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신명기 2장 1절부터 읽겠습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는다.] 그때에 우리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방향을 바꾸고 홍해 길을 따라 이동하여 광야로 들어가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돌았는데 주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충분히 오랫동안 이 산을 돌았으니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라. 또 너는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세일에 거하는 너희 형제 곧 에서 자손의 지경을 지나갈 터인데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매우 조심하고 그들과 상관하지 말라. 내가 그들의 땅을 결코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소유로 주었느니라. 너희는 돈을 주고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또한 돈을 주고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주 네 하나님이 네 손의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었고 네가 이 큰 광야를 걸어서 지나는 것을 알며 주 네 하나님이 이 사십 년 동안 너와 함께하였으므로 네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라, 하시기에 우리가 세일에 거하는 우리 형제 곧 에서 자손을 비켜 지나가고 엘랏과 에시온가벨에서 시작되는 평야 길을 통과할 때에 돌아서 모압의 광야 길로 지나갔느니라.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 족속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전쟁하며 싸우지도 말라. 내가 그들의 땅을 네게 소유로 주지 아니하리니 내가 아르를 롯 자손에게 소유로 주었느니라, 하셨느니라. 과거에 엠 족속이 그 안에 거하였는데 그 백성은 크고 많으며 아낙 족속처럼 키가 컸으므로 사람들이 그들도 아낙 족속처럼 거인들로 여겼으나 모압 족속은 그들을 엠 족속이라 부르며 예전에 호리 족속도 세일에 거하였으나 에서 자손이 자기들 앞에서 그들을 멸하고 그들의 뒤를 이어 그들 대신 거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주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자기 소유의 땅에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내가 이르기를, 이제 너희는 일어나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한 뒤에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므로 우리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널 때까지의 기간이 삼십팔 년이었느니라. 마침내 이때에 전사들의 온 세대가 주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 군대 가운데서 끊어져 소멸되었나니 이는 참으로 주의 손이 그들을 치사 그 군대 가운데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마침내 그들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모든 전사들이 백성 가운데서 끊어져 소멸되고 죽은 뒤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이날 모압의 지경인 아르를 지나갈 터인데 네가 암몬 자손의 맞은편에 가까이 가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상관하지도 말라. 내가 암몬 자손의 땅 중에서는 네게 어떤 소유물도 주지 아니하리니 내가 그 땅을 롯 자손에게 소유로 주었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대로 서 계십시오. 주께서 말씀 낭독에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기를 말입니다. 사탄이 제게 넘겨주기에 저는 도로 사탄에게 넘겼습니다. 사탄이 다시 제게 넘겨주어서 저도 사탄에게 넘겼습니다. 그렇게 계속 주고받다가 교회 헌당식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제가 사탄에게서 벗어나 교회 헌당식을 하러 갔습니다. 오늘 오후 이렇게 상자 위에 서 있으니… 어머니가 설거지를 시키려고 저를 상자 위에 세워 놓으시던 때가 생각납니다. 자, 오늘 오후에는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몇 가지 광고가 있습니다. 지난번 휴스턴에서도 해야 했던 광고입니다. 여기 작은 종이 한 장을 받았는데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방문 목회자인 밴 휴프… 밴 휴스 형제님이 2월 27일부터 3월 5일까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계실 예정이라고 알려 주십시오.” 기억해 두십시오.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오럴 로버츠 형제님이 여기서 말씀을 전하실 것으로 압니다. 아마 바로 이 강당입니까? 식당이군요. 오럴 형제님은 참으로 강단에 세우신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입니다. 내일 저녁에 오셔서 로버츠 형제님의 말씀을 들으시면 분명히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조찬 등이 있습니다… 벌써 저 커튼 뒤에 계신 분들 가운데 표를 구해 놓으신 분들이 보입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이런 대집회에 올 때마다 기쁩니다.
잠시 후에, 제가 말씀을 마치자마자 어떤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되도록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제 목이 조금 쉬었고, 또 여러분이 [불분명한 말] 벌써 두 시간 넘게 여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피곤하신 줄 압니다. 자, 내일, 아니 다음 일요일에 주님의 뜻이라면, 다음 일요일이 2월 5일이지요. 다음 일요일 저녁 투산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에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 저녁 7시 30분에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로는 서부 해안으로 가서 로스앤젤레스 남쪽, 아마 롱비치일 것입니다. 그곳에 갔다가 다음 예배는 베이커즈필드 부근에서 드리고, 그다음 동쪽으로 갈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분들이 취리히에 계실 때 저도 거기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도 그렇고요. 한번 예루살렘에 가서 우리 주님이 계셨던 땅을 보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소중한 친구 여러분께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딕슨 형제님과 로즈 형제님도 보이고, 참 많은 분이 계십니다. 이름을 다 부르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조금 전 여기 서 있다가 스미스 형제님을 보았는데, 그분이 와서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참으로 귀한 교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었는데, 본문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신명기 2장 3절을 본문으로 삼고 싶습니다. “너희가 충분히 오랫동안 이 산을 돌았으니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라.” 저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다”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건너편에 서서 춤추고 외치며 기뻐할 때, 약속의 땅에 가려면 40년이나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실 그곳에서 며칠 거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로는 아마 한 시간 반쯤이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걸어가도 이틀, 사나흘 정도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약속의 땅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행하신 일을 보고, 또 어떻게…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큰 환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약속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약속하신 온전한 약속에 이르려면 아직 40년이 남았다는 말을 믿게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은혜는 그들에게 위대한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은혜는 그들에게 유월절 어린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은혜는 그들에게 선지자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그들에게 천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그들의 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그들의 교사였습니다. 천사는 그들의 길잡이였습니다. 은혜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율법을 원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 율법도 있기 전에, 이 은혜가 이집트에서 벗어날 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는 그들이 겪은 가장 큰 부흥 가운데 하나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 부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았습니다. 이 부흥에서 그들은 나머지 온 세상이 어둠 속에 있을 때 햇빛을 보았습니다. 이 부흥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강한 손이 그분의 백성을 구해 내어, 속박에서 해방으로 이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흥에서, 홍해를 건넌 뒤에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원수가 뒤쪽 홍해에서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째서 거기에 무엇을 더하려고 했을까요?
그들의 모습은 약 40년 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전에 우리 오순절 신앙의 선배들이 보였던 모습과 꼭 같습니다. 우리도 그들이 보았던 것과 같은 일들, 곧 교회가 경험한 가장 큰 부흥 가운데 하나를 보았습니다. 신유를 보았고, 교단의 사슬 등에 묶여 속박되어 있던 사람들이 풀려나 자유를 얻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이끌 하나님의 천사와 선지자들, 위대한 사람들을 말입니다.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아주사 거리 집회를 할 때는 예배에 찬송가 책을 들여오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노래했습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그대로 노래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죄에서 분리하는 성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고, 자기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음을 알았습니다. 약 40년 전에 그들은 얼마나 큰 부흥을 누렸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것 때문에 광야에서 40년을 더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행하신 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손이 하신 일, 곧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는 은혜의 열매를 보면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찬송가 책도 필요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그 시절에 그것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모든 일을 겪은 뒤에도, 육적인 이스라엘은… 이것은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육적인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듯이, 지금은 그분의 교회를 영적인 약속의 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그들은 가는 길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은혜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여전히 자기들이 직접 무언가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들도 거기에 한몫했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그런 상태에 빠질 때마다 언제나 패배하게 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그 누구든 하나님의 일에 손을 대어, 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거기서 무엇을 빼려고 할 때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부흥이 계속 나아가게 하십시오.
이 백성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만 했다면, 하나님의 온전한 약속까지 불과 여드레나 열흘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그 사람들,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계속 나아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만 했다면, 하나님의 충만한 약속까지 며칠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처럼 꼭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출애굽기 19장에 나옵니다. 은혜가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을 마련해 주고 부흥까지 주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요구했습니다. 학교도 세우고 신학 교육을 받은 목회자들도 두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서로 다투고 서로 갈라지며 교제나 형제애를 깨뜨릴 거리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저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던 대로 그냥 나아가게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거기에 우리 생각을 집어넣으려 합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을 집어넣을 때,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에 우리 신학을 집어넣을 때, 하나님의 영은 떠나십니다. 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고 있었지만 자기들이 직접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다투고 소란을 피운 끝에,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자기들에게서 몰아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실수였습니다. 우리, 곧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같은 일을 한 것도 큰 실수였습니다. 아주사 거리와 세계의 여러 다른 곳에 성령께서 처음 내리셨을 때, 그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계속 나아갔더라면 말입니다. 세상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계속 나아가면서, 성령께서 이끄시도록 두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40여 년 동안 그곳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그대로 우리도 했습니다. 교회 안에 어떤 것이, 또는 또 다른 쟁점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그저 계속 나아가며 형제들을 사랑하는 대신 교단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냥 두면 어떻겠습니까?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아니하신 초목마다 어차피 뿌리째 뽑힐 것입니다. 그러니 교단의 장벽이라는 찌꺼기를 두드려 쌓아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무엇인가에 울타리를 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작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누리는 여러분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분들 앞에서 강단에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숭이 세 마리가 나무에 앉아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불쌍한 인간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들 참 비참하지 않니? 그런데 자기들이 우리에게서 나왔다고 하잖아. 그건 틀렸어. 나 같으면 내 형제 원숭이들이 내가 먹는 것과 같은 코코넛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내 코코넛 나무에 울타리를 치지는 않을 거야.” 그것이 인간입니다. 교회도 늘 그래 왔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왕을 원했습니다.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왕이 되시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행동하고 싶어서 왕을 원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처럼 행동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는 대신 세상을 본뜨고 싶었습니다. 사무엘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신실한 노년의 선지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한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구걸하거나 무엇을 빼앗은 적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에게 돈을 구걸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왕을 원합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자기 권위를 보여 주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 남들과,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어 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일에서 떠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늘 그래 왔습니다. 그때에도 그랬듯이, 여러 부류가 섞인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원했고 다른 사람들은 저것을 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개는 반대편에 있는 쪽이 이깁니다. 우리 교회들이 세워졌던 니케아 공의회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쪽은 이것을 원했고 다른 쪽은 저것을 원했습니다. 작은 오순절 무리는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조직이 그것을 장악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 니골라당의 행위가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신앙을 만들고, 자기들이 택한 사람들을 세우고, 모든 것을…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니코”는 “정복하다”라는 뜻입니다. “니골라당”은 평신도를 정복하고 모든 거룩함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교회에 돈을 내고, 그 사람이 죄들을 용서하게 하고, 그 사람이 여러분 대신 기도하게 하는 것 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평신도들 가운데로, 모든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다루셨지만, 여러분과 저는 개인으로 다루십니다. 우리는 우리 죄를 위해 우리 구원자를 하나님 앞에 내세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러 부류가 섞인 무리가… 사랑, 이것은… 이삭과 리브가의 두 아들은 온 세상을 대표합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쌍둥이가 태어납니다. 우리가 부흥을 누릴 때마다 쌍둥이가 태어납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을 따르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영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에서도 야곱만큼이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먼 늙은 아버지를 돌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선지자였습니다. 에서는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아마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가서 일도 했습니다. 어쩌면 야곱은 그저 어머니 곁에 붙어 지내는, 우리가 흔히 여자애처럼 나약한 아이라고 부르는 그런 아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에서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에 속한 육적인 사람이어서 장자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오직 한 가지, 장자권만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무엇이든… 또 그것을 어떻게 얻든 상관없었습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도 그렇습니다. 개신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 루터에게 부흥이 일어났을 때, 웨슬리에게 부흥이 일어났을 때, 녹스와 칼뱅, 그리고 모든 시대를 내려오면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쌍둥이가 나왔습니다. 오순절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에도 쌍둥이가 나왔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부흥을 일으켰을 때에도 쌍둥이, 여러 부류가 섞인 무리가 나왔습니다. 한쪽은 세상을 향해서, 세상처럼 행동하고 세상처럼 일하며 자기들의 메시지를 세상에 맞추려 합니다. 다른 쪽은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얼마나 품위 있어 보이든 품위 없어 보이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자권을 붙잡고 하나님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 왔고, 친구 여러분,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장자권을 붙드십시오. 야곱은 사람들이 자기를 얼마나 여자애처럼 나약하다고 하든, 얼마나… 어떻게 그것을 얻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얻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은 타협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설교자와 악수만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얼마 전 데이비드 뒤 플레시가 잘 표현했듯이, 하나님께는 손자 손녀가 없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 오순절 교회들은 더러운 것들… 어린 자녀들을 데려다가 자리에 앉히고 교회에 손만 내밀게 합니다. 그들 자신이 직접 다시 태어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회에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생깁니까? 윗머리를 평평하게 깎은 리키들이 떼를 지어 좌석 위로 마구 뛰어다니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삽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하고 온갖 것을 다 합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영적인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세상을 본뜨는 부류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크고 웅장한 교회에서 또 한 번 큰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남보다 더 커지려 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자기 조직과 교단을 위해 일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생깁니까?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 대신 잡종 같은 사람들을 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잡종,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잡종은 다시 새끼를 낳을 수 없습니다. 노새가 태어나면… 노새는 노새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새입니다. 혼혈종입니다. 말과… 사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더없이 무지합니다. 온순함도 없습니다. 말을 걸면 귀를 쭉 내밀고, 커다란 귀를 뒤로 젖힌 채 “히이잉, 히이잉” 하고 울어 댈 뿐입니다. 때로 저는 돌아다니며 그런 노새 같은 무리에게 설교합니다. 그들은 호텐토트 사람이 이집트의 기사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을 모릅니다. 귀를 쭉 내밀고 이렇게 말합니다. “기적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잡종인 것입니다. 그가 오순절 조직에 속해 있을 수도… 다른 어떤 조직에 속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 남자와 여자는…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잡종 말… 아니, 잡종 말이 아니라 정말 온순한 순종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순종의 오순절 체험입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무엇이 자기를 사로잡았는지 알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 말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영, 성령과 [불분명한 말], 교제를 지니고, 경계선 너머로 손을 내밀어 어느 형제와도 악수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도 여전히 같은 왕국에 속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침례를 받았든, 물을 뿌리거나 부어 세례를 받았든, 무엇을 했든 상관없습니다. 손을 맞잡았든, 위아래로 뛰었든, 무엇을 했든, 어쨌든 형제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참으로 순종의 오순절 신앙을 지닌, 다시 태어난 남녀들은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습니다. [불분명한 말] 물론입니다.
자, 이 쌍둥이를 낳는 부흥을 보십시오. 한쪽에서는 지성인이 되고 싶어 하고 학교를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들은 중생의 문제를 피하려고 합니다. 교회가 그것을 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에게 물침례를 주어 받아들이고, 물침례로 그들을 교회에 들여놓습니다. 물침례로 교회 안에 들여놓을 수는 있어도, 물침례로 그리스도 안에 들여놓을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주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떤 탄생이든 상관없습니다. 태어나는 일은 언제나 뒤범벅이 됩니다. 돼지우리에서 태어나든, 옥수수 단을 쌓아 놓은 더미에서 태어나든, 분홍색으로 꾸민 병실에서 태어나든, 뒤범벅이 됩니다. 중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하게 만듭니다. 눈물을 흘리고, 엉엉 울고, 부르짖고, 손을 들고 부르짖으며, 온갖 몸짓과 다른 일들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 처음 맞닥뜨리는 뻣뻣하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무리와 대면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보기라도 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중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이 문제를 피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 조직은 저쪽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입니다”라고 약속합니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곳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침례교회에 속해 있거나, 하나님의 성회에, 일신교에, 삼신교에, 오신교에, 아니 그 무엇에 속해 있든지, 우리는 한 가지 근본 목적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위해, 다시 태어난 자녀들을 저 왕국에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그 밖의 일을 위해 일한다면 헛수고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기관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 기관은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되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니 무너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만 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조직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교제하지 못하도록 장벽을 세우면 그때부터 잘못됩니다. 제가 조직들을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저는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조직도 선을 그어 놓고 다음과 같이 말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나머지 여러분은 여기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저 실업인회가 지금처럼 하는 한, 우리는 그 실업인 모임이든 무엇이든 협력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조직이 된다면…”
그들이 조직이 되면 저는 그들을 떠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형제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면서 교제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 모임에서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 부류가 섞인 무리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나이 산으로 가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박사 학위, PhD, LLD, QSD, 온갖 D가 붙은 학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 율법은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괜찮았습니다. 율법은 제 역할을 잘했고 그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교단들도 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율법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건너가게 한 것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은혜였지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단도 하나님의 교회를 건너가게 할 수 없습니다. 성령 침례를 통해 우리 마음에 널리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복 가운데로 이끌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할 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목적을 아주 잘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때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사라지게 두셨습니다. 은혜로 그들을 건너가게 하시고 약속의 땅에서 각자의 자리에 배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제자리에 놓을 것입니다… 선지자들, 교사들 등을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단은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장로들을 여럿 모아 안수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을 끼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구별하라”라고 하시는 성령께서 계셔야 합니다. 그 남녀를 따로 구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 놓는 일은 성령께서 하셔야 했습니다. 사실입니다.
이제 그들이 그곳을 떠나 가데스바네아까지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그들은 이제껏 저지른 것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참으로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들이 수를 세어… 서로 다른 열두 우두머리, 서로 다른 열두 무리를 갖추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정보라도 얻으려고 약속의 땅으로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그중 열 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벅찬 일입니다.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아주 작은 사람들입니다. 메뚜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딘가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올 때 그 땅의 열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건너갔다 왔음을 알 수 있도록 돌아왔고, 그곳이 좋은 땅이라는 증거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부흥에서도 얻는 것이 대략 그 정도입니다. 한 번에 두 사람쯤입니다. 암탉에게 알을 품게 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알을 한 둥지 잘 품게 해도 두 마리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곳이 좋은 땅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증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한 가지 증거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순절 사람들도 그 땅을 건너 광야로 들어가고 홍해를 건너, 거기서 자기들의 계보를 찾았을 때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다녀왔다는 증거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이른 그 어떤 곳보다도 더 나은 땅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거기에 주저앉았고, 거기에만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와 방언으로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는 ‘너희가 다 미쳤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예언하여 마음의 은밀한 것들을 드러내면, 그는 엎드려 ‘참으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는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성령을 받은 증거라는 그 한 가지 증거에서 멈추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따르는 다른 것들도 보십시오. 하지만 그것을 받자마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열매를 따지 못하게 우리 코코넛 나무 둘레에 울타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데도 가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뿌리째 뽑아내시도록 맡기는 대신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을 내세운 것입니다. 우리는 40년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늘 똑같습니다. 아, 이런.
우리는 그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싸움꾼을 큰 무리로 길러 냈습니다. 흠! 우리에게 있는 것도 싸움꾼 무리입니다. 한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회 사람입니다. 당신은 일신교지요. 하나님의 교회 사람인 당신도 나와 상관하지 마시오. 우리에게 그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것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언된 이름이 있습니다.” 일신교는 말합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침례를 주니 우리에게 그것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싸움꾼들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죽을 때까지 바로 여기 앉아 있을 것이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성경은 그 오래된 싸움꾼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그들이 거기에 머물렀다고 말합니다. 아멘. 정확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오래된 싸움꾼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바로 거기 머물게 하셨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싸움꾼들은 조직의 경계선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저 무리와는 교제하지 마시오. 저들은 독수리 같은 무리고, 이쪽은 이런저런 무리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한, 바로 그 산에 앉아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40일 거리도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40년이나 거기에 앉혀 두셨습니다. 오래전에 그랬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어떤 분들이 주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미 오셨어야 할 때가 지났다고 믿습니다. 오심이 늦어지는 이유는 교회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날들이 어떠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날들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며 오래 참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하나로 모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말이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하나로 모이라는 것이 이 시대의 메시지입니다. 혼들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루터교, 일신교, 삼신교, 오신교,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무리입니다.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그런데 코코넛에 손도 댈 수 없을 만큼 높은 울타리를 쳐 놓으면 어떻게 오겠습니까?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아, 참 많은 사람이… 그날 밤 빌립보 간수도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 줍니다. “이런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저기 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것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오해할 여지가 없는 분명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도록, 그들 안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되찾아 주십시오. “와서 우리 모임에 가입하십시오. 가서 저 모임에 가입하십시오”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그들을 왕국으로 들여보내십시오. 그 오래된 싸움꾼들 말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 두 사람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군중을 조용히 시켰습니다. 몇 년 전에 그들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불분명한 말] 오순절과 여러 다른 사람들 등 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려 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이 모든 큰 무리들을 찾아가서 성령께서 우리를 계속 이끄시도록 맡기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께서 이끄시게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쟁점들과 여러 가지 것들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냥 나아가게 두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면 어떻겠습니까? 서로 싸우지 마십시오. 마귀가 여러분끼리 싸우게 해 놓으면 자기는 전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뒤로 물러앉아 소풍이라도 즐기듯, 여러분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웃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서로 싸우는 여러분을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할 때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 제가 아는 성령의 가장 큰 증거는 여러분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큰 명령입니다. 위대한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니 여기 이 성령의 증거만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지 마십시오. 물론 그것도 옳고 저도 믿습니다. 그러나 기다려 보십시오.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제 흑인 친구 여러분, 양해해 주십시오. 남부에서 한 흑인 남자가 수박을 먹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에게 이만한 작은 조각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맛이 어떻던가, 샘보?”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좋습니다. 하지만 더 있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맛보고 성령께서 집회에 임하실 때도 꼭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원합니다. 더 있습니다. 구속으로 주어지는 모든 복이 우리 것이라고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 산에 4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이쪽저쪽으로 다투며 40년 동안 우리 교단 안에 머물렀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4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와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4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길렀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번성하게 하셔서 농사도 잘되었습니다. 거기서 좋은 일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나올 때 그들 가운데 연약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옛 싸움꾼 무리가 떠날 때까지, 모두 죽을 때까지 그들이 바로 거기 머물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행하신 일도 정확히 같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눌러앉아서 여기에 가입하고, 하나님의 교회에 가입하고, 이것에 가입하고 저것에 가입하고, 가입하고, 가입하고, 또 가입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게 여기 앉아서 자녀들을 기르고, 캐딜락을 사고, 사업이 번창하고, 온갖 것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이제 그 40년이 끝났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날 여호수아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약속의 모든 부분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여러분을 돌보시고 여러분의 사업에 복을 주시는 것 등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같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저는 이 순복음 실업인 조직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그들 앞에 서 있다고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면 저는 위선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진심으로 말합니다. 이분들은 말뚝을 박아 놓고 “이 조직”, “저 조직”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경계선을 넓게 펼쳤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제가 이분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옳다고 믿는 바로 그 계획 안에 이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회와 하나님의 교회, 포스퀘어, PAJC, PA of W, 유나이티드,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와서 물을… 생명수의 샘물을 값없이 마시게 하십시오. 혹이 하나인 낙타, 둘인 낙타, 셋인 낙타, 혹이 몇 개든 그런 것에 매달리게 하지 마십시오. 늙은 당나귀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이 집에는 우리 모두를 위한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실업인회를 따라다닌 이유입니다. 그 안에서는 모든 무리에게 말할 수 있고, 제 메시지도 전하여 이것이 제가 믿는 것임을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이 모든 일에서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믿습니다. 이분들도 그 일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단의 장벽을 허물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 보는 이분들, 여기 앉아 계신 젊은 분들 모두가 그 열매라고 믿습니다… 옛 싸움꾼들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싸움꾼이 아닙니다. 새 무리는 싸움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 싸움꾼들이 모두 죽게 두셨습니다. 그 옛 싸움꾼들이 죽자, 그들의 아들들을 택하시고 그 가운데 여호수아를 일으켜 세우셔서 온전한 약속으로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그리스도인 실업인 조직이 하는 일이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조직을 강하게 사용하고 계시며, 여러분이 교단의 장벽을 계속 허물어 두는 한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 조직은 어느 교회에 속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곳 어디에든 속하십시오. 다만 여러분을… 그 옛 싸움꾼의 기질에서 벗어나, 어느 형제든 끌어안을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감리교인이든 장로교인이든 침례교인이든 일신교인이든 삼신교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끌어안으십시오. 그는 형제입니다. 그와 싸우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아멘. 우리가 그런 태도를 지니는 한,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 조직이라는 산에 4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위로 올라갑시다. 이곳을 떠납시다. 목회자 여러분, 저기 계신 제 동역자 형제 여러분, 우리가 이 산에 충분히 오래 머물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 조직의 경계선을 놓고 다투고 싸우고 소란을 피우고 속을 끓인 것도 이제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 산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갑시다. 올라가기 시작하여 그 땅을 차지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하라. 옛 싸움꾼들은 이제 다 없어졌다. 칼을 칼집에 도로 넣어라. 싸우지 말라.”
여러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저지른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여기서 40년을 지내게 됩니다. 이 그리스도인 실업인 조직 같은 곳에서 말입니다. 아니,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이것을 조직으로 만들기라도 하면 여기서 또 40년 동안 꼼짝 못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올라오라고 부르시는 때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세일 산을 지나가라…” 자, 거기는 교단에 속한 에서 형제가 앉아 있는 곳입니다. 훌륭한 장로교인이나 감리교인, 또는 침례교인이지요. 그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와 다투지 마십시오. 그저 지나가며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말하십시오. 그대로 걸어가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은 그를 한번 흔들어 놓고,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로 그것입니다. 그도 여러분이 누렸던 것과 같은 부흥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그가 아는 것은 [불분명한 말]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이제 저 세일 산으로 가라. 내가 그것을 에서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알도록 되어 있는 몫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가 아는 유일한 것은 자기 교단입니다. 아,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가 아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제 그냥 지나가라. 그와 다투고 싸우려 하지 말라. 그저 조용히 지나가라. 그러나 야곱아, 여기 보아라. 오순절 야곱아, 너는 참으로 다시 태어나 체험을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니, 그와 다투려 하지 말라.” 그러나 오순절 야곱에게는 저 땅에 온전한 약속이 있습니다. 일어나기로 되어 있던 그 일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불분명한 단어]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과 모든 역사가 있는 약속의 땅에 여러분을 들여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전 아침 그 모임에 서서, 여기 제 사역, 곧 영적인 사역을 가진 저 자신이 그것을 보았을 때… 저는 설교를 그리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그런 이야기 가운데 찰스 프라이스와 그가 거기서 세상을 떠난 일,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샤카리안 형제님이 예언한 것을 말할 때, 아, 제 안에서 영이 솟구치며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이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불분명한 말] 등 말입니다. 이 옛 싸움꾼들의 아들들이 함께 뭉치면 우리는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 여기 계신 목회자 여러분, 여기 피닉스에 계신 형제 여러분, 그 교단의 장벽을 허무십시오. 우리에게는 또 한 번 오순절 부흥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흥을 원합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다시 부르시고,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부흥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그 일을 하도록 허락하시기를 바랍니다.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하십시오. 그들은 그냥 지나가십시오. 그들과 다투지 마십시오. 그들이 오고 싶어 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계속 가십시오. “형제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지나가십시오. 그는 경계선에 머무는 신자입니다. 그가 아는 것은 경계선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자기 교단뿐입니다. “나는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나는 저기에 속해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여자에게 그리스도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매일 밤 촛불을 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치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남자가 “저는 미국인입니다. 물론이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돼지에게 옆으로 앉는 안장이 필요한 것만큼이나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돼지 등에 옆으로 앉는 안장을 얹는 것만큼이나 관계없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인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시 태어나는 체험이며, 교회 안에서 받는 성령 침례이고, 교제와 사랑과 너그러움 가운데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맡아 위대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아,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뭔가 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벌써 올라가 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군가… “지금 누군가 상자를 옮기고 있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제 내가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약속들을 차지하십시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자들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니라. 그리스도인 여러분,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충분히 오래 머물렀습니다. 여기 이 산을 맴돌았습니다. 이제는 이 교단이라는 산에 너무 오래 머물렀습니다. 첫 증거인 방언을 말하는 일이 있은 뒤로 우리는 여기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아, 이런. 아직 알려지지 않은 권능이 있고 아직 손대지 않은 자원이 있는데 말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신유와 방언을 말하는 것은 경계선 너머에서 가져온 포도 몇 알에 불과합니다. 그 땅은 우리 것입니다! 전부 우리에게 속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보다 먼저 그곳에 이를까 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과 손잡고 함께 건너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 산에 40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내려와 약속의 땅을 향해 갑시다.
하나님께서 이 실업인들이 한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들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실업인들이나 다른 이들을 일으켜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함께 모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팔은 한쪽으로, 머리는 다른 쪽으로, 발은 또 다른 쪽으로 가면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이 함께 모여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몸이 하나님의 위대한 한 몸으로 일어설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산을 떠나 건너가서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여러분의 형제이며, 오직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싸울 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샤카리안 형제님… [테이프의 공백]
[테이프의 나머지 부분은 다른 예배의 일부일 수 있다. 다른 형제의 발언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아무리 신실하게 경배하더라도, 때로는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 이 환상이 임했을 때, 그것은… 여러분 중 많은 분, 아마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집회에 참석하여 환상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셨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 여기서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그저… 주님의 임재를 여러분이 알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그 빛을 여러 번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같은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무가… 얼마 전 여기 애리조나에 왔다가 감귤류 나무 한 그루를 보았는데, 여러 종류의 열매가 달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렌지 나무였을 텐데, 거기에 이를테면 레몬과 자몽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런 열매도 그 나무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아니 15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 가지가 내었다면… 아니, 이 포도나무가 첫 가지를 내고, 그 가지가 나온 뒤에 사도행전이 기록되었다면, 그 참 포도나무가 또 다른 가지를 낼 때에도 그 뒤에 또 하나의 사도행전이 기록될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제 접붙인 것이… 다른 감귤류를 접붙일 수 있고, 그것도 그 나무의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조직들을 얕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표를 찍어 버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아시겠죠? 쉼표로 끝낸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으며,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도 더 믿습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조직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쉼표로 끝내 버리면 더 보탤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계속 자라듯이, 교회도, 사실 어느 교회 조직이든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거기에 접붙이거나 덧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평신도에게서 권능을 빼앗아 목회자나 감독, 또는 어떤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저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니골라당의 행위.” “니코”, 곧 “이기다”라는 말과 “평신도”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모임은 하나님께서 평신도를 통해 일하실 기회를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평신도를 통해 일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자, 이것은 1933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여전히 선교침례교 목사였습니다. 지금 저는 쉰한 살이며, 그런 환상을 수천 번 보았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집회에 참석하셨습니다. 누구든 불러서 단 한 번이라도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습니다. 어긋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만일…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새로운 것임을 압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성령의 권능이 교회에 새로운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침례교인들과 제 형제들 등이 간증하는 것을 듣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교회에 새로운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가지입니다. 유심히 보시면 그것이 사도행전에서와 똑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 가운데 일어나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는 방식이 말입니다.
그날 아침 저는 제가 섬기는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환상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보았습니다.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기 여러 해 전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 무솔리니라는 독재자가 있다. 그가 처음 침략할 곳은 에티오피아이며, 그는 에티오피아를 정복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말한 모든 것, 일곱 가지 두드러진 일들이… 어쩌면 내일 그 오래된 종이를 가져다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섯 가지는 완전히 이루어졌고, 일곱 번째는 예측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여자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주었을 때, 그때…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반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어 왔습니다… [테이프의 공백—편집자]
나라 전역이 마치 바위들이 폭파되어 나가고 나무 그루터기들이 연기를 내며 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루스벨트 씨가… 실제로 그의 재임 중에 세계가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무솔리니도 정확히 그대로 했고, 마지노선과 우리가 말했던 모든 것이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거에서도, 우리가 알듯이 지금 우리의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은 여자들이었습니다. 저는… 남부에서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남부 사람이니 사람들이 “인종 분리 같은 문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많이 묻습니다. 저는 그저… 그…?… 미국인으로서 저는 믿습니다…?… 무엇이 필요하든 좋습니다. 자,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라면 우리는 그 사실을 존중해야 합니다.
며칠 전 제게 무엇인가가 임해서 적어 두었습니다.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아 있던, 짙은 색 안경을 쓴 신사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분일 것입니다. “그는 처음 4년 동안은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우리는 죄를 지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날을 다 써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때가 늦었습니다…?… 아시겠죠? 그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차지하는 수단은 아첨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때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저는 그만큼 확신합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 중 많은 분이 이 사역에 대해 좋은 칭찬의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 문제는 그대로 두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고 믿으신다면, 미국은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일해야 할 때가 있다면, 우리는 지금 해야 합니다. 바로 지금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올 것이요.” 우리는 아주 힘차고 빠르게 그물을 끌어당기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마무리하며 말씀드립니다. 다른 분의 시간을 빼앗지 않으려고… 제가 두 번째로 여기에 올라왔습니다.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아마 내일 오후에 제가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을 텐데, 여러분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산에 40년 동안 머물렀다”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믿기로는, 우리 주님께서 그토록 많은 지부를 설립하는 일을 돕도록 저를 사용하셨고, 제 사역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저는 제 사역을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재주였습니다. 얼마 전에 누군가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유명한 아무개들하고 어울리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제 자리는 영적인 측면을 살피고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을 하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기 있는 목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부분을 살피라고 저를 여기에 두셨습니다. 우리가 거물이라고 부르는 이런 사람들은… 그분이, 누가 말씀하셨든, 아마 여기 앉아 계신 형제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거물 노릇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내려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큰 조직에서 아주 저명한 분이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것저것 말씀하시는 것만 그만두시면, 우리가 이렇게도 해 드리고 저렇게도 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그만두라고요? 그것이 제 사역이고, 제 삶이며, 제가 살아가는 힘입니다. 저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타협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정확히 그대로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말했습니다. “…?… 문제는 형제님이 그저 그런 무리와 어울리며 시간을 허비해 왔다는 겁니다… 아,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작은 모임 같은 것들 말입니다. 거기서 나오십시오.” 그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알기만 했더라면, 그것은 우리 삶의 주인이신 [테이프의 공백—편집자] 예수 그리스도께도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그분의 친형제들이 말했습니다. “…?… 여기로 올라와서 뭔가 크게 보여 주십시오. 큰 중심지들로 가십시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때는 언제든지 있지만, 내 때는 아직 아니다.” 그분께서는 어부들과 배우지 못한 사람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하십니다. 보십시오.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그 당시 성직자들이 이사야 40장 말씀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통로를 내려 보내시고, 침례자 요한이 천사들의 악대와 함께 행진하며 내려올 것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지며, 산들이 어린 숫양처럼 뛰고 잎들이 모두 손뼉을 쳤을 때, 실제 모습은 어땠습니까? 웬 늙은… 이런 표현은 용서하십시오. 정말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요점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털이 덥수룩한 늙은 사람 하나가 광야에서 나와, 아마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 서 있었습니다. 목욕은 서너 달에 한 번쯤 했을지도 모르며, 몸에는 양가죽 한 조각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높은 곳이 낮아지고 낮은 곳이 높아졌습니다. 뒤에 크고 화려한 무언가를 거느린 대단한 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허세만 잔뜩 부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저는 이분들에게서 그런 점이 좋습니다. 조금 전에 그분이 말씀하셨듯이, 이런 실업인들은… 때로는 도랑을 파는 노동자들조차 이런 모임에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실업인들은 믿음과 그런 것들을 가지고, 기꺼이 내려와 이 오순절의 복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 행하신 일을 고백합니다. 저는 거기서 겸손을 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유심히 보십시오. 그들은 다른 형제들도 이 모임에 들어오도록 돕고 빛을 비추는 어떤 일이라도 하려고, 자기 경비를 부담하며 세계 곳곳으로 다닙니다.
오늘 아침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껏 참석한 모든 집회에 대해 제가 품어 온 생각입니다.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면 저도 좋습니다. 그러나 외치며 주님을 찬양하면서도 치통 하나 낫게 할 만한 믿음도 없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아시겠죠? 그것도 하나님의 복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때는 사람들이 차분해질 때입니다. 성령께서… 집회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를 보십시오. 모든 것이 조용해지고, 거룩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하나님께 다가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가운데, 참으로 죄를 깨달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 등이 바뀌는 것을 보십시오. 오늘 아침 제가 이 건물 곳곳에서 보고 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게 이것은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와 함께한 이래 어디서든 참석해 본 조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조찬입니다. 제가 속한 유일한 모임이 바로 여기입니다. 저는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곳은 이 모임 하나뿐입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한 가지 이유는 이것이 제가 지지하며 서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성회, 하나님의 교회, 포스퀘어, 침례교, 장로교, 일신교, 이신교, 삼신교, 사…가 함께 앉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야곱이 판 우물에 빗대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정확한 말을 쓰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이해하시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우물 하나를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서 도망쳤습니다. 아니, 그를 거기서 쫓아냈습니다. 그는 그 우물을 “악의”라고 불렀습니다. 또 하나를 파고는 “다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다음 우물을 팠을 때는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함께 모여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을 수 있습니다. 교단의 장벽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무리일 뿐입니다.
제가 모든 큰 교회, 힘쓰고 있는 영적인 교회들,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참된 포도나무를 볼 수 있다면, 오순절의 무리들만이라도 함께 모여 형제가 될 수 있다면… 저는 그들의 조직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원하면 그대로 유지해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거기서 마침표를 찍지 마십시오. 손을 뻗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으십시오. 아시겠죠? 우리 모두 함께 모입시다. 아시겠죠? 제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아침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옛날 시므온처럼 기꺼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주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이 평안히 떠나도록 허락하소서. 이는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이다.”…?… 형제 여러분, 그때는 곧 와야 합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함께 모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