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 ROOM
감사합니다, 러들 형제님. 제게 복음 안에서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참 기쁩니다. 참 좋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러들 형제님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바울에게도 디모데라는 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바울은 그를 복음 안에서 자기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제가 맞게 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분이 플로시 포드인가요? 결혼 전 이름이 그랬지요? 세상에. 플로시, 제가... 참 오랜만입니다. 정말 그렇군요. 제가 소년이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플로시의 남자 형제 로이드와 저는 함께 어울려 다녔습니다. 플로시가 큰 케이크를 구워 놓으면,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가 배탈이 날 지경까지 먹곤 했습니다.
한번은 그 집에서 저를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로이드가 그랬는데, 플로시가 구워 놓은 것이... 그때는 플로시도 어린아이였습니다. 큰 케이크를 구워 놓아서 우리는 더는 먹을 수 없을 만큼 먹었습니다. 저는 ‘오늘 밤은 로이드네서 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그때는 꼭 집에 가야 한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그래서 나와서 길을 따라 달렸는데, 집에 가는 동안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플로시의 아버지도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아직 살아 계시지요? 참 잘됐습니다. 그 시절 이후로 참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둘 다 중년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늙지 않을 땅이 있습니다. 플로시, 자매님도 그 땅을 바라보며 그곳에 이를 확신을 갖고 계시다니 참 기쁩니다. 그리고 짐은, 짐은 어떻게 지내나요? 그가... 그렇군요. 짐이 기억납니다. 자매님의 남편인데, 잘 기억합니다. 자녀 몇 명도 알고 있었는데, 우리는 좀... 두 분이 결혼하고 아이들이 자랄 무렵에는 제가 전도 현장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좀 떨어져 지내게 되었지요. 가끔 로이드 형제님을 보면 길에서 소리쳐 인사합니다. 그분들은 제게 참 여러 번 식사를 해 주었고, 저는... 친형제자매나 다름없었습니다.
러들 형제님이 처음 힘을 쏟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것이 참 기쁩니다. 바꾸는 일로... 길가의 술집을 주님의 집으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참 훌륭합니다. 물론,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면... 그러면 더욱 좋지요. 우리는 이 젊은이에게 무언가 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수줍음이 많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저는 여러 해 전에 함께 일했습니다. 저는 그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행동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해내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아들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참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그 뒤에는 무언가 좋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주님을 섬기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깊은 곳이 깊은 곳을 부를 때는 그 부름에 응답할 깊은 곳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러들 형제님이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 기쁩니다.
여기 모인 참 훌륭한 분들... 오늘 밤 이곳에 와서, 여기서 나그네로 지내는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제게 큰 특권입니다. 우리는... 이곳은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아직 본향에 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러들 자매님, 자매님이 형제님과 함께 와서 앉아 계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형제님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자매님은 큰 확신을 갖고 계셨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자매님은 남편이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좋은 아내와 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기도해 주고 있으니 무언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러들 형제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러들 형제님, 이곳이 형제님이 발을 딛는 자리가 되어, 복음의 영광을 위해 가장 높은 곳까지 뛰어오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러들 형제님과 자매님, 저기 계신 맥스 말입니다, 오늘 밤 참 기뻐하실 줄 압니다. 저도 빌리 폴이 강단에 서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은지요. 또 언젠가 요셉이 강단에 서는 모습을 볼 때까지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어린 자녀들을 십 대 시절까지 키우며 겪는 수고와 어려움도, 그때가 되면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뒤돌아보며 아버지의 머리에 흰머리가 보이거든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잘못한 일들 가운데 일부가 그 흰머리를 생기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오니 참 좋습니다. 그런데 제 목이 조금 쉬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해 왔고... 어제 진 고드 형제님과 잠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내려가 보니 물고기가 잘 물더군요. 즐겁게 지내다가 늦게 돌아왔습니다. 물 위에 나가 있다가 감기에 조금 걸렸습니다만, 여러분이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름 대전도 집회를 위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약 구십 일 동안 이어질 대전도 집회입니다. 팔월 말이나 구월 초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이제 가게 될 곳은... 이번 주에는 미시간주 그린베이에서 시작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를 거쳐, 일요일 오후에는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대집회에 참석합니다.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그리스도인 실업인회의 원래 대집회에서 말씀을 전할 예정입니다. 거기서 시카고로 가고, 월요일에는 시카고에서 대집회 모임에 참석합니다. 조셉 보즈 형제님을 위한 선교 집회입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왔다가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파인스로 가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내려갔다가 로스앤젤레스 사우스게이트의 카우 팰리스로 갑니다. 일신교 교회 사십여 곳이 그 집회를 후원합니다. 일신교 측에서 제 집회를 후원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다음 캘리포니아를 따라 올라가 오리건주를 지나 캐나다로 들어가고, 거기서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갔다가 올가을에 돌아옵니다. 조셉 보즈 형제님은 아프리카의 케냐와 탕가니카, 남아프리카의 더반으로 가서 늦가을에 있을 집회들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제가 이곳들 가운데 어느 곳에 가라는 인도를 받았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씨를 뿌리며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제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고 잠깐 기도합시다. 아직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께서 저를 도우셔서... 여러분에게 전할 말씀을 주시기를 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은혜의 왕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아오도록 허락하시고 오라고 청하셨으며, 우리가 나아가 구하는 것들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심판 앞에 서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얻도록 긍휼의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잘못되었으며 우리 안에 성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이 우리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와, 오라고 청하시며 하신 이 말씀을 의지합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우리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와서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을 바탕으로 나아와, 이 교회와 우리의 은혜로운 형제인 러들 형제님과 그 가족, 그리고 이 자리에 나온 모든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 밤 여기 계신 모리스 부인을 바라보며 지난날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그분께 말씀드렸듯이 참 많은 세월이 흘렀고, 위험과 수고와 올무도 많았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그 모든 것에서 건져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 길 끝까지 가리라는 믿음을 주님께 두고 있습니다. 이곳을 축복해 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이름을 이곳에 두시고, 이곳에 허락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그들에게 주십시오. 악이... 오늘 밤 여기서 그 형제님이 기도했듯이 말입니다. 이 젊은이가 모든 방해물을 없애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 허락해 주십시오.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십시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의 혼을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 이제 주님의 이 무익한 종의 목소리와 수고를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축복하셔서, 그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보내신 목적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오늘 밤 성령께서 하나님의 것들을 취하여,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마음을 격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에는 제가 오랫동안 설교했습니다. 설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일요일 성경 공부를 가르친 셈이지요. 어느 날에는 여섯 시간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밤에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기 짧은 본문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조금 읽으려 합니다. 그분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을 그분의 말씀에 꼭 맞추고, 그분의 말씀을 취해... 제 말로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그분의 말씀에 맞는 내용을 풀어 가려 합니다.
오늘 밤에는 두 곳을 읽으려고 합니다. 한 곳은 잠언 18장 10절입니다. 또 한 곳은 이사야 32장 2절을 읽으려 합니다. 먼저 잠언 18장 10절입니다. 주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 그리고 이사야서 32장 1절과 2절입니다. 보라,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한 통치자가 판단의 공의로 다스릴 것이며 한 사람이 바람을 피해 숨는 곳같이 되고 폭우를 피하는 은신처같이 되며 마른 곳의 물 있는 강같이, 지친 땅에 있는 큰 바위의 그늘같이 되리라.
이제 제가 설교할 주제로 삼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압력 풀기.” 특이한 주제이지요. “압력 풀기.” 제가 이것을 택한 것은, 집회에 오기 전에 언제나 기도하고 주님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회중이 적든 많든, 한 사람이든 백만 명이든, 그 앞에 서는 것은 제 모습을 보이거나 제 말을 들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제 주님을 영화롭게 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면서... 저는 제 말을 들려주려고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 말은 그리 들을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도 좋지 않고, 교육받은 사람도 아니며, 본문에 머무르지도 못하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곳저곳을 뛰어다닙니다. 저는 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랑합니다. 먼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그분의 백성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분처럼 행하고 싶습니다. 제 목표를 그분의 목표와 같게 삼고 싶습니다. 그 목표는 언제나 선을 행하고 누군가를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보면서, 또 여기 이 교회에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 제가 아첨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말을 한다면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목사님이 무슨 일이 생기든 진리 위에 굳게 설 분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제 아들에 대한 제 확신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형제님은 더할 나위 없이 담대합니다. 저는 그가 이 마지막 날을 위한 사역을 맡아 하나님께로부터 보냄 받은, 존귀하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도 제가 전하는 것과 똑같은 범위의 말씀을 전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그대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꼭 붙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있는 곳에, 아직 젊은 그분의 강단에 제가 서서, 그 회중에게 도움이 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가 저더러 와 달라고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목자이며 자기 양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 변화를 주면 자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는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밤이나 낮이나 언제든, 어디든 가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도우려 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종입니다.
그가 저를 괴롭혔다거나 성가시게 했다거나 귀찮게 했다거나, 무슨 그런 말을 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습니다. 계속 부탁하면 저는 오히려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신뢰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여 줍니다... 제가 양들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자기 양들 앞에 저를 데려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어떤 목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옳은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를 데려오는 것입니다. 저더러 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제게 큰 특권을 주는 일입니다. 저는 그의 목표가 마음에 듭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회중에게 무슨 말씀을 전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모든 면에서 바르게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 압력에는 한계도 없고 교파의 경계도 없습니다. 나이의 경계도 없고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습니다. 젊은이와 노인에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압력입니다.
우리는 신경이 곤두선 시대, 신경이 팽팽하게 긴장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여기로 달리고 저기로 가지만, 정작 이르는 곳은 없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다른 모든 곳이 그렇듯이 이 교회도 그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줄 압니다. 태버내클도 그것에 시달립니다. 어디나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그렇습니다. 압력의 시대입니다. 서둘러라, 서둘러라. 빨리, 빨리. 서둘러 가서는 기다립니다. 시속 구십 마일로 차를 몰고... 저녁을 먹으려고 집에 가서는,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시대가 그렇습니다. 그렇게 서두르고 빠르게 달리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서, 아내가 조금만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버럭 성을 내려고 합니다. 남편이 한마디 하면 발을 탁탁 구르며 방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아시겠죠? “여보, 지금 당신하고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요. 저리 가 있어요.” “여보, 아, 난 신경이 너무 곤두서 있어.” 아시겠죠?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아시겠죠?
이 모든 것이 한데 쌓여 긴장이 높아지고, 그 결과 잘못된 일을 하고 부적절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그렇게 행동하게 되고, 중산층도 그렇게 되며, 부자도 그렇게 됩니다. 잘못된 사람도 그렇게 되고, 꽤 괜찮은 사람도 그렇게 되며, 선한 사람도 그렇게 됩니다. 긴장이기 때문입니다. 증기가 쌓인 것입니다. 어딘가로 빼내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보일러가 터져 버립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봅니다. 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쌓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와 말할 때도 “아, 아무개가!” 합니다. 아이에게 말을 해도 “이리 들어와!” 하면 “엄마, 나는...” 합니다. 보십시오.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이 쌓입니다. 아, 세상에! 아시겠죠? 마치... 머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저도 압니다. 저도 날마다 그것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것인지 압니다. 그것은 쌓여 갑니다.
저는... 며칠 전 밤에 이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병원에 갔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아프신 줄 알았는데, 그저 지칠 대로 지친 것이었습니다. 뛰고, 뛰고, 뛰고, 뛰다가 완전히 기진맥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전화를 해서... 아래 사무실로 전화해 제가 목사님 대신 심방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온종일 업무를 보고 여러 곳에서 온 사역자들을 만난 뒤였지만 “그러지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심방들을 하러 나섰습니다. 어느 병원으로 갔습니다. 어떤 여자분의 이름과 그분이 있는 병실 번호를 받았습니다. 그 병실로 올라가다가, 그 여자 직원에게 갔습니다... 방문객 면회 시간이 시작되기 십오 분이나 이십 분쯤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직원에게 가서 제가 목사인데 아무개 부인을 뵙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돌아서더니 “무슨 일이죠?”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병동에 계신 아무개 부인이 어디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몰라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병실 번호와 위치를 받기는 했지만, 먼저 여쭤보려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번호를 받았으면 가서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쪽으로 가서 병실 문가에 앉아서 “여기 아무개라는 부인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없어요!” 다시 돌아가서 쪽지를 보니 거기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 보니 그 직원이 서 있기에 “병실 번호가 잘못됐더군요”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하더니 “그분은 이 층에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위층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위층으로 올라가 다음 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보니 의사 한 분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저는... 그분은 거기 앉아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는 그냥 고개를 들어 보더니 다시 숙였습니다. 저는 ‘그냥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복도를 조금 더 가니 책상에 여자분,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실례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죠?” “이 위층에 아무개라는 부인이 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제가... 그분이... 제가 말했습니다. “병실 번호가 321호인가 221호인가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방에 갔는데 그분이 안 계시더군요.” 그리고 “아래층의 직원이 ‘여기에는 그런 이름의 분이 없어요’라고 해서, 위층인가 보다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간호사가 “그러면 321호로 가 보시지 그래요?”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321호로... 아니, 321호로 가서 “여기 아무개라는 부인이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없어요!” 누워 있던 한 여자분이 “그분은 건너편 방에 있었어요. 건너편, 저쪽... 31호요”라고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쪽으로 건너가서 “여기 아무개 부인 계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다른 데로 옮겼어요. 아래층에 있어요.”
‘이런!’ 싶었습니다. 그들이 병실 번호를 알려 주어서 저는 다시 아래층으로 갔습니다. 아래층에 내려가 여기저기 둘러보았습니다... 그 안내 데스크에 다시 가기가 겁나서, 그 병실 번호를 찾으려고 위아래로 두루 살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병원은 작은 별관 같은 곳들이 이리저리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기서 의사 한 분이 손에 청진기와 가방을 들고 걸어왔습니다. 저는 키가 사 피트이고 폭도 사 피트인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그분은 거의 그 정도였습니다... 그분이 걸어오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아무개 호실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분이 “이쪽으로 올라가서 저쪽으로 나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분은 “이쪽으로 올라가서 저쪽으로 나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감사합니다!”라고 하고는 ‘아직 아무 데도 이르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니 안내 데스크에 좀 친절해 보이는 여자분이 서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안녕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며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이 병원 어디에 내일 아침 수술을 받으실 여자분이 계십니다. 죽음을 앞두고 계십니다. 저는 목사인데, 우리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하실 수 없어 제가 이 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잠깐만요, 브래넘 형제님. 제가 알아볼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저쪽으로 가서 찾아보고... “아, 네, 브래넘 형제님. 바로 저기 왼쪽 아무개 호실에 계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돌아서서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다. 증기를 빼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시대가 점점 신경이 곤두선 시대가 되어 갑니다. 모두의 속에 긴장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 무언가를 깨뜨릴 지경이 됩니다. 사람의 말을 퉁명스럽게 끊고, 할 생각도 없던 말을 해 버리면 상대의 마음에 앙금이 생깁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잘못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있고, 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압력을 받으면 평소에는 하지 않을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도한 압력이 쌓여 있습니다. 저는... 더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을 말해도 되겠습니다. 저는 원수가 내려와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줄 압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압박해서 서두르고 무언가를 덮어놓고 지나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차분히 앉아 생각했더라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삼 년쯤 전에 사냥 여행을 갔는데, 인디언 안내인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냥할 때 아주 빨리 움직입니다. 원래 제가 그렇습니다. 아시겠죠? 압력을 쌓아 올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그 인디언과 사냥을 하다가 제가 말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산 위에 엘크 몇 마리가 있어서 굽이를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디언 노인은 저보다 열 살쯤 많았는데, 뒤에서 헐떡거리며 따라왔습니다. 제가 “어서 와요, 추장님. 어서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너무 빨라요. 너무 빨라!”라고 했습니다. 저는 ‘뭐, 괜찮겠지...’ 생각하며 “어서 와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분이 “너무 빨라요”라고 했습니다. 기어를 한 단계 낮추듯 속도를 늦추었는데도 “너무 빨라요”라고 했습니다. 걸을 정도로 늦추어도 “너무 빨라요”라고 했습니다. 아, 세상에! 제가 “추장님, 엘크가 저 위에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거기 있을 거예요. 거기서 태어났으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겠네요”라고 했습니다. “거기 있을 거예요.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그러고는 “목사님은 사냥할 때 너무 빨라서 사냥감을 다 놀라 달아나게 해요. 인디언처럼 해요. 한 번 걷고 아홉 번 둘러봐요”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기어를 어디까지 낮추어야 그렇게 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산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분은 “한 번 걷고, 아홉 번 둘러봐요. 다음 걸음을 떼기 전에 주위의 모든 것을 아홉 번 둘러봐요”라고 했습니다. 아, 세상에! 하지만 그분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영광 가운데 계신, 제 사랑하는 노모를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오늘은 왜 흰 꽃을 달지 않으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뜻인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어머니는 죽지 않으셨습니다. 살아 계십니다. 그렇다고 빨간 꽃을 달면 사람들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서 증기를 더 쌓이게 하지 않으려고, 아예 아무 꽃도 달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어머니는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잠들어 계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경이 날카롭고 곤두선 이 시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의사들도 해답이 없습니다. 그들 역시 같은 문제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해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아, 선생님,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이라고 하면, 의사는 “저도 그렇습니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제를 줄 것입니다. 그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처음보다 신경이 더 날카로워집니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이 취기를 없애려고 술을 한 잔 더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시겠죠? 그렇게 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해답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에게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해답이 있습니다. 그분 자신이 해답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이제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구약 시대, 그 옛날에도 사람에게 압력이 쌓이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였습니다.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는 도망을 다녔습니다. 자기가 죽인 그 사람, 곧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의... 그 사람의 친족 가운데 누군가가 그를 찾을 때까지 쫓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찾으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였습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았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멈추어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만일 실수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 주지 않았을 것이므로, 달아나야 했습니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르자마자 그 남자든 여자든, 피해자의 친족들이 그를 찾아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찾으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디에서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도망자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도망쳤습니다. 바로 오늘날의 모형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토록 많은 압력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도망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운 것도 압니다. 압력은 쌓여 가고, 그들은 도망치고 있습니다. 길가의 술집, 도박장, 호화로운 생활, 죄, 도덕적 타락, 무엇이든 분출구로 삼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음담패설에 귀를 기울이며, 무엇이든 분출구로 삼습니다. 그들은 도망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고, 그들도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쾌락과 온갖 것에 취해 죽어 가며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 그것을 말합니다. 우리도 무언가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동이 트기 전에 이 세상이 폭발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긴장 속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번은 아프리카에서 양 한 마리가 풀을 뜯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린 양이었는데, 반쯤 자란 양이었습니다. 그 작은 녀석은 아주 평온하게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해하더군요. 한 입 먹고는 둘러보고, 또 한 입 먹었습니다. 평온하게 있을 때 지켜보니 아주 차분해 보였습니다. 저는 ‘저기 참 평화롭구나. 저 작은 녀석 좀 봐’라고 생각했습니다. 양들을 지키던 목자는 우리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현지인인 흑인이었습니다. 그 작은 녀석을 보고 있는데, 얼마 후부터 불안해했습니다. 저는 ‘저 작은 녀석이 왜 저럴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쌍안경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 양은 몹시 불안해져서 이쪽저쪽을 둘러보았습니다. 울기 시작했고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저 작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렇게 흥분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양은 작은 목초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양에게서 반 마일쯤 떨어진 곳의 풀숲에 잘 숨어서, 사자 한 마리가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양의 속에서는 무언가가 점점 차올라, 어딘가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자는 양 냄새를 맡았고, 목자가 양을 데려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전에 재빨리 덮쳐야 했습니다. 지켜보니 양에게 긴장이 쌓여 있었습니다. 멀리서는 그 사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양은 사자를 볼 수 없었지만, 그 속의 무언가가 위험이 가까이 왔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사람들 안에 무언가가 있어서, 어떤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리스도인도 압니다. 세상도 압니다. 술주정꾼도 압니다. 도박꾼도 압니다. 사업가들과 각국 정부와 유엔,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긴장을 쌓아 놓았습니다.
여자들, 어머니들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또 한 대 피웁니다... 저는 그들이 학교로 오는 것을 봅니다. 우리 집 앞 좁은 길을 지나는데, 제한 속도가 시속 이십 마일인 곳에서 칠십 마일로 달려서, 저는 아이들과 개를 잘 지켜봐야 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여자들이 손에 담배를 들고 한쪽 문 밖으로 내민 채,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며 내려갑니다. 그러고는 브레이크나 바퀴에서 끼익 소리가 나게 하거나 길바닥에 타이어 자국을 남깁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옵니다. 며칠 전에는 신경이 잔뜩 곤두선 어떤 어머니의 차가 일으킨 바람에 어린아이 네댓 명이 길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디를 가는 것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하는 모양입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바로 그것입니다. 긴장입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과 파멸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 가운데 일부가 실수로 일어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결백하고 죄가 없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 길을 마련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일부러, 미리 계획하고 다른 사람을 죽였다면 그는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올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수로,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면, 도피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라못길르앗에 있었습니다. 네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그곳들에 도피성을 마련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도피성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럴 뜻이 없었다면, 도피성으로 와서 성문에 이르렀습니다. 문지기는 왜 왔느냐고, 무슨 생각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자기 사정을 진술했습니다. 성문에서 자기 사정을 진술하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 사람은 피난처인 성 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면 원수가 그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했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도피성에 들어왔다면, 제단 뿔을 붙들고 있더라도 원수에게는 그를 제단에서 끌어내어 죽일 수 있는 특권과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죄가 있었고, 미리 계획한 일이었으므로, 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따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열두 명쯤 되는 사람들이 뒤쫓아 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딘가 바위마다, 언덕마다, 덤불마다 원수가, 누군가가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성 안에 들어가면 압력을 풀 수 있었습니다. 안전했습니다. 이제 괜찮았습니다. 그를 위해 마련된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고한 그 사람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실수로 그런 일을 저질렀으므로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었습니다. 그가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일부러 한 일이었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의로 그런 일을 했다면 그에게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러들 형제님, 오늘날 세상에는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런 일들을 정말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죄를 짓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불쌍합니다. 잘못된 일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하도록 내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옳은 일을 하고 싶은 그 사람을 위한 곳이 있습니다. 그 압력을 풀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며칠 전 히커슨 형제님이 켄터키주 라그레인지의 연방 교도소 소장에게서 제가 안으로 들어가 낚시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루이빌 출신의 흑인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가 제게 말했는데... 제가 “당신처럼 인물도 좋고 똑똑한 사람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사정은 이렇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저도 한때 주님께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비숍이었습니다. 그가 “제가 주님을 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거룩한 비숍’이라고 불렀습니다. 제 아내와 제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따라가 주님을 떠났습니다. 제 부모님은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저는 해외, 한국에서 사 년 동안 복무했습니다”라고 하며, 얼마나 많은 전투에 참가했는지, 어떤 표창들을 받았는지 말했습니다. 그는 “하지만 거기서 우리가 하던 일은 그저 춤추러 다니고 그런 것들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좋지 않은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두 녀석이 와서 ‘비숍, 퀘이커 메이드에 식료품을 좀 사러 가려고 하는데, 차로 데려다주겠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막 밥 먹으라고 부른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가 말했습니다. “아내가 저를 안으로 불러 ‘여보, 저 사람들하고 가지 말아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저 사람들에게서 떠나 다시 교회로 돌아가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 친구들이... 식료품이 필요하다는데, 안 데려다주기는 미안하잖아’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내 차를 빌려주지’라고 했더니, 아내가 ‘그러지 말아요. 차를 망가뜨릴 거예요. 그럼 거기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돌아와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들을 데려다주고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거기 앉아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경보가 울리고 소란이 나더니, 그 녀석들이 저마다 손에 권총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는 차 문을 닫고 ‘너희는 여기 못 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녀석이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 그를 홱 끌어 세우더니 총을 들이대며 “네가 날 데려가는 건 안 돼...”라고 했습니다. 차 안으로 총을 들이밀고는 “몸에 구멍이 나고 싶지 않으면... 너를 여기에 내던지고 가 버릴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어디로도 못 가. 잡히고 말 거야. 너희가 사람들에게 나는 관계없다고 말해 줘. 나는 이럴 생각이 없었어. 여기 앉아 있었을 뿐이야. 나는 죄가 없어.” 바로 그때 경찰이 그들을 잡았습니다. 사건을 변론할 때의 일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검사를 나쁘게 생각했습니다. 검사가 이렇게 물었거든요...” 그가 말한 질문들은 이랬습니다. “이 차가 당신 차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질문에 대답하세요.” 아, 형제님, 마귀는 이런 식으로 하는 수가 있습니다. “내 질문에 대답하세요. 이 차가 당신 차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당신 차 번호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 주차장에 있었습니까?” “그게, 말씀드리자면...” “내 질문에 대답하세요.” “예, 그렇습니다!” “그것 보세요!” 그래서 정황 증거만으로 그에게 십 년 형을 내렸습니다. 다른 녀석들은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형제님. 제가 그저 나쁜 무리와 어울렸던 것입니다. 저 자신 말고는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압력을 풀 십 년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드 형제님과 제가 그곳에서, 물 위에 앉아 있다가, 그 청년의 손을 잡고 물 위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석방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압력입니다. 무고한 사람,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 오늘 밤 여러분에게 도피성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 참 기쁩니다. 그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이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데 원수가 뒤쫓아 온다면, 피할 길이 있습니다. 그 피할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이 와서 증기를 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짓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면, 원수가 어딘가에서 여러분을 따라잡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은 그리스도께 올 수 없습니다. 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피난처이신 그리스도께 올 때... 구약 시대에 사람이 들어올 때는, 먼저 자신의 자유의지로 와야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그리스도께 와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그 안에 있는 동안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위를 맴돌며 “여기서 나가고 싶어. 여기서 나가고 싶어”라고 울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여러분을 내보낼 것입니다. 스스로 머무르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 성 안에 머무르고 싶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왔을 때도 세상을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밭을 갈 자격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합니다. 그들은 밭을 갈 것처럼 행동하지만, 아주 작은 일만 생겨도 그것 때문에 폭발해 버립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듯이, 며칠 전에 제가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고 표적 사격도 하면서, 늘 웨더비 매그넘 소총을 갖고 싶었습니다. 친구들 가운데는 제게 그것을 사 줄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말만 꺼내면 기꺼이 사 주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두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발에 신을 신발도 없는 선교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사람들이 총 한 자루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도록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윌슨 형제님이 빌리 폴에게 작은 .257 로버츠 소총 한 자루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제 친구인 한 형제님이 “브래넘 형제님, 웨더비에서 그 총의 내부를 깎아 넓혀 줄 수 있습니다. 형제님이 허락하시면 제가 싼값에 해 드릴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총을 돌려받고 탄환을 넣어 쏘려고 했는데, 제 손안에서 총이 폭발했습니다. 총열은 거의 오십 야드 선까지 날아갔고, 노리쇠는 제 뒤로 멀리 날아갔습니다. 제 몸이 두 동강 나지 않은 것이 기적입니다. 오 톤이나 육 톤쯤 되는 압력이 제 바로 곁에 있었습니다. 의사 한 분이 말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선하신 주님께서 그 자리에 계셔서 자신의 종을 지키셨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대목입니다. 그 총이 처음부터 웨더비 매그넘이었다면...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총에 결함이 있었습니다. 헤드스페이스가 너무 넓어지도록 깎아 놓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회심에서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머릿속 공간도 너무 헐겁게 뚫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웨더비였다면, 총열을 만들려고 강철을 부을 때부터 웨더비 매그넘으로 깎고 만들었다면 폭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그것이 아닌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 했기 때문에 폭발한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올바르게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같은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가해지는 압력이 너무 큽니다.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자신이 폭발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역으로 부름 받지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의 사역을 흉내 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어야 합니다. 악수를 했다거나 감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위해 하신 일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나아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선가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누군가 비위를 건드리면 그만 발끈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아시겠죠? 압력은 계속 쌓이고, 머지않아 폭발합니다.
그 사람은 피난처에 머물기를 원해야 합니다. 불평하면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머물고 싶어 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밖에서는 죽고, 안에서는 안전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약 삼십일 년 전에 이 도피성으로 왔습니다. 형제님, 저는 한 번도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갈망하던 모든 것이 이 안에 있었습니다. 저는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날마다 기도합니다. “오 하나님, 저는 여기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저 여기 머물게 해 주십시오.” 저는 결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도 결코 저를 떠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여러분도 결코 떠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압력이 커진다면,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분이 우리의 배출구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압력을 잔뜩 받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할 일은 피난처이신 그리스도께 와서 압력을 푸는 것입니다. 단번에, 영원히 그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리스도는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그분께 오면 압력을 풀 수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아내는 어떻게 될까? 남편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을 그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께 와서 압력을 푸십시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압력을 푸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백만 달러를 준다면, 그것은 압력을 쌓이게 할 것입니다. 교회에 가입해도 압력은 여전히 쌓일 것입니다. 감리교인들은 자신들이 옳고 침례교인들이 틀렸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례교인들은 “그들이 틀렸고 우리가 옳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압력은 더 쌓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번 그리스도께 오면 압력을 풀 수 있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 문제를 해결해 놓으십시오.
그곳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은 강력한 망대니 의로운 자는 거기로 달려가 안전을 얻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이 들 때, 질병이 덮쳐서 의사가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압력을 쌓지 말고 압력을 푸십시오. 목사님을 청해 기름을 바르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압력을 푸십시오. 아시겠죠? 그분이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이 피난처 안에 있는 동안 여러분에게는... 피난처 안의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분 안에 있습니다. 아멘! 병이 들었을 때 압력을 쌓지 말고 압력을 푸십시오.
여러분은 “글쎄요, 브래넘 형제님, 정말 그럴까요?”라고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그저 압력을 푸십시오. 여러분의 사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압력을 쌓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압력이 풀립니다. “브래넘 형제님, 저는 너무 걱정돼서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까? 압력을 푸십시오! 아멘! 도피성 안에서는 그분이 여러분의 걱정을 맡으셨으므로, 여러분이 그것을 지닐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염려거리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분이 하실 일입니다.
몇 해 전에 여기 잡화점에서 어떤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나이는 예순쯤 되었는데 서른쯤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자매님, 어떻게 그렇게 지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브래넘 형제님, 제게는 의사인 두 아들이 있는데, 형제님보다 나이가 많아요.” 정말로 그분은 서른 살이 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정은 이래요. 제가 열두 살쯤 되어 그리스도께 왔을 때... 저는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어요. 다른 종교들도 알아보았지만, 참된 것을 찾았을 때... 그리스도께 와서 제 사정과 제 혼과 제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겼습니다. 그 뒤로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어요. 그분이 제 모든 문제를 돌보겠다고 약속하셨거든요. 그분의 능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제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 제가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아시겠죠?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모든 염려를 맡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니 무엇을 걱정하고 있습니까? 걱정은 압력을 쌓고, 압력은 폭발하게 합니다. 그러니 그저 여러분의 염려를 그분께 맡기고 걱정을 그치십시오. 좋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럼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라고 합니다. 그저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죽음의 때에도, 죽음의 천사가 방 안에 들어올 때에도... “아, 브래넘 형제님, 저는 분명 불안해질 겁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피난처 안에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그저 피난처 안으로 들어와 안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피난처 안에 있는 한 안전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자,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브래넘 형제님, 죽음의 천사가 문을 두드릴 때도 마음에 증기가 차오르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도 그러지 마십시오. “어째서 그렇게 하십니까?” 피난처로 오십시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이 “그렇지만 브래넘 형제님...”이라고 합니다. 자,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가 왔습니다. “내가 죽음의 천사를 보내 이 땅을 지나가게 하리라. 문에 피가 없으면 집안마다 맏이를 모두 데려가리라!” 그 위대한 유월절 밤이었습니다. 여기 약속을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려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유월절 밤입니다. 죽음의 천사가 그 땅에 와 있습니다. 거리 저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밖을 보니 커다란 검은 날개 두 개가 거리를 따라 퍼덕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두 흥분해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죽음이 문 앞에 와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이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는 그 집의 맏아들이었습니다. 그 커다란 검은 천사를 보고, 돌아보며 말합니다. “아빠, 저를 사랑하세요?” “물론이지, 아들아. 사랑하고말고!” “아빠, 제가 아빠의 맏아들이지요?” “그래, 네가 맏아들이지, 아들아.” “저기 보세요, 아빠. 저 천사가 저 아이를 데려갔어요. 제가 아는 아이예요. 같이 놀았어요. 아, 아빠, 천사가 우리 집 쪽으로 와요.” “하지만 아들아, 저 문기둥에 있는 것이 보이니?” 할렐루야! “아빠, 저도 데려갈까요?” “아니다, 아들아. 너를 데려갈 수 없어.” “왜요?” “그분의 약속이기 때문이지.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돌아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라, 아들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피난처 안에 있어. 증기를 빼 버려라.”
이스라엘은 편안히 앉아서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증기를 쌓아 올리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이 바로 문 앞에 있어도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이 우리 문 앞에 올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제 마음의 문기둥 위 인방에 피가 발라져 있는 한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죽음은 저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의사가 내일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문기둥에 피가 발라져 있습니다. 어차피 죽기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피가 발라졌다면 제게는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
이스라엘은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증기를 쌓을 일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자신들을 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피 아래 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었습니다. 자, 주목하십시오. “저도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까? 그리스도인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지난 일요일 밤에 그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을 받은 언약의 백성,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그 땅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죠? 한 번도 가 보지 못했고, 그 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땅을 약속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분의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셔서 종살이에서 나왔고, 자신들이 순례자요 나그네라고 고백하며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 적도 없고, 그들 가운데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땅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다가 경계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그들 가운데 여호수아라는 위대한 용사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요르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가, 그곳이 좋은 땅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이 메고 와야 할 만큼 큰 포도송이를 가져왔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젖과 꿀이 흘렀습니다. 그 사실에 그들 모두가 기뻐했어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던 땅의 증거를 여호수아가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죠? 그들은 한 땅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인류가 덫에 걸려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진 한 분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는 “여호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죽음의 요르단으로 내려가셔서 죽음 가운데 그 요르단을 건너셨고, 부활절 아침에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일어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 앞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가서 처소를 예비하리라... 내가 건너가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돌아와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리고 부활절 아침에, 그분이 죽으셔서 달과 별과 해도 스스로 부끄러워할 지경이 되었고, 로마 병사가 창으로 그분의 심장을 찔렀을 때 물과 피가 분리되어 나올 정도로 죽으신 뒤에...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도 더없이 분명히 죽은 분이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그분의 혼은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절 아침에 그분은 죽음과 지옥과 무덤에서 돌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에 죽었으나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으며, 사망과 지옥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나는 사람이니라.” 그들이 “영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생선 샌드위치를 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선과 빵을 드셨습니다. 그분은 죽어서 그 땅에 가셨다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돌아오신 사람이셨습니다.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멘! 압력을 푸십시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우리에게 약속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상속 유업의 보증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모든 믿는 자에게 입증하기 위해서다. 지금 너희는 이 아래에서 불신 가운데 걷고 있다. 말씀을 믿지 않는다. 세상에 속한 것들 가운데 죄를 지으며 걷고 있다. 그러나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 곧 죽을 수 없는 생명이 있느니라.” 주목하십시오. 우리가 그분의 영을 받을 때, 한때 죄들과 범법들 가운데 죽었던 우리에게 그분은 새로 태어나는 것,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는 죽어서 예수님 안에 묻힙니다. 우리는 영 안에서 세상의 것들로부터 하늘의 것들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아 있습니다.
여기 있는 그리스도인 가운데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지, 실제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일단 그리스도를 맛보면 세상의 것들에 대해서는 죽었고, 어떤 경우에도 그 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합니까? 바울은 “내가 전에 살던 삶은 이제 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살지만,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그를 이 세상 죄의 낮은 수준에서 일으켜 올리셔서, 우리 자신이 뒤돌아보며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볼 수 있는 자리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영광입니다! 뒤돌아보며 우리가 전에 어디에서 살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르게 삽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성령으로 봉인되고, 그런 것들 위로 일으켜졌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입증하시려고 가지고 돌아오신 바로 그 증거를 지닌 채 살아 있습니다.
그 땅은 영광스럽고, 이것은 계약금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보증입니다. 이것은 계약을 붙들어 주는 첫 지불금입니다.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붙들어 줍니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형제님, 압력을 푸십시오. 그렇습니다! 아멘! 이해하셨습니까? 보십시오. 그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엘리사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그 선지자 위에 두 배의 영이 임한 것입니다... 어느 날 그가 요르단으로 걸어갔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정부와 그 밖의 것들, 아합과 이세벨 등의 모형입니다. 제 이세벨 설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멘! 그가 엘리사를 어디로 데려갔습니까? 요르단으로, 라못길르앗으로, 선지자 학교로 올라갔다가, 요르단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길도 그러합니다. 의롭게 되는 것과 성결을 거쳐, 생명을 받기 위해 자신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아멘! 교파나 어떤 신조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이 죽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그 물을 치고 요르단을 건너갔으며, 엘리사가 그를 따라갔습니다. 엘리사는 반대편에서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때 두 배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와 침례를 따라갑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침례를 통해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고, 세상의 것들에 대해 죽으며,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침례 안에서 그분과 함께 묻히고, 부활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켜집니다. 우리의 영은 세상의 것들 위에서 삽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 몫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경계인 요르단 건너편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또 한 몫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이 몸과 우리가 가진 영, 우리는 보증을 받았습니다. 곧 하나님의 일부이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몸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아멘! 증기를 빼십시오!
원자폭탄이 떨어지든 그 밖의 무엇이 닥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십시오. [불명확한 말]... 이 한 가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무슨 말을 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을 하겠습니까? 압력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증기를 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테이프 녹음 공백.] 긍휼의 이슬방울 빛나는 곳으로 오라.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이제 머리를 숙인 채 손을 듭시다. 우리는 빛 가운데, 아름다운 빛 가운데 걸으리. 긍휼의 이슬방울 빛나는 곳으로 오라. 낮이나 밤이나 우리 주위를 비추소서.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탄은 싸움에서 졌습니다. 그저 참고 기다리십시오. 증기를 쌓지 마십시오. 여기 서서 증기를 빼는 것에 대해 설교하고 있는데, 사탄은 저를 강단에서 쫓아내어 이 제단 초청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 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며 말했습니다. “여기에 누군가가 있다. 그 반석을 찾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 승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사람이 제단으로 걸어왔을 때 불이 켜졌습니다. 사탄은 자기가 진 것을 알았으므로 싸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밤 여기 은혜의 수인 다섯, 다섯 명의 귀한 혼이 서 있습니다. 다섯입니다. 예수, J-e-s-u-s, 믿음, f-a-i-t-h, 은혜, g-r-a-c-e. 오 하나님,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며 언제나 옳으십니다.
제가 바라보니, 여기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윌슨 자매님의 딸입니다. 저는 저 어린 소녀를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셨을 때를 기억합니다. 오래전 뉴마켓에서의 그날 밤을 기억합니다. 그날 밤 그곳에서, 주님, 저는 기억합니다. 그 옆에는 우리와 함께 나그네로 지내려고 뉴욕에서 내려온 여자분이 서 있습니다. 여기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서 있습니다. 밖에서는 세상이 온갖 부도덕한 춤을 추며 흥청거리는 바로 이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이들은 그 반석을 찾아 걸어 나왔습니다. 제단 끝에는 한 젊은이가 손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는 그 반석을 찾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그 반석이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내가 그들의 한가운데 있으리라.” 그러므로 그 반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주 이상하게, 아주 단순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못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참 단순하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초청에 응하여 나왔기 때문에, 사탄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패했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이들에게 손을 얹고 주님의 복을 선포하려 합니다. 하나님, 그 복이 뒤따르게 해 주십시오. 이들이 정직하고 신실하게 영의 인도를 따르므로 저도 그렇게 합니다. 이제 제 자매의 혼이 결코 멸망하지 않기를 구합니다. 영생을 바라는 그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구합니다.
제가 이 자매에게 손을 얹습니다. 많은 시련이 그를 에워쌌다는 것을 압니다.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 아버지도 압니다. 오늘 밤 그가 그 작은 십일조를 건네며 뺨에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가 기도하며 그 아들을 주 하나님께 맡겼을 때... 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아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들은 그저 증기를 빼고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을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그 일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버지, 바로 지금 이 어머니에게 그 확신을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함께 왔기에 제가 이들에게 손을 얹습니다. 이들은 증기를 빼려고 왔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젊은 한 쌍, 이 젊은이들은 마귀가 이용할 수만 있다면 바로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이들은 타는 나무토막처럼 건져졌습니다. 주님, 이들은 그 피난처를 찾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저 증기를 빼고 압력을 풀고, 하나님 앞에서 고요히 머물며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곳에 이르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바로 지금 이들에게 그 복된 확신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작은 불순물까지 지금 모두 두드려 떨어지게 해 주십시오.
주님, 여기 손을 들고 서 있는 이 젊은이, 맨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입니다. 그가 일어나 앞으로 나오자마자 불이 켜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신 수가 바로 그것이었고,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자는 내게 올 것이요.”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그 자리에 말씀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들이 따라올 것입니다. 이제 그가 옵니다. 주님, 그는 그 갈라진 바위틈을 찾아 잠시 앉아 쉬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 바로 지금 그를 그 바위틈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족쇄가 끊어지게 해 주십시오. 모든 것,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괴롭혀 온 모든 방해가 지금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 작은 것, 작은 성질, 무엇이든지, 조금 변덕스러운 기질, 그 작은 걱정, 그 의심, 그 작지만 얽어매는 죄를, 주님, 이들의 형제이자 주님의 종으로서 제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이들을 위해 중보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들의 혼을 주님의 것으로 요구합니다. 이들이 제단 초청에 순종하였으므로 이들의 승리를 요구합니다. 사탄이 그것을 막으려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요구합니다. 지금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그렇게 하며,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그분의 은혜로 얻은 전리품으로 드립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을 부르셔서 반석으로 데려오신, 오늘 밤 함께하시는 성령의 임재로 얻은 전리품으로 드립니다. 이제 이들이 압력을 풀고, 예수님께서 “내가 부르지 않으면 아무도 올 수 없느니라.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리라”라고 하신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주님,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들을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거기 서 계신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리로 돌아가면서, 여러분이 바라던 모든 것과 여러분을 얽어매던 모든 죄와 잘못된 모든 것이 피 아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십시오. 끝났습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형제님, 믿습니까? 자매님, 믿습니까? 믿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과거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에서 가장 좋은 것과, 여러분이 지금 소유한 영생이... 여러분은 올라가 죄 위에 이르렀습니다. 죄는 여러분의 발아래 있습니다. 제가 여기 서서 여러분에게 잘못된 말을 한들 제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저는 길 끝에 가서 속이는 자로 여겨질 것입니다. 아시겠죠?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영생을 받았습니다. 이제 모든 죄와 모든 족쇄를 벗어 버리고 자유롭게 가십시오. 증기를 빼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죄 위로 일어났으며, 여러분의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오는 모든 자에게 내가 영생을 주고 마지막 날들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해결되었습니다. 아멘!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저기 계신 여러분,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나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갈보리 나무 위에서 값을 치르고 내 구원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압력이 모두 사라졌다고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나는 안식의 항구에 내 혼의 닻을 내렸으니, 다시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지 않으리. 폭풍이 거칠고 사나운 깊은 바다를 휩쓸어도, 나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네.
찰스 웨슬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 내려가 조용히 지낼 때의 일입니다... 작은 오두막이 있었고, 그는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가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찬송 한 곡을 짓도록 그에게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영감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해변을 따라 걸으며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철썩이는 파도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가 작은 오두막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기에 도착하기 전에 바람에 밀려 해변 밖으로 날아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외투를 끌어 올리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무언가가 품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가 돌아보니 작은 참새 한 마리가 피난처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폭풍이 지나가고 해가 나올 때까지 그 새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작은 녀석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날아가게 해 주었습니다. 새가 날아가자 그때 영감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 반석이시여, 그 안에 나를 숨기게 하소서. 아,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만세 반석, 지친 땅에 있는 그 반석, 폭풍이 몰아칠 때의 피난처입니다. 지친 땅에 있는 그 반석이시여, 저를 숨겨 주십시오. 나를 위해 갈라지신 만세 반석이시여, 저를 숨겨 주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이토록 즐기는 찬송과 그 밖의 것들을 쓴, 영감 받은 위대한 작가들... 여러분은 “그 찬송들도 영감을 받은 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그것들을 언급하시며 “시편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다윗이 이러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설교나 그 밖의 다른 것처럼,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제게 피난처가 있다는 것이 참 기쁩니다. 제게는 다른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소망은 오직 예수님의 피와 의 위에 세워졌네. 내 혼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분만이 나의 모든 소망과 의지할 분이 되시네. (이는) 굳건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내가 서 있기 때문이니, 다른 모든 땅은 가라앉는 모래라네. (그것이 무엇이든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의 목사님이신 러들 형제님께 맡기겠습니다. 사탄이 불을 꺼 버려서 유감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