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오늘 오후에 다시 이곳에서 우리의 짧은 공부를 이어 가게 되어 기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모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함께 모여서... 아시다시피 여기에는 뭔가가 있어서 우리가...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꿀단지에 손을 집어넣는다고 말입니다. 꿀단지가 뭔지 아시지요. 몇 년 전 일이 생각납니다. 꼭 사진기가 없을 때 볼거리를 만나게 되지요. 저는 뉴햄프셔 북부 깊은 산속으로 낚시를 갔습니다. 작은 브룩송어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저는 그 송어 낚시를 좋아합니다. 작은 삼각 텐트를 짊어지고 올라갔습니다. 이틀쯤 걸어야 하는 높은 산속이었는데, 흰꼬리사슴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막 집회를 마친 뒤라, 그저 쉬면서 긴장된 신경을 가라앉히려고 갔습니다.
그 전날 저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낚시를 했습니다. 위쪽에 좋은 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브룩송어가 여러 마리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덤불 때문에 플라이 낚싯줄을 앞뒤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올라가서 아침거리로 두세 마리 잡아야겠다. 작은 손도끼도 가져가서 저 나뭇가지들을 잘라 버려야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침에 먹을 물고기도 잡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다가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덤불을 돌아서 보니 어미 곰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가 제 텐트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텐트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먹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저 이것저것 찢어 놓는 게 문제지요... 거기에는 양치기들이 쓰는 난로와 연통이 있었는데, 곰이 그 위에 올라가서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마구 뛰어대며 완전히 찌그러뜨려 놓았습니다.
그러다 어미 곰이 저를 발견하고는 달아나며 새끼들을 부르는 소리를 냈습니다. 한 마리는 곧장 어미를 따라갔지만, 다른 작은 녀석은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안에는 녹슨 낡은 소총 한 자루가 있었는데, 22구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손도끼도 있었습니다만, 어미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 숲속에 고아들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새끼들 주위에서 얼쩡거리면 어미가 할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곤란한 처지가 된 셈이지요. 그래서 한쪽으로 비켜섰습니다. ‘저 작은 녀석은 왜 꼼짝을 안 할까?’ 싶었습니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미가 계속 불러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작은 녀석은 저에게 등을 돌린 채 이렇게 앉아 있었고, 저는 뒤쪽에 있었습니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도록 이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팬케이크를 좋아합니다. 좋아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저는 항상 작은 당밀 통 하나를 가지고 갑니다. 사실 꽤 큰 통이지요. 제가 침례교인이었으니까요. 조금 뿌리는 게 아니라 푹 담급니다. 정말 넉넉하게 듬뿍 붓지요. 그런데 이 작은 녀석이 제 당밀 통을 꺼내 놓았던 것입니다. 곰들은 그걸 좋아합니다... 녀석은 온통 당밀투성이였습니다. 그렇게 당밀을 뒤집어쓴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통에서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작은 앞발을 집어넣었다가 이렇게 핥고 있었습니다. 핥고 또 핥았지요. 제가 “거기서 나와!” 했습니다. 녀석이 돌아보는데 눈에도 당밀이 묻어 있었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더군요. 저를 쳐다보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눈을 뜨더니, 저를 보고도 계속 당밀을 먹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옛날식 오순절 집회가 생각나는구나. 당밀 통에 손을 집어넣고 그저... 이번에는 당밀이 아니라 꿀이지. 온통 꿀투성이가 되어 그저... 정죄도 없고, 겁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구나. 하나님이 곁에 계시니 우리는 그저 꿀을 먹는 거야. 계속 꿀을 먹는 거지.’ 녀석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녀석이 그 통을 싹 훑어 먹은 뒤... 제 말은... (뭐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요? 클리본 형제님, 어디 계십니까?) “훑어 먹다”라는 건 켄터키식 표현입니다. 아무튼 통에 있던 당밀을 다 먹고 나서 녀석은 어미와 다른 작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녀석의 온몸을 핥으며 남아 있던 꿀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집회에 와서 경험을 얻고 사람들 곁에 가면,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서 그것을 핥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꿀이 있는 곳에 들어가기만 해도, 아, 참 좋습니다. 저는 그게 좋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더 먹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에 관해,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22장 14절을 읽어 본문으로, 말씀을 전할 배경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런 다음 어제 마친 곳인 17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자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부분입니다. 이제 여기 성경 말씀을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르기를, ... 주의 산에서 ...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읽은 데 복을 더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는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는 구속을 나타내는 이런 복합된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치유자이신 여호와 라파, 그 밖에도 우리의 작은 방패이신 여호와, 우리의 방패이신 여호와, 우리의 평강이신 여호와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이름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런 본성을 나타내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본성입니다. 여호와 이레,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시리라. 여호와 라파,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주. 이제 그분이 더 이상 여호와 라파가 아니시라면, 더 이상 여호와 이레도 아니십니다. 그분이 여호와 이레가 아니시라면 여러분을 위한 희생물이 없으므로,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분이 여호와 이레이시고 주께서 예비하신 희생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면, 그분은 또한 치유자 주,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구속을 나타내는 그분의 복합된 이름들을 떼어 놓을 수는 없습니다. 아시겠죠?
어제 저녁에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려고 조금 앞부분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씨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해하셨으면 “아멘”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만나시고 택하심으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택하심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미리 아심으로 모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제가 전에 그런 말을 했더니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도 그 일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가 호수로 내려가 그물을 던졌다”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에워싸서 끌어 올렸더니, 그중에는 물고기도 있었고 온갖 것들이 있었습니다. 거미, 거북이, 개구리, 별별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부들이 하는 일입니다. 저도 어부입니다. 이분들도 어부입니다. 그들은 호수 이곳저곳에서 고기를 잡습니다. 저도 와서, 이쪽에서 고기 잡는 분들과 함께 제 그물을 던집니다. 저는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복음의 그물에 무엇이 걸렸든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물고기도 있습니다. 거북이도 있습니다. 뱀도 있습니다. 개구리도 있습니다. 가재도 있습니다. 거미도 있습니다. 작은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거북이가 등껍질 밖으로 머리를 쑥 내밀고는 말합니다. “흥, 난 원래 이런 성결이라는 게 싫었어.” 슬금슬금 기어서 곧장 진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도 제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복음의 그물에 걸렸으니까요.
여기 거미 부인이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말합니다. “흥, 브리지 카드놀이 모임도 못 하고, 남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옷차림도 다르게, 행동도 다르게 하라고?” 그러고는 첨벙첨벙하며 곧장 물로 돌아갑니다.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처음부터 거미였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거북이였고, 처음부터 물고기였던 것입니다. 이 호수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일정한 수의 물고기들이 있습니다. 제 집회가 미국에서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몸이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미국은 이미 불이 한번 훑고 지나간 지역입니다. 오럴 로버츠, 빌리 그레이엄, 잭 슐러, A. A. 앨런 같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그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또 이리저리 훑어서 사실상 거의 다 건져 올렸습니다. 미국의 이 세대는 끝났습니다. 교회는 봉인되어 주께서 오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죠? 우리의 일은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 다른 지역들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직전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아홉 밤 동안 집회를 했습니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그 아홉 밤의 집회를 통해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사만 명이 등록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그만큼 하려면 육 년은 걸릴 것입니다. 그나마 거의 다 전에 교회에 한번 왔다가 돌아갔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언젠가 훌륭한 분이, 아마 T. L. 오스본이었는지 다른 분이었는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두 번 들을 권리가 없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미국 사람들에게는 돈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금이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갑니다. 저는 평생 헌금을 걷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보내 주는 것만 받습니다. 그러면 그 돈을 받아 가능한 한 모아 둡니다. 충분히 모이기만 하면 곧장 이교도들에게 가서 그 돈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제게 십일조를 주시는 분들, 저는 여러분이 주신 십일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로버츠 씨, 오럴 로버츠 형제님은 우리 모두 아는 훌륭한 분입니다. 그분은 여기 서서 계속할 수는 없... 제 생각에 그분의 경비는 하루에 약 만 달러쯤 될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빌리 그레이엄은 방송할 때 분당 이만 오천 달러가 들 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경비는 얼마인지 아십니까? 하루에 백오십 달러입니다. 조금 전 저 뒤에서 오랜 친구인 모리슨 형제님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이 “언제 지나가시거든 우리 교회에 들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형제님 같은 분에게는 너무 작은 곳입니다. 육백 명밖에 못 들어갑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스무 명 들어가는 교회에서 막 부흥회를 마쳤습니다.” 스무 명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규모를 작게 유지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다른 형제님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은 텔레비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그분들을 쓰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브래넘 형제님으로, 작은 사람으로 있고 싶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주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어디든 떠날 수 있습니다.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갑니다. 주께서 저를 해외로 보내시려 하면, 어느새 무언가 큰일이 생깁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그러면 주께서 “너를 인도로 부르고 있다. 이곳으로, 저곳으로 부르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가지고 온 힘을 다해 떠납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싶습니다. 심판 때에 그 사람들을 모두 다시 만나야 하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은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우리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는 여기서 그들을 찾아 모으고 계십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에게만 맺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올 그의 씨에게도 맺어 주신 것입니다. 그의 여러 씨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여덟 명쯤 있었으니까요. 아니... 이삭을 합하면 아홉 명입니다. 이스마엘이 있었고, 사라가 죽은 뒤에 그의 아내... 다른 아내에게서 일곱 아들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의 여러 씨가 아니라 그의 씨, 곧 약속받은 그 한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가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삭입니다. 그에게서... 이삭에게서 그리스도께서 나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은 그 뒤에 올 그의 씨에게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브라함의 씨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확증하셨음을 봅니다. 어떻게 하셨는지도 보았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취하여 그를 갈보리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잠시 후에 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을 취하여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분 위에 계시던 영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자신의 오른편으로 올리셔서 자기 앞에 피 흘린 희생물로 두셨습니다. 그분은 거기 앉아,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값을 치르신 모든 일에 관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분을 거절하실 수 있겠습니까? 바로 거기에 하나님 자신의 아들의 피가 있습니다. 죄와 질병의 값이 치러졌다는 증거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보십시오, 마귀는 여러분에게 겁을 주고 허세로 여러분을 물러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에 반대되는 가르침을 너무 많이 받아서 미국 사람들의 생각이 몹시 뒤엉켜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야말로 마귀가 자기편을 위해 한 가장 효과적인 일입니다. 성경으로 돌아오십시오. 천사가 어떤 사람에게 와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이런저런 말을 한다면, 믿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곧바로 성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는 별별 것이 다 있습니다. 우리도 압니다. 우리가 심판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조셉 스미스는 천사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경에서 벗어났을 때 저도 그것을 떠났습니다. 아시겠죠? 그가 성경을 떠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기록하신 말씀과 어긋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믿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을 지키실 것입니다. 참된 천사라면 누구나 그것이 진리임을 증언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어떤 메시지가 옳은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두세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선지자를 통해서였고, 또 하나는 꿈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어떻게 확인했느냐 하면, 성전 기둥에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론의 흉패에 있던 아홉 개의 보석... 아니, 열 개의 보석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초자연적인 것을 믿지 않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기적을 믿지 않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여러분이 앉아 계신 바로 이 땅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것이 물질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디서 가져오셨겠습니까? 아시겠죠?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 성전에 왔을 때,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은 꽤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했어도 아주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우림과 둠밈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면 그 꿈이나 예언을 말했습니다. 그때 그 빛들이 한데 모여, 열 개의 서로 다른 보석에서 나온 빛이 무지개처럼 초자연적으로 번쩍여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음을 보여 주면, 그 꿈이나 예언은 옳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진실하게 들려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절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끝나자 우림과 둠밈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새로운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입니다. 누가 꿈을 꾸거나 선지자가 예언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말씀에 비추어 입증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진리임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침례교 친구들이 계신 것을 압니다. 얼마 전에 훌륭한 침례교 형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형제님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빌리 형제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아니, 정확히는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성령침례는 어떻게 받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건 제자들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아닙니다. 바울도 계속 말씀을 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습니다. 저 멀리... 제자들에게 잇달아, 고넬료의 집과 그 뒤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받습니까? 오순절 사람들이 말하는 식으로 받는다고 믿습니까?” 제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었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 바울은 형제님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침례교인 한 무리를 만나서 이렇게 말했으니까요.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믿은 이래로 말입니다.” 이것으로 그 주장은 무너집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첫 침례교인은 거기서 잘리고 말았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잘리지 마십시오.”
자, 보십시오. 여러분은 믿은 이래로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그 사람들은 구원도 제대로 받았습니다. 그들은 변호사였다가 회심한 침례교 설교자 아볼로와 함께 소리 높여 기뻐하며 훌륭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기쁨이 있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크게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습니까?” 제가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제게 의로 여겨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확증하시려고 그에게 할례의 인을 주셨습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아직 형제님에게 할례를 행하시고 그 믿음을 확증해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약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형제님이 참으로 그분을 믿었다는 확증으로 성령을 충만히 채워 주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온전한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입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할 때마다, 지성이 뛰어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치유자이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으로 가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믿지 않는 사람은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분은 “아멘, 아멘” 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영과 말씀은 반드시 일치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런 일들을 믿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입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자, 여러분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것은 기름기를 뺀 우유가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됩니다. 비타민, 영적 비타민을 공급해 줍니다.
보십시오. 거기서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이제 저는 늙었습니다. 백 살이고 사라는 아흔 살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 샤다이니라. 나는 가슴이니라. 나는 젖가슴을 가진 하나님이니라. 너는 그저 와서 내게 기대어 젖을 먹고 힘을 회복하라.”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 뒤에 소돔에 있던 롯은 멸망당할 처지에 놓였고, 아브라함은... 참 이상하지만, 정말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때로는 가장 험난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을 화려하고 매끈하게 꾸미려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할리우드식 복음 전도라면 정말 신물이 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옛날식 부흥, 정말 깨끗하게 씻어 주는 부흥이 좋습니다. 어떤 작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옛날식 성령의 신앙, 깊은 산골의 신앙, 죄를 죽이는 신앙이 좋습니다. 정말로 사람을 깨끗하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신앙입니다. 아주 거칠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겉에 흰 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씻어 희게 합니다. 무엇에 흰 칠을 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흰 칠을 하면 그저 덮어 가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강단에서부터 관리인의 자리까지 철저히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았고, 프로그램과 화려한 것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사탄의 본성인 줄 아십니까? 제가 본문에서... 주제에서 한참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산에서... 보십시오. 두 자녀, 가인과 아벨이 거기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고 했을 때, 두 사람 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둘 다 희생물을 드렸고, 둘 다 경배했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 교회에 속하는 것, 종교 생활을 하는 것, 희생물을 드리고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그것뿐이라면 가인을 정죄하신 것은 불공평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가인은 들의 백합과 온갖 것으로 제단을 온통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제단에 백합을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단에 드려진 혼들입니다. 아시겠죠? 아벨에게는 아름다운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가인은 자기의... 자기가 영감을 받은 이, 자기 아버지 사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가 사탄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최초의 살인자요 최초의 거짓말쟁이였고, 자기 형제를 죽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미리 보여 주는 모습, 정확히 그 모습이었습니다. 유다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가인은 희생의 십자가에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골고다에 십자가가 셋뿐인 줄 압니다. 넷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천국에서 오셔서 천국으로 돌아가시며 회개한 죄인을 데리고 가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또 멸망의 아들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지옥에서 와서 그와 함께 돌아가며,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데리고 갔습니다. 유다는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예수님도 나무에 달려 계셨습니다. “나무에 달리는 자는 저주받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이 모든 예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사탄은 미가엘보다 더 화려한 왕국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 자기 왕국을 세웠던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국은 그런 것에 온통 빠져 있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런데 아벨은 작은 줄, 아마 포도넝쿨이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는 삼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린양의 목에 감고, 양을 제단에 올려놓고는 작은 머리를 뒤로 젖혔습니다. 그리고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때는 창 같은 것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돌로 양의 작은 목을 이렇게 내리쳤습니다. 피가 튀고 양은 울부짖었으며, 이렇게 온몸에 피가 묻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가리켰습니까? 거기 달려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 피 묻은 머리카락이 어깨에 늘어진 채 죽어 가시면서 다른 언어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씀하시던 그분을 가리켰습니다. 바로 그것을 가리킨 것입니다. 의 가운데서, 그 계시의 영이 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지막 날들에 사람들이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리라.” 여러분은 공산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소위 기독교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십시오, 다음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러한 부류는 교회의 온갖 단체와 이런저런 모임에 들어가, 죄들로 눌리고 여러 가지 욕심에 이끌려 결코 진리를 아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미련한 여자들을 사로잡느니라.”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렇게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느니라.” 보이십니까?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나리라.” 원수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때가 왔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를 대적하여 군기를 들어 올리시며, 자신의 백성을 의와 거룩함으로, 다시 성경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아멘.
그런데 어느 날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 안에 서 있었습니다. 사라도 거기 장막 안에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택함받은 이들이 모두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롯은 저 아래 소돔에서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보니 세 사람이 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어쩐지... 아시다시피 프리메이슨 회원은 다른 회원과 말을 해 보면 알아봅니다. 여러 결사 단체는 저마다 다른 표식으로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리스도인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과 말을 나누다가 부드럽고 따뜻한 그 영을 느끼면, 그가 형제인 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잠시 제게 들러 쉬십시오. 제가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겨 드리겠습니다. (저 겸손을 보십시오.) 발을 씻겨 드리고, 빵도 조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런 다음 기쁘게 길을 가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좋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가서 네 말대로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데리고 가 그늘나무, 큰 상수리나무 아래에 모두 앉혔습니다. 그 지방에서는 상수리나무나 그늘을 찾기가 꽤 어렵습니다. 그들의 옷은 온통 먼지투성이였습니다.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얼굴에는 땀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때 사라는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요즘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에 물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꼭 남편 앞에 나서서 “당신은 입 다물어요. 어떻게 할지는 내가 말할게요”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그때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할리우드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어서 보니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들어가 말했습니다. “준비해요, 사라. 어서 가루를 반죽해서 준비해요. 여기 화덕에서 빨리 빵을 좀 구워요.” 그는 가축 떼에게 달려가 여기저기 만져 보다가 살진 작은 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잡게 했습니다. “이 양 갈비를... (아니,) 이 송아지 갈비를 얼른 구워 준비해요.” 그런 다음 나가서 빵과 모든 것을 그들 앞에 가져다 놓고 앉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러고 나서 저쪽으로 가 파리 쫓는 나뭇가지를 가져와 파리를 쫓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파리 쫓는 나뭇가지가 뭔지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여기 어딘가 켄터키 분들이 분명 계실 것입니다. 우리 집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충망 문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으면 그 나뭇가지를 썼지요. 일요일에 사람들이 오면... 누가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면, 저와 제 남동생이 식탁 양 끝의 의자 위에 서서 나뭇가지를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었습니다. 신문지가 떨어지면 밖에 있는 히코리나무, 단풍나무 같은 데서 가지를 꺾어다가 파리를 쫓았습니다. 어머니가 버터를 만들 때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아시겠지요.
아브라함은 파리 쫓는 나뭇가지를 들고 서서 말했습니다. “형제님들, 여행 중이신 것 같군요.” “그렇다.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낯선 땅에서 오신 것 같습니다. 이곳 분들은 아니시군요. 여기서는 뵌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런 셈이지.” 아시겠죠?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 자신과 두 천사였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과 두 천사였습니다. 제가 자주 말해 왔듯이...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빌, 설마 그걸 믿는다는 말은 아니겠지요?” “저는 믿습니다.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땅의 열여섯 가지 원소, 우주의 빛과 석유와 칼리과 칼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을 뻗어 각각 한 줌씩 가져다가 “후우” 하시고, 곧바로 그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리 오너라, 가브리엘아. ‘후우.’ 여기 들어오너라. 미가엘아, 내려가서 소돔에 무슨 일이 있는지 보자. 여기로 기도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려 한다.” 그러고는 그곳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대목에서 막히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분을 주, 엘로힘, 전능자 하나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분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분은 거기 앉아 계셨습니다. 이분은 장막을 등지고 계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그 근처에 오신 적도 없고, 보신 적도... 완전히 낯선 분이셨습니다. 식사를 마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분께 몇 가지를 여쭈려던 참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십니까?” 파리를 쫓으며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 중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장막을 등지고 계시던 분입니다. 그분께서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결혼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으며, 그의 아내 이름이 사라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그분은 택함받은 교회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형식적인 교회는 여전히 저 아래 소돔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교회는 소돔 밖에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모든 그리스도인도 소돔 밖에 있습니다. 그때가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도처에 멸망이 드리워 있는 것을 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천사는 소돔으로 내려가지 않으셨습니다. 소돔은 그 메시지를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여기 위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 사람들, 아브라함과 그의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불길 밖에 있어 멸망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심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일 들어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불공평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심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정죄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맞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과 달걀 두 다스를 떠올려 보십시오. 아시겠죠?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영생이 있고 (현재형입니다.) 결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그것은 그분 자신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되어야 합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십시오. 천사들이 거기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과 두 천사입니다. 그분께서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분명히 아시도록 성경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을 알려면 행간을 읽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렇게 기록하셔서,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감추시고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셨다고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아시겠죠? 제 아내를 예로 들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합니다. 아내가 저에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받아 봅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사랑하는 빌리, 오늘 밤 여기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어요. 당신 생각이 많이 나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그것은 아내가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의 성품을 압니다. 그래서 행간을 읽고 아내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처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행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의 영, 곧 성령께서 그것을 풀어 주십니다. 아시겠죠?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아브라함은 “그녀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장막을 등지고 계셨음을 지적합니다. 사라는 그분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질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녀는 당신 뒤에 있는 장막 안에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겠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이십팔 일 말입니다.) 내가 네게 약속한, 네가 기다려 온 이 아이를 네가 얻게 될 것이다. 내가 엘 샤다이라고 네게 말했고, 너는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있었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이 약속을 확증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약속한 그대로 네가 이 아이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는 장막 안에서 소리 내어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따르면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백 살이나 된 늙은 여자인데, 내 주인 아브라함과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그녀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여자분들은 그렇게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라는 남편을 자기 주라고 부를 만큼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영어로 소문자 l-o-r-d였습니다. 자, 그녀가 그렇게 했을 때...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아시겠죠? 여러분이 그렇게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들도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이혼 법정은 문을 닫을 것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결합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라는 속으로 살짝 웃었습니다. 그러자 장막을 등지고 계시던 그 천사가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 그 표적이 보이십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낯선 분이 아내의 이름을 부르셨고, 내가 결혼한 것도 아셨으며, 뒤에서 아내가 웃은 것도 아셨구나.” 하, 아마 그것으로 달라졌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소돔이 불타기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 그와 똑같은 일이 이스라엘이 거절당하기 약 이 년 반 전에 일어났습니다. 또 우리가 그토록 많이 이야기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그 표적이 교회에 주어지는 마지막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라고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두 설교자가 소돔으로 내려가 설교했습니다.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과 또 다른 사람, 훌륭한 복음 전도자라면 누구든, 오럴 로버츠나 그런 분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은 훌륭한 설교자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표적,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표적은 아니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소돔으로 내려가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을 멸하실 것이니 거기서 나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그 일에서 빌리 그레이엄과 그 일행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빌리 그레이엄을 존경합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역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는 신유를 믿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이 일을 운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빌리 그레이엄이 신유를 받아들인다면, 그 교회들은 당장 그를 쫓아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 때문에 그를 그 자리에 두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미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빌리는 훌륭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를 쓰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저는 그를 좋아합니다. 저기 호주에서 있었던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그를 쫓아내려고 야유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오럴 로버츠와 다른 사람들을 원한다...” 거리에도 그런 팻말을 세웠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멈추었습니까? 그는 달아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곳을 굳게 지켰습니다. 눈 주위가 이렇게 온통 검어지고, 거의 뇌졸중이 올 지경이 되고, 병들고 온갖 일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버텨서 하나님께서 그를 그곳에 보내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물론입니다.
능력 있는 두 복음 전도자가 소돔으로 내려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나온 사람은 몇 안 되었습니다.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자녀 둘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마지막 표적을 보십시오. 멸망 직후에... 이제 서둘러야 합니다. 십오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전하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소돔에 주어진 마지막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그 직후에 아브라함은... 그와 사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아니 여러분 중 어떤 분들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으실 줄 압니다. 하지만 이견을 품으시기 전에 그것을 막고 싶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모두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말씀한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아브라함은...
그 모습을 한번 그려 봅시다. 성경이 그들이 나이가 많았다고, 그냥 나이가 든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들었다고 말씀한다면 말입니다. 늙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었습니다. 백 살입니다. 수염이 이렇게 늘어져 있고, 아마 정수리는 벗겨졌을 것입니다. 수염이 길게 늘어지고, 손에는 작은 지팡이를 이렇게 짚고 있습니다. 사라는 자그마한 할머니였습니다. 머리에는 작은 모자를 이렇게 쓰고, 머리카락은 희고, 허리는 굽고, 작은 숄을 이렇게 두른 자그마한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였겠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저 무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과 함께 행간을 읽어야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신 일을, 그때부터 아브라함의 씨에게도 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실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십시오. 누구든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야 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소녀였을 때부터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의 이복 누이였습니다. 아마 사라가 열여덟 살쯤 된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을 때부터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그때 결혼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보다 열 살이 많았습니다. 아마 사라가 열여섯 살이나 열여덟 살쯤 되었을 때 결혼해서 남편으로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라는 폐경이 지난 지도 사십 년이나 된 늙은 여자였습니다. 그러니 우선 아이를 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야 했다는 것을 압니다. 사라의 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아브라함의 몸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조건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자기 심장병을 고려하고 있습니까? 왜 다른 질병들을 고려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전혀 고려하지 마십시오. “제 팔은 어제보다 조금도 낫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 것은 아예 고려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치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어느 순간에라도 팔이 펴지기를 기대하고 계십시오.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시간이 오 분 넘더라도 여기서 잠깐 멈추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떤 여자분들이 집회에 와서 강단에 올라왔습니다. 그중 한 분은 목에 큰 종양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분이 누구인지,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는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네가 나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믿는다고 말하고 강단에서 내려갔습니다. 다음 분은 심한 위장병이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그분께서 너를 고치셨느니라. 기뻐하며 길을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위장병이 있던 그 여자는 나가서 생각했습니다. ‘굶어 죽을 지경이니 이제 정말 뭘 좀 먹어야겠어.’ 위궤양이 있었습니다. 먹으려고 하면 토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났고, 마침내 가족들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일을 욕되게 하고 있어요.” 아닙니다. 그분은 그러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말했습니다. “낫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고 하잖아요.” 그분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내게 확증해 주신 것을 간증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증언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간증할 때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법정에 가서 “제가 이러이러한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이 말해야 합니다. 제가 “저는 나았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간증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자는 계속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약 육 주 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때는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그분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모두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잊어버리는 게 좋겠어요. 당신이 불명예를 끼치고 있잖아요.” 그것은 마귀가 하는 말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굳게 붙드십시오. 믿지 않는다면 거기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믿는다면, 무엇도 그것을 여러분에게서 빼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미 깊이 뿌리를 내려 여러분에게 나무가 되고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남편은 일하러 가고 자녀들도 일하러 갔습니다. 그분은 서서 설거지를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아주 시원한 느낌이 온몸을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몹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중 하나가 먹던 접시에서 오트밀을 조금 집어 먹었습니다. 그분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몇 분 뒤면 토하겠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어.’ 그런데 속이 괜찮았습니다. 여전히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릇에 있던 것을 다 먹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몇 분 뒤에 생각했습니다. ‘참 맛있네. 달걀 하나만 부쳐 먹어야겠다.’ 달걀을 부치러 갔다가 두 개를 부쳤습니다. 버터 바른 토스트와 커피 한 잔도 준비했습니다. 그야말로 먹는 잔치를 벌였습니다. 자리에 앉아 정말 실컷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나니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삼십 분도 채 안 되어서 말했습니다. “잠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삼십 분쯤 돌아다녀 보았는데 아주 괜찮았습니다. 그분은 “이웃에게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야겠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내려가 보니, 그렇게 울고 또 우는 소리는 처음 들을 만큼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침 아홉 시쯤이었다고 했습니다. 비명도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달려갔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아, 이것 좀 들어 봐요. 내가 방금 오트밀도 먹고, 빵도 먹고, 달걀도 먹었어요. 정말 신났어요. 그런데 위가 조금도 아프지 않아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에요.”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 이불이며 뭐며 죄다 털어 봤어요. 목에 있던 그 혹이 없어졌어요. 어디에도 흔적 하나 없어요.” 무슨 일이었습니까? 보십시오, 주의 천사가 그것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그 동네를 지나가시며 약속하신 것을 확증하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즉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했고, 제 기억에는 이십일 일 동안 천사가 지체되어 그에게 오지 못했습니다. 저 메대 페르시아 사람들의 통치자인가... 저기 어떤 것인가... 아니면 시리아 사람들이 그분을 막고 있다가, 마침내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러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믿든 증상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라와 아브라함은... 이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라의 태가 아이를 밸 수 있게 하셔야 했고, 아브라함에게도 어떤 일을 하셔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몸에 자녀를 낳을 생명력을 되돌려 주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그렇게 하셨다면, 또... 하셔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때는 오늘날처럼 담배를 피워서 아기를 젖병으로 키워야 하는 어머니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젖을 먹여 아기를 길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하셨습니다. 젖이 나오도록 사라의 유방에 젖줄을 만드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기가 젖을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신다면, 사라는 백 살이나 된 여자라서 그 아기를 낳는 진통을 겪기에는 너무 늙었으므로, 심장도 튼튼하게 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 땜질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새로운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았는지 잘 보십시오.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보며 말했습니다. “사라, 여보. 당신 눈이 다시 검어지고 있어요. 머리카락에서도 흰색이 사라지고 있어요.” “아브라함, 여보. 당신의 굽었던 어깨가 곧게 펴지고 있어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로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주께서 오실 때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들, 아브라함의 씨에게 하실 일과 같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늙음과 모든 것, 죄의 모든 흔적이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늙지 않을 것입니다. 옛것들은 모두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나올 것입니다. 그때에...
얼마 전 제가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제 몸은 어떻게 땅에서 나왔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먹는 음식이 혈구로 변합니다. 그 혈구가 몸을 만듭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 때 먹던 것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때는 먹을 때마다 더 튼튼해지고 더 커졌습니다. 지금도 같은 종류의 음식, 빵과 감자와 고기 같은 것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더 늙고 작아집니다. 제가 어떤 그릇에서 컵으로 물을 붓는데 컵이 차오르다가, 반쯤 차고 나서는 부으면 부을수록 물이 더 빨리 줄어든다면,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십시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경에는 답이 있습니다. 정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스물두 살, 가장 좋은 상태에 이르렀을 때 바로 거기에 세워 두시고 말씀하십니다. “자, 네 모습은 이것이다. 사망아, 오너라. 하지만 내가 허락할 때까지는 그를 데려갈 수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가장 좋은 상태로 있을 것입니다. 아시겠죠?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려 놓으신 모습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으며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랍니다. 과학대로 계속된다면 우리는 이렇게 더 커지고, 더 커지고, 더 커지고, 더 튼튼해지고, 더 튼튼해지고, 더 튼튼해져서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그 한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하나님이... 시어스 앤드 로벅도 아니시고, 하모니 하우스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큰 산도 작은 산도 만드십니다.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만드십니다. 사막도 만드시고 산도 만드십니다. 바다도 만드십니다. 그분은 다양함의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머리가 붉었다면 붉은 머리로 일어날 것입니다. 검은 머리였다면 검은 머리로 나올 것입니다. 빨간 꽃의 씨를 땅에 심으면 빨간 꽃이 나옵니다. 기독교 전체의 기초는 환생이 아니라 부활입니다. 내려갔던 바로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자, 저 편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이것을 대신 가져다 놓는다면, 그것은 교체입니다. 부활은 바로 그 동일한 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려가셨던 바로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얼마 전 남아 있는 머리카락 두세 가닥을 빗고 있었더니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빌리, 여보, 거의 대머리가 되었네요.” 제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닥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아내가 말했습니다. “제발 좀 말해 봐요. 다 어디 있는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내 머리에 나기 전에는 어디 있었는지 당신이 말해 봐. 어딘가에, 어떤 물질로 존재했잖아. 내 머리에 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물론입니다. 저는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한때 튼튼하고 힘세던 저 작은 윌리엄 브래넘, 권투장에 서서 프로 경기 열다섯 번을 이기고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던 그 사람이 말입니다. 하지만 죽음이 저를 쇠하게 했습니다.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저를 낮추셨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저는 바로 그 사람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석유와 칼리과 칼슘입니다. 땅 위에 그 무엇도 생기기 전에 제 몸은 땅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 땅 위를 품으셨을 때, 마치... 품는다는 것은 “비둘기나 어미 닭처럼 부드럽게 소리를 내는 것”을 뜻합니다. 화산 폭발밖에 없던 때, 하나님께서 이 오래된 별을 태양 둘레로 움직이시며 칼리과 칼슘을 만드실 때, 그분은 집을 지으려고 목재를 펼쳐 놓는 위대한 건축가 같으셨습니다. 그때 우리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몸이 땅에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뭐라고 하실지 압니다... 어차피 저를 광신자라고 부르실 테니 지금부터 그러셔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을 알면 여러분도 광신자가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저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실 때 거기에 제 몸을 만드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 몸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휴!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어 땅 위를 품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부드럽게 소리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칼리 조금과 칼슘 조금이 한데 모였고, 작은 부활절 백합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분께서 “아름답구나. 계속 부드럽게 소리를 내어라”라고 하셨습니다. 땅에서 새들이 나왔고, 나무들과 동물들, 그 밖의 것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성관계라는 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재료를 사용하고 계시며,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패배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목적은 완전합니다. 여러분이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 확실합니다.
제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그 성령께서 지금의 저를 만드셨다면, 저를 품으며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그 동일한 영을 이제 제가 선택할 때, 얼마나 더 확실히 저를 다시 일으키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네 모든 불법을 용서하는 주니라. 나는 네 안에 들어가 살기를 원하는 자니라.” “저에게요, 주님?” “그래, 너에게다. 내가 너를 부르고 있다.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내가 너를 불렀다. 이제 너는... 나는 네 안에 들어가서 마지막 날에 너를 일으키고 네게 영생을 주고 싶다.” “예, 주님.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성령께서 들어오십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에 의해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었느니라.” 아멘. 에베소서 4장 30절입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다시 젊은 여자로, 아브라함을 다시 젊은 남자로 돌려놓으셨습니다. 그 뒤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 블레셋 땅 그랄까지 내려갔습니다. 지도에서 거리를 재 보십시오. 얼마나 먼지 보십시오. 약 삼백 마일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내려가기에는 상당한 여행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젊은 왕 아비멜렉이 아내로 삼을 여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예쁜 아가씨들이 많았습니다. 블레셋 아가씨들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자그마한 사라 할머니가 오는 것을 보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저 사람이야. 바로 저 사람이야.” 사라에게 반한 것입니다. 행간에 그것이 있습니다. 그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그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라가 보기에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보기에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변화시켜 다시 돌려놓으셨습니다. 이 아기를 낳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 뒤 사라가 죽기까지 사십오 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 후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딸들 외에도 아들 일곱을 낳았습니다. 아멘. 성경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불명확한 말] 그것과 일치합니다. 뒤엉킨 우리 생각 속에서 우리가 혼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십니다.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제가 어리석게 행동하는 줄 압니다. 하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아시겠죠? 이것을 생각하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와 아브라함을 다시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씨에게도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다시 젊게 돌려놓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땅의 흙에서 나올 때는 백발이 되고 쇠약해진 늙은 모습이 아니라, 건강이 찬란하게 빛나는 젊은 모습으로 나올 것입니다. 영원무궁토록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결코 흠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죄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 에덴동산에는 뱀이 없을 것입니다. 뱀은 영원히 없어질 것입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다시 새로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패배하실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위대하시다면 왜 죄가 생기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들으십시오. 이제 잘 들으십시오. 죄인과 구원자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합니까?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면, 당연히 구원자입니다. 질병과 치유자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합니까? 어느 쪽이 먼저였습니까? 물론 치유자입니다. 왜 그것을 허용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이신 것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죄가 전혀 없었다면 구원자로서 자신을 나타내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전혀... 하나님께서는 치유자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질병을 허용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치유자가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질병과 죄가 들어오도록 허용하셨기에 그분은 구원자와 치유자가 되십니다. 그러나 그분 자신의 목적은 아브라함의 자녀들, 약속을 가진 이에게 약속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이제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몇 달 뒤에는 사라가 어머니가 될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아기 이삭을 낳았습니다. 아, 아브라함은 팔 일째에 그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젖을 뗐을 때 성대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등 여러 일을 했습니다. 이제 어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보십시오. 아이가 열두 살쯤, 열네 살쯤 되었을 때, 아, 얼마나 귀여운 유대인 소년이었겠습니까. 긴 머리카락이 늘어져 작은 얼굴 위로 살짝 물결치는 모습과 작은 갈색 눈이 그려집니다. 참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더없이 순종했을 것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아이를 안아 올려 사랑해 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놀아 주며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런 어린 아들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보여 주는 어떤 산으로 그를 데려가서, 그를 희생물로, 곧 번제 헌물로 드리기를 원하노라.”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오늘날 이 나라에, 여러분에게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약속한 이 아이를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겠다.” 그런데 아이를 죽인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씨라면 여러분 안에도 동일한 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안에 있던 믿음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이와 같은 말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아이를 죽은 자에게서 얻은 것처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아멘. 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이십니까?
다음 날 아침 아브라함은 말했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는지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자. 이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자. 아기 일이라면 엄마는 가슴이 무너질 테니까. 그 일로 한바탕 난리가 날 거야.”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말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가 노새들을 데리고 오고, 도끼를 가져다가 장작을 팼습니다. 장작을 패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저는 아침이면 낡은 양날 도끼를 들고 아침밥 지을 장작을 팼습니다. 마르지 않은 나뭇등걸 같은 것들이었지요. 사사프라스 나무는 타면서 탁탁 소리가 났습니다. 아시겠지요. 아브라함은 장작 한 자루를 작은 나귀에게 싣고 종 두 사람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사흘 길을 갔습니다.
제가 이 사역으로 부름받기 전에는 선로, 전력선을 순찰했습니다. 매일 삼십 마일씩 숲을 헤치고 걸어야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발은 휘발유로 움직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걷는 데 익숙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갔습니다. 하루에 삼십 마일씩 걸었다고 해 봅시다. 아니, 하루에 이십오 마일씩만 걸었다고 합시다. 그때는 젊었으니, 물론 다시 젊어졌으니 그만큼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이십오 마일을 갔다면, 사람이 사는 곳에서 칠십오 마일이나 떨어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산들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말씀하시며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 주셨을 때, 그에게 보여 주신 산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산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있는 곳은... 지금 22장을 보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그 청년들, 그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노새와 함께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다시 오리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 산 위에서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의 할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제가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저는 모릅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와 아이는 다시 오리라.” 그래서 아브라함은 장작을 가져다가 이삭의 등에 지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완벽한 모형입니다. 등에 지운 것입니다. 이삭은 그 장작을 지고 곧장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수백 년 뒤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 그 제단을 지고 산을 올라가신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올라가서 돌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아마 열두 개였는지, 몇 개였든 간에 가져다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위에 장작을 놓았습니다. 어린 이삭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성경에 기록된 이삭의 첫마디가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여기 제단이 있고, 여기 불이 있고, 여기 장작이 있습니다. 그런데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하나뿐인 아들,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목이 조금 메어 돌아서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진 늙은 얼굴이 어린 아들의 얼굴과 마주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그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리라.” 그렇게 하실 시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멘. 아, 아브라함의 아들딸 여러분!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
어린 이삭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을 내려 허리띠 밑에서 줄을 꺼내고, 다가가 어린 이삭의 두 손을 뒤로 모아 묶었습니다. 그때 이삭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지만 순종했습니다.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잠깐만요. 저는 아직 아이예요.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시겠죠? “아직 로큰롤도 좀 즐겨야 해요. 이것도 해야 하고요.” 아, 그래야 한다고요? 아브라함은 작은 두 손을 뒤로 모으고 발을 묶고 팔을 묶어 제단 위에 눕혔습니다. “두렵습니까, 아브라함?”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믿어 온 분을 내가 알며, 내가 그 날을 대비하여 그분께 맡긴 것을 그분께서 지키실 수 있는 줄 확신합니다.” 아브라함은 여기 손을 넣어 칼을 꺼내고 몇 번 갈아 보았습니다. 날이 섰는지, 면도날처럼 완전히 날카로운지 보았습니다. 위로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습니다. 아마 저녁 해가 기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오후 세 시쯤이었을까요? 아들의 작은 얼굴을 잡고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습니다. 몸을 굽혀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아들을 제단 위에 눕히고, 한 손에 칼을 들고, 이렇게 머리카락을 뒤로 젖힌 다음 칼을 들어 올립니다. 막 내리치려는 순간, 어떤 음성이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성령께서 그의 손을 붙드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손을 멈추어라.”
아, 아브라함의 아들딸 여러분. 아무리 앞이 캄캄해 보여도, 기도 줄에 몇 번이나 섰어도, 무슨 일을 겪었든, 어떤 오르내림을 겪었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여호와 이레이십니다. 주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물을 예비하실 것입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희생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계속되는 희생물이십니다. 더욱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은 이미 단 한 번, 영원히 효력이 있도록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온 인류를 위해 그분은 하나님의 어린양, 예비된 희생물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예비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그 생명을 취하셨으며, 그분을 다시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안에 계시던 영을 다시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생각을 너희 안에 품으라.” 그리고 그분의 은사들을 정신 감응이나 점술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아시겠죠?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 안에 계시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희생물을 예비하셨습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