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이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밤 이 찬송에 담긴 약속들로 인해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발작을 일으키는 그 간질병 소년과, 주님을 만나 긍휼히 여겨 주시겠느냐고 간구하러 오는 그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내가 할 수 있느니라.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동일하시기에,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 밤에도 우리의 질병을 기꺼이 고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우리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며, 우리는 그것이 참됨을 압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늘 밤 이 모든 위대한 약속이 주님의 자녀들에게 이루어져,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구하러 온 것을 받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예배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 그날 엠마오에서 오던 사람들처럼 서로 이야기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종일 그들과 함께 걸으셨지만,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방에서 그들만 따로 함께 계셨을 때,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그대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다. 다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하신 그 일을 보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실 때에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했습니다. 주님, 오늘 밤 우리에게 다시 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인 사람은 이렇게 적지만,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 거기에 나도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며, 우리는 그것이 참되다고 믿습니다. 이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말씀이 확증되기를 기다립니다. 아멘. 앉으셔도 좋습니다. [누군가 예언한다.] 아멘.
이 큰 격려를 주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영을 통해, 이곳 우리 가운데 계신 그분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자, 그것이 사실입니까? 물론 사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나 옳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며, 본향으로 데려가실 교회를 불러내고 구별하시는 이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분께서 오실 때 이 땅에 남아 있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갈 남은 자들을 위해 일하시는 때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 지금은 위대한 때입니다. 이때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쁩니다. 아시겠지만, 모세는 이때에 살기를 몹시 원했을 것입니다. 사도들도 모두 이때에 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이때에 살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얼마나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지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오시는 날은 다소 뜻밖에 닥칠 것이며, 교회는 식어 가고 있으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고향의 제 교회에서 마지막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말씀을 막 마쳤습니다. 이제 자료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녹음테이프로 나와 있습니다. 매일 밤 교회 시대 하나씩을 다루어, 일곱 교회 시대와 마지막 일곱... 촛대들과 교회 시대들의 일곱 사자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평생 주님을 위해 기울인 모든 노력 가운데, 그것만큼 효과가 컸던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내려오자마자, 무엇인지도 모르고... 칠판에 이 교회 시대들을 그리면서, 에베소 교회 시대에 성령께서 얼마나 들어오셨는지, 그리고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를 거쳐 끝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주었는데...
그런데 주님의 그 천사, 그 빛이 삼백 명 앞에 곧바로 나타나 벽으로 옮겨 가더니, 그 둥근 빛으로 제가 교회들을 그린 그대로 그렸던 것입니다. 빛이 지나가면서, 깊이와 모든 것을 정확히 똑같이 보여 주었습니다. 삼백 명이 벽면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 빛은 이쪽에 서서 벽에 자신을 비추어, 바로 똑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태버내클에 세워 두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스럽고 귀한 아간브라이트 형제님이 얼마 전에 그곳에 다녀가셨습니다. 벽의 어느 자리에 나타났는지 보러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엄청난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은 자기 몸을 꼬집고 흔들어 깨워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저는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를 다니면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나는 오순절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근본주의 사람들입니다. 근본주의 사람들은 성경의 약속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압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는...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반면에 오순절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아시겠죠? 그러니 한 사람은 은행에 돈이 있는데 수표를 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은 수표를 쓸 줄 알지만 은행에 돈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둘을 함께 모을 수만 있다면... 오순절 사람들이 진정하고 자리를 잡을 수만 있다면... 어젯밤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진심으로 이렇게 믿습니다. 오순절 교회는 예전에 더 좋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사역자가 아니었고, 제 생각에는... 아마 이 땅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토록 많이 이야기하는 옛 아주사 거리 집회들, 저도 책으로 읽어 본 그 집회들 말입니다. 삼사십 년 전 초기 오순절 교회가 지금보다 주님의 오심을 맞을 준비가 더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진실하고 꾸밈없는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것을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을 믿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등급으로 나누고, 저마다 계층을 이룬 조직과 교단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양하듯 받아들인 손주 세대도 들어와 있습니다. 예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죽고, 참으로 하나님과 끝까지 나아갔던 옛 오순절 사람들, 그 참되고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구하고, 기름부음을 받고, 그대로 나아가서 치유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사람들 한가운데서 기적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온갖 일을 하셔도... 그저 “그래요, 아주 괜찮았던 것 같군요.”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너무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새로운 빛을 찾고 있습니다. 이브도 새로운 빛을 찾다가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옛길을 그대로 지키십시오. 첫사랑의 그 옛길, 여러분에게 처음 찾아왔던 것을 떠나지 마십시오. 성령과 함께 사십시오. 다른 엉뚱한 열풍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하나님 곁에, 그분의 말씀 안에 그대로 머무십시오. 성령께서는 결코 여러분에게 이 말씀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 안에 그대로 머무십니다. 말씀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에는 “기대”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밤에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내일 밤부터 전도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아마 “주님의 오심”, “짐승의 표”, “하나님의 인”, “십사만 사천”, “요한계시록의 네 말 탄 자” 같은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사람들을 깨우고 흔들어 일으키려면, 이런 메시지들을 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저는 “일곱 교회 시대”를 통해 큰 결실을 보았습니다. 이곳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면 다시 한 번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복을 주셨는지요! 여러분께 거듭 경고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마지막으로 흔들어 깨우시는 일이 세상 전체에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큰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날 준비를 시키려고 흔들어 깨우시는 작은 무리가 있습니다. 저들은 어쨌든 가 버렸습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성경에 맞는, 성경적인 말씀입니다.
얼마 전 어느 큰 도시의 목사님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갑니다. 이곳에 온 지 이십몇 년이 되었고, 우리는 대단히 강력한 집회들도 열었습니다.” 시카고의 맷슨 보즈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주님께 예언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면, 떠날 때가 되기 전에 하나님의 강한 손이 이곳을 흔드시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조셉 형제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제님은 훌륭한 신학자이고 위대한 분이며 신학 박사입니다.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거기에 견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형제님, 영적인 분별력은 좀 부족하십니다.” 오늘날 교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는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바로 여기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너머 먼 곳에서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이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 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자들이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왔지만 그들이 그를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 교회 말고는 엘리야가 선지자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알았다면 그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머리”라고 부르고 그런 식으로 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참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사람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는 미친 사람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시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옷차림을 보고 광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그것을 보도록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실 때까지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그들은 줄곧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성 패트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학교들은 모두 북아일랜드에 있었습니다. 그는 가톨릭 주교들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를 성인으로 만듭니다. 가톨릭교회는 잔 다르크를 마녀라고 하며 화형에 처했습니다. 그녀는 화형대에서 울부짖었습니다. 그 소녀는 환상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백 년쯤 지나, 그녀가 이미 죽어 묻힌 뒤에야 그들이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그녀를 죽인 사제들의 시신을 파내어 강에 던졌습니다. 그들은 일이 지나간 뒤에야 알아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교회에 마지막으로 외치시며, 성경이 행하리라고 한 바로 그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순절 사람들은 그 위를 더듬으며 무슨 다른 것을 찾고 있습니다... 오, 여러분!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들으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대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렇게 믿는 사람답게 행동합시다.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대하면서, 건물에 육백만 달러를 쏟아부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이처럼 엄청난 것들을 마련합니까? 형제님, 우리는... 휴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오백 년을 더 지낼 준비를 할 때가 아닙니다. 아시겠죠?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제게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입술로는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마음으로는... 아시겠죠? “아, 물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믿지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어떤 남자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놓고, 다른 여자와 달아난다면 어떻겠습니까? 행동은 말보다 더 크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입술로 무엇을 말하든, 우리의 행동은 마음속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들아, 너희가 어찌 선한 것들을 말할 수 있느냐?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아시겠죠? 그렇지 않다면 위선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에 속한 자들로 여기실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입니다. 미지근하여 입술로만 말하고, 마음은 멀리 떠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리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성경으로 내려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순절이 참으로 되살아날 때까지 거기서 씨름합시다. 조직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되돌려 놓읍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것입니다. 이번 주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머무는 동안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몫을 하십시오.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데려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신 이래로 알려진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지나가 버려,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사람들이 그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그 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날을 알기만 하였더라면... 알기만 하였더라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자기 병아리들을 품듯 내가 얼마나 자주 너를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네 날, 너를 찾아오는 때를 알기만 하였더라면.”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을 우리가 알기만 했더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찾아오심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저 먼 곳에서 다른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찾아오신 때는 끝나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먼저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니라.” 아멘. 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면, 먼저 그것부터 치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초까지 내려가서 바로잡읍시다. 얼마 전 한 분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명한 사역자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형제님은 너무 큰 실수를 하고 계십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제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너무 심하게 쏘아붙이십니다. 이를테면 여자들의 옷차림을 늘 호되게 나무라시고, 이것저것을 줄곧 공격하시잖습니까.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사역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제 사역이 망가진다면, 하나님, 당장 망가뜨려 주십시오. 저는 그런 사역이 망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옳은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가르칩니다. 무슨 일이 닥치든 진리를 위해 굳게 설 사람들과 담대함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그것입니다. 복음은 겁쟁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나이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나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손이 얼마나 크고 어깨가 얼마나 넓은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아, 정말 사나이답군!”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몸무게는 이백 파운드나 나가면서, 사나이다운 면은 한 온스도 없는 사람들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덩치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짐승의 힘입니다. 사람은 인격으로 평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위대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결코 없었습니다. 큰 몸집이라... 노새가 어느 사람보다도 더 힘이 셉니다. 또는 코끼리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짐승의 힘일 뿐입니다. 사람이란 근육이 얼마나 크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기도하여 바지 무릎이 불룩하게 늘어났는지로 평가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평가해야 합니다. 인격으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체구가 작은 분이셨습니다. 작은 분이셨고, 아마 어깨도 굽으셨을 것입니다. 서른 살이셨지만 쉰 살처럼 보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그분 같은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우리가 그를 볼 때에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같이 우리 얼굴을 감추었도다.”라고,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맞으시고, 매를 맞으시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범법들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셨으며,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야 합니다. 참으로 그래야 합니다. 마음을 뒤흔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수요일 밤 기도회를 없애고, 그 자리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넣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을 좇아가고 싶어 합니까? 여러분이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요? 무엇 때문에 술에 취하고 싶어 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 합니까? 세상 때문입니다. 왜 수요일 밤 기도회에 가지 않고 집에 남아 특정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봅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합니까? 그들 속에 만족을 갈구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마음속에 작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만드신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앉으시려고 만드신 그 자리에, 어떻게 감히 세상의 것들을 가져다 채워 넣으려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즐거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만족이십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십시오. 그러면 다른 것들은 모두 죽은 것처럼 되어, 더는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 사람들은 매우 종교적입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며칠 전 저쪽에서 설교했듯이, 부흥은 언제나 쌍둥이를 낳습니다. 에서와 야곱처럼, 세상에 속한 사람과 장자권을 원하는 사람을 낳습니다. 아시겠죠? 언제나... 모든 부흥은 그렇게 합니다. 이 마지막 날의 부흥도 똑같은 일을 낳았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니 야곱 편, 상속받을 사람의 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사람의 편에 섭시다. 우리는 그저 교회에 다니고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만족한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이를 때까지, 더 높이 더 높이 계속 올라갑시다.
며칠 전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그리스도인 실업인회 대집회에서, 어느 무도회장에 모여 설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해를 건너고, 뒤에 죽어 있는 작업 감독들을 본 뒤, 미리암이 탬버린을 들고 그들과 함께 영 안에서 외치며 춤출 때, 약속의 땅에 이르려면 사십 년이나 더 걸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겨우 나흘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반드시... 아시겠지만, 출애굽기 19장까지 가서 그들이 저지른 실수 중 가장 큰 실수를 범해야 했습니다. 기어이 올라가 율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서로 다투고 조직을 만들고 자기들끼리 뭉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가 그들에게 선지자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은혜가 어린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은혜가 기적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은혜가 그들이 겪어 본 가장 큰 부흥을 주었습니다. 은혜가 이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는데도, 그들은 율법을 원했습니다. 약 사십 년 전 오순절에서 우리 선조들이 처했던 상황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은혜가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모든... 오순절은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기어이 하나님의 성회라는 한 부류를 조직해야 했습니다. 아니, 또 다른 조직도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포스퀘어, 일신교, 이신교, 삼신교, 사신교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사십 년 동안 바로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에게는...
그들은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여호수아 한 사람이 일어나 그들 모두를 두 팔로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산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거하였으니, 이제 북쪽으로 가서 건너가자. 약속을 차지하라.” 하나님께서는 침례교인이든 감리교인이든 원하시는 누구라도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건너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계층을 따지는 생각을 붙들고, 우리는... 하며 앉아 있는 한, 여러분은 바로 그 자리에 머물 것입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오, 일어납시다! 거기서 나갑시다. 오! 스스로를 흔들어 깨우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깨달으십시오. 그분은 그대로 계셔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이셨다면 지금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방식에 맞추어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방식을 그분의 방식에 맞추어 바꾸어야 합니다. 오, 저는 이런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제 성경을 좀 읽겠습니다. 좋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0절입니다. 여기서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그 명절에 경배하러 올라온 자들 가운데 어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의 빌립에게 가서... 그에게 요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 이제 히브리서 13장 8절을 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 중 몇 분이나 이것을 진지하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내일 밤에는 전도 집회로 이어 가겠습니다. 오늘 밤은 신유를 위해 드리겠습니다.
무엇에 관해 말하는 것과, 우리가 말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약속이든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킬 책임이 있으십니다. 이제 몇 분 동안만 제게 온전히 시간을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삼십 분쯤만 주시면, 그다음에는 기도받을 줄을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우선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믿습니까? 진지하게 믿습니까? 그분은 원칙에서도 동일하시고, 권능에서도 동일하시며, 예전에 가지셨던 똑같은 권능과 똑같은 긍휼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분께서 오늘 이곳에 계신다면—실제로 계십니다—예전에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그대로 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천 년이 지났으니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조금 더 영리해지셔서, 교회를 다르게 만드는 방법을 아신다고 생각합니까? 처음 오순절 교회에 하셨던 일에 대해 좀 사과를 하셔야 해서, 마지막 시대를 위해서는 다른 오순절 교회를 만드실까요? 그것이 그분의 생각이겠습니까? 동일하신 분이라면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도 똑같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므로 변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며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생각도 같고 원칙도 같으며, 권능도 같고 교회도 같을 것입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어느 날 그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집회에, 아니 오순절에 경배하러 올라왔다가 우연히 그곳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그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종 한 사람에게 와서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기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종에게 요청하자, 그 종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여러분도 그분을 뵙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면, 우리가 왜 그분을 뵐 수 없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뵐 수 없습니까? 그분께서 동일하시다면, 왜 뵐 수 없습니까? 여러분은 그 그리스 사람들처럼 손을 들었습니다.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모든 것이 끝나는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그분은 언제나 이곳에 계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우리가 그분을 뵐 수 없습니까?
그분께서 오늘 밤 우리 가운데 오신다면...? 처음 오신 분이라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울타리를 내려놓고 남은 집회 동안 가만히 앉아, 제가 여러분께 읽어 드릴 이 말씀들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성경에서 찾아 이 종이에 적어 둔 약속들입니다. 몇 가지 약속을 읽어 드리며, 그분께서 여전히 살아 계신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교가 참된 신앙인지, 또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 오순절의 관점이 옳은지 그른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모든 잘못이 있는데도, 저는 여전히 이것을 교회로 택합니다. 그들이 오순절 사람들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순절은 조직이 아닙니다. 침례교인과 감리교인 여러분, 가톨릭교인과 장로교인 여러분도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조직 안에 묶어 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조직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은 감리교인, 침례교인, 장로교인, 가톨릭교인, 누구나 받는 체험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톨릭교인으로서 구원을 받기 위해 가톨릭교회에 의지한다면, 그는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침례교인으로서 구원을 받기 위해 침례교회에 의지한다면, 그는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오순절 교인으로서 구원을 받기 위해 오순절 교회에 의지한다면, 그는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가톨릭교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한다면, 믿음으로, 그 자신의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침례교인이든 오순절 교인이든,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여러분은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여러분 자신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책이라면... 얼마 전 가톨릭 사제와 면담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여자에게 제가 침례를 주었는지 물으러 저희 집에 왔습니다. 그 여자가 아기였을 때, 아니 열다섯 살쯤 된 어린 소녀였을 때 말입니다. 그 여자는 재혼했는데, 가톨릭교인과 재혼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제는 그녀에게 다시 침례를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교가 제게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녀에게 침례를 주었느냐고 묻기에, 저는 물에 잠기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가톨릭교회도 예전에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과거로 돌아가 “성경 시대에 그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기록했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분은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톨릭교회를 조직하시고, 베드로를 그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열두 사도들과 함께 그것이 최초의 가톨릭교회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류가 없고 변하지 않는 교회에, 왜 그토록 많은 변화가 더해졌습니까? 여러분은 저 밖의 만 명이나 되는 여자들, 죽은 사람들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만 계시며, 그분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들이나 그 밖의 누구도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어째서입니까?”
그분은 말했습니다. “브래넘 씨, 우리는 말씀을 놓고 논쟁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여쭙는 것입니다. 제게는 히슬롭의 『두 바빌론』도 있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들도 있습니다. 여기 제 서재에는 『니케아 교부들』, 『니케아 공의회』, 『니케아 이전 공의회』와 그 밖의 자료들이 있습니다. 305년 이전에 가톨릭교회가 있었다는 곳을 어디든 보여 주십시오. 어디에 있었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분은 “지금 역사를 인용하고 계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역사가 아니고서야 조지 워싱턴이라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와 다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조직하신 적이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도 아니었습니다. 조직들 가운데 “어머니 교회”는 가톨릭이며, 요한계시록 17장에 따르면 나머지는 모두 그 동일한 조직에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교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오순절은 감리교인, 침례교인, 가톨릭교인, 장로교인을 위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서 생명수의 샘들에서 값없이 마실지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가 이 조직들을 반대하여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작은 울타리를 둘러 칠 때는... 예전에 본 작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무 위에 앉아 있던 작은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그 원숭이가... 다른 작은 원숭이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들,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나...” 아니, “저 아래에서는 자기들이 우리에게서 나왔다고 한다네.” 그러면서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나무에 울타리를 쳐서, 내 동료 원숭이가 원할 때 와서 코코넛 하나 가져가지 못하게 하겠나? 나무에 사는 원숭이는 나 하나뿐이라고 하겠나? 그런 일이 생겼다면 원숭이 종족이 타락한 거지.” 그건... 글쎄요, 그 말도 거의 맞습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무언가에 울타리를 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울타리를 치지 않으십니다. 울타리를 허무십니다. 중간 분리 벽을 허무셨으며,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성령은 우리 모두를 위한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저는 집회를 하면서 그분께서 “이 사람은 장로교인이니 치유받을 수 없다. 이 사람은 침례교인이니 치유받을 수 없다.”라고 하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사람들을 고치지 않으십니다. 교단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근거로 고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가톨릭교회는 “물론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침례교회도 “우리 교회 안에서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가톨릭도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나온 침례교회를 근거로 이 말씀을 전하려 한다면... 오순절을 근거로 하려 한다면, 혹은 오순절의 어느 한 조직을 근거로 하려 한다면, 차라리 여기서 멈추는 편이 낫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나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틀린 것과 옳은 것이 동시에 될 수는 없습니다. 위조 달러가 있는 것은 진짜 달러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톨릭교회는 “우리가 가장 오래된 조직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오순절은 “우리는 조직이 생기기 전, 그 옛날에 시작되었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계속 이렇게 해 봅시다. 침례교는 “우리는 요한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전부터 최초의 침례교인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온갖 논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까지 내려가서 알아봅시다.
동일하신 예수님을 찾으러 시내로 나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것 같은 긴 옷을 입고 걸어오는 남자를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긴 머리를 하고 계셨으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긴 머리를 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화가가 그린 예수님의 그림처럼 생긴 남자를 보았다고 합시다. 손과 발에 흉터가 있고, 가시 자국 같은 것도 있습니다. 아마 호프만이 그린 “서른세 살의 얼굴”과 닮았거나, 다른 그림, 영감을 받은... 어떤 그림 속 모습과 닮았다고 합시다. 그래도 그 사람은 예수님일 수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먼저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땅에서 육체를 입으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날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온갖 것들이 나타나 “보라, 그가 사막에 있다. 은밀한 방에 있다.”라고 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믿지 말라.”
그러나 그분은 성령의 모습으로 이곳에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영께서는 그분께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실 것입니다. 같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의 생명을 오이 덩굴에 넣으면 포도가 열릴 것입니다. 복숭아나무의 생명을 플라타너스에 넣으면 복숭아가 열릴 것입니다. 아시겠죠?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과 특징들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개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민족으로 대하시지만, 이방인들은 개인으로 대하십니다. 이제 이해하셨습니까? 개인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올 때는 한 민족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한꺼번에 하나님께 돌아올 때, 단 하룻밤 사이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개인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취하신 한 백성이 그분의 신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그분께서 누구의 교회 안에 계시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순절 교회 안에 계시는지, 침례교회 안에 계시는지, 가장 오래된 조직인 가톨릭교회 안에 계시는지, 어느 곳에 계시는지 알고 싶다면요? 가톨릭 다음에는 루터교가 있고, 그다음에는 웨슬리가 있으며, 그렇게 이어집니다. 그 교회들에 들어가 살펴본다면 무엇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그분처럼 생긴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분과 똑같이 생긴 사람은 많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저는 그 안에 생명을 가진 사람을 찾겠습니다. 그들 안에 그분의 영과 같은 영을 가진 교회를 찾겠습니다. 그분의 일들이 나타나는지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맞습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그 번역에는 “이것들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올바르게 번역하면... 제게 『엠패틱 다이아글롯』이 있는데, 거기에는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이것들보다 더 많은 일들도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더 큰 일이 아닙니다. 더 큰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자연을 멈추셨습니다. 그보다 더 클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질적으로 더 크다는 뜻이 아니라, 양적으로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기둥이 오순절에 내려와, 아시다시피 불의 혀들처럼 각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들이 방언을 말하기 전에는 불의 혀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나누어 교회의 각 지체 안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동시에 세계 어디에나 계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누신 것입니다. 바로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치유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걷지 못하던 이들이 걷고, 보지 못하던 이들이 봅니다. 온 세계에서 그렇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가 개인들, 그분을 위해 살고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누어 우리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 아시겠죠? “내가... 조금 있으면 세상은”—거기의 ‘코스모스’는 세상의 체계를 뜻합니다—“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교회는—“나를 보리니, 내가”—‘나’는 인칭대명사입니다—“내가 세상의 끝까지 너희와 함께, 너희 안에 있겠노라.” 그렇습니다. “내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보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
이제 그분께서 당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잠시 생각해 봅시다. 어떤 일들을 하셨고, 어떻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봅시다. 예를 들어 그분은 “메시아”라고 불리셨습니다.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 때부터 약속된 분이십니다. 이제 돌아가 알아봅시다. 오늘 밤 우리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읽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서,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봅시다. 그분이 어떤 분이셨고, 어떤 교회에 속하셨으며, 어떤 조직에 다니셨는지 알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조직일 경우 우리는 만족할 수 있겠지요.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그때 어떤 분이셨으며 무엇을 하셨는지 알아낸다면, 오늘도 같은 분이시며 같은 일을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여러분, 그러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이제 돌아가서 알아봅시다.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집에 가셔서 읽어 보십시오.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장들을 적어 두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치유 집회를 열 예정이었다면, 이것이 진리임을 보여 드리기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 두드려 가며 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실지 자기 생각을 완전히 정해 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조금 다르게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말씀한 바로 그대로, 성경이 오시리라고 한 그 방식대로 오셨습니다. 이제 잠시 그분을 살펴봅시다. 그분께서 태어나 서른 살이 되셨을 무렵, 육촌인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려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분은 광야로 들어가 사십 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아와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요한복음 1장에서 보듯이 처음 하신 일은 이곳저곳 다니시며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안드레라는 사람이 그분을 믿었습니다. 잠시 그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분께서 어떻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셨는지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표적들과 이적들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몇 분이나 그것을 믿습니까? 구약성경에서는... 이제 잘 들으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메시지를 볼 수 있도록 해 드린다면, 이곳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듣고 정확히 깨닫는다면, 지금부터 사십 분 뒤에는 이 건물 안에 병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 시험해 봅시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어떤 선지자가 예언을 하거나 꿈꾸는 자가 꿈을 꾸었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우림과 둠밈 앞으로 갔습니다. 목사님들은 그것을 아실 것입니다. 아론의 가슴판입니다. 거기에는 열두 돌, 족장들의 탄생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성전의 기둥에 걸려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예언을 시작하거나 꿈꾸는 자가 꿈을 이야기할 때, 아무리 사실처럼 들려도 거기서 여러 빛이 한데 어우러져 비치지 않으면,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메시지를 거부했습니다. 얼마나... 좋게 들리든, 아무개 박사의 신학에 얼마나 잘 들어맞든, 이 교회나 저 조직에 얼마나 잘 맞든,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배척했습니다. 아멘! 저는 이제 마음에 불이 붙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는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보십시오. 그 제사장 직분, 아론의 제사장 직분이 끝났을 때 우림과 둠밈도 치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또 다른 우림과 둠밈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을 하시고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초자연적인 약속은 초자연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입증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이 충분히 크지 않더라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제게는 그것을 행할 만큼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하게 두십시오. 제게 에녹처럼 걷기 시작하여, 오후 산책을 나갔다가 하나님과 함께 본향으로 갈 만큼의 믿음이 없더라도, 그렇게 할 충분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결코 가로막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저 형제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형제는 그대로 걸어서 이 땅을 벗어났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이 감사합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형제가 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되게 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가로막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말씀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는 자신의 백성인 유대인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분께는 메시아의 표적이 따랐습니다. 요한이 그것을 증언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둘기처럼, 빛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 빛, 또는 비둘기가 인자 안에 들어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봅시다.
안드레, 그에게서부터 시작합시다. 지금 저는 요한복음 1장, 첫째 장을 보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마자 시몬 베드로를 데리러 갔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안드레가 시몬에게 “형님, 꼭 와서 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아마 형이었을 시몬이 배 가장자리에 앉아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안드레야, 우리가 둘 다 바리새인이라는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바리새인이셨던 우리 아버지를 따르기 때문이지. 안드레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아직 어린 소년이었을 때 일이 기억난다... 어느 날 호수에서 종일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고기를 잡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지. 그리고 맨 마지막 시간이 되어서야 다음 날 먹을 양식을 마련할 만큼 고기를 잡았어. 어머니가 언제나 무릎 꿇고 기도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구나. 우리가 도와주실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했던가!” “아, 물론이지요, 시몬 형님. 저도 아주 잘 기억합니다.”
“시몬아, 이런 일이 기억난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주셨고, 나는 아버지의 백발에 손을 얹고 있었지... 아버지는 말씀하셨어. ‘내 아들 시몬아, 나는 언제나 우리의 구원자 메시아께서 오시는 날을 살아서 보고 싶었단다. 하지만 이제 늙었으니 그분을 뵙지 못할 것 같구나, 시몬아. 그러나 너는 젊은 소년이니, 틀림없이 네 생애에는 그분을 뵐 것이다. 그런데 혼란이 많이 생길 게다. 언제나 그렇단다, 시몬아.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거짓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하지만 시몬아, 이것을 기억해라. 메시아께서 오시면 메시아의 표적을 가지실 것이다. 너는 그 표적으로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 게다.’” 모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신명기의 그 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주께서”—적어 두었다가 읽으시려면 신명기 18장 15절입니다. 그 장의 나머지 부분도 계속 읽으십시오—“주 너희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라. 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든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 ‘기억해라, 시몬아. 힘 있게 말하는 위대한 연설가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위대한 사람들이 일어날 수도 있단다. 그러나 기억해라. 유대인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지자, 메시아이신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것을 안다. 그 까닭은... 이제 사백 년이 되었단다. 말라기 이후로 우리에게 선지자가 없었지.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시면 그분은 하나님이신 선지자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으로 그분을 알아볼 게다. 시몬아, 잊지 마라.’” 이제 시몬이 말합니다. “안드레야, 너는 그분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사람들의 넋을 빼놓을 만큼 사로잡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내게 그분은 선지자여야 해. 메시아는... 네가 광야에 있는 그 사람, 요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사람도 아마 선지자일 수 있겠지. 나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이 메시아는 하나님이신 선지자일 것이다. 그분은 선지자이면서 그 이상일 거야. 선지자보다 더한 분이실 것이다. 선지자이면서 그 이상인 분이지. 언젠가 너와 함께 가 보마.”
그러자 안드레가 나사렛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집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형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아마 다음 날 시몬도 가 보기로 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중에 열쇠들을 받은 사람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신학교나 성경학교를 나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참된 오순절입니다. 아시겠죠?
그가 내려가, 아마 안드레와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을 것입니다. 주위에는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인지 궁금해하며, 주 예수님의 시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제 우리는 메시아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그가 메시아 앞에 들어서자마자, 그분께서 그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오! 그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분은 시몬이 누구인지 아셨을 뿐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이실지를 시몬에게 말해 주었던 경건한 아버지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으로 영원히 결론이 났습니다. 그분이 메시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그렇게 자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신 분이 메시아셨다면, 오늘도 그렇게 자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 메시아십니다. 자기 사람들에게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잠시 뒤에 그것을 다루겠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아마 그 자리에 서 있던 많은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알았습니다. 바로 그런 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그분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시몬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도 아셨고, 두 사람의 이름을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빌립이라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저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친구를 찾아 이 소식을 전하려고 언덕을 돌아, 십오 마일이나 돌아갔습니다.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참으로 보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겐가 말해야 합니다. 그분이 살짝 닿기만 해도 여러분의 혼에 불이 붙습니다. “찾아야겠어... 내게는 나다나엘이라는 친구가 있어. 훌륭한 사람이지. 뛰어난 학자야.” 그는 산을 돌아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마 저녁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자 나다나엘의 아내가 나왔습니다. “어머, 우리 친구 빌립이시군요.” “아, 나다나엘은 어디 있습니까?” “과수원에 산책하러 나갔어요.” 그는 얼른 과수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화과나무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나다나엘을 발견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아마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 주 하나님,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줄곧 기다려 왔습니다. 오 주 하나님, 언제 이루어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신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일어나 이렇게 옷의 먼지를 털고 돌아보니, 바로 빌립이 서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 친구 빌립!” 그런데 빌립은 “어떻게 지내나?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나?” 같은 말을 하기도 전에, 긴급한 소식,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와서 보게.”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났는지 와서 보게.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일세. 그분이 메시아시네. 나는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
나다나엘이 이렇게 말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니, 이보게 빌립! 우리가 함께 얼마나 많이 성경을 공부하고, 얼마나 좋은 가르침들을 받았는지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 둘 다 알고 있잖나... 빌립,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어딘가에 푹 빠져서 정신을 놓은 건가? 자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빌립? 메시아께서 나사렛에서 나오실 수 있다는 말은 내게 하지 말게! 우리는 가야바의 지난번 말씀을 들었잖나. 언젠가 메시아께서 오시면, 아마 비행기처럼 성전의 차양 위로 곧바로 내려오실 거라고 말일세. 우리 조직이 이 나라에서 가장 위대하니, 우리 조직으로 오실 거야. 그분은 바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면 우리는 믿지 않겠네. 상관하지도 않을 거야. 다른 자들과 협력하지도 않겠네. 아니, 그분은 우리에게 오실 거야.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이니까.
그곳에 오셔서 대제사장이며 우리의 주교인 가야바에게 다가가 ‘내가 메시아다. 이제 맡아 다스리러 왔노라.’라고 하실 걸세.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야.” 그런 생각은 사람들에게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일하십니다. 대개는 우리가 이렇게 맞이하겠다고 준비해 둔 방식과는 반대로 일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분은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의 눈에는 자신을 숨기시고, 자신을 낮추어 그분께 배우려는 아기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빨리 살펴봅시다.
그러나 빌립이 확실한 무언가를 가지고 그에게 말하는 것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분께서 하신 몇 마디 말이 아니라, 그분께서 행하신 어떤 일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립니다. “나다나엘, 자네는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이지.” “그렇네.” “메시아께서는 어떤 분이실까?” “메시아께서는 선지자이실 걸세.” “그래, 맞아. 우리의 지도자인 모세가 그렇게 말했지. 선지자가 오실 때까지 우리는 모세의 말씀을 의지했으며, 의지해야 하네. 그 오실 분이 메시아이시고, 메시아의 표적을 보이실 걸세.” “그렇지.” “내가 말하는 이 나사렛 예수님 말일세... 저 아래 사는 시몬이라는 늙은 어부를 기억하나? 자네가 전에 생선을 샀을 때, 영수증에 자기 이름도 쓰지 못했던 사람 말이야.” “아, 알지. 그도 알고, 그의 아버지도 알았네.” “얼마 전 그 사람의 동생이 예수님께서 서 계신 청중 가운데로 그를 데려왔네. 그분께서 돌아보시더니 ‘네 이름은 시몬이요, 너는 요나의 아들이니라. 너는...’ 하고 말씀하셨네. 두 사람을 다 아신 거야.”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고?” “그렇다네.” “누가 그분께 알려 드렸나?” “아무도. 그저 동생 안드레가 시몬을 데리고 올라온 것뿐이네. 한번 와 보게. 자네가 거기 가면 그분께서 자네가 누구인지 말씀하신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겠어.” “글쎄, 그건 모르겠군. 직접 보아야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오랫동안 정통 신앙을 지켜 왔으니, 이 일은 직접 알아봐야겠네.”
그리고 어느새 다음 날 그들이 왔습니다. 기도받는 줄에 들어갔을 수도 있고, 청중 속에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그를 처음 보시자마자 곧장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 말에 나다나엘은 뻣뻣하던 기세가 꺾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마 곁에 서 있던 사람들 중에는... 오늘날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물론이지. 저 사람의 옷차림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동방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옷을 입었습니다. 아랍 사람일 수도 있었고, 그리스 사람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피부가 거무스름하고, 수염을 기르고, 터번을 쓰고, 옷도 똑같이 입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도다!” 그 말에 그는 크게 놀랐습니다. “랍비여, 언제 저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나무 밑에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노라.” 그의 말을 들으십시오. “랍비여,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선생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자신들이 그분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분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우리는 우리 교회들에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우리 조직으로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교인들이... 그 일에 관해 우리 교회에 뭐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무언가를 말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우리 교회에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그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내가 알려 주지요. 저 구석의 작은 목회자 협의회에서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했어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 그것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곧 인자를 대적하여 그렇게 말하면 용서하겠노라. 그러나”—이 말씀을 풀어서 전하자면—“언젠가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일을 하실 것이다. 그 일을 대적하는 한마디 말도 이 세상에서나 오는 세상에서나 결코 용서받지 못하리라.” 이것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그분께서 하셨듯 메시아의 일들을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더러운 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점쟁이처럼 여긴 것입니다. 그들은 “저 사람은 바알세붑이야, 점쟁이야.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있어. 텔레파시, 정신 감응력이 있어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거야. 지금 그렇게 하는 거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그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 눈앞에서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오 하나님! 오늘날 그들의 이름은 불멸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네게 말하였으므로 네가 믿느냐? 그러면 와서 나와 함께 가자.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러나 그가 믿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제 메시아의 표적이었고, 그분께서 오늘도 동일한 메시아시라면, 오늘도 어제와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그분은 자신의 교회에 자신을 알리십니다.
이 땅에는 오직 세 인종이 있습니다. 함과 셈과 야벳의 후손들입니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으로 여겼습니다. 이방인인 우리 앵글로색슨 사람들은 그때 이교도였습니다. 우리는 우상들을 숭배했습니다. 로마인 같은 사람들과 함께, 등에 몽둥이를 메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메시아께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만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일들을 보지 못하는 까닭은 그분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와 교단과 큰 건물들, 얼마나 크게 성장하는지만 바라봅니다. 거기서 눈을 떼십시오. 메시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와 있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제 몇 장을 넘겨 요한복음 4장으로 가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리고로 가고 계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가 본 분은 아시겠지만, 여리고는 예루살렘 아래쪽에 있습니다. 그분은 그곳으로 가는 길이셨습니다. 그런데 산 위의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한복음 5장 19절을 읽으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은 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일을 할 뿐이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보십시오. 그분은 선지자셨습니다. 그분의 선지자로서의 면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보다 더한 분이십니다. 제가 그분이 선지자이심을 부인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인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 플로렌스 자매님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 이곳에서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내려오셨네”를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찬송을 좋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고한 신성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단지 선지자로만 만들려 하는 이런 시대에도, 그분은 하나님이신 선지자셨습니다. 선지자보다 더한 분이셨습니다.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는 표적은 선지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그곳에 서 계신 모습을 봅니다. 그다음 사마리아로 올라가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곳에 올라가셨을 때는 열한 시나 열두 시쯤이었습니다. 먹을거리, 음식을 사 오도록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그분은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아마 한 폭의 전경 같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여기 뒤에 있는 이 아름다운 그림과도 같이,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사마리아에 가 보셨다면, 아직 남아 있는 그 도시의 공동 우물을 보십시오. 지금도 있습니다. 낮 열한 시쯤이었습니다. 한 여자가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오늘날의 어떤 여자들처럼 아름다웠다고 생각해 봅시다. 다만 조금은 달랐습니다. 그 여자는... 그렇지요! 그 여자를 생각하다가... 머리가 길었다고 말하려고 했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던 그 여자가 생각났습니다. 오늘날이라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발을 닦을 만큼 머리카락이 아래로 닿으려면 물구나무를 서야 할 것입니다. 머리카락을 다 잘라 버렸으니까요. 성경은 머리카락이 여자의 영광이라고 말하는데, 그녀는 자기 영광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위쪽 할리우드에 있는, 자기가 더 높이 여기는 누군가를 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저를 광신자라고 부를 것입니다. 원하시면 괴짜라고 부르십시오. 그러나 심판 날에는 이것이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죽어 가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근심하시며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우리의 행실이 그분을 근심하게 하여 떠나시게 했습니다. 그분과 뜻을 달리하며 그분께 무관심했던 것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아프게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깨우러 왔습니다. 하나님, 긍휼을 베푸소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머물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전하게 하옵소서. 사역자들이 돈을 모으려고 타협하고, 큰 텔레비전 방송 조직과 그런 것들을 운영하려고 사람들과 타협하는 것을 보십시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배를 땅에 대고 엎드려 개울물을 마시고 소다 크래커를 먹으면서 진리를 전하겠습니다. 심판 날 교회 앞에 서서 그들과 함께 정죄받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습니다. 우리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 보물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제 보물은 천국에 있으며, 제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과 그분의 교회에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아내나 사역자의 아내나 전도자의 아내를 본보기로 삼지 마십시오. 성경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로 맞추려고 합니다. 어떤 여자가 특정한 옷을 입고 교회에 오거나 어떤 머리 모양을 하면, 모든 여자가 똑같이 하고 싶어 합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그런 일이 있습니다. 저는 웃옷이 바지와 어울리는지, 넥타이가 셔츠와 어울리는지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제 체험이 하나님의 성경과 맞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맞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는, 그런 일치를 이루는 부흥입니다. [녹음 공백] 그때에는 여기 로스앤젤레스와 이 주변에서 그러듯 서로 섞일 수 없었습니다. 함께 섞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습니다.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그 시절에는 달랐습니다. 행실이 나쁜 여자는 나쁘다고 표시가 났습니다. 그런 여자들끼리 지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달걀을 가져다가 한가운데를 쿡쿡 찌르는 것과 같습니다. 전부 노랗게 되어 버립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여기서 읽었는데, 전국의 속담... 아니, 성도착자들, 로스앤젤레스의 실태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오, 끔찍합니다! 이곳은 작년보다 약 삼십 퍼센트나 늘었습니다. 소돔입니다. 오, 하나님께서 이곳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시고, 어디엔가 부흥을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순절 교회가 다시 제정신을 차리도록 흔들어 깨우는 부흥,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를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청중에게 불을 뿜듯 외치는 부흥 말입니다. 앉아서 자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그들이 그럴 것이라고 했으니 그렇겠지요. 자,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 여자가 나옵니다. 그 여자는... 아마 그 시간에 나온 것이었겠지요. 밤새 밖에 있다가 그때까지 잠을 잤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물 항아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작은 갈고리로 밑에 줄을 걸고, 물을 길으려고 도르래를 이용해 내려보냈습니다. 물을 거의 다 끌어 올렸을 때,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가져다 다오.” 그 여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이 메시아의 표적을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여기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자여, 마실 물을 가져다 다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보고 말했습니다. “글쎄요”—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이곳에서는 민족에 따라 서로 갈라져 지냅니다. 유대인이신 당신이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그분은 아마 그곳에 앉아 계셨을 것입니다. 겨우 서른 몇 살이셨지만, 성경은 요한복음 6장에서 쉰 살처럼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마 일 때문에 몸이 많이 쇠하셨을 것입니다. 머리가 좀 희어지셨거나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그곳에 앉아 계시고 여자가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벽 옆에 기대앉아 있었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리 사마리아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관례에 맞지 않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지금 누구와 말하고 있는지 알았더라면, 내게 마실 것을 구하였을 것이니라.”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이제 이 점은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 여자의 영과 접촉하려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모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마리아를 거쳐 가셔야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올라가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 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여자는 그분과 이야기하며 말했습니다. “우물은 깊고, 선생님께는 물 길을 그릇도 없습니다.” 또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그런 여러 말을 했습니다—“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하려 하고 계셨습니까? 그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하셨습니다. 이제 잘 들으십시오. 그 여자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메시아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자기 사람들에게,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알리려 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셨으니,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똑같이 하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자기 사람들을 같은... 방식으로 부르셔야 합니다. 어젯밤 제가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특정한 방식으로 하기로 한 번 결정하셨다면, 그 일을 하실 때마다 같은 방식으로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처음 행하셨을 때 실수하신 것이 됩니다. 한 사람에게는 옥수수빵 한 조각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케이크 한 조각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똑같습니다. 정확히 같습니다. 보십시오. 그분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시며,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마리아... 그러면 사마리아인에게는 어떻게 자신을 알리시겠습니까? 그분과 그 여자 사이에 이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잠시 그 여자를 바라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을 그곳으로 보내셨기에,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여기로 오라.”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니라. 네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잘 말하였도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곱슬머리가 어깨 위로 흘러내리고, 커다란 갈색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저 창녀와 그 설교자들은 얼마나 달랐습니까! 그 여자가 그들 절반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보니 선생님은 대언자시니이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께서 오시면 바로 그런 표적을 행하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그분의 선지자이신가 봅니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줄을 압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오!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그니라.” 여자는 알아보았습니다. 오시리라고 배워 온 바로 그 메시아셨습니다. 그분께서 선지자, 하나님이신 선지자이실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물 항아리를 떨어뜨렸습니다. 아니, 내려놓고 도시로 달려갔습니다. 여자의 메시지를 보십시오. 도시에 달려가 말했습니다. “내가 한 일들을 내게 말해 준 사람을 와서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메시아의 표적이 아닙니까? 이분이 바로 메시아가 아닙니까? 그분께서 오시면 이런 일을 하시리라고 우리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분을 메시아로 믿었다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여자가 한 일들을 말해 주셨다는, 그 여자의 간증 때문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까? 요한복음 4장입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니 서둘러 기도받을 줄을 세워야겠습니다. 여러분을 너무 오래 붙들어 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알기로는, 일요일 밤까지는 이것이 마지막 치유 집회가 될 것입니다. 잠깐만요. 이 못이 단단히 박히도록, 여기서 망치질을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자,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리셨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이신 선지자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맞습니까? 모두 동의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자기 사람들입니다. 자기 사람들 말입니다. 다른 유대인들, 그저 일반적인 유대인들—DDD, PhD, LLD 같은 학위를 갖고 서 있던 그 고상한 사역자들과 성직자들, 말하자면 옷깃을 뒤로 돌려 입고 터번을 쓴 채 그런 모습으로 서 있던 이들—은 말했습니다. “정신 감응술이야. 그러지 마시오... 저 사람의 부류를 보시오. 어디서 왔는지 보시오. 애당초 무엇 하는 사람이오? 어느 학교를 나왔소? 이런 것을 어디서 배웠소? 우리 신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조차 없으니, 옳을 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소. 하나님의 성회에도 속하지 않고, 일신교에도 속하지 않소. 하나님의 교회, 침례교, 장로교, 가톨릭에도 속하지 않소. 우리 학교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소.”
제가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제게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저 산속에서 아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옥수수빵을 먹고, 베이컨 껍질에서 기름을 짜내야 했습니다. 옥수수를 구해 가루를 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에는 목욕을 하고 피마자기름을 한 번씩 먹어야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을 준비하고, 다시 학교에 가려고 그랬습니다. 먹는 것이 너무 부실해서 펠라그라 같은 온갖 병에 걸리곤 했습니다. 순무 잎, 검은눈콩, 옥수수빵, 수수 당밀, 대체로 그런 것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피마자기름을 먹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먹으려다가 “아, 엄마! 제발, 제발요. 이걸 먹으면 속이 너무 메스꺼워요.”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속이 메스껍지 않으면 약효도 없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여러분의 영적인 소화기관 어딘가를 뒤흔들어, 속이 제대로 메스꺼워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경을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류가 없는 말씀입니다. 메시아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아멘. 그분은 자기 말씀을 지키십니다. 아멘. 제 말에 제가 “아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그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를 보십시오. 사마리아 사람은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이방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을 빼놓고 계시잖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분께서 이방인 앞에서 그 표적을 행하신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찾아서 제게 보여 주십시오.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그분은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아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오, 제발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십시오. 오늘날에도 바로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왜 그런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보십시오. 그러나 그분은 떠나시기 전에 이방인 시대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를 믿을 시간이 사천 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에게도, 저 옛날 모세 때 그들이 모압 여자들과 결혼하고 갈라져 나와 혼혈이 되었던 때부터... 그 모든 세월 동안 메시아를 기다릴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입니다. 저와 함께 말해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 그분은 자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많은 유대인은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창건 때부터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 있던 사람들은...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마지막 날의 적그리스도가 종교 조직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번 주에, 아니면 다음번에 그것을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적그리스도임을 입증하겠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땅에 거하는 모든 자, 곧 세상의 창건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속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과거시제입니다—“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니라.”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혈통이나 인종 때문이 아닙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아느니라.” 이제 보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이 칼뱅주의라고 말합니다. 저는 칼뱅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구원의 안전함이 교회에 주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다면 교회와 함께 안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교회 안에 있습니까? 다음 문제는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안에 있다고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여러분을 그 안에 넣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보십시오. 그 주제는 그만두고 사마리아 여자로 돌아갑시다. 그분께서 그곳에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그 표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시기 전, 누가복음에서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자, 우리가... 먼저 노아의 때를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에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에서는... 이제 살펴봅시다.
언제나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살펴보십시오. 소돔은, 세상이 물로 멸망했던 노아의 때에 있던 세 부류의 사람들을 정확히 보여 주었습니다. 소돔에서는 불로 멸망했습니다. 맞습니까? 보십시오. 세 부류의 사람들과 세 사자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사람들”을 나타냈습니다. 다시 말해 보십시오. “자기 사람들.” 아브라함과 그의 무리는 소돔 밖에 있었습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불러낸 자들”, 구별된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롯은 자기 조직들과 함께하기로 선택하여 그곳으로 내려가 그 도시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온갖 사교 모임에 속해 있었으며, 할리우드식으로 차려입고 그랬습니다.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지금도 소금기둥으로 서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 여자는 할리우드 사람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남편과 함께하기로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약속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 저 밖 척박한 땅에서 살았습니다. 얼마나 다릅니까.
상황이 어려웠을 때, 크고 화려하고 좋은 일들이 아니라 어려운 일들이 닥쳤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가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정오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옷에 먼지를 잔뜩 묻힌 세 남자가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 두 성경 말씀을 붙들고 계십시오. 옷에 먼지를 잔뜩 묻힌 그들을 보고 아브라함이 다가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적인 사람이었으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러냄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재빨리 알아보았습니다. 저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맞으러 나가 말했습니다. “이리 오셔서 나무 밑에 앉으십시오. 잠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물을 조금 가져다가 발을 씻겨 드리고, 빵 한 조각을 대접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길을 가시면 됩니다. 앉으십시오. 그러려고 이 길로 오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대접하도록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길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은 “그러면,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가서 앉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안으로 들어가, 저 안쪽 장막에 있는 사라에게 말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라, 가루를 좀 반죽하시오. 체를 가져다가 여기 곡식 가루 같은 것을 좀 치고, 화덕에 빵을 구우시오.” 그러고는 나가서 작은 살진 송아지 한 마리를 찾아 잡은 뒤, 종에게 주며 “손질하라.”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모두 마련하여 그분 앞에 내놓고 앉았습니다. 이제 보십시오. 소돔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불타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수소폭탄과 원자폭탄과 스푸트니크와 그 밖의 온갖 것들이 여러분 주위로 날아다니고 있으니, 믿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일이 다가오고 있으니 믿는 것이 좋습니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천사들 셋이 잠시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소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뒤에... 기억하십시오. 그들 중 둘은 소돔으로 내려갔습니다. 몇 분이나 아십니까? 둘이 소돔으로 내려가 설교했습니다. 오,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 같은 사람이 소돔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곳에는... 롯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지근한 신자, 경계선에 머문 신자, 교단에 속한 형제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돔에 있었습니다. 그의 회중은 모두 세속적이었고 온갖 것이 그랬습니다. 그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의 빌리 그레이엄 같은 이를 보내 그들에게 설교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 외에는 기적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불신자의 눈이 멀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롯이 눈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아니, 눈멀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표적을 행했는지 보십시오. 참된 불신자의 눈이 멀어지도록 복음을 전했고, 불이 내리기 전에 롯을 불러냈습니다. 맞습니까?
뒤에 남아 있던 이분을 보십시오. 교회, 곧 자기 사람들에게 어떤 표적을 주셨습니까? 뒤에 남아 있던 분은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문자로 L-o-r-d입니다. 아브라함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과 말하고 있었던 사람이니까요. 하나님이셨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역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오, 형제님은 그분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아직 모르신 것뿐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열여섯 가지 원소입니다. 칼슘, 칼륨, 석유, 우주의 빛... 그분은 그것을 한 움큼 집어 이렇게 하셨습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입으로 부는 소리를 낸다.) “후! 가브리엘아, 이리 와서 이 안으로 들어가라.” 보십시오. “후!” 또 다른 천사를 위해 이쪽에 하나를 불어 만드셨습니다. “후!”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대로 내려와 송아지 고기를 드시고, 소의 젖을 마시고, 옥수수빵을 드신 다음 아브라함 앞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제가 재 한 숟가락도 남지 않을 수 있고,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말씀하시면—할렐루야!—저는 나올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를 아신다는 것이 기쁘며, 저도 그분을 안다는 것이 기쁩니다. 그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곳에 계셨습니다. 무엇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까? 마지막 날 육체 안에 거하실 그분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잘 보십시오. 우리는... 그분께서 자기 사람들에게 어떤 표적을 주셨는지 봅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가 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등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그가 아브라함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무엇입니까?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이라는 것, 그가 결혼하여 아내가 있다는 것, 그 아내의 이름이 사라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놀랐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다고 분명하게 기록합니다. “당신 뒤의 장막에 있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오늘날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뛰어나와 남편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거나, 온갖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정치에서 투표하여 최근에 당선시킨 것 같은 사람들을 세우거나,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때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잘 알았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자기 주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신 뒤의 장막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 뒤의 장막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들으십시오!—“내가”—오, 주여! 다시 그 인칭대명사 ‘나’입니다—“내가 이십오 년 전 처음 네게 약속한 대로, 생명의 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겠노라.”
여기 옥수수빵과 송아지 고기를 먹고 소의 젖을 마시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빵에 버터도 좀 발랐을 것입니다. 그곳에 앉아 먹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약속하였고, 내가 그것을 행하겠노라.” 아멘. 아브라함은 그분을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에 앉아 계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때를 따라 너를 찾아오겠노라...” 장막 안에 있던 사라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백 살 가까이 된 늙은 여자인 내가, 내 주와 다시 그런 즐거움을 누린다고? 그럴 수는 없어.” 그곳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사라가 웃었느냐?” 오! 그것은 무슨 텔레파시입니까? 무슨... 여자는 그분 뒤의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그 여자가 웃었느냐?”
이제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소돔의 날들에 그러했던 것같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 곧 자신의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같은 표적을 행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그것을 받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자,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까? 그분께서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아니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는지,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는 그것을 약속하셨는지 보셨습니까? 이천 년 동안은 그것이 교회 안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녁때에 빛이 있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밤이라고도 낮이라고도 할 수 없는 한 날이 있으리라. 그러나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들으십시오. 제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번 주 어느 날 “동양과 서양이 만날 때”에 관해 설교하려 합니다. 교육을 조금이라도 받은 사람이라면 문명이 해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왔다는 것을 압니다. 몇 분이나 아십니까? 물론 아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가장 오래된 문명은 중국이며, 거기서부터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문명은 해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동방 사람들에게는... 동쪽 지평선에서 해, 곧 s-u-n이 떠서 서쪽, 서방 사람들에게 집니다. s-u-n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s-o-n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해, s-u-n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s-o-n은 먼저 동방 사람들인 유대인들에게 오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리스인들과 같은 사람들... 동방으로 오셨습니다.
이제 이천 년 동안 어둑한 때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조직을 만들고, 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지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했습니다. 그분은 “교회를 지으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조직을 만들라.”라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라.”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것들의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 “저녁때에 그것이 빛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방에 비추었던 그 해가 서방에도 비칩니다. 그곳에서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려고 행하셨던 똑같은 메시아의 표적들이 서방에 비칩니다. 우리는 서부 해안에 있습니다. 바다에서 거의 오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쪽으로 더 가면 어디로 갑니까? 다시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서부 해안에 죄가 쌓여 넘치는 것입니다. 끔찍하고 사악합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프랑스에서 옷본을 들여왔습니다. 이제는 프랑스가 이곳 여자들의 유행을 가져가려고 사람을 보냅니다.
우리 오순절 여자 여러분,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오순절 남자 여러분, 담배를 피우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아내를 서넛씩 맞으면서도 교회 집사를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 많은 혼에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용하는 감리교, 침례교, 하나님의 성회, 하나님의 교회 조직들, 여러분도 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여자들만 나무라시는군요.”라고 합니다. 자기 아내가 짧은 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게 내버려 두는 남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브래넘 형제님, 너무 잔인하십니다.”라고 말씀하겠지요. 아닙니다. 저는 잔인하게 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스스로를 흔들어 깨우고 정신을 차리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저녁때에 빛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분께서 봐주며 말씀하셨습니까? 어느 선지자가 봐주며 말한 적이 있습니까? 그는 자기 피로 자기 간증에 인을 쳤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하려고, 돈을 모으려고, 혹은 거창한 교육 사업을 하려고 할 말을 누그러뜨리지 않습니다. 진리를 말할 것입니다.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진리를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날에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미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또 다른 날에는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이 진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오순절 교회의 행실을 뒷받침하는 구절은 성경에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도 없습니다. 성경과 정반대입니다. 침례교인과 감리교인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휴! 강한 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바로잡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저 심판대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들과 그 밖의 사람들은 설거지물보다도 더 맥없이 약해졌습니다. 교회가 말씀을 전하는 강단이 아니라 밥벌이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아파하든지 서서 진리를 말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집사들과 이사들과 그 밖의 모든 사람이 떠나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정직하십시오. 하나님 편에 서서 그분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확증하실 것입니다. 한 번 영점이 맞았으니 다시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거기에 영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고 저쪽에 맞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겨누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총알은 곧게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 성경 안으로 들어가 똑바로 쏘아야 합니다. 아멘.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성경은 그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말합니다. 성령님과 이곳 교회에 십오 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제가 아프게 했다면, 용서... 아니요,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그저 집에 가서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제 뜻은... 때로는 칼로 베는 듯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 제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진리를 말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실 것입니다. 이제 제가 진리를 말했는지 아닌지 알아봅시다. 아버지께 이 자리에 나와 주시기를 구합시다. 그것이 진리라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뒷받침해 주시기를 구합시다. 진리가 아니라면 뒷받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진리라면 뒷받침하실 것입니다. 그분을 뵙고 싶어 하는 여러분, 그분께서 오늘 밤 이 교회에 오셔서 바로 그 똑같은 일을 하신다면, 제게 아무리 기름을 부으시더라도 여러분에게도 기름을 부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고향으로 가셨지만, 그들의 불신 때문에 능력 있는 일들을 많이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는 사람을 만나셨을 때는, 한 여자가 그분의 옷단을 만지고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까? 그분이 어떤 옷을 입으셨고 어떻게 생기셨든, 이 생명이 그분 안에, 곧 사람들 안에 있다면 그분께서 하셨던 똑같은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날을 위한 메시아의 표적입니까? 몇 분이나 잘 이해하셨습니까? 손을 들고 “이해합니다. 믿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기도합시다.
긍휼이 풍성하신 아버지, 오, 제가 왜 그런 말을 해야 합니까? 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제게 옷을 입혀 주며, 제가 전국을 다닐 여비를 내 주는 사람들에게, 그런데도... 하나님, 그들이 이해하게 하옵소서. 주님, 저는 그저 그들을 흔들어 깨우려 할 뿐입니다. 교회를 다시 옛길로 돌려놓으려 합니다. 그들이 이해하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그들에게 알려 주시옵소서. 잔인하게 하려는 것도, 냉담하게 대하려는 것도 아니라, 주님, 진실하기 위해서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진리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오늘 밤 우리를 위해 주님의 진리를 뒷받침해 주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제가 그들에게 강하게 선포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 성령께서 오셔서 여기 모인 이 작은 무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그리고 그들이 알게 하옵소서. 이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 녹음되고 있습니다. 이 테이프는 온 세계로 갈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아주 많은 언어로 번역될 것이며, 어디서나 사람들이 들을 것입니다. 주님, 그러니 저는 제 말을 신중히 달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되며,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저는 다만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성경이 말씀하듯 주님께서 지금 우리의 신앙 고백의 대제사장이심을 고백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주님의 말씀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말씀하셔서 이 메시지를 전하신 분이 주님의 종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사람들이 알게 하옵소서. 주님, 허락하옵소서. 이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저는 더는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한마디 말씀은 어떤 설교자가 백만 년 동안 설교하는 것보다 더 클 것입니다. 단 한마디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있음을 알며,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이제 약속하신 대로,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그들에게 진리를 말했음을 알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메시아이시며, 여기 사진에 찍힌 이 큰 불기둥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독일에서도, 스위스에서도, 전국 곳곳에서도 그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갔던 바로 그 불기둥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불기둥은 한 몸, 곧 하나님의 아들 안에 거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신 뒤,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느 날 타르수스의 사울이 사람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는데, 똑같은 그 커다란 불기둥이 그를 쳐서 쓰러뜨렸습니다. 그 빛이 그의 눈을 멀게 하여, 한동안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그 불기둥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라.” 주님, 이제 과학계는 그 사진을 찍은 뒤, 그것이 같은 불기둥임을 압니다. 단지... 경이롭기만 한 신비로운 빛이 아니라, 전국에서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빛입니다. 그것이 같은 영이라면, 사람들이 같은 상태에 이를 때 같은 일을 행할 것입니다. 주님, 오늘 밤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저와 이 교회와 이 형제들이... 주님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입증하실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 밤 우리가 떠날 때에는... 엠마오에서 오던 사람들처럼,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하셨던 일들을 지금 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천 년이 지난 오늘 밤, 주님 자신을 나타내 주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 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서 자신을 알리실 때 우리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주님, 저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다시 기도와 금식으로 돌아오리라고 믿습니다. 이 작은 교회가 자라고, 그 안에 하나님의 권능과 예언들과 큰 표적들과 이적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자들과 남자들이 삶을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걸을 것입니다. 오 주님, 온 나라에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임하겠습니까. 그들에게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주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주님, 주님의 교회를 강하게 하옵소서. 오 하나님! 주님의 백성을 부르소서. 이 마지막 날의 혼란 속에서 그들을 끌어내 주옵소서. 허락하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를 때, 주님께서 그 기도 줄 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아멘.
이제 저희에게 잠깐만 시간을 내어 주시면 [녹음 공백]. 여러분은 이것이 실패하는 것을 언제 보셨습니까?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세우셨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여러분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만큼이나 실제적입니다. 제가 오늘 밤 이 단 위에 서 있다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나와 일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시면, 다시 오시는 분이 동일한 메시아이심을 보여 줄 것입니다. 누구에게 오십니까? 밖에 있는 큰 조직들과 그런 곳이 아니라, 선택받은 자들에게, 교회에 오십니다. 제 말뜻을 아시겠습니까? 자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왜 대규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 선택받고 불러냄을 받은 자들에게 보내셨습니다. 화려하게 꾸민... 쪽이 아니라... 예수님께는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쇼맨이 아니셨습니다.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저 강가의 무리에게서 떠나시지 그래요? 그저 광신도 같은 무리와 어울리고 계시잖습니까. 여기 올라와 가야바에게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그분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고 조용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자신을 거절했던 유대인들 앞에서, 자기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이고 믿었던 사람들은 영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불멸하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이 아닙니다. 그저 여러분의 형제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형제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분을 나타내는 은사를 가지고, 제 형제들과 이곳 여러분과 함께 있도록 이곳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에 성경을 따라가며, 성경 구절 하나하나로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여러분께 오류 없는 증거로 입증할 시간이 있다면... 이때가 여러분을 지나쳐 가게 두지 마십시오.
여기 한 젊은 여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플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나 가정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일이 바로 여기 완벽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오늘 밤 여기 작은 장면이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처음 만났습니다. 이분은 방금 저를 모른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저도 여기 손을 듭니다. 저는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분도 제가 낯선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 우리가 이렇게 서 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분께서 이 자리에 나타나시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드린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이 하실 것입니다. 맞습니까? 그분께서는 무엇을 하실 수 있습니까? 제게 기름을 부으시고, 이분에게 기름을 부으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 안에 무언가가 말하기 전에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고, 이분도 저를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이분에 관해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주머니, 몸이 아프십니까?”라고 묻고, 이분이 “네, 브래넘 씨. 아픕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 영광! 할렐루야!” 하고 손을 잡아 흔들며, “하나님께 영광! 받으십시오. 할렐루야. 가십시오. 나으셨습니다.”라고 한다면요. 그렇게 해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을 것입니다. 이분이 믿으면 나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한번은 저 아래에서 찰리 풀러, 풀러 형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은사들을 믿으며, 이 위대한 신유의 은사들도 믿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것들은 신유의 은사이지만, 그것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심판대에서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 점에서 그분이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이용될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 여러분이 행하는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분과 처음 만났습니다. 누가... 이분이 손에 기도 카드를 들고 있습니다. 누가 좀 받아 주십시오. 아, 그게 아니군요... 알겠습니다. 다른 것이군요. 저는 기도 카드인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다른 사람의 카드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면... 자, 제가 여러분께 성경을 그려 보여 드렸습니다, 오순절 교회 여러분. 여기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과, 어제의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그려 보여 드렸습니다. 그분께서는 이 마지막 날, 소돔에서 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육체로 내려오셔서 같은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돌아오셔서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그대로 행하신다면, 오늘 밤 이 건물 안에 계신 메시아로 그분을 믿겠습니까? 손을 드십시오. 여러분은 “그분께서 같은 일을 하시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한 사례로 결론이 나야 합니다. 마음이 정직하다면 그것으로 결론이 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맹세하며 서 있습니다.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이 행한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신다면, 이분은 제가 그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또는 이분이 하려고 계획하는 일, 제가 전혀 모르는 일이나, 이분에 관한 어떤 것—문제가 무엇인지, 질병이 무엇인지, 어떤 고통을 겪는지,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알려 주신다면, 그분께서 하신 일이라고 믿겠습니까? 그것은 어떤 능력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그분의 권능이라고 믿으면, 그분의 복을 받습니다. 다른 능력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일입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성경에서 하신 것과 똑같은 방식, 그분과 그 여자가 서서 이야기했던 방식대로 하신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믿으시겠습니까? 교회 여러분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실 차례입니다. 아시겠죠?
오늘 밤 이곳에는 아마 삼사백 명, 아무튼 삼백 명이 앉아 있습니다. 좋습니다. 보십시오. 삼백 명 앞에서... 저는 인도 봄베이에서 사오십만 명이 모인 것을 보았습니다. 남아프리카 더반에서는 이십칠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이분의 과거를 말씀하실 수 있다면, 틀림없이 믿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분은 알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진실인지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께서 과거에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셨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관한 말씀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을 말씀해 주신다면 쉽게 믿을 수 있겠지요? 좋습니다. 이제, 젊은 자매님... 저는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저보다 훨씬 젊습니다. 태어난 해도 여러 해 차이가 나고, 아마 태어난 곳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지금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다만 이분의 영을 감지하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물가의 여자에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제 이분이 믿는 분임을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어떤 피부병 때문에 기도받고 싶어 하십니다. 맞으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믿으십니까?
제가 계속... 집회 때마다 그것을 느낍니다. 누군가 “짐작해서 맞힌 거야.”라고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생각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짐작해서 맞히지 않았습니다. 알아보십시오. 이분은 하나님의 영과 잘 연결되어 있는 듯합니다. 저는 방금 이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하셨습니다. 저기 녹음기에 담겨 있습니다. 되돌려 재생하면 무슨 말이었는지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릅니다. 다만 저를 그분의 선지자, 또는 그분의 종이라고 믿으신다면... ‘선지자’라는 명칭 때문에 사람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시기만 한다면... 그렇습니다. 피부병입니다. 그것이 제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두통을 겪고 계십니다. 아주 심한 두통입니다. 그리고 아이 둘이 보입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받기를 원하십니다. 큰아이는 신경에 문제가 있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작은아이는 엉덩이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 고통받고 있습니다. 엉덩이에 종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이 누구인지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이제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이분을 모른다는 것을 아시지요. 그러나 보먼 부인, 집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으십시오. 자매님,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습니까?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제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저보다 조금 연세가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납니다. 저는 이분을 모르고, 이분도 저를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이제 아주 조용히 해 주십시오. 아무도 돌아다니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영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이라는 말입니다. 아십니까? 이것은 제 손입니다. 어젯밤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제 손, 이것은 제 손가락, 이것은 제 귀, 이것은 제 코, 제 눈입니다. 그런데 ‘나’는 누구입니까? 보십시오. 이것들은 제게 속한 것들입니다. 저는 그 영입니다. 이분은 다른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분이 대신 오신 그 사람은 아주 위중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 있습니다. 암입니다. 그 사람은 여기에 없습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습니다. 가서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나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네가 믿은 대로 그렇게 네게 이루어질지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습니까? 저기 의자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는 어떻습니까? 방금 무언가가... 그 자리에서 마음을 뜨겁게 했지요? 여기 앉아 계신, 외투를 놓아두고... 손을 든 채 저를 이렇게 바라보시는 아주머니 말입니다. 네, 바로 이 끝에 계신 분입니다. 고혈압이 떠나고 괜찮아지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대로 나아가십시오. 나으실 수 있습니다. 저분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저에게서 삼십 피트나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시는 대제사장을 만진 것입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선생님,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선생님도 아마 제 이름만 아시거나, 어디선가 집회에 앉아 저를 보셨을 뿐,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서로 아는 사이로서는, 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선생님에 관한 어떤 일을 제게 계시해 주시고, 그것이 제가 모르는 일임을 선생님이 아신다면, 그분을 메시아로 믿으시겠습니까? 제가 아니라, 저를 통해 일하시는 그분 말입니다. 이 은사는 그저 제 자신을 그분의 영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비켜서면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 선생님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선생님은 아실 것입니다.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정맥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맥류입니다. 정확히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여자가 보입니다. 이분이 기도하고 있는 어떤 사람입니다. 이분의 누이입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태이며, 이분은 누이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이러하시다”입니다. 사실이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신 것을 가서 받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 제가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빛이 멈춘 곳은 보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이분은 수술을 앞두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습니까? 서로 다른 세 곳에 혹이 세 개 있습니다. 제가 그 위치를 설명해 드리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는 목에 있고, 하나는 여성의 샘에 있으며, 또 하나는 오른팔 아래에 있습니다. 매킨토시 부인, 그것이 이분의 이름입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믿습니까?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바로 그분입니다. 그 느낌이 그분입니다. 그 복을 느끼는 오순절 교회가... 이것이 그것을 확증해 주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같은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분들을 모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십니다. 저는 이 사람들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네가 만일 믿을 수 있거든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저기 한 여자가 손수건을 들고 있습니다. 그 빛이 아직 그 여자 위에 있습니다. 방금 단 위에 있었던 그분입니까? 손수건을 들고 계십니다. 여기 올라오셨던 분입니까? 아니요. 바로 뒤에 있습니다. 그분 바로 뒤, 끝자리에 앉아 있는 관절염이 있는 아주머니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자매님. 아멘.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관절염이 떠날 것을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관절염이 있었으면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그곳에 앉아 믿고 계셨군요. 그 여자는 기름부음을 받은 채로 온 것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분을 고치십니다. 저분은 무엇을 만졌습니까?
저는 이분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납니다. 맞으면 저와 함께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오, 사람들이... 여러분이 믿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서부 해안에 부흥이 일어나 온 세계를 휩쓸 것입니다. 제가 보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호의를 얻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이 진리임을 입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 바로 이 교회에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제 손을 보십시오. 땀을 보십시오. 이것이 사람을 약하게 한다는 것을 몇 분이나 아십니까? 한 여자가 그분의 옷을 만졌을 때, 그분께서는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저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다니엘은 환상을 한 번 보고도 여러 날 동안 머리가 괴로웠습니다. 아시겠죠? 그저 믿으십시오.
이 남자와 저는 둘 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이며 서로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십니다. 선생님에 관한 어떤 일을 그분께서 제게 계시해 주시고, 제가 그 일을 모른다는 것을 선생님이 아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여 선생님이... 하시겠습니까? 기도받을 줄에 계신 분들을 비롯하여 나머지 여러분도 온 마음으로 믿으시겠습니까? 여기 성경이 놓여 있고, 이분과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손을 들고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분이나 아십니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 달린 검보다 더 예리하다고 말하는 것을 몇 분이나 아십니까? 또한 말씀은 마음의 생각, 마음과 생각 속의 의도와 생각들을 분별하는 분이십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셨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리고 여기서 말씀이 우리의 육체 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여러분, 부디 이것을 놓치지 마십시오. 부디, 부디 믿으십시오.
선생님, 이것은 단지 은사입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서 힘을 빼고 선생님의 영을 감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사람들이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핀란드에서, 제 평생 서너 곳에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영이 저를 떠나 그 영역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그 영을 붙잡아 다시 그 사람에게로 데려올 때까지 나가게 하셨습니다. 사실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실임을 아십니다. 이제 그것이 선생님에게 있고, 선생님에게는 여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권한이 있으므로, 선생님이 행동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시며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보여 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노라.” 그러면 “제가 나았는지, 아니면 무엇인지... 그분께서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겠지요. 그분은 이분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게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분의 믿음이... 저는 이분을 구원할 수도, 고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그 말씀을 기록하신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려고 지금 여기 계십니다. 자, 그렇습니다. 이분은 많이 아프며, 내일 결핵 때문에 병원에 가실 예정입니다. 맞습니다. 저를 그분의 선지자, 또는 그분의 종이라고 믿습니까? 믿으십니까? 이제 나아서 집에 돌아오리라고 믿습니까? 괜찮아질 것이라고요? 믿습니까? 제가 이분이 누구인지 말씀드리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월터 카이저 씨, 가셔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저기 회색 양복을 입고 앉아 계신 선생님, 이분도 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으실 수 있다면... 네, 그렇습니다. 폐에 문제가 있으셨습니다. 저분이 앓던 병에서 나으시자마자, 그 빛이 선생님 위로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분도 어떤 종류의 폐 질환이 있었지요. 그 빛이 선생님 위로 갔습니다. 선생님의 믿음이 그 일을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선생님의 믿음이 선생님을 온전하게 합니다. 이 여자 바로 뒤에 앉아, 지금 이 사이로 저를 바라보고 계신 또 한 분도 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암이며, 척추에도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머리가 희끗한 자그마한 아주머니입니다. 사실이면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저는 이분과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맞으면 손을 흔들어 주십시오. 그것이 이분의 문제였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권위를 행사하겠습니다. 이것이 진리임을 믿습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마귀를 정죄합니다. 가서 나으십시오.
그 심장병이 떠나고, 나아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믿습니까?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그러면 가서 온 마음으로 믿고 나으십시오. 오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식이 떠나고 집으로 돌아가 기침을 멈출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러면 가서 온 마음으로 믿고 나으십시오. 오십시오, 자매님. 왜 그렇게 신경이 예민합니까? 오랫동안 신경이 예민하셨습니다. 좋습니다. 나으셨습니다. 이제 가서 온 마음으로 믿고 나으십시오. 좋습니다, 선생님. 그것 때문에 몸에 발진이 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아주머니, 오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허리병이 나았습니다. 가서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신경성 심장병입니다. 그분께서 그것을 고치신다고 믿습니까? 가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나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아주머니, 여기 저를 보십시오. 저를 그분의 선지자라고 믿습니까? 이분이 앓는 여성 질환, 부인병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서 나으십시오.
잠깐만요. 무언가가 청중 쪽으로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 뒤에 앉은 한 남자가 허리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선생님, 믿습니까? 좋습니다. 치유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저 남자 뒤에 앉은 여자에게는 당뇨병이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일어서십시오. 안경을 쓴, 머리가 희끗한 자그마한 아주머니입니다. 무언가를 만지셨지요? 일어나 나으십시오. 집에 가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믿음을 가지십시오.
제가 이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만 얹어 드린다면,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으시겠습니까? 이리 오십시오. 손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이제 오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 드리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이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가 안다는 것을 이분도 아십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손을 얹어 드리면요? 이것이 어떤 기름부음이라는 것을 믿으십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심장병이 떠날 것입니다. 이분은 제가 그 말을 해 주기를 몹시 원하셨습니다. 좋습니다. 오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으십시오.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이제 믿음을 가지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젊은 자매님, 조금 전 제가 설교할 때 바로 저 뒤에 앉아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돌아서서 한 여자를 보셨습니다. 아주 이상한 느낌이 이분을 덮었습니다. 제가 설교하며 주 예수님에 관해 말할 때, 특히 그날에... 소돔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때 이분의 부인병이 나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건강해지십시오.
온 마음으로 믿습니까? “선생님들이여,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까? 손을 드십시오. 이제 묻겠습니다. 여러분 중 믿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이렇게 손을 흔들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했습니다. 믿습니까? 그분께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너희도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손을 얹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서로에게 손을 얹으십시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것입니다. 저 위 발코니에 앉은 남자에게는 전립선 문제가 있습니다. 왼편에 앉아 계신 분입니다. 선생님, 온 마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을 고치고 낫게 하십니다. 서로에게 손을 얹고, 이제 서로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사탄과 결판을 내려고 합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이며, 오늘 밤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부활로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사탄아, 너는 싸움에서 패했다. 이 사람들에게서 나와라. 떠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에게서 나와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서 자기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알며, 지금 이곳에 계신 분이 그분의 영이심을 믿는 여러분 모두에게 명합니다. 여러분이 온 마음으로 그것을 믿는다면... 믿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손을 얹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일한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시며, 자신이 여러분의 오순절 메시아이심을 알리고 계십니다. 이제 그분을 자신의 치유자로 받아들일 여러분은 누구든, 어디에 계시든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을 자신의 치유자로 받아들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치유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제 그분께 손을 들고 찬양하십시오. 아멘.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 (그저 찬양하십시오.), 나는 그분을 찬양하리, 죄인들을 위해 죽임당한 어린양을 찬양하리. 모든 백성아,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분의 피가 모든 얼룩을 씻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