음속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면, 누가 무슨 말을 하든 하나님께서 진리라고 말씀하셨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자리에 이를 수 있다면, 계속 나아가십시오.
저는 이 근처에 살던 어린 시절, 교과서에 있던 그 짧은 시를 늘 생각해 왔습니다. 제 또래인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이 기억하실 것입니다. 계속 항해하라. 항해하고 또 항해하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에게서 배들을 받았고... 그의 마음에는 세상이 둥글다는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증명할 수단도 없었지만, 그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배를 주면서 죄수 무리, 겁쟁이들을 함께 주었는데, 그것이 그의 교인들이었습니다. 뒤로 물러서는 무리, 낙심한 채 그의 용기마저 꺾으려는 무리였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는 세상 끝에서 떨어질 겁니다. 바다 밑에서 뱀이 올라와 이 작은 배들을 휘감고 바닥으로 끌어내릴 겁니다.” “그래서 나는 말하네. ‘용감한 항해자여, 말하시오. 무어라 말하겠소?’” 그는 말했습니다. “계속 항해하라. 항해하고, 항해하고 또 항해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들을 주시기 바랍니다. 과학계가 뭐라고 하든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교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계속 항해합니다. 장벽을 넘을 때까지 계속 항해하십시오.
예전에 여기 옛 교회에서 이런 짧은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나는 가르는 선을 넘어섰네. 세상을 뒤에 두고 떠났네. 교회가 믿음과 눈에 보이는 것에 따른 불신을 갈라놓는 그 선,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하는 그 선을 넘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떠납니다. 모든 염려와 모든 걱정,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말입니다. “저는 담배를 너무 오래 피웠습니다. 술을 너무 오래 마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간음하며 살아왔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너는 못 해. 너는 못 해”라고 하는 마귀의 그 장벽선을 일단 넘어서십시오. “나는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의 샘물을 값없이 마시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십시오. 그것을 뒤에 두고 떠나십시오.
병든 여러분, 이 기도 줄 저 기도 줄을 힘겹게 거치며 기도도 받고, 의사에게도 가 보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는데도 여전히 죽음이 문 앞에 머물러 있는 여러분. “의사가 무슨 말을 하든, 과학계가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게 약속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자리에 이르십시오. 여러분의 혼을 진동시키는 그 장벽을 넘어 자유로워지고, 여러분을 흔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되십시오. 그러면 제가 지금 이 강단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여러분은 순조롭게 치유에 이를 것입니다. 다시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쪽을 바라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다. 신유 같은 것은 없다. 당신은 나을 수 없다. 상태가 너무 나쁘다.” 그 위로 솟아올라 계속 나아가십시오. 모든 것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저 장벽을 넘어 오르십시오. 모든 밧줄과 모든 사슬이 끊어졌습니다. 모든 진동은 뒤에 남겨 두었고, 여러분은 자유롭습니다. 참으로 자유롭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바로 이런 일을 위해 교회에 먼저 사도들을 세우셨습니다. 그 뒤에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교사들과 목사들과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셔서 이 말씀을 확증하고, 그분께서 위대한 교사이심을 증명하게 하셨습니다. 제가 그가 철학박사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직 청소년인 아이보다 성경을 덜 알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 때 모든 바리새인이나 학식 있는 늙은 현자들보다 성경을 더 잘 아셨습니다. 그러니 지적인 생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긴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경에 약속하셨다면, 끝까지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다면...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셨다면...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 밤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그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내가 우물가의 여인에게 했던 바로 그 일을 너희에게도 할 수 있다. 내가 세상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모두에게 보여 주었던 그 동일한 표적을 이방인들의 시대에 다시 보여 주겠다.” 그분께서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셔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하셨는데, 다른 누구에게는... 우리에게는 지적인 믿음만으로 들어가게 하신다면 공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같은 표적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분께서 오늘 밤 오셔서 이 건물 안을 진동시키시고, 같은 표적들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신다면, 모든 죄인의 마음이 그 안에서 녹아내려야 마땅합니다. 모든 병든 사람이 일어나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진동이 일어나는 모든 선을 지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여 건강하게 하실 수 있는 그 통로로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이 일들을 생각하십시오.
자비로우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공중에 원자 하나도 없기 전부터 하나님이셨고, 더 이상 원자 하나 남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이실 분이시여. 세상을 지으시고 손으로 재시며 공간 속에 쏟아 놓으시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게 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오늘 밤에도 실패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참됩니다. 주 하나님, 구원과 마찬가지로 치유도 갈보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것임을 저희는 압니다. 저희는 바라보고 살아야 하며, 믿어야 하고, 저희가 신실하다는 것을 주님께 보여 드리기 위해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 밤 사람들이 믿어 자신들의 죄와 질병에서 구원받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일을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동안, 오늘 밤 이 안과 밖에 계신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주님, 저는 오랫동안 교인이었습니다(혹은 오랫동안 교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사실 제 마음을 흔드는 세상의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게는 성내는 기질이 있습니다. 제게는, 아, 마땅히 믿어야 할 만큼 믿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주님, 오늘 밤 그것을 제게서 거두어 주시고, 불신이라는 죄의 장벽을 넘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분께 손을 드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아, 사방에 손이 많이 올라옵니다.
주님, 저들의 손을 보십니다. 지금 저들에게 손을 들라고 말씀하신 성령께서 오셔서, 세상의 진동에서 저들을 자유롭게 해 주옵소서. 마비시키는 뱀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죄라는 뱀에게 물리는 것, 이 현대 세상의 유혹이 더는 저들을 꾀지 못하게 하옵소서. 바로 지금 그리스도께 눈을 들어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그러면 저희가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 병들고 고통받는 분들을 부르기 전에, 오늘 밤 여기 어떤 식으로든 병들거나 고통받는 분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 “오 하나님, 저도 그 장벽선을 넘게 해 주옵소서. ‘너는 해내지 못할 거야. 너는 얻을 수 없어’라고 말하는 마귀의 모든 생각을 지나 계속 나아갈 믿음을 주옵소서.” 손을 들고 “하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손을 모두 보십니다. 건물 안 곳곳에 손이 올라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이 사람들이 이것이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나 모세에게나 다른 누구에게 하셨던 것과 똑같이, 이들에게도 약속을 지키실 것임을 보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로 내게 걸어오너라”라고 하셨을 때, 그는 물속에 어떤 다리가 있는지 보려고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보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파도에 눈을 돌리자 가라앉으려 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밤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그 파도의 장벽을 넘어, 오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분께로 곧장 걸어가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옵소서. 이제 주님의 종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복과 구원, 육체와 영의 치유가 임할지 알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손을 드신 분들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늘 밤은 예배 진행을 조금 바꾸겠습니다. 어젯밤에는 사람들을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오늘 밤은 줄을 세워 몇 분을 강단으로 올라오게 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 예배가 끝나자마자 목사님이 예배를 맡으시면, 손을 드셨던 이삼십 분께 부탁드립니다. 이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손을 들 때 진심이었다면,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님, 믿지 못하는 마음의 모든 진동을 제게서 없애 주옵소서”라고 말씀드리면, 그분께서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과학 세계의 비행기도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도 영으로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인간적인 생각과 지적인 생각이 여전히 여러분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서는 그것을 믿지 않아. 이 교회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교회는 거짓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악의를 품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심판 때 여러분과 함께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잘못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여 드리고,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놀라운 일을 보겠습니다. 여기 기도받으실 분이 이백 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전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라는 이 메시지에 근거해서, 보이지 않는 분께서 자신을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신다면, 여러분의 혼은 모든 장벽을 넘어야 마땅합니다. 보이지 않는 분께서 여기서 여러분에게 자신을 보이신다면 말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뿐이었습니다. 우리 앵글로색슨족, 이방인들은 여전히 이교도였습니다. 우리는, 곧 우리 조상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도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오셔서 자신이 그들이 기다리던 바로 그분임을 증명하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그분을 알고 알아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똑같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자신을 알리신 방식은, 자신이... 그들이 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분을 죽이려 합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속사람이셨고, 예수님은 겉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것 외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 말씀을 압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는 것을 나는 행한다.”
그분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는지 보십시오. 베드로가 누구인지 말씀하시고, 나다나엘이 누구인지, 여기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나다나엘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교회라는 세상은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영매다. 마귀다. 바알세붑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용서받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들에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임할 때는 다르다. 그것을 대적하는 말 한마디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성령께서 오셔서 그분이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실 때 말입니다. 성령께서 그분을 증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우리가 이방인 경륜의 마지막 날들에 살고 있으며, 교회들이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음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오실 때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심을 믿습니까? 그분의 오심의 그림자가 땅 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 시대의 혼란입니다. 또 그분의 오심의 그림자가 교회 위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 일들은, 그분께서 오실 때 하실 일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백혈병으로 죽어 가며 누워 있던 아이가 오 분 만에 곧바로 살아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은 그분께서 오실 때의 그림자입니다. 땅속의 먼지가 다시 아름다운 젊음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림자일 뿐이지만, 그분께서 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벗어나 모든 사슬을 벗어 버립시다. 그분께서 오늘 밤 오셔서 사마리아의 여인과 유대인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신다면, 이방인인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여러분의 혼을 풀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분께 손을 들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치유’라고 말할 때, ‘구원’이라고 말할 때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물로 침례를 주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구원받을 길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사람은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물로 침례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침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목회자를 통해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고, 친히 내려와 여기 계심으로 그 말씀을 입증하시며, 자신이 여기 계신다는 표적들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치유받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으로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임합시다. 그리고 부디, 부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제가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로 기도받을 분들을 조금 불러 줄을 세우려고 합니다. 여기 한 무리가 있는데, 제 기억이 맞는다면 기도 카드를 백 장 나누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기도받으려고 여기 앉아 있는 분이 백 명이라는 뜻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낙심해서 떠나지만 않으시면 여러분 모두에게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할 수는 없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세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몇 분씩은 세울 수 있습니다. 네 분, 다섯 분, 여섯 분쯤, 이 강단 주위나 옆 통로에 위아래로 세울 수 있는 만큼 말입니다.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이 여기 계심을 증명하시려고 그때와 같이 그분들에게 행하신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믿어야 마땅합니다.
손을 드셨던 병든 여러분 모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사람의 몸을 통해 하신다면... 얼마 전 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분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빌리 그레이엄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문에 난 기사에서 누군가가...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실제로 세 하나님이 계시는지 아니면 한 하나님만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아직 계시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 그 신문이 있습니다. 오, 형제여, 세 하나님이 계시다고는 결코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 한 하나님의 세 직분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직분, 아들의 직분, 성령의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낮추어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불기둥 안에서 산 위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분은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시고, 아버지의 직분에서 아들의 직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으로 자신의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세 하나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 아시겠습니까,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지금 잘 들으십시오,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볼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아는 분이 얼마나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하시려고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내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분은 동일하십니다. 같은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계속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여기에 또 다른 교회 시대, 여기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포도나무에서 나온 가지들입니다.
거기 그 가지 안에 계신 그분을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불기둥이셨습니다. 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 이후,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내려가는 길에 무언가가 그를 쳐서 쓰러뜨렸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사도행전 8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가 올려다보았을 때, 광야에 있던 그 불기둥,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빛기둥이 되어 그의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가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다.” 그분은 불기둥이셨습니다. 제가 태버내클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신성을 모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로 그분, 같은 영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아십니까? 과학계를 통해 얻은 그분의 사진이 여기 걸려 있습니다. 그때 행하셨던 표적들이 그분께서 여전히 자신의 교회 안에 살아 계심을 보여 줍니다. 다른 종류의 표적이 아니라 같은 표적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지적인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지만 너희는”, 음속 장벽을 넘어 말씀을 믿게 된 여러분은, “나를 볼 것이다.” 오늘 밤 여러분이 그 ‘너희’에 속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이제 이런 말씀을 전한 뒤에 남은 예배에서는, 주님께서 참된 말씀을 하셨음을 확증하시는 분이 주님 자신이셔야 합니다. 이 복들을 허락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 얼마나 많은 분이... 여기 기도 카드를 가진 여러분, 한꺼번에 모두 일으켜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시면, 오늘 밤과 내일 밤, 일요일과 일요일 밤 등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오늘 밤은 몇 분만 앞으로 모시면서 시작합시다. 카드를 가진 분들 가운데 걸을 수 없는 분들은, 제가 한 분씩 불러 여기 서실 곳을 정해 드릴 텐데, 번호를 부를 때 걸을 수 없으면 손을 드십시오. 그러면 여기 안내하시는 분들이 가서 여러분을 안고 오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기도 카드 1번은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기도 카드 1번을 가지고 계시면 손을 드십시오. 손을 들어 주십시오. 분명히... 누군가 어쩌면 못... 제가 잘못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빌리는 어디 있습니까? 어쩌면... 뭐라고요? [누군가 브래넘 형제님에게 말한다.] 예. 좋습니다. 걸으실 수 있으면, 선생님, 바로 여기로 오십시오. 기도 카드 2번, 손을 들 수 있으면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3번. 바로 여기입니다. 걸으실 수 있으면 여기로 와 주시겠습니까? 걸으실 수 없으면 계속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분들 중 누군가가 가서 안고 오실 것입니다. 3번입니다.
4번. 그 문자가 무엇입니까? [누군가 “J입니다”라고 말한다.] J. 좋습니다. 4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뒤에 계신 여자분이 벌써 일어나셨군요. 5번은요? 빌리나 리오나 진, 우즈 형제님이나 누구든 기도 카드를 나누어 주러 오면, 여기 여러분 앞에 와서 카드를 함께 섞고 여러분이 원하는 카드를 나누어 줍니다.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카드를 받으시면 됩니다. 여러분은 어쩌면... 옆에 앉은 분은 1번일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 분은 15번일 수도 있고... 이 뒤에 계신 분은 2번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섞여 있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기도 카드 3번, 누가 가지고 계십니까? 여기입니까? 좋습니다. 4번은요? 5번은요? 5번? 6번은요? 저 맨 뒤에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뒤에 계신 분들, 그 젊은 여자분이 지나오시도록 길을 내어 주십시오. 7번,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자매님 카드가 7번입니까? 좋습니다. 8번, 손을 드실 수 있으면 들어 주시겠습니까? 바로 여기 여자분이 8번이군요. 좋습니다, 자매님. 자리에 서 주십시오. 9번은요? 여기 이 여자분이군요. 좋습니다, 자매님. 10번은요? 좋습니다. 10번입니다. 그만큼만 하겠습니다. 그쪽이 조금 붐비고 있으니까요. 조금만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자, 10번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마... 자매님이 10번을 가지고 계십니까? 앞으로 쭉 오시면 바로 거기 계신 신사분들이 줄에 들어오게 해 주실 겁니다. 자, 좋습니다... 몇 번입니까? 9번이 빠졌군요. 아, 거기... 그분이 걸을 수 없으면 거기 앉아 계시게 하고, 번호를 부를 때 모셔 오십시오. 괜찮습니다. 자매님, 오래 서 계실 수 없으면 번호를 부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그냥 앉아 계십시오. 괜찮습니다. 걸을 수 없으면 번호를 부를 때 누군가 여기로 안고 오든지 어떻게든 할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몇 번... 빠진 다른 번호가 있었습니까? 그게 전부군요. 좋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거기가 줄 끝입니까? 그러면 좋습니다.
이 줄에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 줄에 서 계신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심으로 믿습니까? 그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고, 지금 죽어 계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같은 일을 지금도 행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까? 그분께서 자신의 일을 계속하시려고 자신의 영을 교회에 보내셨음을 믿습니까? 저와 처음 만나는 분, 제가 모르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좋습니다. 모두 손을 드셨습니까? 저를 모른다고 모두 손을 드셨지요? 좋습니다. 저는 저분들과 처음 만납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이 건물 안에 계신 분 중에 저와 처음 만나는 분, 제가 모르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누구든, 여기 앞에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말입니다. 보니 회중의 절반이 넘는 분들이 처음 만나는 분들이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저기 회중석에 계신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살아 계신다면... 이것이 성경에 있는 이야기인지 보십시오... 한 번은 몸에 큰 문제가 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증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십이 년쯤,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앓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에게 자기 돈을 전부 써 버렸습니다. 여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두 소녀가 있습니다. 얘들아,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음을 믿니? 오늘 밤 그분께 도움을 바라고 있니? 기도 카드는 받았니? 그래. 아직 번호를 부르지 않았구나. 괜찮다. 조금만 기다리렴. 알겠지? 좋아. 의심하지 말고 이제 믿기만 하렴. 오늘 밤 네 카드를 부르지 않으면 내일 밤 다시 오렴. 계속... 어떻든 계속 오렴. 차례가 올 거야. 카드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란다. 믿기만 하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렴.
저기 회중석에 계신 분들 가운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은, 여기 기도 카드가 없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기를 보십시오. 카드가 없는 여러분, 만일 여기 이분들이... 저는 이분들에게 성경 말씀을 근거로 삼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어젯밤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이어야 합니다. 자, 여러분에게 없는 것이... 여기 기도 카드를 가진 분들, 남자든 여자든 이분들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뜻대로 성경 말씀에 관해 물으려고 합니다.
저기 기도 카드가 없어서 오늘 밤 기도 줄에 서지 못할 여러분... 내일 다시 기도 카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가능한 한 많이 마칠 것이고... 여러분이 기다려 주시기만 하면 어떻게든 여기로 모셔서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그저 가만히 서서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저를 아십니다”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성경에는 혈루증을 앓던 이 여인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조용히 있으라고 말리는 사람들 무리를 헤치고 지나갔습니다. 여인은 선생님, 곧 주 예수님께 가고 싶었습니다. 마침내 그분이 계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여인이 마음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댈 수만 있다면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본 분이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께서 무리와 함께 가고 계셨는데, 얼마 뒤 그 여인이 그분께 손을 대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때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것이 여인의 기대였습니다. 거기에 손을 대는 순간 음속 장벽을 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인은 자유로워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하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 일을 내가 했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밤 자신을 나타내시면 여러분도 같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믿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믿기만 하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 여인은 아마 회중 가운데 어디론가 걸어 나가 앉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하며 그분을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략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니요? 모두 주님께 손을 대고 부딪치고 있지 않습니까? ‘안녕하세요, 랍비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랍비님.’ ‘안녕하세요, 예수님, 갈릴리 선지자님. 만나서 참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모두 주님께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다르게 내게 손을 대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접촉이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손을 대면서 음속 장벽을 넘어섰다. 나는 효능을 느꼈다. 몸에 힘이 빠졌다. 내게서 힘이 나갔다.” 그분께서 둘러보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자신에게 손을 댄 사람을 찾을 때까지 회중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러고는 여인의 상태를 말해 주시고, 여인의 믿음이 여인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상은 없었느냐고요?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저 여인의 믿음이 여인 자신을 구원한 것을 아셨습니다. 거기에 있던 모든 믿음이 끌어당기는 힘보다 그 여인의 믿음이 끌어당기는 힘이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동일하시다면 같은 일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이 그분인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분이십니까? 어디에... 줄을 잠깐 세워 두십시오... 네빌 형제님이십니까? 아, 그러면 됐습니다. 선생님이 첫 번째 분이십니까? 좋습니다. 괜찮으시면 몇 걸음만 더 가까이 오십시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우리가 서로 모른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러니 이번이 처음 만나는 것입니다. 제가 이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제가 아는 한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완전히 처음 만나는 분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큰 믿음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저는 위선자로 드러나고 성경은 거짓이 됩니다.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떤 지적인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선생님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모두도 그렇게 하십시오. 똑같이 하십시오. 실패할 수 없습니다.
저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 평생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한 사람이 가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로 왔습니다. 그가 데려온 사람의 이름은 나다나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제가 그 말을 한다면 “정직한 사람, 그리스도인 신자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주님께서는 평생 저를 본 적이 없으신데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가 입은 옷을 보고 아신 것이 아닙니다. 동방 사람들은 모두 옷을 똑같이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었고, 이집트 사람일 수도 있었으며, 여러 다른 민족의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다. 정직하며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 그것이 어제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 오늘도 동일하시며 약속하신 대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이 사람에게 알려 주신다면... 이분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죽어 가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니 그분께서 여기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예수님께서 살아 계셔서 이분에게 말씀해 주신다면... 맞는지 아닌지는 이분이 판단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모두 그분께서 여기 눈에 보이게 계심을 믿겠습니까? 그것이 그분께서 계시는 모습입니다. 지금 그분께서는 육체의 몸으로 자신을 보여 주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영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거기서 자신의 사진이 찍히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그 사진은 과학계에서 워싱턴 D.C.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시던 동일한 하나님의 천사, 동일한 불기둥께서 빌립에게... 아니, 나다나엘에게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같은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모두 잘 이해하셨습니까? 좋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나님이시며 저희가 주님의 종인 것을 알게 해 주옵소서. 주님은 저희를 사랑하시며, 이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의 장벽을 넘어 주님의 영광을 위해 구원받고 치유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베드로가 ‘아름다운 문’이라는 문에서, 어머니 태에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에게 했던 말처럼 하겠습니다. 그는 “우리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믿게 하고, 주의를 끌어 자신을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여인의 주의를 끌어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마실 물을 내게 달라”라고 하셨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모른다면, 선생님은 그저 저기 회중 가운데 계신 한 사람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모르는데도 주님께서 선생님이 살아오면서 한 일이나 바라는 것, 경제적인 일이든 건강이든 무엇이든 제게 설명해 주시고, 그것을 참되고 분명하게 알려 주신다면, 선생님은 그분께서 선생님이 구하시는 것을 주시려고 여기 계심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임하기 시작하실 때까지 기도하고 계십시오. 예, 이분이 보입니다. 곁에 작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 사람이 이분의 관심사입니다. 또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받고 싶으시군요. 여자아이, 어린 소녀입니다. 선생님은 이 고장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어딘가 큰 호수 근처에서 오셨습니다. 아주 큰 도시 근처에 있는 도시에서 오셨는데, 거기에 큰... 뉴욕주 버펄로입니다. 뉴욕주 버펄로 근처에 계십니다. 선생님은 고혈압이 있습니다. 그것이 선생님이 앓고 있는 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선생님은 홀든 씨입니다. 그것이 성함입니다. 돌아가셔서 구하신 것을 받으십시오. 그 손수건을 아이에게 얹으십시오. 그러면 끝날 것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분께서 눈에 보이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같은 예수님, 같은 열매, 같은 표적,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같은 일입니다. 다음은 여자분입니다. 그분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저도 이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납니까? 그렇습니다. 밖에 계신 분들도 아시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번이 처음 만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요? 저는 조금 전 그 남자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이었든 그분의 치유에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 남자분의 믿음이 한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은사일 뿐입니다. 지금 이 건물 안에는 엘리야가 게하시의 눈을 열어 주었을 때 그가 보았던 것과 같은 천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 안에 주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지금 행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그 여인에게 잠시 말씀하시다가 무엇이 문제인지 아셨습니다. 저도 자매님께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매님과 처음 만나고 자매님을 모른다면, 그분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자매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자매님의 주님께서 제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이라고 믿으시겠습니까?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방금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여기, 바로 저기 회중석에 앉아 있는 여자분입니다. 체격이 좀 있는 분입니다. 손을 들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에 문제가 있고 등에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앉아 계십니다. 안경을 쓰고 어두운색 정장을 입으신 분, 바로 이 줄 끝에 계신 분입니다. 손을 들고 계신 자매님, 그것이 자매님의 병이었습니다. 맞으면 이렇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제가 자매님을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자매님은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분께 손을 대신 것입니다. 저는 자매님에게서 이십 피트 떨어져 있지만, 자매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 그분께 손을 대셨습니다.
이제 나머지 여러분도... 기도 카드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앉아 기다리던 여자분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하십시오. 자매님은 방금 여기 있었던 남자분의 아내입니다. 두 분이 같은 집에 계시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은 신경성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또 의사에게 가서 검사를 받으신 것이 보입니다. 몸의 아랫부분을 검사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혹들이 있다고 합니다. 위와 여성 생식기관에 있는데, 수술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매님은 믿음을 가지고, 여기 오셔서 제가 기도해 드리면 나으리라고 믿으셨습니다. 맞으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여기 있는 이분을 아시고 그 상태를 아시는 그분께서 이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리 오십시오. 주 예수님, 오 하나님, 오늘 밤 이분의 믿음과 기쁨이 충만해지게 해 주옵소서. 완전히 자유로워져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과 구원을 가져다주게 해 주옵소서. 저는 이분을 보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악을 이분에게서 내쫓습니다. 아멘. 이제 느낌이 다르시지요. 계속 그렇게 느끼시며 기뻐하십시오. 그것이 자매님에게서 완전히, 영원히 떠날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잠시만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제가 알기로 우리는 처음 만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둘 다 아십니다. 자매님을 아시고 저를 아십니다. 그분께서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해서는 안 되는데 했던 일이나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던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그러나 제가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을 자매님은 아십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분별을 통해 와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 저는 참으로 기쁩니다. 자매님도 기도가 필요하지만, 자신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을 위해 부탁하고 계십니다. 아드님은 여기에 없습니다. 큰 도시, 아주 큰 도시에 있습니다. 동부에 있습니다. 제가 가 본 곳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대전도 집회를 했던 곳, 필라델피아입니다. 맞습니다. 아드님은 설교자입니다. 그를 수술하려고 하며, 탈장이 있는지 검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구하시는 일을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오 영원하신 하나님, 표적과 이적으로 이 여인의 믿음을 확증해 주옵소서. 이분이 간구하는 이 일에서 구출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자매님이 구하신 것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경건한 마음으로 계십시오. 손수건을 코에 대고 머리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시는 자매님, 주 예수님께서 자매님을 낫게 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여기 안경 쓴 남자분 옆에 앉은 여자분, 푸른빛 옷을 입으신 자매님,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것이 맞았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가셔서 나으십시오. 자매님의 믿음이 자매님을 낫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매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제게 계시하실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여러 가지 병이 있고 신경이 아주 예민합니다. 복합적인 증상과 부인병, 여성 질환이 있고, 거의 신경쇠약 지경입니다. 상태가 몹시 나쁩니다.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은 아니지만 인디애나주에서 오셨습니다. 라피엣입니다. 엘리슨 부인, 돌아가십시오. 병이 자매님에게서 떠났습니다. 집에 가셔서 하나님께서 자매님에게 행하신 일을 보여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여기 오셨는지 제게 알려 주실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렇게 하시면 온 마음으로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자신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아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혈액 종양(blood tumor)입니다. 맞지요? 제가 하나님께 그 아기에게서 그것을 쫓아내 달라고 구하면 아기가 살 것을 믿으십니까? 머리를 숙이십시오. 아기는 너무 어려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 주 하나님, 사람들이 주님께 아기들을 데리고 왔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 동일한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 계십니다. 저는 이 어린 아기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이 마귀를 정죄합니다. 사탄아, 아기를 놓아주어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기에게서 나와라. 이제 아기를 데려가십시오. 믿지 못하는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기에게서 떠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거기 앉아 계신 어르신, 담낭에 문제가 있는 어르신, 저는 어르신을 모르지만 그분은 아십니다. 담낭 발작으로 고통받고 있고 가슴에 심한 압박감이 있습니다. 맞으면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저를 그분의 선지자로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 집회에서 집으로 돌아가셔서 다시는 그것으로 고통받지 마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병이 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계속 믿고 계십시오. 그런데 무언가가 아주 강하게 다가옵니다. 너무나 강하게... 이 여자분 곁에 흑인 여자분이 서 있습니다. 자꾸 희미해집니다... 흑인 여자분이 보입니다... 바로 이 뒤에 앉아 있습니다. 관절염과 복합적인 질환이 있습니다. 저기 벨 부인 바로 옆에 앉아 있습니다. 검은 모자를 쓴 분입니다. 저는 그분을 모릅니다. 그러나 자매님, 방금 그분께 믿겠다고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을 믿으시면, 그것은 끝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이심을 여러분이 알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여자분 바로 뒷줄에 목에 문제가 있는 남자분이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 믿으시면 하나님께서 낫게 하실 것입니다. 믿기만 하십시오. 믿으십니까?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선생님과 처음 만나지만 그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하나님을 믿기만 하십시오. 이제 그 불신의 장벽을 넘을 수 있습니까? 지금 성령께서 곧바로 들어오셔서 온전히 다스리시게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으시면 당뇨병이 떠날 것입니다. 가시면서 기뻐하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은 골짜기의 백합이시며 새벽별이십니다.
그 빈혈 증상이 낫는다고 믿으시면 그것이 떠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가시면서 기뻐하십시오. 믿으십니까? 온 마음으로 믿읍시다. 믿으시면 가서 저녁을 드십시오. 위에 있던 그 궤양이 떠났습니다. 가서 드십시오. 믿으십시오. 믿으시면 죽지 않아도 됩니다. 그 암이 떠났습니다. 믿으십니까? 가서 기뻐하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일어서십시오. 얼른 일어나십시오. 손을 하나님께로 높이 드십시오. 이제 한마음으로 모든 장벽을 넘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기 계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병과 질환이 떠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방식대로 기도하십시오.
오 주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여, 이제 이 회중을 주님께 데려옵니다. 저는 마귀를 정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심을 선포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의심과 미신과 불신과 죄의 모든 더러운 영이 이 건물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사탄아, 나와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의지하여 네게 엄히 명한다. 이제 여러분 한 분 한 분, 건물 안 어디에서든 서로에게 손을 얹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낫게 하실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치유받았다고 믿는 분은 모두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좋습니다, 네빌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