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밤 이곳에서 주님을 섬기는 예배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오시라고 초청해 놓고도 앉을 자리가 없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방금 제가 올라올 때 보니 창문 둘레와 거리 이곳저곳에도 사람들이 있었고, 건물 안에 들어올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여기는 아주 조그마한 교회입니다. 이곳 신문에조차 광고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몇몇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 기도를 받으러 오겠다고 하기에 그냥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루이빌에서 왔다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지요. 그렇게 소문이 퍼지는 것 아시지요. 저 아래 고등학교를 빌리고 싶었지만, 학교가 수업 중이어서 빌릴 수 없었습니다. 빌릴 수 있었다면 광고를 냈을 것입니다. 이 지역에 사시는 여러분을 못 오시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장소가 몹시 비좁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빌릴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뒤쪽에 머시어 씨 일행이 가져다 놓은 책과 녹음테이프 등을 구하실 수 있는 것은 오늘 밤이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일요일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성경학교 순서가 끝나는 대로,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아침에는 복음 전도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아홉 시 삼십 분에 시작하지요? 네빌 형제님, 그렇습니까? 아홉 시 삼십 분에 성경학교가 시작되고, 각 반의 수업이 끝나는 즉시 죄인들을 부르는 복음 전도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 밤부터 저녁 시간은 주로 병든 분들, 도움이 필요한 분들,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내일 밤에는, 어떻게든 가능하다면, 나눠 드린 기도 카드를 모두 받으려고 합니다. 오셔서 기도 카드를 받으신 모든 분들을 위해, 메시지를 마친 뒤 일부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다른 분들을 앞으로 나오게 해서라도 기도 줄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밤에 쓸 기도 카드는 아침 성경학교가 끝난 뒤에 나눠 드립니다. 성경학교가 끝난 직후, 아마 열한 시 삼십 분쯤에 내일의 기도 카드를 나눠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가족이나 다른 분들이 기도를 받으러 오실 예정이라면, 아침 메시지에 참석하지 못하시더라도 늦어도 열한 시 삼십 분쯤에는 이곳에 와 계시게 하십시오. 물론 평소에 다니시는 경배 장소가 있다면, 저희는 여러분을 그곳에서 끌어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실지는 아주 자유롭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오늘 무척 바빴습니다. 조금 전에 사람들이 와서 “지금 내려가시면 곧바로 설교를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미 이 작은 태버내클이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 말씀드릴 만한 구절 몇 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기도를 받으신 분들과 집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서 소식이 돌아오고 있는데, 이렇게 작은 곳에서 참으로 큰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꼭 앞으로 나와 직접 기도를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뒤쪽 청중석에 계신 분들이 여기 강단에 올라오신 분들보다 더 잘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그렇게 받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오늘 밤 저는 “믿음은 우리의 승리”라는 주제를 택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것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승리입니다.” 승리에 관해 말하자면,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온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큰 승리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파리의 항복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파리의 개선문으로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독일 군인들이 다리를 곧게 뻗는 거위걸음으로 개선문을 통과하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을 만큼 대단한 승리였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차렷 자세로 서 있었고, 머리 위의 하늘은 온통 새까맸습니다. 날아가는 비행기들 때문에 하늘이 가려졌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뒤, 그토록 대단한 승리의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집회에 갔을 때, 러시아인들이 촬영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를린이 러시아에 항복하던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군사 장비들이, 회전할 수 있는 거대한 대포를 장착한 그 큰 전차들이 베를린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생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 어려웠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차들이 하나같이 정확하게 조준 사격을 하며, 거대한 메뚜기 떼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베를린을 완전히 초토화했습니다. 그다음 전차들을 철수시키고 보병들이 들어가 소탕한 뒤, 사람을 보내 스탈린 씨를 데려왔습니다. 그를 태운 비행기가 도착하여 착륙하자, 러시아 군인들은 승리자로서, 러시아의 승리 표시인 몸을 비틀며 내딛는 그 걸음으로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잿더미가 된 베를린의 거리를 수만 명의 군인들이 행진하는 동안 스탈린은 차렷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독일 여자들은 거리에서 강간을 당했고, 어린아이들은 죽임을 당했으며, 그중에는 불에 타 죽은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러시아에는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정복자 나폴레옹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 년 전, 약 오 년 전에 워털루 근처에 들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작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어 나폴레옹의 삶을 읽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인들을 미워했습니다. 섬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인들에게 복수하려고 프랑스로 건너왔지만, 위대한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사였지만, 성공에 도취되었습니다. 책에 따르면, 그는 자기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모두 죽였기 때문에 몹시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어린 아기들을 재울 때 “무서운 귀신이 너를 잡으러 온다”라고 하는 대신 “나폴레옹이 너를 잡으러 온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눈이 초롱초롱한 꼬마들은 그 무서운 괴물 나폴레옹을 생각하며 재빨리 이불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그가 거둔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금주를 주장하던 사람이 서른세 살에 알코올 중독자로 죽었습니다. 그런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올바르게 이룬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에서 좋은 것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경기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올림픽이나 다른 운동 경기에서도 경주에서 일등으로 들어왔더라도 규칙대로 경기하지 않았다면 실격이라는 것은 여러분 모두 아십니다. 규칙을 올바로 지켜야 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경기의 규칙을 어기면서 이기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여러분이 이곳에 보내진 목적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고,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고, 세상이 내놓는 유혹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와 같습니다. 학교에 갔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특정한 모양의 옷, 원피스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런 옷을 입으면, 학교의 다른 아이들의 유일한 소망은 그 아이를 따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텔레비전에서 한 여자가 특정한 차림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옷을 입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바라는 전부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품는 소망은 거의 거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새 직장을 얻거나 월급이 오르거나, 텔레비전이나 새 차를 장만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 것들도 좋을 수 있지만, 인생에는 그런 것들보다 더 높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높은 뜻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한번 앉아서 애초에 왜 이곳에 왔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이곳에 보내 주실 만큼 친절하신 분이 누구시든, 우리는 그 사실을 생각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여쭈어야 합니다. 우리가 와서 이루어야 할 목적,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정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세상을 따라가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이깁니까? 세상의 유행을 따라감으로써가 아닙니다. 성경은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한 부랑자가 집 문 앞에 왔습니다. 그가 “샌드위치 하나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물론이지요. 들어오시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를 주는 대신 식사를 차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있는 것으로 마련할 수 있는 만큼 차려서 그를 앉히고 먹게 했습니다. 그가 먹는 동안, 이곳저곳 떠도는 사람이기에 말을 걸어 보려고 “어디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어깨를 조금 으쓱하더니 “딱히 어디라고 할 데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먹던 것을 멈추고 저를 올려다보며 “딱히 가는 데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음식을 크게 한입 삼킨 다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모자가 놓이는 곳이 바로 제가 쉬는 곳입니다.” 저는 “그렇군요. 이렇게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 이십 년은 넘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더 낫게 하려는 뜻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태도가 거의 그와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표류하는 사람들, 떠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떠다니는 나무토막, 유목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았습니다.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은 온갖 쓰레기에 걸립니다. 교회에서든 어디에서든 떠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그렇게 합니다. 인생의 흐름과 같은 강물을 보십시오. 떠내려가는 수많은 나무토막이 쓰레기 더미마다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나무로 만든 배는 그 옆을 지나갑니다. 보시면 그 나무는 배를 만든 장인의 손으로 다듬어지고 모양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모양만 갖추어진 것이 아니라, 주인이 이끌고 동력이 밀어 줍니다. 우리 모두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뜻을 품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이신 장인께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고, 다스리실 수 있고, 동력을 공급하실 수 있는 것으로 만드시도록 기꺼이 맡기시겠습니까? 주님의 손으로 다듬어져 다르게 만들어진 이 작은 배가 얕은 물가의 풀숲에 걸리더라도, 그 뒤에는 동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작은 배의 동력을 켜 다시 깊은 물로 밀어 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시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우리가 그분께서 일하시도록 잠자코 서 있지도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주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제 방식대로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가입하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그 교회가 무엇을 믿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하는지, 온전한 복음을 지지하는지, 아니면 일부만 골라 거기에 신조를 덧붙이는지 살펴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떠다니고 표류하니 결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밤 이 건물 안팎에 계신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라는 목적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을 만나셔야 할 하나님을 뵐 준비를 지금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께서 손수 만드신 걸작으로 그분을 뵙든지, 아니면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으로서 마지막 목적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삶을 그저 이리저리 표류하고 떠다니며 더 좋은 직장을 얻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새 텔레비전이나 더 좋은 차를 장만하는 데만 쓰지 마십시오. 인생의 의미는 그 이상입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가입하니 나도 그러겠어”라고 말하는 데 인생을 쓰려 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가입할 때는 먼저 그 교회가 무엇을 지지하는지 살펴보고 알아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는 곳입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 주신 모든 원칙을 지지하는 곳입니까? 그렇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저 흘러들어 가서 물결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적으리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리라.” 우리에게는 무언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오늘날에도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아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은 그저 그 회중과 함께 떠다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올려다보는 것입니까?
다니엘은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비록 고향을 떠나 다른 민족의 노예가 되어야 했지만... 그래도 다니엘은 마음속에 작정했습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하든지 바빌론의 죄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오, 우리에게도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작정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복을 알아내어 내 것으로 받겠다. 성경이 내가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겠다. 그저 떠다니지는 않겠다.”
얼마 전에 버디 로빈슨 어르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훌륭하고 사랑이 많으며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이 성령에 대해 가르치므로, 그분은 성령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옥수수밭을 갈다가 나이 든 노새 엘리를 멈춰 세우고 옥수수 밭고랑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게 성령 침례를 주시지 않으면,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바로 여기에 제 뼈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속에 작정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진지하게 나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그런 결심이 서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들을 여실 것입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나아가야 하며, 목적이 있어야 하고,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마음속에 작정하자 마귀는 그 결심을 증명해 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심이 굶주린 사자 앞에서도 굳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든 하나님께 나아와 마음 깊은 곳에 확고한 믿음을 얻으면, 그 믿음은 죽음의 입 앞에서도, 질병의 입 앞에서도, 슬픔의 입 앞에서도 굳게 설 것입니다. 굳게 설 것입니다. 믿음이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에 특별한 목적도 없이 아버지와 친구들과 함께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빌론에서 내려온 그들은 시날에 정착했습니다. 거기에는 그들이 세운 탑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기도하던 중에, 틀림없이 하나님께 닿을 때까지 기도하여 마침내 그분의 손에 닿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믿음으로 했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방주를 만드시고 노아가 물을 타고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신다.” 그는 자신이 머물던 이교도들의 땅 어딘가에서 하나님의 손에 닿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에게 한 도성이 있다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도성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평생 세상에 대하여 순례자요 나그네였다고 읽습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그 도성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언가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았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었기에 새 예루살렘을 미리 보았습니다. 그래서 등에 짐을 지고 길을 떠나 방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떠돌아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만드신 도성, 영원한 도성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곳을 찾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싸움이 끝났을 때, 그는 그 도성의 왕을 만났습니다. 그 왕은 그에게 성만찬, 곧 빵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이셨습니다. 오, 하나님의 약속에 속한 어떤 것이든 마음속에 작정하면 반드시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혼이 죄와 의심, 오르락내리락하는 삶과 혼란에 시달려 왔고, 여러분 속에서 무언가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곳이 어딘가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왜 교회에서 교회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떠돌아다니십니까? 그저 천국에 닿을 때까지 무릎을 꿇으십시오. 어젯밤 말씀드렸듯이 “음속의 장벽을 넘어가십시오.” 그러면 인생에 목적이 생깁니다. 교회에 속하는 데도 목적이 있고, 침례를 받는 데도 목적이 있으며, 무엇을 구하는 데도 목적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고 참되시며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음성, 자신의 말씀으로 그것을 아브라함의 마음에 넣어 주셨다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 앞에도 그것을 놓아 주셨습니다. 또 성령의 증언, 곧 표적과 이적으로 성령께서 다시 임하시는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찾아 더 헤매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어떤 것이든 필요하다면, 그분은 오늘 밤 그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더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임재해 계십니다. 그분의 영께서 여기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구하는 것을 주시려고 기꺼이 준비하고 계시며, 주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왜 더 기다리시겠습니까?
그분께 나아올 때는 떠다니는 사람처럼 나아오지 마십시오. “가서 한번 해 보고 되는지 보겠어.” 그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려놓고 이런 결심으로 나아오면 다릅니다... 세상과 죄, 불신과 혼란과 의심에 지쳐, 영원한 반석에 닻을 단단히 박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끌어들이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무엇이든, 병과 질환, 심지어 죽음 자체까지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죽음이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뜻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너희가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네가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땅속에 죽은 채 누워 이미 썩기 시작했던 사람이 나사로가 아니었습니까? 그날 밤... 아니, 그날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내가 네게 의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죽음을 이깁니다. 믿음은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질병에 대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걱정에 대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혼란에 대한 승리입니다. 믿음은 세상에 대한 승리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이 그 글을 쓸 때는 나 같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가 겪는 일들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가 똑같은 사람들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일들을 이겨 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들을 제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세상 전체를 말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거기에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 위로 올라가십시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여기 계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며 주 예수님의 부활을 보여 주십니다. 또 여기에는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저 떠다니는 믿음도, 믿는 체하는 믿음도 아닌, 참된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은 정복자입니다. 믿음은 이기는 자입니다. 단순히 화해를 주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믿음은 무엇을 합니까?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정복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복과 승리는 같습니다. 정복한다는 것은 “쳐서 쓰러뜨리고,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을 뜻합니다. 한때 여러분을 지배하던 죄를 이제는 여러분이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꺾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보다 더 큽니다. 오, 지금 제 마음에 신앙의 감격이 차오릅니다. 죄인과 구원자 중 누가 먼저였습니까? 구원자입니다. 구원자는 죄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치유자와 질병 중 무엇이 먼저였습니까? 질병보다 강하지 않다면 치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치유자이므로 질병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마귀의 모든 저주를 이기는 승리입니다. 믿음이 승리입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여러분의 교회를 믿는 것도, 신조를 믿는 것도, 어떤 사람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이 승리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승리입니다. “제 팔은 여전히 불구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믿음이 승리입니다. “저는 아직도 아픕니다.” 그래도 믿음이 승리입니다. 오, 믿음은 세상을 이깁니다. 기도로 하나님 안에 올라가 그것이 발아래 정복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때는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겼습니다. 오십 마일이나 되는 넉넉한 활동 공간이 있습니다. 그때는 자유롭게 항해합니다. 술주정뱅이로 위스키의 노예였던 여러분도 그때는 그것을 다스리는 주인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술을 마시게 했던 그 술 마귀가 지금은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믿음을 얻으면, 믿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얻으면, 그때는 그가 여러분의 종이 됩니다. 담배를 끊지 못하는 여자분들과 남자분들, 여러분이 믿음으로 그것을 이기는 자리에 이르면, 그때는 여러분이 그것을 다스릴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여자분은 이 제단에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계속 찾아왔습니다. 좋은 분이지만 오래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도저히 그것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앞으로 나오면 제가 함께 기도했지만, 아무래도 이기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여기서 그분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위험한 일이 생기겠습니다.” 그분은 “브래넘 형제님, 저는 울기도 하고 간청하기도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그저 감정에 치우쳐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고 안수하면 그분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다시 만나면, 담배 연기에 사람이 쓰러질 지경이었고 손도 여전히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분은 저 아래에서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야위어 가더니 아주 앙상해졌습니다. 의사가 진찰하더니 “암입니다. 담배를 피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앞두고 거기 누워 있었습니다. 그제야 진지하게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밤 이 교회를 나가서 감리교나 침례교에 가입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여기 앉아서 “나는 그냥...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내게는 아무 잘못도 없어”라고 말하는 동안에는, 여러분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빛에 비추어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진지하게 나서게 됩니다. 이곳을 나가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면, 저 뒤에 있는 의사가 일어나 다가와 살펴보고 “심장마비입니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진지해질 것입니다. 그 여자분도 바로 그런 때에 진지하게 나서야 했습니다. 그분이 지금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 뒤에 계신 로버슨 형제님과, 여기 계신 우드 씨, 우드 형제님은 이 근처 어딘가에 앉아 계십니다. 그분들과 저는 트럭을 타고 어딘가 사냥하러 가던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저 높은 노브스 구릉 지대를 지나 그분이 있는 곳으로 가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그분은 꿈을 꾼 뒤였습니다. 성령께서 방 안으로 들어오시고 그분이 정말로 진지하게 나서자, 그때부터는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체중도 여러 파운드 늘었고, 암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믿음입니다. 제가 여기서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는 왜 이기지 못했습니까? 그분이 그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암에 걸렸고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진지하게 나섰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나설 거라면 왜 그렇게 오래 기다립니까? 왜 지금 진지하게 나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두십시오. 그 여자분이 저를 믿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패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믿음을 바꾸어 브래넘 태버내클도, 윌리엄 브래넘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두었을 때, 비로소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두려움과 의심 위로 올라섰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오, 그분은 이겼습니다. 믿음이 이기는 승리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런 것들 때문에 스스로 혼란에 빠지려 하는가?” 개인 면담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남자들과 여자들이 제게 와서 자백할 때 부도덕하게 살았던 일이며 온갖 일을 털어놓곤 합니다.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바로 거기 계십니다. 감추려 하면 성령께서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차라리 말하는 것이 낫습니다. 빠져나가려 하면 성령께서 그들을 멈추시고 “잠깐만, 이러이러한 일이 있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와서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대해 제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런 모습을 봅니다. 여러분에게는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왜 표류하고 있습니까? 뜻을 좀 품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목표로 삼고 세상에 기웃거리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잡지를 집어 들면 “오늘날의 신유를 행하는 사람들 말인데, 신유를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의심이 생깁니다. 누군가 라디오에 나와서 꽤 괜찮은 설교를 하다가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지지합니다. 보십시오. 그런 것이 여러분을 약하게 합니다. 전부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십시오. 자기 정체에 맞게 살든지, 아니면 아예 그만두십시오. 하나님의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떠나십시오. 가르친다면 그것을 붙드십시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가령 지금부터 삼십 일 뒤에 우리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다고 합시다. 그 나라의 기후가 너무나 좋아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서는 죽거나 늙을 필요도 없고, 그저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가져갈 잡동사니를 잔뜩 사려고 십 센트 잡화점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제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미 가지고 있는 잡동사니를 처분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교회에 가입했다가 저 교회에 가입하며 스스로 혼란만 더한다면, 잡동사니를 더 쌓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면 그런 의심과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과 이런 말을 나눕니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브래넘 형제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제 믿음에 어긋납니다.” “그러면 당신에게는 믿음이 없는 겁니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 줄에 와서 “저는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왜 오셨습니까?” 오,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패배를 모릅니다. 패배할 수 없습니다. 죽음 자체도 믿음을 패배시킬 수 없습니다. 믿음은 패배를 모릅니다. 시도는 실패할 수 있지만, 믿음은 패배를 모릅니다. 패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곳으로 가려는 여러분이,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도 저속한 말을 쓰고 더럽고 추잡한 말들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제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나라로 가려는 여러분이 미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속어를 모조리 배우려 하겠습니까? 물론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곳의 말을 몇 마디라도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안녕하십니까?” 정도는 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하늘의 말을 좀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가 그곳에 가서 부르고 누리게 될 하나님 찬양을 배우려고 한다면 훨씬 더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소리 높여 찬양하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곳에 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몹시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믿음을 가지고 이기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은 이기는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자잘한 것들을 뒤쫓는 대신 승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저... 여러분은 이 집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맡겨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저는 이 건물 안에 계신 분들 가운데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제 집회에서는 때로 한 사람도 모를 때가 있고, 말도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저 성령께 자신을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간단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의사를 믿습니다. 의사가 있다면 그를 믿어야 합니다.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믿고 있는 그 늘 한결같은 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병을 그에게 맡깁니다. 그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 다른 것은 하지 않고 집에 가서 옷을 챙겨 병원으로 갑니다. 그렇습니다. 의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러분이 병원에 가기를 원한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아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처방전을 써 주고 약봉지 가득 알약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약을 삼킵니다. 그 알약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의사를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떻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는 ‘복음 알약’은 삼키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삼켜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이것은 신뢰입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의사의 약을 복용함으로써 여러분이 그 의사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 줍니다. 자신을 맡겨 수술을 받음으로써 의사를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 의사를 신뢰한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대해서는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를 두려워합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믿음이 승리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병을 의사에게 맡기듯 예수 그리스도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 무엇이든 원하시는 것을 제게 주십시오. 제 병을 맡으신 의사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이기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다시는 다른 기도 줄을 찾아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무엇도 찾아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얻게 되고 모든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는 있는지 저 교회에는 있는지 알아보려고 교회에서 교회로 옮겨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여러분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승리가 있습니다.
오늘 밤 미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늘 밤 이 태버내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의사이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의 믿음을 수술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의사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작은 맹장에 독이 가득합니다. 떼어 내야 합니다. 이곳도 저곳도 문제가 있으니 떼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몸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그것을 떼어 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우리의 믿음에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수술 도구인 말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한 칼로 우리를 수술하시도록 맡기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철없이 부산을 떨며 거짓되게 구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씀하시고, 모든 그림자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향해 항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도록 맡기기를 두려워합니다. 오, 우리가 그렇게 맡기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수술하시고, 모든 의심과 모든 두려움, 모든 걱정과 모든 죄, 있는 것을 전부 제거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이 깨끗하게 수술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로 나옵니다. 그때는 달라집니다. 우리에게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그 수술을 예수 그리스도께 믿고 맡길 수 있습니까? 그분을 믿을 수 있습니까? “주 하나님,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5장에서 제자들이 “우리가 밤새 그물을 끌었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했을 때, 베드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들을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저는 어부입니다. 달이 알맞게 떴을 때의 징조를 압니다. 물고기가 언제 입질을 하고 언제 하지 않는지 압니다. 언제 떼를 지어 있고 언제 흩어져 있는지도 압니다. 그뿐 아니라 밤새 그물을 끌었습니다. 여기 저와 함께 의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부 박사님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일을 잘 압니다. 밤새 이 강물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주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수술을 책임지신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으뜸가는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너무나 많은 물고기가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입니까? 믿음이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물속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물고기를 창조하여 그곳에 넣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살 가망이 전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암으로 죽어 가고 있을 수도 있고, 휠체어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앞을 전혀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으뜸가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받아들이십시오. “너희가 어떤 것들을 원하든지 너희가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받는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그것들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 믿음이 어떤 어려움이든 이긴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죄에 너무나 짓눌려 혼이 더할 수 없이 더러워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못된 성질과 남을 헐뜯는 혀, 전화로 남의 이야기를 하는 버릇을 버리려고 애썼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는 방법은 다 써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도록 맡기기만 하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수술하시고 세상이 내놓을 수 있는 무엇보다도 더 높이 올라가는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왜입니까?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 임재해 계시고, 그분의 위대한 성령께서 이 건물 안에 계신데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은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것을 믿습니까? 이런 일들을 하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실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죄가 있다면, 삶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잠시 기도하려고 머리를 숙이는 동안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 건물 안에 계신 남자나 여자, 소년이나 소녀 가운데 손을 들어 이렇게 말할 분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주님, 저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 메시지를 들은 뒤 바로 지금 제 믿음을 수술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저를 철저히 진찰해 주시고, 제가 이런 것들을 이기지 못하게 가로막는 믿음의 작은 병 하나하나를 수술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향해 손을 드십시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곳이 온통 든 손으로 가득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 길을 달려가며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여기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 가운데 손을 들고 “주님, 제 믿음을 수술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 밤 제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승리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얻습니까?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도움이 필요하고 죄에 깊이 빠져 있는 여러분을, 이 태버내클에서 하던 대로 제단 앞으로 나오시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자리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벽을 따라 서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곳 제단 위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바로 이 시간에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사랑하는 하나님, 주님께서 계시며 부지런히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회개하며 기다리는 이 혼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무엇이든 그 속에 있는 것, 의심이라는 암과 성마른 성질이라는 암, 불신이라는 악성 종양을 바로 지금 제거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시오. 그들의 혼을 주님의 선하심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들이 손을 들어 믿음을 고백하였으니, 지금 침례를 통해 주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시오. 오, 자비로우신 하나님, 그들에게 이렇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들은 바다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부두로 들어와 위대한 건축자의 손으로 다듬어져,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 그분의 영으로 권능을 얻고, 그분의 뜻에 다스림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주님의 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겸손히 구하오니, 바로 지금 그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제 주님, 공중을 향해 많은 손들이 올라왔습니다... 아니, 손들이 공중을 향해 올라왔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곳저곳을 다녀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여러 주를 가로질러 수많은 마일을 운전했습니다. 또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왔을지도 모릅니다. 주님, 저는 그 점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저를 주님의 종으로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기도를 믿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 하나님, 바로 지금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위대하신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모든 불신을 잘라 내 주십시오. 승리는 믿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이 땅의 어떤 사람에게 있는 것도, 어떤 교회나 어떤 사람의 특별한 기도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그런 것이 모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승리는 믿음에 있습니다. 주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신 분께서 자기 고향에 들어가셨을 때의 일을 우리는 읽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 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가 그와 그의 어머니를 알지 않느냐? 그 여자의 이름은 마리아다. 여기 유다와 요세, 그의 누이들도 있지 않느냐?” 그들은 그분으로 인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불신을 이상히 여기셨고, 강력한 일들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서 아무리 큰 은총을 입었다 해도, 승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믿음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사람들이 물러나게 하시고, 오늘 밤 주님 자신을 보여 주셔서 믿음이 우리 주님의 부활이라는 진리 위에 놓이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은 죽은 분이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여기 계심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 밤 그분께서 여기 계신 것을 눈에 보이게 나타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모든 마음을 사로잡으시고 믿음을 수술하셔서, 그들이 병과 고통과 질환을 이기게 하십시오.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이곳을 나가게 하십시오. 단 한 가지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믿음이 생겨나게 하십시오. 그것이 승리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깁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기도받을 줄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 문도 거리까지 막혀 있고, 이쪽도 거리까지 가득 차 있습니다. 창문 둘레도, 문 둘레도, 여기 앞도 가득합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면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기도 줄에 서실 분들을 불러 볼 수는 있지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방금 전한 설교에 저 자신도 마음이 찔렸습니다. 여러분이 경건한 마음으로, 여러분이 가진 모든 믿음, 인간적인 믿음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주님,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이 작은 것을 받으시고, 주님의 믿음이 제게 오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고치시고 제가 이 강단에서 여러분을 곧바로 불러내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여기 앞으로 전혀 나오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렇게 믿으실 수 있습니까? 하지만 기도 카드를 가지고 계시다면 잘 가지고 계십시오. 어쨌든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저는... 방금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몇 분 전에 들어올 때 빌리 폴이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기도 카드를 몇 장 나눠 주었다고 했습니다. 어젯밤에 상당히 많은 카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빌리는 “아버지, 안에 있던 몇 분이 기도 카드를 원하셔서 나눠 드렸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괜찮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리는 “그런데 어떻게 기도 줄을 세우시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때는 군중이 저 뒤에 있었는데, 지금은 양옆을 빙 둘러 다 차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 줄에 서실 분들을 부를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여기 서 있는 것과 지금 계신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렇게 하려면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제 믿음을 더하고 하나님의 믿음과 함께 섞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 믿음과 여러분의 믿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믿음이 주도하게 되어, 그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여러분께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거짓말일 수 없습니다. 진리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참되다면, 그분께는 여기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이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백혈병이나 암, 결핵, 그 밖에 어떤 병에 걸려 죽어 가고 있어서 여기 앞으로 나왔다고 합시다. 이 건물 안에서 우리가 아는 모든 목사님을 이곳으로 모셔 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 드린다고 해도, 여전히 여러분 자신에게 믿음이 없으면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지만 누군가 치유되는 것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거나 치유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치유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제가 기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한 사람을 강단으로 데려왔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야기를 아십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서 이슬람교도였던 한 여자가 어떻게 치유받았는지 말입니다. 그곳에는 이십여 부족,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부족이 있었는데, 각 부족에서 정해진 수만큼만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러다가 태어날 때부터 몸이 굽어 손으로 걸어 다니는 한 소년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줄루족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며 그 사람, 오른손과 왼손도 구분하지 못하는 호텐토트족 아프리카인에게 그가 누구인지까지 알려 주시자,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고 주술사들은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새로운 일인가?” 하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부채질을 받고 있던 추장들은 부채질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때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네가 사는 오두막의 벽에는 내 주님의 그림이 걸려 있다.” 수십만 군중 사이 저 멀리 있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어나 사실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네게는 노란 염소인지 개인지를 타다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걷는 형제가 있다. 그도 이 집회에 와 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의 믿음이 이겼고, 그는 치유되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네 말도 하지 못하는 백인이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권능이었습니까?
그 소년은 통역자를 통해 그 말을 듣고 목발을 던져 버린 뒤, 기뻐 뛰고 달리며 앞으로 나왔습니다. 오른손과 왼손도 구분하지 못하고, 제가 자기에게 원주민의 춤을 추게 하려는 줄 알았던 그의 형제는 자기 형제가 뛰고 달리는 모습을 보자 마음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불신이라는 죄의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제가 다시 보았을 때, 자기 발로 일어서라고 그에게 알려 주는 환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치유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통역자가 전해 주어도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할 만큼 지능이나 생각하는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에는 사슬이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슬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일어서라”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그 소년이 자기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뿐 아니라 정신도 온전해졌고, 그의 검은 배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하여, 전혀 복음을 모르던 이교도 이만 오천 명이 한꺼번에 치유되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시장이 찾아와 “저 창문을 잘 보십시오.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한 뒤, 다음 날 아침 저는 창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목발과 휠체어 같은 것들을 가득 실은 커다란 가축 운반 트럭 일곱 대가 거리를 걸어... 아니,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전날 밤 그 휠체어들을 타고 있던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줄루족과 송가이족, 바주투족, 코자타족, 서로 전쟁을 벌이던 여러 부족들이 평화롭게 손을 맞잡고, 자기네 말로 “모든 일이 가능하니 믿기만 하라”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창가에서 일어나 두 손을 공중으로 들고 “나 같은 비참한 자를 구원한 놀라운 은혜, 그 소리 얼마나 감미로운가”라고 화답했습니다. 그것은 제 눈으로 거의 본 적이 없을 만큼 영광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그때 환상 가운데 주님을 뵙기까지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속의 무언가를 움직입니다. 그 사람들은 떠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전에 들어 본 적이 없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듣자마자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붙잡았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수술을 받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보고 곧장 그것을 붙잡으러 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고, 이 미국 땅 인디애나주 제퍼슨빌에 계신다면, 며칠 전 밤 여기서 그 눈먼 설교자에게 시력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은 백혈병으로 죽어 가던 그 어린 여자아이를 고쳐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다음 날 아침 의사들은 그 아이가 나았다고 선언했습니다.
아주 최근에... 이 책들 중 하나에 그 기사가 있을 텐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읽고 여기 있는 자료들 중 어딘가에 다시 넣어 둔 것 같습니다.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신문 중 하나에서 기사를 읽고 있었는데... 여기 있군요.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저 위 미시... 아니, 제가 지난번 저 위쪽에서 대전도 집회를 했을 때의 신문에 한 여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버몬트주 벌링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분은 그날 청년들에게 기도 카드를 받지 못해서 몹시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있었던 진과 리오, 빌리, 또 몇몇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저 멀리 뒤에 앉아 있다가, 문득 왜 자신은 기도 줄에 들어갈 수 없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앞으로 나오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 온 아무개 부인이고,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분은 그 장벽을 뚫고 나왔습니다. “나는 저 여자를 알아. 저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알아”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위대한 성령께서 저를 돌아서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아무개 부인, 저 끝에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분.” 이 건물 길이의 두 배나 되는 먼 뒤쪽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무... 이런 이름의 부인입니다. 당신은 간질을 앓고 있고 매일 네다섯 번씩 발작합니다.” 그리고 “왜...”라고 하자 그분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너무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은 몹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재향군인 병원에 입원해 있고, 위를 거의 전부 잘라 냈는데, 이제 병이 몸의 다른 부위로 퍼져서 의사들은 살 가망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에 설명된 대로, 그분은 두 뺨에 눈물을 흘리며 사실이라는 뜻으로 두 손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환상 가운데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나아서 집에 돌아올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호지킨병의 커다란 덩어리들이 몸을 뚫고 나오고 있어서 다시 수술을 위한 검사를 받으러 들어가던 때였습니다. 의사들이... 그가 “덩어리가 만져지지도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사들이 검사해 보니 아무 덩어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모든 검사를 했지만 그는 완전히 나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건강하고 온전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왜입니까? 믿음이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카드도, 안수도, 그 밖의 무엇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모든 것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시카고에서 집회를 했을 때, 한 흑인 여자가 강단에 서 있었습니다. 실례합니다. 강단에 서 있던 사람은 백인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 전날 밤, 몸집이 작은 스웨덴 할머니 한 분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빌리는 그분이 몸을 숙여 오스본 형제님의 ‘아프리카의 검은 황금’ 모금 호소, 그분의 대전도 집회를 위한 헌금에 아주 많은 돈을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빌리는 제게 “얼룩얼룩해 보이는 옷을 입은 그 가난한 할머니가 어떻게 헌금으로 드릴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빌리가 나가려고 할 때, 그분이 “얘야, 기도 카드 한 장 주겠니?”라고 했습니다. 빌리는 “이제 남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카드를 나눠 주던 진인지 리오인지 둘 중 한 사람에게 가서 물었지만, 그들에게도 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 내일 밤에 뵙고 한 장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래, 얘야”라고 하더니 위층 좌석 어딘가로 올라가 앉았습니다. 저는 그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날 밤 제가 강단으로 나왔을 때, 한 여자가 강단에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위층에 앉아 있다가 장벽을 뚫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수술하시는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 이르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저 높은 두 번째 층 좌석의 끝에서 두 번째에 앉아 체크무늬 옷을 입은 저 여자분의 이름은 아무개 부인입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철도 운행을 조정하는 배차 담당자이며 한쪽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은 거의 기절할 뻔했습니다. 루터교인이었습니다. 그분이 집에 돌아갔을 때... 주님께서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가 치유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갔을 때 남편이 문 앞에 서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선포된 바로 그 시각, 남편이 배차 사무실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귀가 열렸던 것입니다.
청중석에 앉아 있던 한 흑인 여자가 그 일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분은 리틀록의 정신병원에 십 년 동안 입원해 있던 자매를 위해 믿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임하셔서 그분이 누구인지, 자매가 누구인지 알려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매는 십 년 동안 격렬하게 날뛰며 머리를 벽에 부딪쳐 온 정신병자였습니다. 하지만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 자매는 방금 치유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여자 관리자가 보니 그 자매가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 채 문 앞에 서서 내보내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그 관리자는 시카고에 있는 그분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소리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어젯밤 강단에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은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네게 돈이 없는 줄 알아. 비행기 표를 바로 보내 줄 테니 여기로 와. 집회가 내일 밤에 끝나.” 십 년 동안 정신병원에 있던 그 여자는 바로 그다음 날 밤 강단에 서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던 분이 세상 것들의 장벽을 뚫고 나간 것입니다. 세상 것들이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신을 뜻합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뚫고 나가 자신의 믿음이 이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저 백인 여자를 위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흑인 여자인 나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의심을 이길 때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그렇습니다. 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날 밤 시카고에 계셔서 그 여자의 간증을 들으신 분이 여기 있습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예, 여기저기 보십시오. 물론 계셨습니다. 그 모든 세월 동안 시설에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음이 승리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오늘 밤 여기 계신다면, 제가 제 믿음을 그분의 약속에 온전히 맡길 때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믿음을 그 약속에 온전히 맡길 수 있다면 말입니다. 청중석에 앉아 있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든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그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심을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이 그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행하신 방식입니까? 사도들이 행한 방식입니까? 바울은 그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의 여자에게 말씀하셨고, 또 한 여자는 그분의 옷에 손을 대고 나가서 앉았습니다. 그분은 돌아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누가 손을 대었는지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모두 부인했습니다. 그분은 “그러나 내가 약해졌으니, 내게서 효능이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찾아내실 때까지 둘러보셨습니다. 그 여자가 그것을 가졌던... 아니,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혈루증을 앓고 있었고, 그분은 “네 믿음이 승리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내가 너를 고쳤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했습니까? 모든 의심을 이기고, 제압하고, 짓밟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속으로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온전하게 되리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는 자신의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근거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분께서 친히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여기 계시면서 그때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을 행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라. 내가 하는 일들을 너희도 할 것이며, 이보다 더 많이 하리라.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리니, 너희는 이보다 더 많이 하리라.” 바로 지금 우리는 이 마지막 날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기도합시다. 믿읍시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여러분도 믿으십시오.
주님, 여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고, 주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무리들을 고치신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에서도, 모세가... 그들이 광야에서 나왔을 때 그들 가운데 허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위대한 의사이시며 위대한 외과 의사이십니다. 이제 주님, 오늘 밤 이곳에 온 사람들 가운데 몸이나 혼이 병든 이들이 바로 지금 위대한 의사이신 주님의 손에 자기 병을 맡기게 하십시오. 아버지, 그들의 의심이 모두 제거되도록 수술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은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습니다. 기도하오니 그 말씀을 칼로 사용하시고, 그 칼을 내리셔서 주님께서 동일하신 분임을 나타내 주십시오. “내가 너희와 함께, 심지어 너희 안에 있으리라.” 주님, 사람들이 주님께서 여기 계심을 볼 때, 그들의 믿음이 이 건물 안의 모든 병, 죄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그 위로 올라가게 하시고, 그들이 치유되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이 일이 저를 어떤 처지에 놓이게 하는지 아십니까... 아니, 헤아리실 수 있습니까? 보십시오. 여기 서 있는 사람만 적어도 이백오십 명은 됩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제가 모르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여기서 저를 모르는 분... 제가 여러분을 모르거나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몇 분이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여기 보십시오. 온통 그렇습니다. 물론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십니다. 이제 여러분이 그분께 자신을 맡기고, 그 여자가 가졌던 것과 같은 믿음으로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도록 한다면, 그분을 믿으시겠습니까? 무엇이든 입증된 사실이면 입증된 사실입니다.
누군가 여기 와서 “저는 암 치료법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그가 여기서 상태가 나빠져 가는 암 환자를 데려다가, 의사들을 그곳으로 데려와 암이 치료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치료법을 찾아 몰려갈 것입니다. 형제님,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암을 고치시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분은 오직 한 가지, 믿기만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눈먼 사람들의 눈을 여시고 걷지 못하던 사람들을 걷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어서 의사가 사망을 선언한 사람들을 일으키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있어서... 제가 직접 본 그분의 일들을 다 말하려면 책을 몇 권씩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런데도 믿게 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병든 분들은... 여러분 모두 할 수 있는 한 경건한 태도로 계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믿습니다... 저는 감정의 표현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은 죽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조금도 감정이 없다면, 차라리 묻어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왔고 제가 돈을 줄 수 있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브래넘 형제님, 백 달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공손하게 와서 “브래넘 형제님, 제게 백 달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제 주머니에 백 달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제 동정심에 호소하면 제가 그 백 달러를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돈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공손히 서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백 달러를 드리면, 그때는 마음껏 큰 소리로 외쳐도 됩니다. 손에 백 달러를 쥐었으니까요. 아시겠죠? 하지만 다가올 때는 공손히 오십시오. 소리를 지르면서 백 달러를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여러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와서 제게 요청하고, 제가 백 달러를 드리면 그때부터 외치십시오.
그러니 하나님께 나아가 건물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디에서든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든 상관없습니다.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나라 저편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그분은 그곳에도 성령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한번 보십시다. 하나님은 “나를 검증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신지 검증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검증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전에 행하신 일들을 오늘 밤 여기서도 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기 앞으로 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 건물 곳곳에서 적어도 서로 다른 세 사람에게 그 일이 일어난다면... 만일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 일이 일어나면 그 사람은 수에 넣고 싶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제가 모르는 사람에게 그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병을 아는 것으로 말하자면, 제가 아는 한 이 안에서 어떤 병이 있는지 제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그것은 병이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저 뒤에 앉아 있는 저의 착하고 다정한 친구 이디스 라이트입니다. 저는 그분을 압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했을 때 통증이 사라졌고,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직 그분을 장애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디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압니다. 그분 외에는 이 안에서 여러분에게 어떤 병이 있는지 제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아시는 분이라도, 이것이 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도 기도하시고,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그저 주님을 믿읍시다. 거티 자매님,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위대한 의사 주 가까이 계시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연주해 주십시오.
이쪽을 보니 제 친구 뱅크스 우드 형제님이 계십니다. 이 태버내클에서 우드 형제님을 아는 분은 누구나 아시겠지만, 그분은 이곳의 재산 관리 위원 중 한 분입니다. 하지만 전에는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그분에게 분명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루이빌에 와서 주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에게는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소아마비로 다리가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회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그분을 몰랐고,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기 위쪽으로 왔을 때... 제가 해외에서, 스웨덴에서 돌아온 뒤 어느 곳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 아들은 건물 저 멀리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 주 예수님께서 그 아들 데이비드를 부르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날 그 아들은 어느 다리가 치유된 것이었는지도 거의 모릅니다. 아시겠죠? 오, 믿기만 하면 수백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그것을 구했던 때가 한번 생각납니다. 기억이 납니다... 이 건물 안에 작은 모자를 쓰신 여자분들이 계신데, 아미시파인지 메노나이트파인지 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성령을 받은 메노나이트파 소녀가 있었습니다. 아니, 아미시파였을지도 모릅니다. 메노나이트파나 아미시파, 그 둘 중 하나에 속한 소녀였습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소녀였고, “위대한 의사 주 가까이 계시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한 작은 아기가 제 품에 안겨 왔습니다. 제가 기도하자 그 아기가 치유되어 제 품에서 뛰어내려 강단을 달려갔고, 어머니는 기절했습니다. 그 아미시파인지 메노나이트파인지 하는 소녀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소녀에게 임하시자 소녀는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손을 들고 피아노에서 뛰어나왔는데, 피아노는 한 음도 빠뜨리지 않고 계속 “위대한 의사 주 가까이 계시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통로로 몰려들며 서로 밀치고 있었고, 상아 건반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의사 주 가까이 계시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사람들은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니,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어 바닥과 통로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여전히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잠시 조용히 그 곡을 허밍으로 부른 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쪽을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믿기 시작하십시오. 위대한 의사 주 가까이 계시네... 주 예수님, 이 [불명확한 말]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조용히 기도한다.] ...마음을 기쁘게 하시네, 오,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라. 스랍의 노랫소리 중 가장 감미로운 음성, 가장 감미로운... 이제 병든 여러분, 모든 의심을 몰아내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은 이런 일을 한 번도 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예수님, 귀하신 예수님. [브래넘 형제님이 허밍을 한다.]
제가 광신적으로 구는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 같습니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것 같습니다. 이제 주위의 모든 청중을 제 마음에서 차단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그분께서 네게 공개적으로 보답해 주시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찾는 자는 누구나 찾느니라.” 저 사진에서 보이는 그분, 그 빛, 그 광륜이 지금 여기 계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각을 분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조금 있으면... 나는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전에 계시던 모습으로 곧장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주 예수님으로 계셨을 때처럼 육체를 입고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저 저 자신을 맡기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여기 서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구경거리를 보여 주는 일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을 하면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어떻게든 그 자리로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걸려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분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을 지키십니다. 저는 그 점이 두렵지 않습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그분의 옷자락에 닿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은 지금, 바로 지금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실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저기 파란 옷을 입고 앉아 계신 여자분, 저를 참 진지하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제가 모르는 분인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도 누군가의 믿음과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구할 것이 있습니까? 제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저는 부인을 모르지만 부인은 저를 아시는군요.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 저는 전혀 모릅니다. 제가 알기로는 평생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딘가에서 제 집회에 참석하셨을 수는 있겠지요. 주 예수님께서 부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제게 알려 주시면 믿으시겠습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다른 분들에게도 믿음이 생겨 역사하기 시작할지 모릅니다. 아시겠죠? 저는 모릅니다. 그저 부인이 앉아서 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의 눈을 떼지 않고 계셨습니다. 가까이 계시는군요. 여기 앞에 앉아 계신 이 여자분은 제가 압니다. 이쪽 분들도 압니다. 하지만 부인은 제가 모르는 분 같았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십니다. 부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강단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 이제 누가 보실 수 있다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눈에는 그 여자분이 아주 희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다. 피부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몸 부위에 있지만, 피부병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시겠죠? 그저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았을 때... 바울은 “당신에게 치유받을 믿음이 있는 줄 압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작은 여자분은 어떻습니까? 그분도 기도하고 있었으니, 방금 일이 그분에게도 장벽을 뚫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부인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사이입니다. 그렇지요? 성령께서 부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무엇 때문에 여기 왔는지, 아니면 제가 알 리 없다는 것을 부인이 아는 삶의 어떤 일을 제게 알려 주시면, 그 권능,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것을 믿으시겠습니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아주 달콤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느낌이 들고 있지요. 그렇다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보십시오. 바로 그것입니다. 부인 바로 위에 그 빛이 머물러 있습니다. 부인은 발과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맞지요? 사실이라면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손수건을 흔들어 보십시오. 다시는 그 문제로 고통받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무엇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이... 제가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이 일을 합니까? 이제 두 사람입니다.
바로 지금 그 여자분 바로 옆에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자마자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분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니, 젊은 남자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목과 머리 때문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청년, 우리는 처음 보는 사이인 것 같군요. 저는 청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사실이라면 손을 들어 보십시오. 세 사람이 한 줄로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본 적이 없고, 평생 아무 접촉도 없었습니다. 이제 믿으시겠습니까? 이번에는 이쪽에 계신 분들입니다. 이쪽에서 병들거나 도움이 필요한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이쪽에서 도움이 필요한 분은 모두 손을 들어 보십시오. 오, 온통 그렇군요. 좋습니다. 이제 계속 믿으십시오.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계신 남자분, 그리스도를 찾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암이 생명을 앗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유자이십니다. 여기,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연세 드신 여자분은 위장병과 관절염을 앓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루어진 줄 믿으십니까? 그 여자분을 돌아보고 계신 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저를 그분의 종으로 믿으십니까? 없애고 싶어 하시는 그 종양을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제 눈에는 종양이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습니다. 목 뒤에 있습니다. 제가 부인의 이름이 웰치 부인이라고 말씀드리면, 그때는 저를 믿으시겠습니까, 부인이...? 맞지요? 좋습니다. 저는 평생 부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인도 아시지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저기 앉아 있는 작은 여자분 위에 죽음의 표시가 있습니다. 역시 암입니다. 부인,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지요?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부인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사라졌습니다. 믿기만 하시면 됩니다. 저는 그 여자분을 모릅니다. 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으시겠습니까? 한 남자분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본 적이 없는 분 같습니다. 탈장을 앓고 계십니다. 선생님, 주님께서 그 탈장을 고쳐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부인에게는 신경 질환이 있고 몸도 쇠약합니다. 리드 목사님, 그것이 성함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모릅니다. 어쨌든 이 지방 분은 아니시군요. 오하이오에서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사실이라면 일어서 보십시오. 이제 목사님과 부인의 병은 모두 끝났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이제 믿으실 수 있습니까?
이 줄을 따라 저 멀리 뒤쪽, 이쪽으로 더 뒤에... 바로 저기에 머물러 있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 줄 바로 아래쪽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고통받는 여자분이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인디애나주 콜럼버스라는 곳에서 오셨습니다. 이름은 엘리자베스입니다. 오하이오 스트리트라는 거리에 살고 계십니다. 주소는 오하이오 스트리트 1932번지입니다. 가십시오. 믿으십시오. 이제 그것이 떠났습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그 영께서 움직이십니다. 이쪽에 있는 한 남자분에게 가십니다. 무언가 관련이 있습니다. 아니요. 그분도 콜럼버스에서 오셨고, 눈에 이상이 있으며 궤양을 앓고 있습니다. 선생님, 주 예수님께서 고쳐 주셔서 온전하게 해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조카, 남자분의 자매가 낳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어떤 뼈 질환이 있었고, 이제는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일 때문에 일종의 심리적인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나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제 믿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저기 앉아 계신 분에게서 또 하나의 암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자매님, 온 마음으로 믿으시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믿음이 의심의 경계선을 넘었습니까? 믿음이 의심의 경계선을 넘었다고 믿는 분은 얼마나 됩니까?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자유롭게 달리는 것 말고 무엇이 남았습니까? 모두 끝났습니다. 여기 의자에 앉아 있는 어린 여자아이들, 저는 너희를 압니다. 어젯밤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압니다. 오늘 아내에게서 너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희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은 폴커슨이었습니다. 그 병은 아무도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손가락에 감염이 생기고, 혈액병 같은 것인지 무엇인지 손에 생깁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손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너희 두 여자아이 모두 그렇습니다. 너희는 참 예쁜 두 아가씨입니다. 저는 너희 어머니를 압니다. 이십여 년 전 어느 날 밤 너희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결핵에서 치유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폴커슨 부인입니다. 하나님, 이 예쁜 아이들을 괴롭히는 마귀를 꾸짖어 주십시오.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권능이 그것을 쫓아내어 다시는 너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이렇게 말합니다. 마귀에게 분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승리를 얻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너희의 믿음이니라.”
그분의 권능으로 치유받았다고 믿는 여러분 모두, 건물 안 어디에 계시든 일어서서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이제 두 손을 들고 그분을 찬양합시다. 주 예수님, 치유하시는 권능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이기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승리,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이 치유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나 주를 찬양하리, “거티.” 나 주를 찬양하리. 장벽의 경계선을 넘으셨습니까?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 씻으셨네. 좋습니다. 이제 함께 부르십시오. 나 주를 찬양하리, 나 주를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 씻으셨네.
들으십시오. 여러분, 저는 여전히 여러분이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런 집회를 마귀가 패배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복음이 전해졌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확증하시려고 여기 계십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되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힘껏 나아가십시오. 바로 거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더 이상 떠다니지 마십시오. 갈보리 위에 굳게 서서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십시오. 그분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감사한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가르는 경계선을 넘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유하여 온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말만 하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그렇게 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나 주를 찬양하리, 이제 마음 깊은 곳에서 저 위를 향해 드리십시오. 나 주를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 씻으셨네.
무슨 얼룩입니까? 의심의 얼룩입니다. “나는 이제 치유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치유되었습니다. 나는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나의 병들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그분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분을 찬양하겠습니다. 그분께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승리를 외치겠습니다. 그분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분을 믿습니다. 나는 자유롭습니다.” 할렐루야! ...백성아,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 씻으셨네. 나 주를 찬양하리, 나 주를 찬양하리,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의 피가 씻으셨네... 그렇습니다. 뚫고 들어가십시오. ...모든 얼룩을. 나 주를 찬양하리, 나 (할렐루야, 할렐루야!)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의 (그렇습니다.) 모든 얼룩 씻으셨네. 나 주를 찬양하리, 계속하십시오. 피로 씻었습니다. ...주를, 죄인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 찬양하라. 오, 모든 백성아 주께 영광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 씻으셨네.
영광!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영광스러운 그리스도, 놀라우신 분, 살아 계시며 지금도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 여기 계십니다. 그분의 일들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그분의 표적과 이적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오, 그분은 영광스러우십니다. 바로 지금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물론입니다. 이제 모든 의심이 여러분에게서 사라지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여러분은 치유되었습니다. 끝났습니다.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드리십시오. 성령께서 건물 안 사방에 임하고 계십니다. 커다란 광륜이 이곳을 감돌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왕관 쓰리라! 그렇다, 우리는 왕관 쓰리라! 그렇다, 우리는 왕관 쓰리라!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왕관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왕관 쓰리라, 왕관 쓰리라, 밝게 빛나는 왕관 쓰리라.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왕관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왕관 쓰리라, 왕관 쓰리라, 밝게 빛나는 왕관 쓰리라. 싸움이 끝나면, 우리는 왕관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제 생각에는 이것이 오순절 날 임하셔서 쇠사슬을 끊으셨던 바로 그 성령의 역사와 같습니다. 제가 여기 서 있다가 마침 이 집회에 메노나이트파 형제님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에 그분이 오셨을 때, 여러 해 동안, 아주 오랫동안 간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집회 중에 성령께서 그분을 불러내셨고, 그 뒤로는 발작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분을 고쳐 완전히 낫게 하셨습니다. 메노나이트파 설교자입니다. 오, 그분은 놀라우시지 않습니까? 그분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그분이 얼마나 선하신지 모릅니다.
여러분, 제 생각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 이것이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계셔서 참으로 기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모든 분이, 여러분의 믿음이 모든 의심을 뒤로 가라앉혀 버렸다면, 바로 지금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떤 병도 더 이상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은 한 의사에게 자기 병을 맡겼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수술하시고 모든 의심을 없애 주셨으니, 이제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네.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네. 모든 이를 사랑하게 하네, 모든 이를 사랑하게 하네, 모든 이를 사랑하게 하네,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네. 오,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옛날부터 내려온 신앙, 내게는 그것으로 족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