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네빌 형제님. 다윗이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주의 집으로 들어가자, 할 때에 내가 즐거워하였도다.” 일요일 성경학교에는 하루 중 다른 시간의 예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밤새 푹 쉬고 막 일어났으니 기분부터 다릅니다. 몸도 개운하고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 우리가 알기로는... 어젯밤에 저희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렸습니다. 다니시는 교회가 있는 분들은, 방문하시는 동안... 아니, 어느 교회의 정식 교인이신 분들은 오늘 아침 자기 교회에 참석하시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초교파이기 때문에 다른 회중에게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교회들을 정죄한다는 비난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다른 교회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 교회들이 용납하는 일을 정죄할 때는 많지만, 결코 교회를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성경과 어긋나는 것을 가르칠 때는 그것을 정죄합니다. 또 죄가 되는 일을 행하고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할 때는 그것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결코...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제 가톨릭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들을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그 교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많은 개신교 교파를 정죄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입니다.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진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이 정직하고 신실하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흔히 남자들이 아내를 찾을 때... 참된 남자, 남자다운 남자는 얼굴이 예쁘다거나 하는 것만으로 여자를 고르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품이 여자다운 여자, 참된 여자를 찾습니다. 그 여자가 충실하고 참된 여자라면, 그 남자는 그 여자를 귀히 여길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남자이고 나쁜 여자들과 아무리 어울려 다닌다 해도, 여자가 참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여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을 나쁜 남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여자를 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믿는 것을 굳게 지키면... 자, 그게 아니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십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진리라고 믿는 것을 굳게 지킨다면, 자신이 말하는 것에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 제 좋은 친구들이 두어 분 계십니다. 저기 찰리 콕스 형제님이 앉아 계시는군요.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그분과 켄터키에 내려가 다람쥐 사냥을 하면서 좀 쉬었습니다. 뱅크스 우드 형제님과 저는 소총의 조준을 맞추고 있었는데, 제 총은 50야드 거리에서 압정 하나를 맞힐 만큼 완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사냥을 못 합니다. 그뿐입니다. 그런데 압정을 맞힌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람쥐의 머리를 겨누고 쏘는 것이라면, 머리 크기가 아마 이만하니까 탄착이 1인치 안에만 모여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만 맞으면 됩니다. 그 두 친구는 누구라도 “괜찮아. 다람쥐는 맞혔잖아.” 하고는 가서 다람쥐를 잡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완벽해야 합니다. 반드시 압정을 맞혀야 합니다. 4분의 1인치도 빗나가서는 안 됩니다. 압정을 꼭 맞혀야 합니다. 딱 그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아주 신경이 곤두서고 속이 상합니다.
며칠 전 숲에 앉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왜 이렇게 까다로운 사람입니까? 아니, 왜 저를 이렇게 까다롭게 만드셨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저기 뱅크스 형제님은 소총을 들고 사냥하러 가서 망원 조준기를 맞추려고 총을 들어 쏘아 보고는 그냥...” 가끔은 한 발씩 빗나갑니다. 왜냐하면... 공장에서 장전한 탄약은 어차피 그렇습니다. 화약이 조금 더 들어간 것도 있고 조금 덜 들어간 것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 빗나가서 1~2인치 벗어나더라도 뱅크스 형제님은 “괜찮아. 다람쥐는 맞혔잖아.” 하십니다. 그걸로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 총은 압정의 정중앙을 맞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이 상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 별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날을 돌아보니, 제 삶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 성품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조금만 빗나가도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때 글러튼 홀로 위쪽인지 어디인지, 우리가 사냥하던 그곳에 앉아 있는데 주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더튼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다람쥐들이 하도 게걸스럽게 먹어서 저는 글러튼이라고 부릅니다.) 그곳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거구나.” 저는 지옥이 있다는 것도 확신하기 전에는 가르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신유를 예고하는데 여기서는 이렇게 보이고 저기서는 저렇게 보인다면, 또 성경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하여 마치 하나님이 세 분인 것처럼 보이는데 저는 오직 한 분인 것을 안다면, 어떻게 남들이 그것에 관해 말하는 것을 그저 되는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예정과 은혜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행위가 있고 저기에는 은혜가 있고... 저는 그렇게 설교할 수 없습니다. 압정을 정확히 맞히듯이 성경 전체를 거듭 살펴서 그것을 완전히 풀어내야 합니다. 성경 전체에 비추어 완벽하게 맞아떨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서면 제가 하는 일에 참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것이 진리임을 아는 것입니다. 누군가 거기에 반대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연구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디에서 그 말을 막아야 하는지 정확히 압니다. 바로 여기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마다 다르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그저...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이렇게 신경이 예민하고 쉽게 속상해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정확해야 합니다. 오늘, 오늘 아침 저는 참으로 기쁘게 말씀드립니다. 주 예수님은 죽어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분임을 저는 압니다. 그분은 갈릴리에서든 세상 어느 곳에서든 계셨던 그때와 똑같이 지금 바로 이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고 부활하셨으며 어디에나 계시는 아들이십니다. 제가 만일... 역사 속에만 계신 어떤 하나님에 관한 성경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분이 바로 여기에 계신다는 확신이 없다면, 저는 온통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너무나 초조해서 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자, 그분은 이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 저런 일을 하실 것입니다.”라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모르지만, 그분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셨는지 알고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것을 보았다면,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크신 계획 안에서 각 사람을 특정한 일을 하도록 정확히 어떻게 만드실지 알고 계셨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 목적으로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이 앞에서 스트리커 부인께서 반주 없이 노래하시는 것을 들으셨습니까? 음이나 음정이라고 합니까, 그것을 맞추려고 작은 기구 같은 것을 부셨습니다. 그러고는 서서 아주 낮은 음성으로 시작하여 높이 올리며 “배여, 여기요!”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한번 그렇게 해 보는 것을 들으시면 어떨까요.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여인이 그렇게 노래하도록 어떻게 만드셔야 할지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성품은 다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그곳에 머물며 그분을 섬기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아침 여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여운 아이를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얘야, 무엇 때문에 몸이 불편해졌니? 근 이영... 이영... 아, 그 말을 할 수가 없군요. 시작이... 이영양증인지 뭔지... 얘야, 그것 때문에 이렇게 몸이 불편한 거니, 아니면 소아마비니? 소아마비군요. 예수님은 어린 여자아이들도 고쳐 주신다는 것을 알지? 너는 참 예쁜 아이구나. 예수님께서 너를 낫게 해 주실 줄 믿는다.
어젯밤 여기 앉아 있던 두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세상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병이 있었습니다. 조그만 손가락들이 떨어져 나가고 발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예쁜 아이들이었습니다. 마침 저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압니다. 그곳에 앉은 어린것들을 괴롭히는 마귀를 곧바로 꾸짖으라는 인도를 느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젯밤 전화로 소식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 아이들이 일어나 걸어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에게 참으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 그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 잠깐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혼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의 내적 존재가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 장막 너머로 먼저 간 사랑하는 이들은 우리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몸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죽을 몸의 단계, 죽지 않는 몸의 단계, 그리고 영화롭게 된 몸의 단계가 있습니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흐름 안에 있고 그 셋이 하나를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의롭게 됨과 성화와 성령 침례가 한 흐름 안에서 하나를 이룹니다. 또 혼과 몸과 영이 하나를 이룹니다. 셋으로 이어지며, 셋이 하나입니다. 세 모서리가 있는 유리 조각을 햇빛에 놓아 보십시오. 여러 색을 비출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 색이 하나로 모입니다. 붉은색을 가져다가 붉은색을 통해 붉은색을 보면 무슨 색이 되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흰색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붉은색을 통해 붉은색을 보면 희게 보입니다. 붉은색은 구속의 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신 아들의 붉은 피를 통해 우리의 붉은 죄를 보시면, 그것은 희게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피를 통해 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로 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피 아래 있어야 합니다.
혼이 몸을 떠날 때는 안식의 처소를 향해 길을 떠납니다. 이 몸과 형태와 모습은 같지만 이런 종류는 아닌 몸을 입고 갑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도 악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이곳에 있을 때와 똑같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도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을 때 그들을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몸입니다. 그러다가 그 몸, 일종의 천상의 몸이 땅으로 돌아오면 전에 살던 물질의 몸을 다시 취하고, 그때 영화롭게 된 몸이 됩니다. 바로 그 몸을 입고 우리는 부활하신 몸을 입으신 주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몸을 갖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주름진 이 늙은 손과 쇠약해진 조직은 모두 사라지고 찬란한 젊음이 될 것입니다. 연세 드신 남녀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노쇠함은 타락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부활할 때에는 죄의 흔적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여러분을 지금과 같이 만드셨습니까? 그분은 여러분을 어느 나이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스물두 살, 스물세 살쯤 되었을 때 여러분은 가장 좋은 상태였습니다. 음식을 먹고 더 튼튼하고 건강해졌습니다. 얼마나 건장한 모습이었습니까. 그러다가 그 뒤로는 주름이 잡히며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 들어선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할 때에는 모든 노쇠함이 사라질 것입니다.
여기 연로한 설교자 한 분과 그 아내가 보입니다. 아마 여든이 넘으셨을 것입니다. 키드 형제님과 자매님입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복음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나이 든 사람인데 말입니다. 여기 평안한 모습으로 앉아 계신 이 노부부를 보면서, 부활할 때는 어떤 모습이실까 생각합니다. 깊은 주름과 떨리고 마비되어 흔들리는 손과 백발이 모두 사라지고 찬란한 젊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그분을 뵐 것입니다.
로젤라 그리피스 자매님이 와 계십니까? 한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치유받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여기 계신 다른 알코올 중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집으로 돌아가셔야 했다고요. 알겠습니다. 놀라운 사례입니다! 어젯밤에 그분께 말씀을 부탁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가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부탁드렸을 것입니다. 우리 타버내클 성도들이 들었으면 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서 물침례를 받으실 분이 계십니까? 보겠습니다. 한 분, 두 분, 세 분, 네 분, 다섯 분, 여섯 분. 침례받으실 분이 여섯이나 일곱 분쯤 계시는군요. 이 일요일 성경학교 공과가 끝나면 침례 예식을 하겠습니다.
아널드 자매님과 어린아이들이 쓸 성경학교 교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널드 자매님, 괜찮으시다면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학교를 할 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뒤에 제가 아이들을 위해 성경을 좀 읽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에게도 생각할 거리가 될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에는 평소대로 성경학교를 계속하시면 됩니다.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아침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결국 그렇게 하셨습니다. 어젯밤 저를 위한 헌금,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셨습니다. 제 동생 닥이 빌리의 집에 가져다주었다는 말을 빌리에게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아직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300달러쯤, 아니 300달러가 조금 넘는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닥, 얼마였는지 기억하니? 얼마라고, 형제? 324달러 12센트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일을 쉬었다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여기 계신 제 비서나 오늘 아침 여기 와 계신 몇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어디에 있든, 바로 이 집에 있어도 사무실이며 처리해야 할 일, 세계 각지로 보내는 손수건과 여러 가지 경비로 하루에 100달러가 넘게 듭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여러분께 격려가 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인 사람 수에 비하면 이것은 제가 평생 받아 본 가장 큰 헌금입니다. 평균 일인당 1달러쯤 된다는 것을 아십니까? 밖에서 사역할 때 받는 헌금은 대부분 일인당 평균 22센트나 25센트쯤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인당 평균 1달러였습니다. 여기에 다 들어오실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압니다. 밖에서는 헌금을 거두지 않습니다. 이 작은 곳에는 아무리 빽빽이 들어와도 300명 남짓밖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보다 될지 모르겠습니다... 네빌 형제님, 타버내클에 몇 명이 앉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네빌 형제님이 “지금 상태로는 300명쯤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300명쯤이군요. 보십시오, 일인당 1달러 정도입니다. 제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것은 곧바로 주님의 사역에 쓰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저녁이 되기 전에 떠나실 분도 있을 테니 말씀드립니다. 어젯밤 집에 돌아가 보니 현관에 이만한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안에 젤리가 가득했습니다. 누군가 보내 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젤리를 참 좋아하는 것 아시지요. 감사드립니다.
또 여기 한 자매님이... 이름은 말씀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희 가족과 아주 가까운 분인데, 저와 빌리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을 어머니 댁에 맡겨 놓으셨습니다. 자매님, 제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르실 것입니다. 정말 필요한 때에 왔습니다. 아, 여러 가지로 말입니다. 아실 것입니다. 그분도 분명히 아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넘치도록 풍성하게 복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따라 집에 가서 잠시 머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싶지만 형편이 어떤지 아시잖습니까.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고, 서둘러 다녀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오늘 밤 예배가 끝나는 즉시 이 주를 떠납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말입니다. 열두 시 전에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열두 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형편이 어떤지 아실 것입니다. 늘 끊임없이 다니고 있습니다. 병든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곳에 가서 서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브래넘 형제님, 저를 아십니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병원에 누워 죽어 갈 때 오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고쳐 주셨습니다.” “저는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날 길에서 저를 만나셨을 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형제님, 저는 한 가지 복된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마지막 설교를 하고, 주님께서 기도해 주기를 원하시는 마지막 사람을 위해 기도한 뒤 본향으로 돌아가면, 그 부활의 아침에 말입니다. 오, 얼마나 놀라운 날이 되겠습니까!
그 기쁨이란! 제가 거기 서서 남방 여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 여왕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이 거기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가 미친 영향을 볼 것입니다. 오럴 로버츠,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 생키, 피니, 무디, 칼빈, 녹스 같은 분들을 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이끈 무리가 일어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오! 그것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곳에 수백만 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머지않아 해외로 가야 합니다. 지금 제가 알기로는, 바로 저희 집회에서만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그리스도께 백만 명의 혼을 인도했고 이제 두 번째 백만 명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수백만 명이 구원받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이제 침례 예식과 약속 같은 것에 관해서... 이런 일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계속됩니다. 언제든 개인 면담 같은 일로 다시 오시려면 여기 담당자인 머서 형제님께 전화하십시오. 이런 체계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도 압니다. 머서 형제님이 명단을 적습니다. 신청이 들어오는 대로 적어 둡니다. 제가 약속된 면담을 다 마치면, 모두 끝내고 돌아오는 대로 그분께 전화해서 그 명단에 있는 분들을 다 만났다고 알립니다. 그러면 새 명단을 주시고 저는 다시 갑니다. 모든 일이 그 사무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만나실 수 있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만나게 해 드리려면 일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정확히 아십니다. 이 작은 사무실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어서 저희는 참 기쁩니다. 번호는 버틀러 2-1519입니다. 그리고... 제퍼슨빌에 전화하셔서 저를 찾으시면 그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을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자, 이제... 그분의 복된 말씀을 펼치기 전에... 기억하십시오. 이 예배와 침례 예식이 끝난 직후 빌리가 이곳에서 오늘 밤 기도 카드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오늘 밤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일요일 밤이므로, 이 도시와 루이빌 주변의 주민들은 대부분 자기 교회에 가실 것입니다. 각자의 교회에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주로 다른 곳에서 오신 분들이 모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기도받을 줄을 길게 세워서 한 분 한 분 모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믿습니다. 이미 기도 카드가 꽤 많이 나갔습니다. 어젯밤에는, 어젯밤이 지나고 나니, 우리가 말하는 그 조그만 단독 비행이라도 한번 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 작은 옛 타버내클에서 다시 손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그랬습니다.
제게는 여기 작은 아들이 있습니다. 꼬마 조셉인데, 아주 사내아이다운 아이입니다. 이제 세 살쯤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외칠 때 그 아이도 통로 한가운데로 뛰어나와 두 손을 들고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저기 통로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아마 오늘 아침에 작은 누나와 싸우다가 누나의 팔을 물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행동하면서 외쳐 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고! 그 어린것들은 참 사람 마음을 건드리지 않습니까? 물론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 한 것이겠지요.
자, 여기 그분의 말씀을 펼쳐 놓았습니다. 이제 잠깐 그 말씀에 관해 그분께 말씀드립시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희가 지금 경건하고 조용하며 진지하게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믿으며 나아갑니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주의 아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결코 잘못하실 수 없는 분이며,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구하는 바로 그것을 받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크시고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저희에게는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로 나아갑니다. 그분께서 저희를 위해 죽으시고 저희 죄를 속죄하셔서 저희를 위한 화해 헌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믿음은 이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저희가 주님 앞에 의롭게 되어 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악한 것을 구하지 않고 각 사람에게 좋은 것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 주의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셔서, 어떻게 해야 더 나은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가 되는지 알게 해 주십시오. 저희 모두가 들어가야 할 저 죽음의 큰 문을 생각합니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그 문에 한 박동씩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압니다. 그 안에 들어가고 나면 다시는 화해할 기회가 없다는 것도 압니다. 지금 가진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언제 그 경계를 넘어가게 될지 모르오니, 오 하나님, 속히 저희에게 오셔서 마땅히 가져야 할 분별을 되찾게 하시고, 주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 저희 사정을 아뢰고 긍휼을 구하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저희는 삶을 지나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통과하도록 인도해 주실 목자께 부르짖는 양들입니다.
옛날 다윗이 말했듯이, “그곳에 이르러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목자께서 나를 그곳 너머로 곧장 이끄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렇게 저희 발이 저 영광스러운 해안에 굳게 설 때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노쇠함과 질병과 슬픔과 죽음이 저희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것입니다. 주님,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앞 휠체어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이 눈망울 밝고 사랑스러운 어린아이... 오늘 저는 이 아이에게서 자꾸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악한 자가 저지른 소아마비 때문에 온몸이 불편합니다. 오 하나님,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건져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이 아이뿐 아니라 여기서 기다리는 다른 이들에게도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아침 주의 성령께서 그들을 높이 들어 올리셔서 의심의 모든 진동과 죄의 모든 장벽을 넘어서게 하시고, 주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셔서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일들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의 영광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복을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제가 택한 본문은... 그리고 어린이 여러분, 어른들에게 시간을 다 쓰고 오늘 아침 여러분의 수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제가 읽으려는 말씀을 여러분도 들었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 사무엘상 3장에서 읽겠습니다. 주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로 하겠습니다. 어린 소녀와 큰 소녀, 어린 소년과 큰 소년, 모두에게 맞는 주제입니다. 모두에게 말입니다. 이 주제를 기억하십시오.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지금 성경 사무엘상 3장을 찾고 계신 여러분, 처음 열 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를 섬겼는데 그 당시에는 주의 말씀이 희귀하여 열린 환상 계시가 전혀 없었더라. 오, 여기서 잠깐 머물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요. 제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 절을 한 번만 더 읽겠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를 섬겼는데 그 당시에는 주의 말씀이 희귀하였으니, 열린 환상 계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 여러분... 그렇다면 환상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직접적인 말씀입니다. 아시겠죠? 주님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그가 볼 수 없는 그때에 그는 자기 처소에 누웠고 주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궤가 있더라. 사무엘이 잠자려고 누웠더니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므로 그가 응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 달려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므로 사무엘이 가서 누우니라. 주께서 또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므로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그가 응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그런데 사무엘은 아직 주를 알지 못하였고 주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계시되지 아니하였더라. 주께서 다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므로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엘리가 주께서 그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그러므로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분께서 너를 부르시거든 너는 말하기를,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주께서 오셔서 서시고 다른 때와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시므로 그때에 사무엘이 응답하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나이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당시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열린 환상 계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음성은 희귀했습니다. 사람들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엘리라는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교훈만 가르치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오늘날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그는 그저 사람들을 가르치고, 좋은 것들을 자기 몫으로 챙겼으며, 아들들에게 고기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들의... 갈고리로 제물에서 건져 올린 것 말입니다. 결국 그곳은 제물이 가장 중요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은 주님의 명령을 다루는 일에 무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은 희귀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교회에 가 보면 사람들이 모여 무슨 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 교파의 교인 수를 이만큼 더 늘립시다. 다니던 교회에서 이명 증서를 가져와 우리와 하나가 되십시오.” 또 “44년에 백만 명 더!” 같은 구호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모든 일은 옆 교파보다 더 커지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성경의 울타리를 내려 버렸습니다. 멀리 벗어나 다른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이런 날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리가 아니라 사람의 교리를 가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너무나 많이 보았고, 그것이 너무 오래 계속되어서, 오늘날 누군가 와서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의 말씀이 희귀해졌습니다. 그것을 흉내 낸 일은 많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 말을 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들이 밤새 기도했고, 주님의 책을 따라 가정을 바로 세웠으며, 가정에서 하나님을 첫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주님보다 앞세워 놓았습니다. 오늘 밤 고드프리 씨가 텔레비전에 나오기 때문에 기도회를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수지를 사랑해”가 나오기 때문에 기도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들이 시간을 차지하여,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저 무릎을 꿇고, 이렇게 자기가 만들어 낸 짧은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와 제 가족에게 복 주시고 저희를 돌봐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는 “오늘 하루 저희를 인도해 주세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말은 다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대답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혼이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한 뒤, 마음을 편히 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쾌락의 소리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어디에 가면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찾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로큰롤 음악이라도 나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야. 오늘 성경도 한 절 읽었어. 그래, ‘예수님께서 우시더라.’” 그걸로 끝입니다. 그러고는 하던 대로 계속합니다. 하지만 정말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고 하면... 해야 할 다른 일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소리가 있고,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제 아내와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에 갔을 때였습니다. 저는 약속 같은 것에 늦어서 서둘러 아주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남자아이가 반쯤 졸며 서 있었습니다. 어린 여자아이가 다가왔는데, 어떤 남자의 것이어야 할 조그만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남자 옷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용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성경은 여자가 그것을 입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립스틱을 잔뜩 바르고 눈이 반쯤 감긴 채 그 남자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 뭐가 어디 있니?” 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아니?” 여자아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 여섯 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거 알잖아.” 그 아이는 열두 살도 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본이신 예수님은 열두 살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 일을 수행해야만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이 희귀한 것도 당연합니다. 너무나 많은 다른 소리, 흐리게 하고 빼앗아 가는 너무나 많은 것에 묻혀 버렸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감각이 무뎌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감각이 말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남자와 여자이며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을 섬기라고 이곳에 보내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소리와 거짓 선지자들은... “아, 시대에 맞게 사세요.”라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던 것처럼... 며칠 전 교회에 오다가 라디오를 켰는데, 루이빌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술을 적당히 마시라고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지나치게 마시지 않도록 시대에 맞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오, 술 마시는 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술은 어느 가정이든 무너뜨리고 망치고 파멸시킬 것입니다. 위스키에 반쯤 취해 있고, 담배와 술과 밤새 흥청거리는 생활로 생각이 마비된 가정에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이른 아침 밖에 나가 이슬과 인동덩굴의 향긋함을 만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내려오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빌리, 누군가를 치켜세우려고 하는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어젯밤에...” 아마 어젯밤인지, 어느 날 밤인지 그랬습니다. “아미시 여인 한 분 옆에 앉았어요. 머리에 조그만 모자를 쓴 자그마한 부인이었어요. 그분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만큼 온화했거든요. 혼이 부드러웠고 눈이 맑았어요.” 죄도 없고, 숨길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위스키와 담배와 온갖 세상 것들로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새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미국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강단 뒤의 거짓 선지자들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가 틀렸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회중은 결코 목회자보다 높은 수준으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이 목자들이 양 떼를 얼마나 흩어 놓았는가. 그들에게 화가 있도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들이니, 뽑혀서 불태워지리라.”
오늘날 사람들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한가운데서도, 감각을 무디게 하는 모든 것과 오늘날 세상에 있는 모든 소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떤 것은 쾌락의 소리이고 어떤 것은 사람들을 꾀는 죄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여전히 그대로 있습니다.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는 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남녀 여러분... 하나님은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여는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려고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목회자인 사람에게... 사람들은 여러 번 말합니다. “이것 좀 해 주시겠습니까? 이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이것을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기꺼이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브래넘 형제님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려는 사람이야.”라고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라고 하시는지 알려면 저는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선가 그저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알기를 원하시는 무언가를 주실 것입니다. 목회자 여러분, 너무 바빠서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며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을 지키십니다.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여러분의 교회가 그것을 아무리 반대해서 가르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누구에게나 여전히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잠잠해지기만 하면 그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허둥지둥 들어와서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이 교회에 가입해도 되겠습니까?” “어느 교회에서 오셨습니까?” “어느 어느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명 증서를 가져오십시오.” 아이고! “이 교회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아, 그럼요. 앞으로 나오십시오. 물을 조금 뿌려 드리고 명부에 이름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교제의 오른손을 내밀어 환영해 드릴 것입니다.” 프리메이슨 지부도 그보다는 절차가 낫습니다. 사실입니다. 프리메이슨 지부와 다른 모든 친목 단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집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그런 단체들은 여러분을 도덕적인 사람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의롭게 하십니다.
거기에는 윤리 규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새 출생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모두, 그분 앞에서 잠잠해지십시오. 빨래가 가로막게 하지 마십시오. 일이 가로막게 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가로막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을 하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십시오. 그저 그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어딘가 숲으로 올라가십시오. 길가로 나가십시오. 은밀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십시오. 아이들이 학교에 가거든 그곳에서 무릎을 꿇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방에서 온갖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그 소리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대로 머무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위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바꿀 것입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마땅히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제 이 현대를 떠나 지나간 시대로 돌아가 봅시다. 옛날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의 이 음성은 모든 시대,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농부이든 구두 수선공이든,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죄인이든 매춘부이든 창녀이든, 술주정꾼이든, 혹은 지역 교회에 이름만 올린 명목상의 교인이든,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든 하나님의 음성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말씀하려고 기다립니다.
지금 모세가 생각납니다. 그는 이미 여든 살이었고 신학 교육을 80년 동안 받았으며 성경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구출자가 되리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알고 그 시대의 현대적인 교회에 형식적인 교인으로 속해 있는 것만으로, 그는 제 손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습니다. 이집트 사람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저 일을 망쳐 놓습니다. 오늘 아침 마귀는 “침례받지 마.”라고 할 것입니다. 다른 소리는 “아, 나중에 받아.”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는 “네가 무엇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해.”라고 하고, 또 다른 것은 “즐거운 시간을 놓칠 거야.”라고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세는 최고의 랍비들에게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형식적이고 냉랭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갈대 속에 숨겨졌고, 커다란 악어들이 어떻게 자기를 붙잡을 수 없었는지 말입니다. 그 작은 아기가 어떻게 강물을 따라 떠내려갔는지 말입니다... 그곳의 악어들은 아주 살이 쪄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린이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기들을 잡아먹고 살이 쪘습니다. 그들에게는 매부리코를 한 여자들, 아기를 낳아 본 적도 없고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여자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나가서 어린 아기들을 붙잡아 죽이고 강에 던져 버렸습니다. 악어들은 그 어린 아기들을 먹고 살이 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어머니의 마음에 아기를 바로 죽음 가운데 두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그분은 곧장 죽음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악어들이 저마다 강을 따라 내려오는 그 조그만 바구니에 다가왔습니다. 왜 그렇게 할 수 없었는지, 왜 그 어린 아기를 잡아먹을 수 없었는지 아십니까? 그곳에 천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물러가라.” 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그분의 백성을 지키라는 책무를 주십니다. 얘야, 무서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보고 계신다. 마귀가 네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더 크신 분이시다.
그래서 악어들은 그 작은 바구니에서 거의 달아나다시피 했습니다. 모세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40년 동안 교육을 받고, 그 뒤 광야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제 손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압니다. 그런데도 말합니다. “자, 우리는 이것을 이런 식으로 합시다. 이제는 기적의 시대가 더 이상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기적을 본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고, 물을 뿌리는 것도 물에 잠기는 것만큼 좋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도 주 예수님의 이름만큼 좋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길로 가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모세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인으로 훈련받은 방식대로 이집트 사람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 없애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만큼 좋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모세가 한 사람을 죽였다고 정죄합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 다시 내려와 전부 죽였을 때는 아무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파라오의 군대 전체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습니다. 처음 일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교회의 신학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음 파라오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광야 저편에서 수염이 길게 늘어진 여든 살 노인이 된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몸을 돌렸습니다. 떨기나무 가까이 갔을 때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기까지 40년 동안 그를 잠잠하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의 온갖 소란과 부산함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십 분도 잠잠히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모세는 40년이 지난 뒤 그곳에 섰고, 그 떨기나무 앞에서 자기를 부르는 그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뒤 5분 동안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80년간 교육으로 배운 모든 것보다 많았습니다. 그것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무엘처럼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오래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여러분도 다른 남자, 다른 여자가 될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십시오. 흥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으면 구하십시오. 그런 다음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관해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 보십시오. 그저 마음을 여십시오. “주 예수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십시오. 그곳에 그대로 머무르십시오. 처음 다섯 시간 동안 응답하지 않으시면 더 기다리십시오. 오늘 응답하지 않으시면 내일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번 주에 응답하지 않으시면 다음 주에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응답하실 때까지 그곳에 머무르십시오. 그분의 음성이 여러분의 마음에 대답하여 “그래, 나는 너를 치유하는 주니라.”라고 하시는 것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끝난 것입니다. 그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시겠죠? “나는 네 모든 죄를 용서하는 주니라. 이제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면 여러분은 자유롭게 갈 수 있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지 확실히 해야 합니다. 모세는 들었습니다. 그는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보십시오. 젊은 시절 그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그 당시 큰 은총을 입은 웃시야 왕은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은 이사야가 선지자인 것을 알았기에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저 왕의 팔에 의지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웃시야가 주었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할 때마다 그 선한 왕이 주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죽을 때가 왔습니다. 번영은 언제나 사람을 망칩니다.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하지만 번영은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어느 곳에서 이런 취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많은 것을 주었을 때, 네가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네게 왔노라. 너는 내 말을 듣고 나를 섬겼으나, 내가 네게 복을 주고 풍족하게 하자 내게서 얼굴을 돌렸노라.”
미국이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얼굴을 돌렸습니다. 교회도 그렇게 했습니다. 길모퉁이에 자리 잡고 크고 훌륭한 건물들을 세우며 수백만 달러를 들이고, 모든 것이 더없이 편안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빼앗길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그때는 그 음성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왕의 팔에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이였고, 이 젊은이에게는 은총을 입은 훌륭한 영이 있었기에 왕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를 받쳐 주던 버팀목이 무너졌습니다. 왕이 죽은 것입니다. 왕이 죽자 이사야는 혼자 나아가야 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그는 모든 사람이 왕 같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이런 초교파 모임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어느 조직에 소속되지 않으면 경배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은 그저 여러분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배척이 있을 것입니다. 짐승의 표가 반드시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로마에 있는 것과 같은 그 짐승, 교회 연합체에 속하든지, 아니면 아예 경배하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사야처럼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깨닫고 두 손을 들며 말했습니다. “오 주님, 저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보십시오. “저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는 절박해졌습니다. 여러분도 이 일에 절박해지면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충분히 절박하지 않습니다.
“아, 뭐, 교회에 가입하면 그걸로 됐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그 일에 절박해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필요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라.” 그런데 세상 것들에 만족하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분은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세상 것들로 너무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입니다. 세상 일과 세상 쾌락에 시간을 다 쓰고 하나님께는 시간을 드리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이사야는 절박해졌습니다. 그는 부르짖으며 자기 죄를 고백했고 백성의 죄도 고백했습니다. 고백을 마쳤을 때 위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올려다보니 그룹들이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날개로 발을 가리며 다른 날개로 날아서 건물 안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전능자여.”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절박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제 입술이 부정합니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방금 음성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그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누가 가겠느냐? 누가 이 신학자들 가운데서 무너진 틈을 막아설 것이냐? 누가 이 시대에 가서 내가 여전히 하나님이라고 선포할 것이냐? 누가 가서 그들의 부정함을 정죄할 것이냐? 누가 그들의 교파를 허물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세울 것이냐? 누가 가겠느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가려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의 작은 두려움과 당황하는 마음이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태어나야 하며, 변화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상상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자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구하면 받으리라.” 천사 하나가 놋제단으로 가서 부집게를 집어 들고, 손을 뻗어 타오르는 숯을 집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사야에게 달려와 그의 입에 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제 네가 깨끗해졌으니 가서 말씀을 전하라.” 이사야는 그 음성을 들은 뒤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성경 전체를 썼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서 끝냈습니다. 성경에는 66권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66장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그 일이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았을 때 그가 절박해졌기 때문입니다.
바빌론에 있던 다니엘은, 어젯밤에도 이야기했듯이, 바빌론의 교리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에 뜻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서 다니엘에게 절실한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은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산 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그저 내려가 병거를 세워 놓고 갈대숲에 무릎을 꿇은 뒤 “주 하나님, 주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는 병거와 마부들을 데리고 강으로 내려간 다음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음성을 들을 때까지 머무르려 했습니다.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는 그 일에 절박해졌습니다. 모든 군사와 천문학자와 지혜자, 신학 박사 같은 사람들, “다니엘, 이렇게 하십시오. 다니엘, 저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는 강가로 내려가 그곳에서 21일 동안 머물며 주의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가 물 위를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천사가 땅과 바다에 발을 딛고 서서 두 손을 들고 영원무궁토록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이 본 그 일들이 이루어질 때는 더 이상 시간이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 땅의 악 때문에 21일 동안 지체하셨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그 땅의 악 때문에 21일 동안 지체하셨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오래 지체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꺼지지 않는 그 믿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주림과 갈망은 하나님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말씀하실 때까지 붙들고 늘어집니다. 이것을, 복음을 장난으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장난삼아 다룰 것이 아닙니다. 열 번 쏘면 열 번 모두 압정을 맞혀야 합니다. 완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옳지 않고 효력이 없습니다. 완벽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기도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8장쯤, 아니 7장이나 8장을 보면 사울이라는 스스로 이룩한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오, 그는 틀림없는 신학자였습니다. 가말리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 신학자들의 기준에 따르면 성경 전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아, 스스로 그렇게 자처하고 제 힘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자기가 만든 신학과 맞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오늘날과 얼마나 똑같습니까! 많은 사람이 그렇듯 그의 마음은 정직하고 신실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신유와 성령의 권능은 그저 말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마스쿠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감독이 내린 명령서를 주머니에 넣고, 소리를 지르고 외치며 펄쩍펄쩍 뛰고 외국어로 말하고 병자를 고치는 그 광신자 무리를 전부 없애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신학자들은 말했습니다. “저것들은 마귀 떼야. 내려가서 체포해 사슬로 묶어 여기로 끌고 오게.” “물론입니다, 감독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아이고!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신학 박사 학위며 철학 박사 학위도 있었지요. 그래서 말에 올라 동행하는 무리와 함께 떠났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정오쯤 되어 무언가가 그를 땅에 쓰러뜨렸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먼지 속에서 뒹굴며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무엇이었습니까? 그에게 말하는 어떤 신학자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음성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그는 먼지 속에서 몸을 뒤척였습니다. 찌푸린 이마에는 먼지가 가득하고, 아마 뺨에는 눈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눈을 번쩍 뜨자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불기둥이 그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음성이 나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람이 만든 네 가르침은 틀렸노라.” 무엇이었습니까? 열린 환상 계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드러난 것입니다. 오 형제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어젯밤 휠체어에 앉아 왔던 이 어린 여자아이들이 오늘은 휠체어 없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제 가는군요. 얘들아, 주님께서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누가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때 초자연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신 동일한 예수님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갈릴리를 걸으실 때처럼 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들으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습니까? 그분이 사울을 신학교에 데려가 새로운 신학을 가르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구름 속에서 실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시내산에서 우레처럼 말씀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집회와 장소에서는 사람의 음성이 변화되는 것을 듣습니다. 알파벳도 거의 모르는 사람인데, 그리스도께서 그 음성을 사용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신비를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 앞에 앉아 있는 모든 남자와 여자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 우리는 너무나 졸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히 해야 할 필요는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와 신학과 생각과 생활 방식 속에서 너무나 졸고 있어서, 그 음성이 말씀하실 때 듣지 못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그건 텔레파시일 수도 있어요. 그건... 아시잖아요.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어요.” 모세가 “저 떨기나무 속에 있는 것이 마귀가 아닐까?”라고 했다면 어땠겠습니까? 모세에게는 의문이 없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아, 그건 그냥 내 양심이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것이 그분의 음성임을 알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그들은 알 것입니다.
베드로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았고 성령으로도 충만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장로들의 전통을 붙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알던 것은 말씀을 듣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지붕 위에서, 그는 “고기를 먹지 말라.”라든지 안식일 같은 전통을 지키려 했습니다. 여전히 그런 것들을 붙들려고 애쓰는 선한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날 지붕 위에 있을 때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 하지 말라.” 하나님, 이 계곡의 설교자들을 한 무리 데려다가 우리가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광신자도, 쓰레기 같은 무리도 아닙니다. 이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남자와 여자들이 그분의 선하심에 취해 있습니다. 마술이나 정신적 텔레파시가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장로 여러분, 여러분의 전통을 놓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음성이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핍박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핍박받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교리의 장벽을 지나 저기 그분의 임재 안으로 떠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언가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기적이 지금 바로 이곳에 있다고 믿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나 그렇게 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변화시켜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학교와 교사가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사람이 되게 합니다.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 개인적인 체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은 여러분 가운데 많은 남녀 분들도 자신의 간증을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 저 켄터키 산속에서 그 음성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나무에 앉은 새인 줄 알았는데 새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 뉴올버니라는 도시 가까이에 살게 될 것이다.”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도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여자들과 어울려 네 몸을 더럽히지 말라. 네가 자라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오, 그분은 여전히 동일한 주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작고 은밀한 방, 기도실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고 회중 앞으로 나오면,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눈에 드러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그것은 희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더욱 희귀합니다. 열린 환상 계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 음성을 들었고, 그것은 그의 신학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무식하고 버림받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에게 곧장 갔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한 사람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성경에 한 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었고, 그분을 사랑하고 믿고 경배했으며, 함께 놀기도 하고 함께 언덕에 오르기도 하고 강에 내려가 낚시도 했습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떠나 계시는 동안 죽음이 그의 방에 소리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와 그의 사랑스러운 두 자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옛 정통 교회를 떠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믿었기에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자 교회는 곧바로 그들을 출교시켰습니다. 이 젊은이는 심하게 앓다가 죽었고, 묻힌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때 신학적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때 그의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땅 위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사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 무덤 속에서 썩어 가던 나사로는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나와 다시 살았습니다.
저도 한때 죄와 범법들 가운데 죽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죄와 범법들 가운데 죽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저는 그 음성이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그를 곧게 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눈먼 사람에게 말씀하시자 눈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 암에 시달리는 사람, 나병 환자에게 말씀하시자 그들이 회복되어 순식간에 다시 완전히 건강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알코올 중독자와 신경증 환자, 버림받은 사람과 빈민가의 부랑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품위 있는 남녀가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귀 기울여 기다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떠도는 혼이 몸을 떠나 어딘가 목적지에 이를 때가 올 것입니다. 저 어둠 속을 떠돌든 하나님의 품 안에 있든, 그 음성이 다시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영원한 수치와 치욕으로 나올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영원한 평안과 기쁨으로 나올 것입니다.
오늘 아침이 여러분의 마음을 정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텔레비전이 하는 말을 들을지, 신문이 하는 말을 들을지, 신학자들이 하는 말을 들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다른 어떤 것의 말도 듣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합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도 믿고 싶습니다. 믿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왜입니까? 충분히 오래 잠잠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모두 사라지는 자리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심이 사라진 그 자리로 들어가면 자유로워질 것이고, 하나님의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자녀야, 나는 네 구원자다. 내 자녀야, 나는 너를 치유하는 자다. 너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네가 자유로워지도록 내가 죽었다.” 하지만 온갖 소리가 뒤섞인 여기 아래, 이 진동 속에 머물러 있는 한... 그 모든 것에서 훌쩍 벗어나십시오.
한번은 산에 올라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 체험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십 년쯤 전, 아니 그만큼 오래되지는 않았을 때, 저는 제프리스 씨가 소를 몰아 모으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때 그들이... 저는 말들에 소금을 싣고 있었습니다. 소들이 와야 할 곳을 알도록 소금을 놓아둘 특정한 소금터로 가져가고 있었습니다. 문명에서 거의 70마일 떨어진 깊숙한 곳이었습니다... 아니, 콜로라도주 크레믈링까지 30마일쯤, 35마일, 어쩌면 40마일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가야 인구가 700~800명쯤 되는 작은 도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을 데리고 있었고, 안장 주머니의 짐은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는 그... 쌍안경으로 소를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을 나뭇가지에 매어 두었고, 뒤따르는 말들이 그 뒤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은... 방울을 단 말이 앞에 있었습니다. 제가 언덕에 올라가 보니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봄이었습니다. 계곡들을 건너 바라보며 멀리서 잔물결이 이는 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있는데... 오후 한창때였습니다. 그때 제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미가 둥지에서 새끼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미 독수리였습니다. 새끼들 위를 맴돌며 날개를 퍼덕이다가 자기 날개에 태웠습니다...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온 적은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미가 새끼들을 계곡 아래로 데려갔습니다. 새끼들은 거기 내려가 본 적이 없었고, 이제 막 날기를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들을 내려놓자, 새끼들은 이리저리 다니며 풀을 쪼고 서로 뒤엉켜 뒹굴며 더없이 태평하게 놀았습니다.
그곳에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저게 바로 참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와 같지 않은가?” 그들은 염려가 없습니다. 왜 염려가 없었습니까? 두려워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곧장 위로 올라가 바위에 앉아서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 그것만으로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가 성령을 받으면 어느 목사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느 감독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하고 생각할 때 말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영광의 성벽 위로 오르셨습니다. 하늘들의 하늘에 앉아 계십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분의 눈은 참새를 지켜보십니다. 그분이 저를 지켜보신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여러분도 지켜보십니다.
그런데 만일... 코요테나 다른 무엇이 와서 이 새끼들 중 하나를 건드리려 한다면 보십시오.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미는 손으로... 발톱으로 코요테를 붙잡아 몇천 피트쯤 올라간 다음 그냥 놓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공중에서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아무것도 그 새끼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어미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킬 것입니다. 아무것도 여러분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말씀대로 믿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마음을 편히 하고 믿음을 가지며 믿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는 것은 무엇이든 산산이 부수실 것입니다. 오, 그것이 여러분을 공격할 수는 있어도 해치지는 못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이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일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어떤 해도 여러분에게 닥칠 수 없습니다.
얼마 뒤 폭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폭풍이 시작되면 아주 빨리 옵니다. 북쪽에서 오는 폭풍이 그렇습니다. 번개가 살짝 번쩍이고 바람이 시속 60~70마일로 몰아칩니다. 그러자 어미 독수리가 크게 울부짖으며 계곡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새끼 독수리들은 자기 엄마의 목소리를 알았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위험이 코앞에 와 있었습니다. 그 새끼들은 나무토막 밑에 숨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잡동사니 더미 속으로 뛰어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지 지켜보십시오.
어미가 땅에 내려앉았습니다. 아주 커다란 발이 이만했습니다. 거대한 비행기가 착륙하듯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어미는 고개를 들어 울부짖고 큰 날개를 펼쳤는데, 양 끝 사이가 14피트쯤, 여기 이 기둥에서 저 기둥만큼 넓었습니다. 새끼 독수리들이 모두 힘껏 달려와 엄마의 날개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조그만 발톱을 뻗어 꽉 붙잡고 작은 부리로 단단히 박힌 깃털 하나를 물었습니다. 어미는 날개를 한 번도 퍼덕이지 않고 새끼들을 태운 채 바람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다가오는 폭풍에서 새끼들을 숨겨 주려고 곧장 바위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 형제여, 폭풍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음성이 여러분을 부릅니다. “바빌론에서 나와 너희 자신을 분리하라. 그들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받아들이리라. 너희는 내 아들딸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마치면서 잠깐 머리를 숙입시다. [회중 가운데 누군가가 예언한다.] 아멘. 여러분도 들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에서 예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기 이런 말씀을 드릴 분이 계십니까?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주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제가 교회에 가입하고 신앙을 고백하기는 했지만, 주님 앞에서 잠잠히 머물며 저를 인도하고 가르치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주께서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제게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주께서 제게 말씀하시고 제 길을 이끌어 주실 수 있도록 주님을 알고 싶습니다.” 지금 손을 들고 “하나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곳곳에 계신 여러분께 주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방에서 손을 드시는군요. 계속 드십시오. 그렇습니다. “주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제게는 주님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마치기 전에 더 계십니까? 뒤에 계신 부인, 하나님께서 드신 손을 보고 계십니다. 저 뒤에 줄지어 서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강단에 이르기까지, 이 주위에 계신 분들도 말입니다.
사무엘은 말했습니다. “엘리여, 저를 부르셨습니까?” 엘리는 말했습니다. “아니다,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친구여, 여러분의 마음에 말씀하신 것은 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그저 대답하며 말씀드리십시오. “주의 종이 듣나이다. 하나님, 오늘 저를 돌보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제가 온전히 주의 것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혼을 사랑하시는 분,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여, 사무엘에게 말씀하셨고 사울에게 말씀하셨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고 다니엘과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으며 모든 시대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고요하고 작은 음성이 오늘 아침 타버내클에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서른이나 마흔, 어쩌면 쉰 명쯤 되는 죄인들과 교인들과 좌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젯밤 이곳에 있었고, 주의 음성이 귀에 들리도록 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오늘 아침 동일한 그 음성이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자신이 잘못되었으며 올바르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주께서는 말씀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키리라.” 아버지, 주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서 주님을 부르며, 손을 든 이들에게 영생과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들이 평생 주님을 위해 살게 하시고, 인생의 여정 끝에서 주님의 기쁨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 아버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위해 구합니다. 아멘.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정말 온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런 작은 곳에서는... 제가 시간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말씀 안에 임하시고 회중 사이로 움직이십니다. 그분이 사람들 위를 휩쓸며 변화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감정의 표현을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감정이 여러분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여러분의 존재 깊은 곳까지 들어가 도덕성에 닿아야 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죄 가운데 있던 상태에서... 죄인이란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문학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고, 이름 뒤에 철학 박사나 법학 박사 칭호를 달고 있어도 여전히 죄인인 사람이 많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알고 강단에서 설교해도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오늘날에도 성령이 주어지는 것을 믿는지 물어보십시오. “아, 물론 아니지요.” “신유가... 믿으십니까?” “아,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자신의 말씀을 증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영이 하나님께서 진리라고 하시는 것과 반대로 증언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리스도의 사람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이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에 “아멘”이라고 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을 때... 베드로가 오순절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너희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런데 여러분의 영이 그것은 다른 시대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약속은 너희” 곧 유대인과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이방인,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같은 약속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그것이 그 가지의 교리라면... 첫 가지의 교리라면, 두 번째 가지도 같은 교리를 가져야 합니다. 같은 교리는 같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같은 것을 맺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기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께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이야기하시며 자신의 말씀을 확증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나 기쁩니다.
잠시 뒤에 침례 예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물을 뿌리는 의식이나 붓는 의식, 또는 물에 잠기는 의식을 받았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받으셨다면, 물로 나오시기를 촉구합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그 말씀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여. 성경에는 물을 뿌리는 의식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누군가가 물 뿌리는 의식을 받았다는 곳은 없습니다. 자,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한 주 내내 이 강단에서 물었습니다. 성경에서 죄들의 사면을 위해 물을 뿌리는 의식을 받은 사람, 죄들의 사면을 위해 물을 붓는 의식을 받은 사람, 죄들의 사면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에 잠겨 침례받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을 찾아 주십시오. 성경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뿌리거나 붓거나 침례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한 번 있었는데, 그들은 어떤 이름으로도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침례를 준 바로 그 사람에게 침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그들을 만났을 때,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침례를 전혀 받지 않았는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에게 명령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 때까지 함께 머물렀습니다. 친구여, 그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브래넘 형제님은 예수 유일주의자입니다.”라고 한다는 것을 압니다. 틀렸습니다. 저는 그저 성경을 믿습니다. 어떤 교파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유일주의자들은 어쨌든 그런 식으로 침례를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만 침례를 줍니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많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입니다. 아시겠죠? 그리스도는 메시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친구 여러분, 오늘 아침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그렇게 침례받지 않으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이 혼 깊숙한 곳에서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감독이나 교회나 그 밖의 무엇이 무슨 말을 하든, 와서 주님께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제 명령입니다.
이제 네빌 형제님은 침례 예식을 준비하는 분들과 함께 이 방으로 가서 준비하실 것입니다. 장로님들 가운데 몇 분도 함께 가십시오. 저도 잠시 뒤에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나오시는 분들이... 이제 우리가 “내 구주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네. 그분과 함께 가리라...”를 부를 것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상관없이 “그분과 함께 가리라.” 누가 뭐라고 하든 “그분과 끝까지 함께 가리라.” 남자분들은 이 방으로, 여자분들은 이 방으로 가십시오. 지금 찬송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잠시 뒤에 공식적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좋습니다. 모두 함께 부릅시다. 내 구주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네, 자, 남자분들은 여기로, 여자분들은 이쪽으로 가십시오. ...내 구주... 여자분들 몇 분은 이 여자분들과 함께 여기로 들어가 주십시오. 내 구주의 음성이 들리네...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그분의 음성입니까?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따르라.” 그분이 어디로... 지금 진심으로 부르고 계십니까? 나는 따르리라,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나는 따르리라, 그분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나는 따르리라, 그분과 함께 가리라, 그분과 함께 끝까지...
친구여,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는 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여기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맞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음성입니다. 하지만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여러분은 어떻게 올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오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의 이름이 세상의 창건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진리임을 알면서도 앉아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언가가 그를 붙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기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이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헛되이라고요? 여러분은 “저는 충실한 사람입니다. 저는 충실한...”이라고 말합니다.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이 내게 헛되이 경배하며 사람들의 명령들을 교리로 가르치는도다.”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을 뿌리거나 붓거나 침례를 받은 사람이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찾아보십시오. 찾아내십시오. 있다면 오늘 밤 강단으로 와서 제게 보여 주십시오. 그러니 여러분이 그런 방식으로 받았다면, 사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앞으로 나와 신앙을 고백하면 그때 성령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렸습니다. 사람이 만든 교리입니다. 거짓된 물침례가 있습니다. 거짓된 성령 침례도 있습니다. 마귀는 종교적이기 때문에 흉내를 냅니다. 가인, 그의 아버지도 종교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입니다. 뱀의 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여자의 씨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이제 오늘 아침 여기에 앉아 계신 어떤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성경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신조에 따라 잘못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이루어진 여러분의 첫 출생도 잘못되었습니다. 돌아가서 올바르게 시작하지 않는 한 어떻게 올바르게 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번 주에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다”라는 설교를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잘못된 음성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음성은 성경의 규례를 따르라고 할 것입니다. 물을 뿌리는 것도, 붓는 것도, 거짓된 것도 아닙니다. 곧바로 나와 성경의 규례를 따르십시오. 친구 여러분, 그렇게 하십시오.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하더라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내 음성을 들으라. 내 양들은 듣고 내게 오리라. 내게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존하는 생명을 주고 마지막 날들에 그를 일으키리라.” 맞습니까? 여기 성경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무도 그것을 반증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반증할 수 없습니다. 여기 영의 권능 가운데 예수님께서 하셨던 바로 그 일들을 행하고 계십니다. 여기 사진 속에 그분이 계십니다. 동일한 불기둥이 움직이며 같은 열매와 같은 영, 같은 감정과 같은 행동, 같은 표적과 같은 이적을 나타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음성이 “사무엘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예, 주님. 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의 종이 여기 있습니다. 주의 종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부인께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말씀을 너무 강하게 하시는군요.”라고 합니다. 강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생사가 걸린 일이니 강하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제 여기 건물 안의 집기들을 옮겨서... 여러분이 침례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전에 말입니다. 그곳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직접 조금 읽겠습니다. 제가 실제로 읽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보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마 마태복음 16장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의 왕국의 열쇠들을 네게 주노라.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묶으면 내가 하늘에서 묶고,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풀면 내가 하늘에서 풀리라.” 여러분 모두 아시지요? 오순절 날 하나님의 왕국이 충만한 권능 가운데 임했습니다. 그것을 믿으십니까? 베드로가 서서... 자,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그분은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맞습니까?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셨지 왕국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면서 한 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듣고도 마음을 완고하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이 정확히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이해하실 수 있도록 제가 성경을 읽는 동안 귀를 기울여 들으십시오. 사도행전 2장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다”라는 설교를 여기서 들으신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침례를 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침례받아야 합니까? 물을 뿌려서입니까, 부어서입니까, 아니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어떤 목사든 감독이든 누구든, 어디서든 언제든, 누군가가 물을 뿌리거나 붓거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은 성경 구절을 하나라도 보여 달라고 저는 요구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요구입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에서 시작한 거짓되게 만든 신조입니다.
물을 뿌리는 의식은 마지막 제자가 죽은 지 약 600년 뒤에 가톨릭교회에서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도 그때 채택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서로 다른 신들을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직분들로 삼위일체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세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교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 한 하나님이니라.” 유대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중 어느 분이 당신들의 하나님입니까?” 오직 한 분이십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 세 가지 직분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로 나타나셨습니다. 만질 수 없는 분으로서 산 위에 임해 계셨고, 소나 다른 짐승이라도 산에 닿으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경배받기를 원하셔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더 가까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안에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리니, 내가” 여기서 ‘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곧 너희 안에 있겠기 때문이라.”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불기둥입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 그분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공과에서 우리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바울을 봅니다. 그분은 길을 가는 바울을 만나셨습니다. 그를 쳐서 쓰러뜨리셨습니다. 바울이 올려다보았을 때 그분은 무엇이셨습니까? 다시 불기둥이셨습니다. 그의 눈을 멀게 한 빛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하신 일을 보십시오. 여인에게 그녀의 죄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내게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라.” 사람들이 그분께 물었습니다. “왜 저기 내려가 저 사람들을 고쳐 주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다리를 절고 몸이 불편하고 눈멀고 몸이 마른 큰 무리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침상에 누운, 전립선 문제인지 무슨 병이 있는 한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왜 그 사람들 전부를...?”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지금 요한복음 5장 19절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행할 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행하느니라.”
그분은 이 마지막 날들에 다시 오셨습니다. 과학계도 그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곧바로 다시 오셔서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영이...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경배할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여기 그분이 계십니다. 오순절 날 하신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다 그 일의 증인들이니라. (우리는 증인들입니까?) 그러므로 그분께서 하나님의 오른손에 의해 높여지시고... 아버지에게서 성령님을 약속으로 받아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으나 친히 이르되,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이것을 확실히 알지니 곧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그 동일한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그냥 가서 착하게 살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베드로, 조심하십시오. 이제 당신에게 왕국의 열쇠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땅에서 잠그면 내가 하늘에서 잠그리라.”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러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성경 한 곳만 더 보겠습니다. 그로부터 32년 뒤에 바울이, 여기 19장에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위 지방들을 거쳐... 어떤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침례교인 여러분, 이 말을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믿은 이래로 성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이것은 출생입니다. 신앙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계시는지도 알지 못하노라.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이르되, 참으로 요한이 회개에 이르도록 침례를 주었으니, (죄들의 사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개에 이르도록입니다.) 말하기를... 오실 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가 믿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라.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타 언어들로 말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였느니라.
이제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자기 서신을 마치면서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입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너희가 이미 들은 복음 외에 다른 어떤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너희에게 저주받은 자가 될지어다. 고린도전서 14장 38절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영적인 자나 선지자라고 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들이 주의 명령들인 줄 인정할지니라.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거든, 그냥 알지 못하게 그를 둘지니라.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든 증거가... 제가 여러분의 처지에 있고 그리스도인의 침례에 따라 침례받지 않았다면, 제 교회가 어떻게 생각하든 제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주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 이제 이 일은 주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모든 마음에 역사하시고, 침례받기 위해 침례탕에 있는 이들이 주님을 기다릴 때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 그날에 제가 죄책이 없고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전통이나 교파나 조직을 지지해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의지해 서 있게 해 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